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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흠신서>의 ‘흠흠(欽欽)’이란, 삼가고 또 삼간다는 뜻이다. 일체의 편견을 버리고 공정하게 양쪽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 그리고 몇 번이고 돌이켜 생각해서 진실에 보다 가까이 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다산 선생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사법의 원리다.”

 

이 ‘사법의 원리’가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실현되고 있으며, 시민들은 이 말에 얼마나 동의할까? 금태섭 변호사가 쓴 <디케의 눈>을 덮으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금태섭 변호사는 지난 2006년 <한겨레> 신문에 ‘현직 검사가 말하는 제대로 수사 받는 법’을 연재하려다가 많은 논란 끝에 마무리하지 못했던 검사출신이다.

 

<디케의 눈>은 두꺼운 법전이 아니라 그동안 일어났던 여러 사건들을 통하여 법이 어떻게 해석되어왔고, 적용되었는지, 그리고 결국 법이 지향해야 할 방향과 목적이 무엇인지 생동감있게 표현하여 일반 독자들이 쉽게 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끈다.

 

만약 자신이 피의자 신분으로 체포되었을 때, 변호사가 자신이 올 때까지 범죄 혐의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말라고 했고, 경찰에게도 자신이 올 때까지 피의자를 조사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경찰이 정식 조사는 아니지만 피의자의 종교적 양심이나, 보편적 도덕에 따라 설득하여 범죄 혐의를 자백했을 때 그 자백은 증거로 인정될 수 있는가?

 

1968년 윌리엄스 판결이 중요한 예를 보자. 윌리엄스는 소녀를 살해한 혐의 받고 체포되었는데 윌리엄스 변호사는 자신이 만나기 전까지는 윌리엄스를 심문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윌리엄스를 체포했던 베테랑 경찰 리밍은 경찰 호송차 안에서 윌리엄스가 종교에 심취한 인물임을 알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납치 당해 살해 당한 어떤 소녀 이야기를 해주면서 생각을 해보라고 했다. 결국 월리엄스는 자백하여 소녀가 묻힌 곳을 찾았고, 살인죄로 재판을 받았다.

 

하지만 월리엄스 변호사는 자백이나 그 자백을 토대로 찾아낸 소녀의 시체를 증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고, 재판부는 이를 인정했다. 조사를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변호사 입회 없이 양심에 대한 호소와 보편적인 도덕 개념에 따라 설득한 것도 조사에 해당된다는것이다.

 

“피의자가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거리낌 없이 행사하기 위해서는 수사관의 양심이나 인격을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만일 수사관이 강압적이지 않고 공정하게 조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면 애초에 변호인은 필요도 없을 것이다.”(148쪽)

 

과연 우리나라 수사기관은 월리엄스 판결과 금태섭 변호사 주장을 어떻게 받아 들이고 있을까? 지금은 사라졌지만 군사독재 정권 시절 민주주의를 위하여 싸운 이들을 ‘빨갱이’로 몰았고, 상상하기 힘든 고문을 자행했다.

 

한 아이가 있었다. 마이클 페이 그는 미국계 싱가포르 사람이었다. 그는 1994년 싱가포르에서 자동차 50대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4개월, 벌금 3400싱가포르 달러, 태형 6대를 선고받았다. 문명국 싱가포르에서 태형이라니?

 

태형은 잔인한 형벌이다. 당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상원 의원들이 태형만은 면해주길 원했지만 싱가포르는 6대에서 4대로 감형만 했을 뿐, 집행했다. 과연 마이클은 태형을 받고 새 사람이 되었을까?

 

숀 코네리 주연 <더록(Tne rock)>의 주 무대였던 '알카트라즈'는 악명 높은 교도소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앞 바다에 떠 있다. 알카트라즈 교도에는 범죄자는 처벌 받아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잔인하고, 철저한 격리를 행하며, 그로인해 그들이 새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태형을 받은 마이클은 새 사람이 되지 않았고, 알카트라즈 교도소도 폐쇄되었다. 그렇다. 형벌은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이 마지막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보다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키기 위함이 목적이여야 한다.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처벌은 사람을 새 사람으로 만들 수 없음을 마이클과 알카트라즈는 보여주고 있다.

 

<디케의 눈>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우리나라 대법원과 미국 연방법원 구조였다. 우리 대법원은 14명의 대법관이 1만8960건을, 미국 연방대법원은 9명이 88건을 처리했다. 2001년 기준이다. 1만8960건과 88건. 일 많이 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우리나라 사람들 생각으로 보면 우리나라 대법원이 미국 연방대법원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 기억 속에 남을 위대한 대법원 판결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일반 시민들뿐만 아니라 법률전문가들도 마음 속에 간직할 만한 판결문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1년에 1만8000건 이상을 판결하는 대법원 구조에서는 나올 수 없다.

 

반면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 중엔 길이 남은 명판결은 많다. 이 명판결에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경제, 정치 관련 사안들만 있는 건 아니다. 아주 작지만 인간 기본권에 정말 중요한 사건들도 있다. 그 중 하나가 '미란다 경고'이다.

 

미란다 경고는 성폭행을 아주 치졸하게 범한 어네스트 미란다 사건을 통해서 내린 판결이다. 성폭행범 사건을 통해서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사법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판결을 내린 것이다.

 

<디케의 눈>은 결국 진실 편에 서도록, 인간 기본권을 보호하고 편견과 선입관을 배제하기 끊임없는 노력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디케의 눈> 금태섭 지음 ㅣ 궁리 펴냄 ㅣ 12,000원


디케의 눈

금태섭 지음, 궁리(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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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사법, #기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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