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서울시교육청 고교생 역사 특강 이틀째(28일)에는 내로라하는 보수 학자 또는 논객이 강사로 나섰다.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와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그리고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등이 그들이다. 둘쨋날 강사들은 첫날에 비해 중량감 있는 강사들답게 비교적 진지한 주제를 다루면서 나름대로 그럴듯해 보이는 근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첫날 강사들이 주로 미시적인 오류와 해석상의 주관성을 보였다면, 둘쨋날 강사들은 역사를 거시적으로 그릇되게 인식한 나머지 고교생들에게 역사적 주체 개념에 혼돈과 동요를 야기할 수 있는 내용을 강의했다. 특히 안병직 교수의 '식민지 근대화론'은 익히 들었던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고교생들을 상대로 버젓이 강의되었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류근일 강사] 정치적 노출을 절제한 양비·양시론

비교적 교육적인 강의를 한 강사는 정치학 전공자인 류근일(70) 전 주필이었다. 그의 강의는 시종일관 '역사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보자'는 주제를 되풀이하는 내용이었다. "역사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봄으로써 지적 조망권을 넓혀야 한다"는 그의 말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이다. "역사에 대하여 긍지를 갖는 동시에 성찰을 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토를 달 수 없다. 그는 산업화와 민주화 양자에 대해서도 양비·양시론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일부 근·현대사 교과서를 '교육 재난'이라고 거칠게 표현하면서 강경한 비판적 칼럼을 써왔던 류 전 주필로서는 평소 하고 싶던 말을 참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그는 청소년들을 상대로 하는 학교 강의라는 점을 고려했는지 이념적· 정치적 노출을 절제하는 미덕을 보인 것만은 틀림없다.

[송복 강사] 유신 예찬과 치졸한 영웅사관

송복(71) 강사는 연세대 명예교수로서 경남 김해 출생이고 정치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학자이다. 그런데 이런 이력에 걸맞지 않게 강의 내용은 도식적이면서도 무모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학생들에게 "우리나라는 자유로운 시민 권리를 100% 누리고 있는데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우리나라를 좋게 보는 것은 강사의 주관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시민 권리를 '100%'누릴 수가 있다는 말인지. 아무리 보아도 이런 말은 지식인의 언어와는 현격한 거리가 있어 보인다.

역시 역사특강 강사들의 문제점은 이념적 편향성이나 역사 왜곡 이전에 실력 미달임을 또 한 번 확인시키는 강의였다. 그는 대한민국을 만든 '네 사람'으로 이승만과 박정희와 재벌기업(삼성·현대 등)과 군대를 꼽았는데, 여기서 그가 말한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뜻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오늘의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가 큰' 정도로 해야 할 말을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했으니, 정치적 관점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그 표현에서 의도적인 저돌성을 읽을 수 있다. 이런 분이 대학에 있으면서 어떻게 논술고사 채점은 했는지 한편으로 궁금해진다.

무엇보다 강사의 역사관은 낡은 영웅사관에 불과하다, 어떻게 대한민국을 만든 주체가 고작 네 사람(단체)에 불과하겠는가? 일제의 침탈에 의병으로 항거하다 죽어간 흰옷 입은 백성들, 간도와 노령에서 불귀의 객이 된 애국선열들, 평화시장에서 하루 16시간씩 수출상품을 만들던 여공들은 강사의 안중에 없다. 또한 그는 "(박정희 시절) '유신' 때 중공업으로 산업화하면서 우리가 북한을 앞질렀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원래 영웅을 숭배하고 개인을 불신하는 것은 파시즘의 속성이다.

[안병직 강사] 낡은 레코드처럼 되풀이된 '식민지 근대화론'

안병직(71) 강사는 경남 함안 출생으로 경제학을 전공한 서울대 명예교수이다. 일단 그는 강사로서 자격에 하자가 있다. 그는 지금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으로 있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를 정치인이 아니라 학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러시아 시인 미야코프스키가 트로츠키를 가리켜 한 말, '비평가가 된 인민위원은 여전히 인민위원이다'는 말처럼 정치적 신분이 다른 신분에 우선하는 법이다. 따라서 안병직 강사가 더 이상 특강에 임하는 것이 정당한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는 '대한민국 건국 60년의 정치 경제사'라는 강의 주제를 의도적으로 일탈하여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된 '식민지 근대화론'을 피력했다. 그는 "한국의 근대 경제는 일본의 식민 통치하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전제한 후 구체적인 사례를 들었다.

"식민지 시대인 1905년과 1910년에 화폐정리사업과 토지조사사업 등 여러 근대적 제도 개혁이 이루어졌다. 또 항만, 체신, 철도, 도로 등 인프라가 갖춰지고 일본 자본이 진출하면서 조선에서도 근대적 시장제도가 갖춰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전형적인 '식민지 근대화론'으로서 역사적 사실과 무관한 논리이다. 이런 논리는 일제 강점기 민족의식에 앞서 근대화지상주의에  감염되었던 장덕수 등의 친일파들이 가졌던 논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강사가 말한 화폐정리사업은 1904년에 체결된 한일신협약에 따라 조선에 재정고문으로 파견된 일본인 메가타 다네타로가 주도했다. 그는 조선에 일본처럼 금본위제도를 도입한다고 공포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조선 화폐를 정리하고 일본 화폐를 유통시킴으로써 조선에 대한 경제적 침략을 수월히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 사업으로 조선에서는 유동성의 결핍, 어음시장 혼란, 신화 발행 지체 등 여러 부작용이 파생하여 수많은 조선 상인이 파산했다. 반면 일제는 금융기관과 기간산업을 독점함으로써 조선의 산업·경제 활동을 통제·장악하게 되었다. 그 결과 사실상 민족경제는 몰락하고 말았다.

또한 토지조사사업은 식민통치의 기초 작업으로 시행된 것이다. 이 사업은 1910년부터 8년 동안이나 계속되는데, 4차까지의 사업 계획을 거쳐 종료식을 하게 된다. 이때 축사를 한 사람이 이완용이었다는 점에서 이 사업의 성격이 극적으로 드러난다. 또한 이 사업이 식민지 토지 수탈 외에도 식민지 통치 안정을 위한 것이었음은 토지 구분 단위를 일본 헌병 주재지를 기준으로 설정한 점에서 확연히 알 수 있다.

이 사업의 결과 수백만의 조선 농민이 토지권을 잃고 영세 소작농, 화전민, 막노동자 등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반면 조선총독부는 전 국토의 40%를 소유하는 대지주가 되었다. 총독부는 이 토지를 국책회사인 동양척식주식회사등에 넘기는데, 이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일본이 제국주의의 원조 국가 영국의 동인도회사를 본떠 만든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안병직 강사는 이런 희한한 역사관을 갖게 되었을까? 여기서 잠깐 사학자 이만열 교수가 안병직 교수에 대해 말한 글을 읽어 보자.

'식민지 근대화론'은 안병직(安秉直)교수가 경도대학(京都大學) 교수 중촌철(中村哲)의 <중진자본주의이론(中進資本主義理論)>을 수용함으로 한국의 경제사학계에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안병직은 1980년대 전반까지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을 주창해 왔던 진보적인 경제(사)학자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다가 1986년에 연구차 동경대학(東京大學)에 가서,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미촌수수(梶村秀樹) 중촌철(中村哲) 굴화생(堀和生) 등 사회경제학자들과 학문적으로 교류하는 동안 특히 중촌(中村)의 주장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 같다.

귀국하여 안(安)교수는 중촌(中村)의 '중진자본주의이론(中進資本主義理論)'에 입각한 한국경제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학계에 커다란 파문을 던졌다. 그는 '식민지 개발론'에 입각한 역사해석을 추구하고 동학·제자들 및 일본 학자들과 학문적인 교류를 넓히며 그들과 함께 몇 권의 책을 도요다(풍전(豊田))재단의 연구비 지원으로 간행하기도 하였다.(이만열, '식민지 근대화론 문제 검토')

또한 강사는 역사발전론을 서구 사회를 예로 들어 거론하기도 했다.

"(내재적 발전론은) 세계 자본주의가 처음 생긴 16세기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등 대서양 국가들을 모델로 한 것이다…. 그들은 자본주의를 성립시켰기 때문에 순수하게 자생적으로 근대화를 이룩했고…."

강사가 역사 발전을 내재적인 것과 외재적인 것으로 구분한 것은 지나친 이분법으로써 흑백논리에 가까운 역사관이다. 한편 그는 식민지 옹호론자치고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거의 둔감하다. 그는 서구 열강들이 제국주의 침략으로 경제 발전을 이룬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강의에서 그는 실증주의 역사관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의 실증주의란 친일사학자 이병도 등의 식민사관과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이런 저런 점으로 볼 때 강사는 보수주의자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의 논리는 대부분 역사상 매국노들의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 김갑수는 근현대사 역사소설 <제국과 인간>을 오마이뉴스에 연재 중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