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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현 제2시범아파트는 박정희 정권 때 세워졌던 시민아파트 가운데 금화시민아파트와 함께 아직 철거되지 않고 남아있다.
 회현 제2시범아파트는 박정희 정권 때 세워졌던 시민아파트 가운데 금화시민아파트와 함께 아직 철거되지 않고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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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메트로 4호선 회현역 3번 출구에서 남산 방향으로 올라가다 보면 가파른 산을 깎아 만든 오래된 아파트 하나가 눈에 띈다. '회현 제2시범아파트', 박정희 정권 때인 1970년에 지어진 400여 동의 시민아파트 중 하나다. 당시 건설된 '시민아파트' 가운데 서대문구 충정로 금화시민아파트와 함께 아직 철거되지 않고 남아 있다.

지난달 26일 새벽 4시 30분, 서울역에서 남대문 시장을 거쳐 이 아파트를 찾아갔다. 캄캄한 새벽녘, 가파른 언덕에 위치한 건물을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근방에도 정확한 위치를 아는 이가 드물었다. 결국, 1시간을 헤맨 끝에야 회현동 언덕에 자리 잡은 아파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박정희시대 유물로 남은 시민아파트

회현 제2시범아파트는 2004년 11월 19일에 재난 위험 시설물 D급으로 지정되었다.
 회현 제2시범아파트는 2004년 11월 19일에 재난 위험 시설물 D급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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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어둠이 가시지 않은 아파트 출입구에서 관리인 오아무개(69)씨와 유아무개(60)씨를 만났다. 관리 일을 시작한 지 30년이 다 되었다는 오씨가 회현 제2시범아파트의 역사를 구성지게 늘어놓았다.

"박정희 정권 때 와우아파트가 붕괴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는데 그 후 완성된 게 이곳 회현 제2시범아파트였다. 시범 삼아 튼튼하게 지으라는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의 지시 때문에 '시민아파트'가 아닌 '시범아파트'(분류상은 시민아파트. 이후 여의도 등에 건설된 고층형 시범아파트와는 다른 개념임... 편집자 주)라는 이름이 붙었다."

1969년 서울시는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무허가 판자촌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았다. 그래서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육군 준장 출신 김현옥씨를 서울시장으로 임명하고 판자촌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한 시민아파트를 짓게 했다.

그러나 막대한 토지 보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에 대부분 시민아파트들은 산 중턱이나 가파른 언덕에 지어졌다. 회현 제2시범아파트도 마찬가지. 남산의 가파른 언덕을 깎아 건설되었다.

시민아파트 건설과 관련해 웃지 못할 일화가 있다. 당시 서울시 관계자가 높은 산 중턱에 시민아파트를 짓는 이유를 묻자 김현옥 서울시장은 "(그래야) 청와대에서 잘 보일 게 아니냐"라고 답했다고 한다. 권력의 눈치를 봐야 했던 군사 독재 시대의 이야기다. 

시민아파트 건설에는 행정 미숙과 건설비리, 부자들의 잇속 챙기기가 판을 쳤다. 덕분에 영세민들을 위한다는 시민아파트의 본래 취지는 무색해졌다. 건설 공사에 필수적인 지질 안전 검사는 없었고 건설 자재는 하청 업체들에 의해 빼돌려졌으며 영세민들이 들어가기로 했던 시민아파트의 태반은 부자들이 차지했다.

그런 부패 때문이었을 것이다. 1970년 4월 8일, 서울시 마포구 창전동 산에 위치한 와우 지구 시민아파트 15동이 부실 공사와 내부 중량을 견디지 못하고 완공 4개월 만에 무너져 내렸다. 사망 33명, 중상 19명, 경상 21명의 대형 참사였다.

나머지 시민아파트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한 냄새가 나고 벽이 갈라지는 아파트가 비일비재했다. 결국, 책임자였던 '원조 불도저' 김현옥 시장은 얼마 뒤 경질되었다.

회현 제2시범아파트는 와우 아파트 붕괴라는 사고 뒤인 완공되었다. 시범 삼아 튼튼히 지으라던 이곳은 다행히도 장장 38년을 잘 버텨냈다. 다른 시민아파트들이 하나 둘 사라질 동안에도 이 아파트는 영세민들의 보금자리로 꿋꿋이 그 기능을 다하고 있다.

철거와 보상 사이에서 감정의 골만 깊어져

회현 제2시범 아파트
 회현 제2시범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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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가는 세월을 막지는 못했다. 아파트 곳곳의 설비는 노후화되어 있었다. 급기야 회현 제2시범아파트는 2004년 11월 19일에 재난 위험 시설물 D급으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보수·보강 공사나 철거가 시급한 문제로 떠올랐다. 결국, 서울시는 2006년 9월18일 회현 제2시범아파트 1개 동 352가구(56.20m²)를 연내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일까? 그 계획은 2년째 표류하고 있었다. 좀 더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 중구청에 문의했다. 주택과 관계자는 회현 제2시범아파트의 철거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입주민들과 합의가 되지 않은 점을 이유로 들었다.

"아파트 설비가 노후화되었기 때문에 철거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58세대만 합의가 되었다.(세입자 52세대) 나머지 세대와 서로 합의가 안 되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다. 감정평가와 함께 입주민들이 다른 지구 배치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현 시민아파트가 서울시 땅이기 때문에 재산 가치가 7000만원 정도(세입자는 600만원~1000만원 사이)로 평가되었는데, 주민들은 다른 시민아파트 가격이 더 높게 책정되었다며 반발하고 있다. 1년 후, 재감정을 실시한 결과 보상금이 약간 인상되었다."

서울시는 2006년 말에 철거 계획을 잡았지만 회현 제2시범아파트 입주민들과 보상 액수를 놓고 갈등이 있다. 그래서 보상 계획을 수립하고 이주를 추진해 철거에 들어가기로 한 서울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결국 아파트 철거는 아직 합의 단계에 머물러 있고 입주민들과 서울시는 감정의 골만 깊어진 상태다.

서울시와 회현 제2시범아파트 입주민들 사이의 보상 문제는 2년여동안 합의 되지 않았다.
 서울시와 회현 제2시범아파트 입주민들 사이의 보상 문제는 2년여동안 합의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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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아파트 철거에 관한 입주민들의 생각은 어떨까? 회현 제2시범아파트 입주민들을 만나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대학생 박지혜씨가 철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아파트가 오래되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허물어져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보상문제가 잘 해결되어야 하는 부분 중의 하나인데 서울시가 처음에 약속했던 것을 지키지 않아서 집주인들과 문제가 생겼던 것으로 알고 있다. 좋은 쪽으로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한옥란(60·시각장애인)씨는 철거가 늦어지는 이유로 보상금 문제를 꼽았다.

"원래 이곳에 시각장애인 10여명이 같이 살았는데 절반 정도는 철거 문제로 인해 아파트를 떠났다. 건물 안전 등급도 위험하게 나왔기 때문에 아파트 철거가 필요하다고는 생각한다. 그런데 서울시에서 보상금 7000만원에 우리를 나가라고 하고 있다. 하지만 7000만원으로는 어디 근처에 집 하나 얻지 못한다. 그런 액수로는 다른 보금자리를 찾을 수 없다. 하루하루가 불안한 마음이다."

아파트 철거를 반대하는 입주민들도 있었다. 신순분(85)씨가 대표적인 경우였다. 그는 회현 제2시범아파트가 완공된 1970년도에 쌈짓돈 1100만원을 모아서 이 건물에 입주한 사람이었다. 신씨에게 있어 회현 제2시범아파트는 자신의 반평생 인생을 담은 집. 그래서 아파트 재건축 문제에 대해 불만 섞인 목소리를 꺼냈다. 그는 "아파트 구조가 튼튼하기 때문에 아파트 철거 대신 보수·보강공사를 하면 오래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40여년 전 노점 장사를 해서 모은 돈으로 이 아파트에 들어왔다. 남부럽지 않은 아파트였는데 지금은 오래된 아파트 취급받고 철거 이야기도 공공연히 나오고 있어 안타깝다. 재건축을 뭐하러 해? 이 아파트 구조는 튼튼하다. 설비가 낡아서 그렇지. 고쳐서 써도 충분하다. 난 절대로 나가지 않을 거다. 이 아파트가 헐려서 잡아내면 그때야 가지."

이렇듯 서울시와 입주민들 사이에 아파트 철거에 관한 입장 차이는 컸다. 입주민들의 생각도 저마다 달랐다. 지금 회현 제2시범아파트 입주민들은 철거 문제를 둘러싸고 속앓이를 하고 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100여세대(보상받은 58세대 제외)는 보상금도 받지 못하고 아파트를 떠났다. 안전 문제로 인해 더이상 아파트에 남아 있지 못한 것이다. 이제는 갈 곳 없는 입주민들만이 회현 제2시범아파트에 남아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시민아파트 철거가 싫은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간 아파트는 휑한 느낌마저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간 아파트는 휑한 느낌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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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세대 중 150여세대가 빠져나간 아파트는 휑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일부 현관문에는 적막감이 들었고 복도에는 불이 켜있지 않아 어두컴컴했다. 각 층 계단 윗벽에 써진 '착한 어린이는 낙서도 안하고 휴지도 안 버립니다'라는 글귀는 빛이 바래 있었다.

그래도 창문틀 사이에 빼꼼히 삐져나온 굴뚝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계단 창문에서 내려다보면 수많은 항아리와 화분들이 빼곡히 쌓여 있다. 많은 입주민이 떠났지만 그래도 아직 200여 세대가 사는 아파트에선 사람 사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반가웠다. 인근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하는 입주민이 많아서인지 아침 7시가 되기도 전에 문 밖을 나서는 이가 많이 눈에 띄었다. 새벽을 헤치는 총총걸음으로 일터를 향하고 있었다.

"보통 10년 넘게 오래 사신 분들이 많기 때문에 얼굴이 낯익어서 편하다는 게 장점이다. 또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교통편이 정말 좋다. 시장과 백화점 명동이 가까이 있고 남산이 뒤에 있어 산책하기도 좋다."

박지혜(대학생)씨는 회현 제2시범아파트의 장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과의 정 하나만큼은 이곳 아파트가 좋다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아들도 좋은 대학에 합격을 하고 추억이 많은 곳이다. 좋으니까 떠나지를 못한다. 물론 정직하게 살다 보니깐 돈은 없지만 난 재개발·재건축 같은 거 필요 없다. 투기하는 사람들이나 그런 거를 좋아할 것이다."

13년 전부터 이곳에 살았다는 권옥선(63)씨에게도 이곳은 소중하다. 이 아파트에 살면서 아들이 좋은 대학에 합격했기 때문에 복덩어리 아파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회현 제2시범아파트에서 반평생을 산 신순분씨
 회현 제2시범아파트에서 반평생을 산 신순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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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좋은 아파트를 부수는 놈은 머리가 썩은 놈이야. 고쳐 써야지. 부수긴 왜 부숴!"

이곳에서 반평생을 지낸 신순분(85)씨의 한마디가 귓가에 오래도록 남았다. 하지만 재개발이다 재건축이다 해서 서울 전체가 개발 광풍에 휩싸인 요즘, 회현 제2시범아파트 사람들도 아파트 철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박정희정권이 건설한 시민아파트. 38년 된 아파트가 철거되고 그 자리에 들어서는 것은 무엇일까? 서민을 위한다는 새로운 정권의 새로운 아파트일까?

▲ [영상리포트] 회현 제2시범 아파트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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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3회 전국 대학생 기자상 공모전 응모기사입니다.



태그:#회현 제2시범 아파트, #철거, #보상, #아파트, #시민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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