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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893권 888책. 한글로 번역할 경우 320쪽 짜리 책 413권 정도 되고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록된 것은 무엇일까? <조선왕조실록>이다. 이 정도이면 우리 역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조선왕조실록>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기록문화임은 분명하다.

우리가 아는 대로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에서부터 조선 철종 때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편년체(編年體: 역사적 사실을 일어난 순서대로 기술하는 역사서술의 한 방식)로 기록한 책이다.

'실록(實錄)'이라 이름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하루 일상을 쓴 일기를 넘어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 사회, 경제, 문화, 정치 면면을 볼 수 있고, 생명을 놓아도 진실만을 기록하겠다는 사관들의 직업 정신과 그 사관들의 독립성을 보장했던 조선 왕들의 기록이다. 조선은 이렇게 위대한 기록문화를 남겼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이 기록물과 독립성, 진실성에서는 위대할지 몰라도, 한문본이므로 일반인들이 읽지 못하니 안타까움이 크다. 국역조선왕조실록과 CD가 나왔지만 더욱 쉽게 <조선왕조실록>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요구되었는데 만화로 된 <조선왕조실록>이 나왔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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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에 연재되었던 만평 '한겨레그림판'으로 잘 알려진 만화가 박시백 화백이 2001년부터 사료 연구와 고증을 통해 조선 시대 사관의 심정으로 그려온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다. 지금까지 <인조실록>까지 12권이 나왔다. 총 20권을 예상하고 있다.

만화이기 때문에 가볍고 쉽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박시백 화백이 각 실록에 담겨있는 역사에 대한 해석과 인물 분석은 깊게 연구했음을 책장 한 장 한 장을 넘기면서 깨닫게 된다. 또한 위트 넘치는 글과 그림은 만화를 한 번 잡으면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사흘 만에 10권을 다 읽었는데 출판사 말처럼 손에 놓지지 못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초등학생들 역사 공부에서 어른들이 지하철 따위 공공장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판형과 품격있는 형식으로 펴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만화가 본질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재미가 가미되고, 저자 개인의 사관이 개입되면 진실성을 왜곡시킬 수 있지만 각 권마다 끝에 본문 만화와 연관지어 상세한 연표를 실어 역사 왜곡을 피할 수 있게 한다. 그냥 재미로 읽는 만화가 아니라 격조있는 인문교양만화인 것이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의 또 다른 점은 각 권마다 ‘작가 후기’를 통하여 박시백 자신이 실록 당사자였던 왕들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말한다. 1권 <개국> 편 공양왕 평가를 보자.

"무능과 겁쟁이의 대명사라는 오명을 썼지만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이성계 일파에 의하여 억지로 왕이되었지만 공양왕은 나름대로 논거를 대고, 논거가 부족하면 감성에 호소하고, 혹은 못 들은 척 하면서 필사적으로 버티는 공양왕."(<개국>)

박시백은 공양왕을 통하여 1979년 12월 12일 군사쿠데타로 민주주의를 유린했던 최규하 대통령을 떠올린다. 500년 왕조를 자기 대에서 끝낼 수 없다는 공양왕은 마지막까지 고려를 지켜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유린했던 전두환 일파에게 최규하 전 대통령은 저항하지 않았다. 기록하나 남기지 않고, 떠났으니 역사는 어떻게 그를 평가할지 궁금해진다.

성종은 어떨까? 우리가 하는 성종은 세종과 함께 조선 전기 명군으로 인식되고 있다. 세종이 남긴 업적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계유정난을 일으켜 왕실을 피바람으로 억울지게 한 세조가 남긴 비극을 성종은 홍문관을 육성하고, 경연을 활성화시켰으며, 대간의 활동을 보장하는 등의 세종 때의 유교정치를 복구, 발전시켰다.

특히 지난 행정수도 이전이 위헌이라는 '관습법'으로 활용되었던 <경국대전>을 완성하여 법치제도를 정착시킨 왕이었다. 하지만 박시백은 이런 안타까움을 성종에게 표시한다.

"세종은 대간과 대신의 권력을 적절히 조절하며 서로 견제하게 하면서 자신의 구상대로 정국을 끌고 갈 수 있었지만, 성종은 어렸을 땐 대신세력에게, 친정 후엔 대간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예종성종실록>)

박시백 화백의 후기에서 눈길을 끈 대목은 10권 <선조>편에서 선조가 왜 이순신은 그토록 싫어했고, 원균을 높이 평가했는지에 대한 평가다.

"이순신이네처럼 비교 당하지 않잖아. 그리고 덤으로이런 효과도 있어요 그들의 공을 높이면 비슷한 처신을 한 나의 과오도 희석된다는."

자신의 치세에 왕조가 생명을 고할 위기를 닥쳤지만 그는 무능력했고, 후안무치했다. 동북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몰랐고, 명나라에 군권을 내주었고, 명나라가 없었다면 조선이 이길 수 없다고 했으며, 조선군 중에 나라를 위하여 힘쓴 이가 별로 없다고 했다.

그런 말을 한 선조가 이순신을 좋아할 리가 없다. 율곡 이이에 대한 평가를 그는 ‘똑똑하고 참한 선비’에서 ‘시대정신을 바로 읽은 열정적인 개혁정치가’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고 평가 했다. 이순신은 박시백 화백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실로 하늘이 내린 인물. 그가 아니었다면 조선은 그때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거나 남북으로 분단되었으리라. 원칙적이고 기본을 중시하는 태도, 피아의 역량과 지형지물을 정확히 판단한 데 따른 창의적인 전략전술, 필사즉생의 정신, 선비보다도 더 선비다운 풍모와 자기 절제, 나라와 백성, 대의를 철저히 앞세우는 모습에서 ‘성웅’이란 표현이 전혀 과하지 않은 인물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선조실록>)

실록 한 권을 읽어가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500년, 400년 전 조선 왕들이 무슨 말을 했고, 어떤 역사를 만들었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왜곡된 기록이 있을 수 있지만 큰 흐름을 바꾸지는 못한다.

조선왕조실록을 가장 위대한 기록문화라고 자랑하지만 과연 지금 우리는 우리 후대 사람들에게 이런 위대한 기록물을 남길 수 있는가? 민주주의 시대라고 하지만 최고 통치권자 기록물에서는 조선왕조보다 훨씬 못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10권 박시백 지음 ㅣ휴머니스트 펴냄 ㅣ 98.500원



[휴머니스트] [2015년최신개정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완간 세트 (전20권)

, 휴머니스트(2015)


태그:#조선왕조실록, #박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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