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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속에 겨울 숲이 들어왔다.
 이슬 속에 겨울 숲이 들어왔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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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은 1970년대에 나온 노래지만 지금 다시 애창되고 있다. 얼마 전 KBS <콘서트 7080> 조사에 따르면, 이 노래가 '한국인 불후의 명곡' 가요 부문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아침이슬'은 대중가요답지 않게 선율과 가사가 비감하고 치열한 데다 박정희 독재정권에 의해 금지곡으로 지정되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저항가요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아침이슬>은 박정희 시대를 거쳐 전두환·노태우 군부독재 시대에 많이 불렸다.

나도 학창 시절 거리에서 이 노래를 목이 쉬도록 불렀다. 학교 앞 막걸리 집에서 회식이 벌어지면 으레 이 노래가 터져 나오고는 했다. 이후 <아침이슬>은 우리 기억에서 한동안 멀어졌다. 그런데 올해 들어 이 노래가 다시 거리에서 군중에 의해 합창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선생님, 그 김갑수가 바로 접니다"

지난 6월 5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마친 뒤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지난 6월 5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마친 뒤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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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08년 한해가 저물고 있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도 하고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고도 한다. 만남에는 헤어짐이 따르며 헤어진 사람은 언젠가 만나게 된다는 말이다. 올해 나에게도 만남과 헤어짐이 각각 찾아들었다.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여름, 발신자가 생소한 이메일이 왔다. <오마이뉴스>에 내가 쓴 시국 비판글을 읽고 보낸 것이었다.

"요즘 좌파들의 책동이 심하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건지요? 필히 답변 바랍니다."

조금 무례하다고 할 수 있는 메일이었다. 메일은 모든 것을 거두절미한 채 나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일방적으로 답변을 요구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를 '좌파'라고 하는 악플성 메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답장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왠지 마지막 '필히 답변 바랍니다'라는 끝말이 뭔가 절실한 것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내 나름의 견해를 담아 답장을 써 보냈고 며칠 후 답장이 왔다.

"성실한 답변 감사합니다. 먼 곳에서 조국의 소식을 들으면 가슴이 아련해질 때가 있답니다. 김갑수씨의 힘찬 글을 여러 편 읽었습니다. 글도 인상적이지만 저는 필자의 '김갑수'라는 이름에 호감이 가서 메일을 보낸 겁니다.

저는 30여 년 전 서울 미아리에 있는 S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교사였습니다. 제가 조국을 떠난 것은 박정희의 유신독재 때문입니다. 당시는 교사로서 뜻 깊은 일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때 유행했던 '아침이슬'이라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그런데 제가 가르쳤던 학생 중에 김갑수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동명이인이겠지만 그래도 이름만으로 그 시절이 떠올라 메일을 보내봤던 겁니다. - 멀리 애틀랜타에서, 김동식 올림"

나는 편지를 읽자마자 답장을 써야 했다.

"선생님, 그 김갑수가 바로 접니다."

그 뒤로 지금까지 20여통의 메일을 주고받고 있다. 선생님과 나는 주로 시국담과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젊은 시절 음성이 유려했던 선생님은 지금 미국 애틀랜타 한인방송에서 <김동식의 라디오칼럼>을 진행하고 계신다. 나는 가끔 방송국 사이트에 들어가 선생님의 방송을 듣는다. 선생님도 지난 여름에 발간된 내 소설 <오백년 동안의 표류>를 읽고는 상세한 소감을 보내주셨다.

밤새 개표방송 보시던 어머니 "저 노래 또"

나는 올해 사랑하는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꼬장꼬장한 남편의 아내로서, 그리고 개성 강한 7남매의 어머니로서 90성상을 보냈던 그네는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때에 숨을 거두셨다. 그네는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해방과 분단과 전쟁과 혁명과 독재를 모두 체험하셨다. 아들 셋 모두 군대에 갔다온 것을 두고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들 셋 다 박 서방(박정희) 머슴살이 시켰구나."

10년 전 처음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던 날 새벽 어머니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인자 자도 되냐?"

80세 어머니는 대통령 선거 개표방송을 밤새 보신 것이었다. 마지막까지 명민하셨던 어머니가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가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저 노래가 또 나오네."

무슨 일인지 텔레비전에서는 <아침이슬> 선율이 트럼펫으로 연주되고 있었다.

올해의 단어, 너무 많아서...  

▲ 양희은과 50만 촛불시민이 함께 부른 '아침이슬' 지난 6월 10일 광화문에서 열린 '6·10 고시철회, 즉각 재협상 국민무시 이명박 정권 심판 100만 촛불 대행진'에서 가수 양희은씨는 50만 촛불시민들과 함께 '아침이슬'을 불렀다.
ⓒ 문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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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단어를 고르려고 하니 떠오르는 것이 너무도 많다. 그만큼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기야 '올해가 다사다난했다'는 말은 '요새 젊은 것들 버릇없다'는 말처럼 언제나 있는 소리라지만 그래도 올해만큼은 유별나다 할 정도로 사건·사고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숭례문 화재, 이 대통령 취임, 경제 불황, 고유가, 공기업 민영화, 종교 편향, 대운하, 오바마 당선, 금강산과 개성공단, 멜라민, 자살, 김정일 중병설 등등…. 수많은 사건·사고들이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1년 내내 줄을 이어 발생했지만, 그래도 올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은 '촛불'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촛불은 우리의 의사로 선택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또한 촛불은 지나가버린 사건이 아니라 잠재되어 있거나 진행중인 사건이기도 하다.

아침이슬은 바람 없고 맑은 날 맺힌다고 한다. 이 단어는 어감만으로도 순수하고 영롱하다. 이명박 대통령도 촛불은 싫어하지만 아침이슬은 좋아한다고 했다.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하라"고 버럭 호통을 쳤던 대통령도 아침이슬 앞에는 못내 다소곳해졌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지난 6월 10일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졌던 그 밤에,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습니다.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제가 오래 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이라는 노랫소리도 들었습니다."


바로 이 촛불집회에서 아침이슬은 30년 만에 민중의 저항가요로 화려히 부활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다시 <아침이슬>을 불러야 하는 시대에 당도한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지난 여름 실로 30년 만에 <아침이슬>을 거리에서 목 놓아 불렀다. 이런 점에서 올해의 단어를 단순히 '촛불'이라고 하지 않고 역사가 묻어 있는 단어 '아침이슬'로 선택해 보았다.

30년 전에 불렀던 조그만 사랑노래

지난 6월 22일 새벽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세종로 사거리에서 비를 맞으며 '아침이슬'을 부르고 있다.
 지난 6월 22일 새벽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세종로 사거리에서 비를 맞으며 '아침이슬'을 부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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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빠르다'는 말처럼 진부하면서도 매번 실감나는 말은 또 없을 것이다. 특히 시간은 전반부보다는 후반부가 더 빠르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러므로 1년 중 상반기보다는 후반기가 더 빠르게 지나간다. 가을이 얼른 지나가는 것은 그것이 한 해의 후반기에 있기 때문이다. 가을이 빨리 지나갔으니 세모(歲暮)는 더 빠르게 들이닥쳤다.

우리 인생에서도 유·소·청년기보다는 중·장·노년기가 더 후딱 지나간다. 이런 탓인지 요즘 나에게 세월은 '빠르다'기보다는 '질주한다'고 해야 더 적합한 말이 될 성싶다. 아닌 게 아니라 세월은 30년 동안 질주해와 그때와 똑같은 노래를 부르게 하고 있지 않은가.

이 나라에 새 정부가 들어서고 시청 광장에 수십만 촛불이 광휘롭게 타오른 일이 정말 엊그제 같은데 벌써 지난 계절의 일이 되고 말았다. 비단 올해뿐이랴. 엊그제 같기는 1년 전이나 수십 년 전이나 다르지 않다. 게다가 올 겨울은 유난히 30년 전쯤의 겨울과 흡사하게 느껴진다.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 황동규, <조그만 사랑 노래>

시인이 이 노래를 부른 것은 박정희의 10월 유신이 있던 1972년이었다. 이 시는 사랑 또는 자유와 정의가 실종된 시대의 비극적 인식을 가차없이 드러낸다. 시구처럼, 당시 우리는 소중한 것들과 결별해야 했다. 그러고는 기껏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다 대고 사랑한다고 읊조려야 했다. 우리가 내려앉을 땅은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는 성긴 눈송이처럼 눈뜨며 떨며 한없이 떠다니며 살아야 했다.

그로부터 30여 년, 오늘의 우리는 어떠한지. 그때와 지금이 많이 다른 건지. 별로, 아니 전혀 다른 것 같지가 않다. 우리의 자유와 인권은 2008년 들어 급속도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 남북관계가 험악한 것도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권력 횡포와 경제 위기로 벼랑에 몰린 약자들은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그때 역사를 고쳤던 사람들은 지금도 역사를 고치고 있다. 그때 방자했던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방자하다. 따라서 그때 서러웠던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서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촛불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침이슬'이 최고의 노래로 불리는 한 촛불은 시들지 않는다. 이제 한 해가 모두 기울었다. 하지만 희망은 절망 가운데에서 피어난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이 더 강한 법이라고 하지 않은가. 2008년 세모의 자락에서 다시 조그만 사랑노래를 불러본다. 우리 모두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서러움 다 버리고 2008년을 떠나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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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올해의 단어 응모글'입니다.
-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대하역사팩션 <제국과 인간>을 연재중입니다.



태그:#올해의 단어, #아침이슬, #촛불,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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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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