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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방예산이 얼마인데 아직까지 국군장병 위문 성금을 모금 하느냐, 이명박 정부에서 사회복지 예산 줄이고 있는데 어려운 사람 돕는 모금이면 모를까."

 

충북의 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은 지난 11월 급여 명세서에서 '국군장병 위문'이란 문구와 함께 9000원 정도가 공제된 걸 확인하고 이 같이 말했다. 공제된 날짜는 20일. 지난해도, 지지난해도 마찬가지였다.

 

충북도는 10월 31일 국가보훈처 복지지원과에서 시달된 '2008년도 국군장병 등 위문계획 관련 성금모금 협조'란 제하의 공문을 시달하고 모금을 독려했다. 이로 인해 공무원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

 

도는 공문에서 '국토방위에 헌신하는 국군장병, 전·의경 등의 노고를 위로·격려하고 이들의 사기진작을 위한다'며 '매년 실시해 오고 있는 '연말연시 국군장병위문계획(‘08. 10. 21. 국무회의)'에 의거 아래와 같이 성금모금을 한다'고 밝혔다.

 

이 공문에는 공무원, 정부투자기관과 산하단체 임·직원 등이 모금대상이라고 밝히고 있다.

 

모금 방법은 각 기관별로 자율적으로 실시하라는 내용과 직원회의, 노조회의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모금을 추진하라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지난해의 경우 봉급월액의 0.4~0.5% 수준'이라고 정해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못 박았다.

 

또한 반발을 줄이기 위해 '위문금 모금과 관련하여 원래의 취지에 부합되도록 자율적으로 시행하고 대외적 물의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 홍보하라'는 내용과 함께 모금기간을 10월과 11월로 정해줬다.

 

도는 공문에서 기관명과 대상인원, 봉급월액, 참여인원, 성금액, 모금비율 등이 담긴 모금결과를 총무과로 통보하라고 지시했다.

 

문제는 상급기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시군이 모금비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소속 직원이나 노조와 협의도 없이 봉급에서 일괄 공제하면서 불거졌다.

 

충북의 A자치단체의 경우 도의 공문을 소속직원들에게 시행하면서 '직원들의 자발적 모금에 따라 11월 봉급시 공제(본봉의 0.4%정도)하고, 회계담당자는 직원들의 자발적 모금을 통해 11월 봉급 시 일괄공제 하라'고 주문했다. 이곳뿐만 아니라 다른 자치단체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무원들 "자발적 모금 빙자한 강제징수"

 

보훈처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국군장병 위문 등'이란 제목으로 위문개요, 위문계획, 위문성금 모금 등 목적과 방법을 상세히 안내하고 있다.

 

이 자료는 충북도에서 소속 자치단체에 시행한 공문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위문방법으로 위문반을 편성해 전방장병은 3부요인과 국무위원 및 장관급 인사 등이, 후방장병(전·의경 등 포함)은 시·도지사 등이 위문토록 했다.

 

자료에 따르면 2006년 모금액을 57억 5171만원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으로 얼마가 어디에 쓰였는지에 대한 소개는 없다. 이밖에 공무원 직급별 급여에 따라 0.4%와 0.5% 모금 시 최저, 최고, 평균 모금금액을 기록한 '2007년도 봉급월액 대비 모금비율별 예시'자료를 첨부파일로 친절히 안내했다.

 

공무원들은 자발적 모금을 빙자한 강제징수라고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공무원 A씨는 "금액을 떠나 한마디 상의도 없이 봉급에서 강제로 국방성금을 강탈해 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자발적 모금이라면 자신의 뜻에 따라 참여하고 싶은 만큼 자율적으로 내는 것이 맞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공무원 B씨는 "정치인인 장관이나 시도지사가 위문하는 것도 문제"라며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장사꾼이 번다고 정치인들의 좋은 이미지만 부각시켜주는 꼴"이라고 위문방법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공무원 C씨는 "국군장병 위문을 위해 돈을 걷어야 할 만큼 예산이 빠듯하느냐"며 "사용처 또한 공개되지 않고 있고, 미국에서 들여오는 고물 무기 수입에 낭비되는 예산만 줄여도 고생하는 군 장병들 충분히 위문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우리나라 국방예산은 정부 예산 중 15.2%(2008년)를 차지하고 있으며 2006년 22조5천억, 2007년 24조5천억, 2008년 26조6천으로 꾸준히 증가해 왔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7.5% 증가한 28조6천억을 편성했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06년 기준 국내총생산(GDP)대비 국방비 비율이 인근국가인 일본(0.9%), 중국(1.3%)에 비해 높은 2.7%였으며, 국민 1인당 국방비도 중국(93달러), 일본(322달러)에 이어 군사대국인 러시아(493달러)보다 높은 510달러로 나타났다.

 

한편 국군장병과 전·의경 등에 대한 위문 성금 모금이 진정한 의미의 자발적 모금이 되지 않을 경우 공무원들의 불만은 해마다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성금 사용처를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한층 높아지고 있어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태그:#국군장병 위문,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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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이 세 아이가 학벌과 시험성적으로 평가받는 국가가 아닌 인격으로 존중받는 나라에서 살게 하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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