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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임에서 한 친구가 '혹시 어디서  실수를 하게 되면 한국 사람이라 하지 말고 일본사람이나 중국 사람인 척 하자'는 우스개 소리를 해서 모두 웃은 적이 있다. 호주에는 여러 민족이 섞여 살고 있으니 한국 이민자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인'이라는 제 몫의 대표성을 저마다 걸머지고 있다는 뜻이리라.

내가 잘못하면 부모망신이자 가족 체면 깎인다는 식의 사고 방식처럼, 나로 인해 한국 커뮤니티가 손가락질을 당하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각자 책임 의식의 발로인 것이다.

이렇듯 우리 딴에는 이 나라의 문화와 질서를 존중하며 조신한 마음가짐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건만, 최근 조사에서 호주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 사람들은 한 마디로 '비호감 그 자체'라니 정말이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주는 것 없이 밉다'는 말처럼 그들에게 우리는 그렇고 그런 존재도 못 된단 말인가.

전국적으로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각 나라별 호감도를 물은 전화 설문조사에서 한국은 조사대상국 17개국 가운데 '비호감 톱 5'에 선정되는 불명예를 얻었다니 하는 말이다.

더구나 우리 나라보다 점수가 낮은 국가래야 파키스탄과 이란, 이라크 정도였다니 밤낮 테러와 인종, 종교 분쟁을 일삼는 회교국들과 비교해도 호주인들의 눈에는 '거기서 거기'로 보였다는 뜻이리라.    

역사적 배경 탓에 모국으로 인식되고 있는 영국에 대한 무조건적 호감은 차치하고라도 멜라민 파동을 비롯해서 갖가지 불량제품으로 '국제적 말썽쟁이'로 찍혀버린 중국조차 우리보다는 친근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구나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어쩌다 이번에 유독 이런 결과가 나왔겠지' 하고 섣불리 자위할 수도 없는 것이, 지난 2006년의 56점에서 올해는 50점으로 호감도 평점이 더 떨어졌다고 하니 할 말이 없을 수밖에. 하물며 이란, 이라크 등도 해마다 꾸준히 점수가 올라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중국과 일본에 이어 호주의 세 번째 수출국이라는 점에서 이같은 결과에 대해 '일껏 돈 벌려주었더니' 하는 모종의 배은망덕조차 느껴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 쪽의 서운함일 뿐, 차제에 도대체 우리의 어디가 그네들의 비호감을 자극하는지 곰곰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번 일을 놓고 영국 뿌리를 가진 나라에서 동양 문화권에 대한 생소함이나 나아가 한국에 대한 낮은 인지도가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시드니 내 동포 숫자가 10만명에 이르고, 연간 호주를 찾는 한국 관광객이 20만명, 유학생과 워킹홀리데이 비자 방문자가 3만 명에 달하며, 한국을 가본 호주인도 9만 명에 육박하는 통계를 볼 때 물적·인적 교류는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어디 그 뿐인가. 한국의 현대 자동차와 삼성, 엘지전자등은 한국을 대표하는 고급 브랜드로 전 호주인들에게 각인되어 있다.즉 '한국을 몰라서 호감을 못 느낀다'는 평가는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상대를 전혀 모르는데 호감을 느낄 수는 없지만 인지도가 곧 호감도가 될 수는 없기에 '알려진 한국'과 '느껴지는 한국'의 괴리가 그만큼 크달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결국 체감되는 한국은 객관적 지표나 통계수치, 사실 집계가 아닌, 일상을 통해 직접 부딪히고 경험하는 감성의 경로로 파악되어지는 것이 아닐까.

이 글을 쓰면서 유독 한국 학부모들은 자식의 성적에만 열의가 있지 학교 행사나 봉사 활동에는 좀체 코빼기를 보이는 법이 없고, 아이들의 등하교 길에도 같은 한국인끼리만 왁자하게 모여 떠들기 일쑤라는 주변 호주인들의 공통된 핀잔이 언뜻 떠오른다.

그런가하면 지역 사회 활동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고 자신들의 돈벌이에만 급급하다는 타커뮤니티의 부정적 평가도 새삼 곱씹게 된다. 거기에 한국인 특유의 근면과 성실성에 '눈꼴이 시어지면' 이기적이고 그래서 얄밉다는 생각이 부채질을 받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게다가 한국과 관련하여서는 매스컴들이 나서서 안 좋은 소식만 골라 보도하는 판이니 미운 털이 박힌 듯 호주땅 한국 이민자들이 이래저래 풀이 죽을 밖에.

덧붙이는 글 | 내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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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호주 이민, 호주동아일보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지냈다. 시드니에서 프랑스 레스토랑 비스트로 메메를 꾸리며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부산일보 등에 글을 쓰고 있다. 이민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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