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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다라시판타지와 개인전포스터 (부분)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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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전시를 마쳤으면 좋겠어요...'

전시를 앞두고 작가 최경태 작업장을 찾았다. 그가 자조적으로 한 말이다. 발표를 안하면 굶어야 하고, 하자니 이중적 잣대가 불안하고, 자체검열을 하자니 갑갑하다. 나만의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할 때 느끼는 존재감과 작품을 세상에 발표를 할 때 느끼는 압박감이 뒤섞여 떠오르는 불안이다. 이 곤혹스러운 정서는 7년전 대법원이 '여고생'그림을 음란물이라고 판결한 다음부터 생긴 후유증이다.

작년에 뉴욕과 서울에서 개인전을 진행했고, 1년만에 다시 개인전을 열었다. 최경태 그림은 음란한가? 설령, 음란하다면 안볼권리가 있지 않은가. 음란은 나쁜가? 한 작가의 표현물을 두고 모두가 공감하고 감동의 박수를 보낼일은 없다. 그러나 거꾸로 주홍글씨 마냥 불태우고 상처를 입힌다면 그 고통을 관통할 수 밖에 없다.

최경태의 여고생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우리 아이들이 처한 성적문화현실을 현실비판적 시각으로 담아낸 그림이다. 성기노출이 도발적이고 보는 사람에 따라 불편을 줄 지 모르지만 마녀사냥식으로 매도해서는 곤란하다. 회화작품을 도덕의 잣대로 읽으려는 태도는 거울 속 모습을 일상으로 착각하고 들이밀다 머리를 깨는 참새 꼴이다

몇년전 경기도 미술관이 최경태 작품 한 점을 샀다. 이때 작품은 교복을 걸친채 담배를 들고 풍선껌을 씹고 있는 삐딱한 여고생 그림이다. 작품해설에 '몸을 파는 여고생의 모습을 통해 자본주의 현실의 천박한 이중성을 고발한다'고 평했다. 최경태 작품이 음란물이 아니라 현실비판적 예술임을 공공미술관이 인정한 것이다. 

바블껌 프린세스
▲ 경기도 미술관 소장 최경태 작품 해설 이미지 바블껌 프린세스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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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미술관에 들어간 그림값은 80호 짜리 350만원이었다. 몇달전, 유명 화상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40호 크기 한 점을 보냈더니 이튿날 통장에 600만원이 입금되었다. 화상을 통한 컬렉터 값은 그 이상이 될 것이다. 작년에 뉴욕과 서울에서 전시하면서 도록을 만들었는 데 그곳에 실린 그림들 거의 일단 작가의 손을 떠났다.

호당가격이 불합리하지만 쉽게 따져 호당 약 오만원이던 작품값이 몇년 사이 몇배나 뛴 셈이다. 미술시장 거품도 만만치 않고 거래가 얼어붙고 있는 상황에서 최경태 작품이 팔리고 오르는 까닭은 무엇인가?  음란물이라면 이런 가격에 작품이 팔릴것인가.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해와 안목이 깊고 넓어진 것일까? 기존 잘 나가는 작가들의 작품에 비하여 주제의식이 강하고 차별성이 뚜렷하지만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탓도 작용하는 지 모른다.

작품이 팔린다 해도 기획과 계약조건에 따라 실제로 미술시장에서 작가에게 주어지는 몫은 반에 반밖에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나마 작품은 떠났는 데 돈은 오리무중일 때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웬만한 화가들의 생활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최경태 그림에 등장하는 인형이나 여고생의 배경과 삶은 자신의 분신이자 자화상과 다르지 않다.

그가 사는 작업장은 작년에 농가주택을 개조해 마련했는 데 땅주인이 바뀌면서 건물을 비우라는 통보에 쫓겨날 처지다. 아침에 열어 본 냉장고에는 김치 한쪼가리와 먹다 남긴 통조림과 햄만 달랑 있었다. 광폼나게 몰고 다니는 랭글러도 그의 후배가 그림값 대신 폐기시키려던 차를 떠넘긴 것이지만 이게 어디냐고 너스레를 떤다. 그가 언젠가 머스탱을 사는 것이 꿈이라고 밝힌적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상징이고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말했다.

월 생활비 육칠십만원. 최저 생계비에도 미치지 않는 돈으로 작업실을 지킨다. 주간연재신문소설에 삽화를 그리면서 사오십만원을 받는 데 한시적이어서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야 한다.  사랑이야 하겠지만 결혼은 커녕 동거도 생각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혼자 살았고 곁에 누구라도 있으면 불편한 탓이다. 그러고 보면 자신이 이기적인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인습적으로 결혼을 한다면 이땅에서 아직은 여자들이 더 고생이니 혼자 사는 것은 여성을 위한 배려로 보인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1.2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국가다. 원인은 복잡하지만 심정은 돈이다. 학벌과 경쟁도 돈과 딸려있다. 살벌한 세상에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간 큰 선택이다. 본래 섹스란 종족보전을 위한 화려한 날개짓 아니던가. 사랑은 남녀가 생명을 빗는 몸짓이다. 그러나 생명은 원하지 않는 사랑이 대세다. 누가 그랬을까?

민주화는 됐으니 경제를 살리자. 시장 자유화와 자본이 바탕이 되고 그 위에서 한바탕 경쟁을 치루는 세상이다. 이것이 정치권력과 맞물려 있다. 기업도. 노사문제도 연관되어 있다. 법과 도덕도 한몸이다. 언론과 광고도 그렇고 교육은 더 심각하니 두 말하면 잔소리다.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애인대행 인터넷 사이트, 오프라인에서 대딸방에 이어 키스방이 등장한다. 호스트바 뿐 아니라 여성이 성을 주도하는 힘도 커졌다. 돈, 경쟁,노동, 몸, 생존, 권력,정치적 요소가 성적인 요소와 결합하여 일어나는 무늬들이다. 여성들이 결혼을 미루거나 아이를 원치 않고 사랑만 하겠다는 것 따위가 이제는 놀랄일 아니다. 자본주의 정치가 낳고 있는 사회적인 반영이고 흐름이다.

최경태도 혼자 산다. 살림 솜씨는 깔끔하고 정돈되고 현실에 적응하는 이력이 붙었다. 자유롭지만 외롭다. 외로움을 달래 주는 벗들은 고물 전축에서 흘러 나오는 신중현의 기타 연주와 김정미 노래, 쌍날개 비행기 미니어처, 포로노, 로리타 인형들이다. 그리고 삶에서 인간의 원초적 본성과 욕망을 억압하는 정체를 묻고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을 꿈꾼다.

왜 여자만 그리는냐?. 남성이 주도하는 사회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여성이 주도하는 사회분위기라면 반대의 모델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해도 뜻은 다르지 않다. 남성이던 여성이던 인간성에서 볼 때 문제는 같다. 음란도 나쁘다고 탓할 수 없다. 최저 출산율 세계1위라는 통계는 포르노 1위와 통한다. 농경사회라던가 아기생산이 필요한 제도와 체제의 변화 없이는 사랑의 복원은 요원하다. 어쩌면 꿈일 지 모른다. 꾸미거나 과장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포르노가 엄연히 현실인 일상의 사랑을 담으려는 거다.

수요가 공급을 결정하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논리다. 그림의 상황이 좋고 나쁘고는 작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한 사회의 단면이다. 입은 삐뚤어져도 표현은 솔직해야 한다.  추악한 이중성에서 비교적 벗어나는 분위기인가? 더 이상 최경태 그림을 음란하다고 문제 삼거나 몰수할 분위기는 아니다. 미술관에 작품이 들어가고 컬렉터가 늘어나는 것은 그의 작품세계가 위험할 지라도 인정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뜻이다.

청량리역 화장실 소변기위 선반에 명함만한 찌라시가 놓여 있다. 인형방이었다. 인형과 섹스 하는 방이란다. 여성도 있지만 남성도 있겠다. 여기까지 왔다. 사람보다 인형이 더 쿨하고 편리하고 관리만 잘한다면 위생적일지 모른다. 요즘 기술이라면 미모의 몸매와 질감을 살려낼 수도 있으니 어쩌면 그런 풍경이 애완견 처럼 친숙한 모드가 될지 모를 일이다.

최경태는 이번 개인전에서  여고생에 이어 로리타 인형을 그렸다. 제목은 각각 ADARASI FANTASY와 DOII이다. 사랑도 현행법을 지켜야 한다는 데 아이러니는 계속된다. 소녀와 로리타 인형그림이 말을 건다. '저 어때요, 갖고 싶지 않으세요?...'

덧붙이는 글 | 12.11-20 서울 담갤러리 웨이방갤러리 두 곳서 동시에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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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최경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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