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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2월 1일 만들어진 국가보안법이 어느새 60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개정, 폐지 등 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국가보안법은 아직까지 건재합니다. 국가보안법은 과연 우리들에게 무엇일까요. 국가보안법이란 이름 아래 족쇄가 채워졌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명륜골 성균관대 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책방 <풀무질>. 다른 번쩍거리고 큰 간판에 가려서 잘 안 보일 수 있는 간판입니다.
▲ 책방 <풀무질> 명륜골 성균관대 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책방 <풀무질>. 다른 번쩍거리고 큰 간판에 가려서 잘 안 보일 수 있는 간판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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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옆에는 조그마한 인문사회과학 책방이 한 곳 있습니다. 비록 인문사회과학 책보다는 수험서·교재·고시책 따위를 훨씬 많이 팔아서 책방 살림을 꾸리고 있으나, 이 곳은 버젓한 인문사회과학 책방입니다.

책방 달삯을 넉넉히 내기가 쉽지 않아 땅 위에 있던 가게가 땅 밑으로 내려오게 되었는데, 처음 문을 열던 때 마음을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수험서·교재·고시책 따위를 찾는 대학생이 훨씬 많고 많이 팔린다곤 하지만, 이 곳 책시렁은 인문사회과학 책한테 더 넓게 자리를 내어줄 뿐 아니라 인문사회과학 책을 보기 좋도록 꾸며 놓았습니다.

책방으로 들어가는 계단 짬에는 책방 일꾼이 두 달에 걸쳐서 나갔던 촛불모임 때 길에서 주운 스티커를 잔뜩 붙여놓았습니다. 인권평화환경 모임에서 보내온 알림쪽도 붙여놓고 'ㅈㅈㄷ 폐간'과 같은 동그랗고 작은 스티커도 붙어 있습니다.

삼각산재미난학교 아이들이 '풀무질' 그림을 그려 주어서, 책방 안쪽에 붙여놓았습니다.
▲ 풀무질 그림 삼각산재미난학교 아이들이 '풀무질' 그림을 그려 주어서, 책방 안쪽에 붙여놓았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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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2일 토요일 낮, '풀무질' 일꾼 가운데 한 사람인 은종복님을 만났습니다. 어느새 '풀무질' 석자와 일꾼 '은종복' 석자는 나라 안 인권모임·생태평화모임과 언론매체에 알려진 이름이 됐습니다. 이제는 인문사회과학 책방을 꾸리는 분들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은데다가, '풀무질'처럼 회원 모금 안 받고 스스로 살림을 꾸리는 경우는 보기 드물기까지 합니다.

은종복님은 바쁜 틈틈이 쪽글을 스스로 언론매체에 보내어 뜻을 알리는가 하면, 큰 언론매체와 이름난 출판평론가들이 다루지 않는 좋은 책을 바지런히 읽고 느낌글을 쓸 뿐 아니라 '풀무질 추천도서 100선'까지 손수 만들어서 책방 손님들한테 '부드러운 추천'을 하고 있습니다. 일하시느라 바쁜 틈을 두 시간 남짓 내보았습니다.

"이번에, 한두 달쯤 앞서서 국방부에서 군인들 읽지 말라고 하는 불온서적을 서른두 권인가 만들었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모르는 뒷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거기 보면 <우리들의 하느님>도 들어가 있고 <김남주 평전> <나쁜 사마리아인들>, 이런 전혀 불온하다고 볼 수 없는 책들이 선정됐는데, 사실은 그게 내가 골라준 책들이에요.

어떻게 알게 되었냐면, 그것도 한 3주쯤 앞서서 실천연대 활동가가 수유리 쪽에 모꼬지가 있다고 가는데, 나는 집이 그 쪽이니까 버스 타고 같이 가면서, 뒷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지난해 여름에 한총련 새내기들 모꼬지 가는데 읽을 만한 책 알려 달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책방에 있는 책 50권을 보여줬지. 그 분들이 그걸 꼼꼼히 읽어 보더라고. 그걸 한총련에 줬고 국방부 기관원이 그걸 입수했고.

그래서 <우리들의 하느님>이 들어간 거야. 원래는 <죽을 먹어도>로 할려고 했어요. 그런데 <죽을 먹어도>는 '풀무질'에서는 팔지만 다른 책방에서는 안 파니까, 일부러 <우리들의 하느님>으로 했던 거지요. 그 출판사에서는 아무도 몰라요. 그 책들이 우리 책방에 다 있는데, 그날 뒤로 전부 다 새로 찍었잖아. 그만큼 잘 팔렸다는 거야. 다른 전자서점에서 특별판매해서 팔린 것도 있겠지만, 노동조합에서나 학생들이 한꺼번에 사갔고 우리 책방에서도 많이 주문이 들어왔고 성대 학생들도 전시판매를 해서 나도 보내줬고."

1997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2주... "참 끔찍한"

제가 책방 '풀무질'을 처음 찾아간 때가 언제인지는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만, 얼추 일고여덟 해쯤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동안 한 번 찾아갈 때마다 서너 권씩 읽을 책을 골랐고, 미리 주문해 놓은 책을 장만하기도 했습니다.

녹색평론사의 낱권책은 책방 '풀무질'에 오면 가장 먼저 소식을 들을 수 있는데다가 언제라도 여러 권씩 사들일 수 있습니다. 언론매체에서 빛을 받지 못하는 수많은 인문사회과학 책과 생태환경 책은 '풀무질' 책시렁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소리소문 안 나지만 꿋꿋이 애쓰는 분들 땀어린 책들도 '풀무질' 책시렁에서만큼은 잘 보이는 자리에 얌전히 놓입니다.

몇해 앞서부터는 어린이책도 퍽 갖추어 놓으시는데, 아무래도 당신 아이를 키우는 가운데 '어린이책을 읽히려면 내가 먼저 어린이책을 살펴보는 눈을 길러야 하며, 좋은 어린이책을 읽히고 싶다면 내가 먼저 좋은 어린이책을 알아보는 마음밭을 가꿔야 한다'는 마음다짐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곧 12월 1일이지요?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되찾겠다는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이고 죽였던 치안유지법을 고쳐서 이승만이 국가보안법이라는 것을 처음 만든 날이 1948년 그 때지요. 60년째가 되는 해인데, 처음에는 없앨까 하다가 박정희 때 더 힘이 세지고, 전두환·노태우 때 여전히, 그리고 김영삼 때, 김대중 때도…. 노무현 때 없앨 수 있었는데 여당에서 힘있게 못 밀어붙여서 살아남았고, 지금은 국가보안법만 문제가 아니라 국가정보원법도 고쳐서 사람 하나하나 생각과 표현을 억누르려는 법들을 늘려가고 있잖아요. 안타까운 일이지요.

이 책방도 국가보안법에 자유롭지 못했지요. 1997년 4월 15일날, 내가 국가보안법 제7조 5항 이적표현물 판매죄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갔잖아요. 가서 2주 있었고 서울구치소에서 2주. 한달 만에 풀려나기는 했지만, 참 끔찍한….  내가 그날을 왜 기억하느냐면, 4월 15일이 김일성 태어난 날이잖아요. 그래서 기념일이라고 북에서 그러고 4·15창작단이 있잖아요. 그래서 기억해요. 12시 조금 지나서 나하고 서울대 앞 <그날이 오면>에 있는 유정희, 그리고 고대 <장백서원> 일꾼 김용운 세 명이 한꺼번에 잡혀갔는데. 이틀 동안 거의 잠을 안 재우더라고. 그 다음 용산경찰서에서 잠을 잤는데, 그 지하인데 아주 추웠어요."

인문사회과학 책방답게, 인문사회과학 책은 좋은 대접을 받아 잘 꽂혀 있습니다.
▲ 책방 안쪽 인문사회과학 책방답게, 인문사회과학 책은 좋은 대접을 받아 잘 꽂혀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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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풀무질'은 인문사회과학 책방입니다. 이 나라 인문사회과학 책방치고 안기부 눈총과 강력계 형사 사찰과 정보부요원 조사를 받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2008년에 이 나라 몇 군데 안 남은 인문사회과학 책방은 무슨 노릇을 하고 있을까요. 일꾼이 뽑은 '추천도서 50선'이 얼결에 '국방부 불온도서' 목록으로 탈바꿈하면서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노릇? 정부 공무원이 '당신은 돈도 안 되는 책방 하면서 북한을 이롭게 하려고 책방에 오는 학생들한테 사회주의 사상·빨갱이 사상을 심어 주려는 것이다' 라고 한 말처럼, 꾸며진 '조직사건 주동자' 노릇을 하는 곳?

"그 때도 남영동에서 조사관이 나를 국제사회주의자 조직원으로 엮으려고 했어요. 그게 아닌 거를 알자, 이적표현물 소지·판매죄로 엮으려고 했는데, 내가 물어봤지. 여기 <전태일 평전>이나 <말>지, <껍데기를 벗고서> 들은 시내 큰 책방에서 다 파는데, 그들은 왜 잡아가두지 않고 나만 데리고 왔느냐고.

그 사람이 하는 얘기가 '큰 책방에 있는 일꾼은 돈을 벌려고 하는 거고, 당신은 돈도 안 되는 책방 하면서 북한을 이롭게 하려고 책방에 오는 학생들한테 사회주의 사상·빨갱이 사상을 심어주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물어 봤지. '만약에 당신이 약국을 한다면, 그 약을 다 먹어보고 판매하느냐, 식품점을 한다면 먹을거리 다 먹어보고 파느냐, 내가 책방을 한다고 여기 있는 책을 다 읽어보고 판매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 그 사람이, 나는 학교 다닐 때 학생운동했고 당신은 돈도 안 되는 인문사회과학 책방을 하니 그렇다고, 그런 걸 들이대더라고."

똑같은 책인데 교보문고에서 팔면 '돈 벌려고 하는 일'이 되고, 인문사회과학 책방에서 팔면 '빨갱이 사상을 심어 주려고 하는 짓'이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똑같은 책인데 대학 교수님이 연구하려고 볼 때와 대학생이 자기 마음을 갈고닦으려 볼 때와는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합니다.

"그렇게 네 군데에서 왔어. 김대중 때에도 한 달에 한 번씩 왔어요. 보면 알 수 있어. 냄새가 나거든. 걔네들은 몇 명이 와도 한꺼번에 와도 5분 간격으로 따로따로 와요. 인사도 절도 안 해요. 쭉 책방을 구석구석 다 둘러보지요. 그러면서 그들이 보기에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좀 불온하게 보이는 책들을 눈여겨보고 사가기도 해요. 노무현 정부가 되니까 씻은듯이 안 왔어요. 그러다가 이명박이 이 나라를 차지하게 되면서부터 바로 또 기관원들이 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일주일에 서너명씩 왔어요. 점심시간에. 열두시 반에서 한시 사이. 그러더니 얼마 전에 사회주의노동자연맹, 오세철 선생 및 몇명이 잡혀갔고, 지금 불구속수사 하다가 기각되고 했지요."

가만히 보면, 이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영어를 가르칩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은 따로 영어학원을 다닙니다. 어쩌면 어느 집에서는 어린이집 다니는 아이한테 영어학원을 보낼지 모르고 영어과외 선생을 붙이는 집도 있을지 모릅니다.

어릴 적부터 모두 똑같은 틀로 길들여집니다. 어려서부터 모두 똑같은 지식을 머리속에 집어넣고 똑같은 틀로 꺼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판이고 이런 흐름이니, 책방 <풀무질>처럼 제도권 틀에서 벗어나려는 책을 소개하고 파는 사람들은 자유와 민주를 어지럽히고 평화와 통일에 어긋나는 사람들이라고, 이 나라 권력을 움켜쥔 이들이 한결같이 생각하지 않느냐 싶어요.

"그들이 말하는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정부를 전복하려는 책'들이 새 책방에는 없고 헌 책방에 떠도니까 헌 책방 사람들까지도 잡아가두는 웃지 못할 일이 생기는 거지. 그런데 그 국가보안법이라는 게 정말 그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나라를 뒤집어엎으려는 사람들을 잡아가두는 법이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자기가 차지한 정권을 유지하려고 만든 법이라는 거지. 정권유지법이에요. 더러운 정권, 돈에 눈먼 정권, 가난하고 굶주리고 아픈 사람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세상을 지킬려고 하는 법이라는 거지. 돈에 눈멀고 자연을 더럽히고 사람마음을 더럽히는 세상을 바꾸려고 맞서는 사람을 가두려는 법이지요.

얼마 전에도 문근영이라는 배우가 자기가 애써서 번 돈을 좋은 일에 썼는데, 외할아버지가 빨치산이었다고 해서 그 배우도 좌익 생각 갖고 있을 거라고 전자누리상에서 매도하고 업신여기는 데 참 안타까운 일이지. 그러니까 그들이 얘기하는 빨갱이나 그 좌익이라는 것은 자기 생각과 다르면 빨갱이고 좌익인 거예요."

"이명박이 나라 차지하니, 그들이 다시 온다"

책방으로 내려가는 계단짬에는 <풀무질> 아저씨가 추천하는 책이 꽂혀 있고 여러 가지 알림쪽이 붙어 있습니다.
▲ 추천도서와 책방으로 내려가는 계단짬에는 <풀무질> 아저씨가 추천하는 책이 꽂혀 있고 여러 가지 알림쪽이 붙어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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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풀무질> 일꾼은 '나라를 빨갱이 사상으로 뒤엎을' 마음으로 인문사회과학 책을 다루지 않습니다. 수수한 꿈 하나, 제 밥을 제 손으로 일구어 먹는 농사꾼이 되고픈 마음으로, 또 이러한 농사꾼 마음을 간직하면서 도시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려는 마음으로 인문사회과학 책을 다룰 뿐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훌륭하거나 뛰어난 인문사회과학 책이라 해도 '누구네처럼' 수백 권씩 쟁여 놓고 팔지 않습니다. 헐값에 넘기지 않습니다. 쿠폰을 끼워주는 일도 없습니다. 세상을 고르게 껴안는 숱한 좋은 책을 골고루 팔아서 사람들이 골고루 세상을 읽고 저마다 자기 뜻과 꿈을 슬기롭게 펼쳐 나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 "모든 목숨은 얼키고설킨 가운데 이루어진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지금 이명박 식으로 사람들을 잘 살게 해 주겠다며 자연을 더럽히고, 자기같이 잘 사는 사람을 더 잘 살게 하겠다고 많은 가난한 사람을 더 내치고 했을 때, 사람들이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봐요. 모든 사람들이 행복, 잘 살려고 하면, 그 잘 살려고 하는 틈바구니 속에서 그 배를 곯고 아프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잃는 아이들이 갈수록 많아진다는 거지요. 내 목숨 지키자고 힘없는 아이들 목숨 앗아가는 일이 점점 많아지는 게, 그래서 그런 걸 생각해. 권정생이 생각했듯이 고르게 가난하면서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을, 저는 꿈꾸고 있어요.

그래서 나는, 책방이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그런 생각을 나누는 그런 자리가 되고 싶은데, 참 힘들어요. 그런 책만 팔게 되면 진작 문 닫았을 거예요. 안타깝게도 수험서 팔고 교재 팔면서 그런 뜻을 이어가려고 하는데, 그러니까 참 살기 힘들지요. 그런데 국가보안법이라고 하는 것은 더 웃겨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것들이 사회를 위태롭게 하고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자기 자리를 위태롭게 한다고 생각하는지, 내 이런 생각을 불온한 생각으로 보는 거지요. 그래서 이런 생각 담는 책도 불온하고, 그래서 잡아가두었고 지금이라도 언제든지 잡힐 수 있는 거고." ..

<풀무질> 일꾼 두 분은 늘 도시락을 싸 와서 먹습니다. 저도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기에, 함께 낮밥을 먹었습니다.
▲ 도시락 <풀무질> 일꾼 두 분은 늘 도시락을 싸 와서 먹습니다. 저도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기에, 함께 낮밥을 먹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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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국가보안'이란 무엇일까요. 한자말을 뜯으면 '나라(國家) + 지키기(保安)'인 '국가보안'일 텐데, 나라를 지킨다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수 있는 일일까요. 우리가 지켜야 할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우리가 지켜야 할 나라에는 어떤 사람이 살고 있을까요. 우리가 지켜야 할 나라는 어떤 길을 어떻게 걸어가고 있을까요.

그러면 '불온'이란 또 무엇일까요. 한자말을 뜯으면 '온당하지 않음(不穩)'인데, '온당(穩當)'이란 "판단이나 행동 따위가 사리에 어긋나지 아니하고 알맞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국방부 불온도서'란, "국방부가 보기에 생각이나 움직임이 올바르지 않은 책"이라는 소리인데, '올바르지 않음'이란 또 어떤 모습인가요. 국방부, 경찰, 이 나라 권력자한테 올바르지 않은 모습이란 무엇일는지요.


"인문사회과학 책방을 열었는데 내 마음밭과 다르게 수험서와 교재로 책방을 지키니까 마음이 아픈 거지. 그나마 얼마 안 파는 인문사회과학 책들을 이 나라에서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잣대로 팔지 못하게 하려고 하고 나를 잡아가두려고 애쓰고, 그러니까 참 슬픈 거지. 그러니까 오히려 더 잘 지켜야겠다고 '책방이 더 소중하고 나라에 유용을 주는구나, 잘못된 것을 뒤집을 힘이 여기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에 국방부 불온서적을 많이 읽었으니까. 그런 일들이 '풀무질'을 지키게 하는 다짐이 되는구나 생각하지요.


많이 배운 사람들이 배운 걸 슬기롭게 쓰지 않고 자기 이름 높이고 자기 힘 키우려고 자기가 아는 사람들 배불리는 일에 나서니까, 힘없고 못 배운 사람들은 갈수록 굶주리고 목숨까지 잃고 있잖아. 나는 내 아이가 좀 안 배웠으면 좋겠어. 마음껏 뛰놀고 자연과 숨쉬면서 기뻐하면 좋겠어. 그러다 정말 배우고 싶을 때 스스로의 힘으로 배웠으면 좋겠어."

초등학교로 치면 5학년일 아이를 키우는 '풀무질' 일꾼 은종복 님은, 당신 아이가 더 배우지 않기를 바랍니다. 학교나 대안학교에서 아이들한테 가르쳐주는 온갖 지식 쪼가리는 땀방울이 배이지 못한 부스러기일 뿐이며, 스스로 꿈을 찾고 캐고 부대끼고 이루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국가보안법은 우리 마음속에 먼저 있다

예전 <풀무질> 자리는 좁기만 했지만, 새로운 <풀무질> 자리는 안쪽에 조그맣게 쉼터 하나 꾸며 놓아서 느긋하게 책 읽을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 책방 안에 있는 쉼터 예전 <풀무질> 자리는 좁기만 했지만, 새로운 <풀무질> 자리는 안쪽에 조그맣게 쉼터 하나 꾸며 놓아서 느긋하게 책 읽을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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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이라는 게 우리 삶 속에 녹록히 스며있다고 생각해요. '욕망'이라는 또다른 권력을 지키려는 마음을 항상 품고 있다는 거지. 갈수록 아이들을 옥죄는 교육을 하는데, 거기 맞서려는 사람도 있지만 '내 아이도 어떻게 하면 외국어를 잘하는 학교 틀에서 뭔가 해 볼까' 하면서 애쓰잖아요." ..

지금 내가 책방을 십육년 하고 있는데 학생들 지켜보면 참 마음이 아파요. 대학이라는 곳이 자기가 바라지도 않은 일터에 들어가 돈을 벌려고 단지 거쳐가는 직업소개소가 되고 있어요. 어느 과든 상관없이 돈만 많이 주면 간다고. 자기 스스로 펼칠 수 있던 일들이 대학에 와서 산산이 부서지는 거지. 그런 대학은 없는 게 나아요.

그런데 그런 게 이제 고등학교·중학교·초등학교·유치원까지 내려왔어요. 태어나면서 처음 가진 슬기와 기쁨을 죽이는 배움터를 만들고 있는 거지요. 그게 바로 이명박식 일등주의지. 공부를 잘할 수도 있고, 공차기를 잘할 수 있고, 집을 잘 만들 수 있고, 말을 잘할 수 있고, 다른 사람 얘기를 잘 들어줄 수 있고, 다 달라요. 그런데 왜 모든 아이들을 사각에 가두어 수학공식·영어단어만 외우게 하나, 그건 바로 국가보안법을 지킬려고 하는 사람들의 노예로 만드는 거지. 노예 교육자로 키우는 거지."

권정생님은 '자가용을 버려야 이라크 파병을 안 하게 된다'고 낮은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은종복님은 '돈 되는 일을 버려야 국가보안법을 쓰레기로 내다버릴 수 있다'고 낮은 목소리로 외칩니다. 두 목소리는 다르지 않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국가보안법을 이라크 파병을 내다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 삶을 찾아야 국가보안법 허울을 벗을 수 있다

<풀무질> 아저씨가 날마다 '일수수첩'에다가 날적이를 적는다고 합니다. 댓거리를 하는 동안 아저씨가 당신이 쓴 날적이를 읽어 주십니다.
▲ 날적이 <풀무질> 아저씨가 날마다 '일수수첩'에다가 날적이를 적는다고 합니다. 댓거리를 하는 동안 아저씨가 당신이 쓴 날적이를 읽어 주십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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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박정희씨가 숨을 거두었다고 독재정치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독재정권이 물러났다고 독재정치가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우리 사회가 훨씬 나빠지지 않습니다. 다른 이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사회 구석구석 스민 국가보안법 도깨비는 걷히지 않습니다. 국가보안법은 이 법대로 걷어차야겠습니다만, 스스로 참 삶을 찾으려 하지 않는 동안에는 법조항으로 국가보안법을 씻어냈다고 해도 우리 세상은 그리 달라지지 않을 터이기에 그렇습니다.

벌써 예순 해씩이나 우리 삶터를 옥죄고 있는 국가보안법 때문에 하루도 마음 느긋할 날이 없는 '풀무질' 일꾼 은종복 님은 웃는 얼굴로 마지막 한 마디를 더 들려줍니다.

"국가보안법이라는 것은 나 같이 작은 인문사회과학 책방 하는 사람한테는 칼날이 되지만, 아빠가 이렇게 올곧게 지켜려고 하는 무엇이 있다는 것은 아이 마음밭에 또다른 생명의 칼이 될 수 있는 거지요. 책방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일꾼이 된 게 참 잘한 일이라고 느껴요. 책방이 국가보안법에 의해서 흔들리고 내가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더 사랑스러운 거예요.

일반 책방에서는 돈을 주면 아무 책이나 사고파는 소비자-판매자 역할밖에 못하지만, 내가 꾸리는 이런 작은 책방은 사람들과 세상 사는 이야기도 나누고, 내가 쓴 글도 나누어주고 면서, 또 책을 팔면서 세상을 밝게 하니까, 참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명륜골에 사는 사람들은 이 '풀무질'이 있다는 것만 해도 참 자랑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성균관대학교에서 나한테 상을 줘야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정작 주면 안 받겠지요. 하하. 상을 줄 리도 없을 테고. 하지만 나는 늘 상을 받으면서 살아요. 이 책방을 지키려는 사람들, 시집을 한 권 사고 인문학 책을 한 권 사면서 멀리서 책방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기쁘고. 이 기쁨을 모아서, 적은 돈이지만 내 뜻과 함께하는 생태인권평화 나눔의 모임에 그 뜻을 이어가고 있고, 내 목숨도 부지하고 있고."

책방 문간에 조그맣게 붙은 스티커 하나.
▲ 책방 문간에 책방 문간에 조그맣게 붙은 스티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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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풀무질' 일꾼과 주고받은 글은 http://blog.ohmynews.com/hbooks/232530 으로 들어가시면 모두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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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책이 있는 삶 84]입니다.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태그:#국가보안법, #풀무질, #인문사회과학 책방, #은종복, #불온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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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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