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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1997년 12월 3일 세종로청사에서 캉드쉬 IMF 총재가 지켜보는 가운데 당시 임창렬 부총리와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가 IMF 긴급자금지원 의향서에 서명하고 있다. 뒷줄 오른쪽에서 세번째에 선 인물이 강만수 당시 재경부 차관.
 1997년 12월 3일 세종로청사에서 캉드쉬 IMF 총재가 지켜보는 가운데 당시 임창렬 부총리와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가 IMF 긴급자금지원 의향서에 서명하고 있다. 뒷줄 오른쪽에서 세번째에 선 인물이 강만수 당시 재경부 차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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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씨가 되었다는 것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 모양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기획재정부 장관에 강만수 전 차관을 기용했을 때 사람들은 불현듯 10년 전 IMF(국제통화기금)의 추억을 떠올렸다. 강 장관은 IMF 긴급구제금융을 신청한 97년 외환위기 당시 재경부 차관이었다. 그리고 '9월 위기설'이 불거졌을 때 사람들은 농담 삼아 'IMF 시즌2'를 떠올렸다.

그런데 미국발 경제위기가 엄습하면서 'IMF 시즌2'는 농담이 아닌 현실이 되어가는 불길한 느낌이다. 도대체 야당은 왜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만 물고 늘어질까? 이렇게 품었던 의문이 이제 와서 풀린다. 강 장관은 이명박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요즘 시중에서 나도는 우스갯소리 중에 이런 얘기가 있다.

"MB가 OB들 데리고 70~80년대로 역주행하고 있다."

여기서 MB는 중의(中意)적 표현이다. '명박'의 영문 이니셜이자 매드 보이(Mad Boy)의 줄임말이다. OB는 올드 보이(Old Boy)의 약자다. 강만수 장관은 이명박 시대의 대표적인 올드 보이다. 그렇다고 해서 올드 보이가 단지 생물학적 연령을 기준으로 한 것은 아니다.

강만수의 '헌재 접촉' 발언은 '의식의 지체' 현상

지난 7일 '헌재 접촉'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지난 7일 '헌재 접촉'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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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정통관료 출신의 전직 차관급 인사는 강 장관의 '헌재 접촉' 발언을 일종의 '의식의 지체' 현상으로 풀이했다.

의식의 지체는 사회 발전이 너무 빠르다 보니 의식과 제도가 전환이 안 되고 거기서 지체 현상이 나온다는 것이다.

'의식의 지체'에 빠져 있는 그의 사유구조 속에서는 행정부와 사법부의 '그렇고 그런' 접촉이 아무런 문제될 것 없기에 자연스레 내뱉은 실언이라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자체가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산물이지만, 강 장관의 의식과 사고는 민주화 이후를 따라잡지 못한 채 70~80년대에 머물러 있다는 얘기다.

이런 의식의 지체 현상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올드 보이들의 컴백과 더불어 광범위하게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그 선두에 강만수 장관이 있다.

올드 보이 클럽의 선두에 선 강만수, 공정택 그리고...

기획재정부는 종합부동산세 위헌 심판청구소송과 관련, 지난 8월 25일에는 헌법재판소에 낸 의견서에서 종부세가 합헌이라고 주장했지만, 두 달 뒤인 10월 22일에는 위헌 소지가 커 종부세를 대폭 수정해야 한다는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아무런 논리적 정합성이 없이 두 달 만에 합헌에서 위헌으로 입장을 180도 바꾼 정부를 신뢰할 국민은 없다. 강 장관 스스로 시장의 불신을 자초한 것이다.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이 24일 오후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특별상임위에 출석, 국제중 설립 허가 과정 등에 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이 24일 오후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특별상임위에 출석, 국제중 설립 허가 과정 등에 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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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올드 보이는 '강남교육감' 혹은 '학원교육감'이라는 별칭을 가진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다.

공 교육감은 지난 7월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면서 특이하게도 은행이 아니라 학원 관계자들로부터 이자 없는 돈을 빌려 선거를 치렀다. 무려 22억원 중에 18억원이 학원 이사 또는 관계자가 빌려준 돈이다. 교장-교감단으로부터는 찬조금 명목의 후원금을 받았다. 또 서울 은평뉴타운에 자립형사립고 설립을 추진 중인 하나금융지주 김승유 회장한테서도 300만원의 격려금을 받았다. 김 회장은 이 대통령과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생 친구다.

공 교육감은 후원금을 받을 수 있는 공직 후보이기에 앞서 학교와 학원을 감독하는 현직 교육감이다. 따라서 받은 돈이 이자건, 찬조금이건, 격려금이건 포괄적인 뇌물죄가 성립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24일 사실상의 공정택 청문회 형식으로 열린 국회 교육과학위 특별상임위에서도 그는 이상한 선거자금 조달방식을 추궁받자 "그런 것까지 어떻게 기억합니까"라고 반문하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올드 보이들의 정점에 서 있는 빅 브라더, MB

이 올드 보이들의 정점에는 빅 브라더 MB가 있다.

우선 국제중 설립 문제를 보자. 국제중-자사고 설립은 MB의 대선공약이자 공 교육감의 선거공약이다. 그러나 반대 여론이 크자 서울시 교육위는 국제중 설립을 보류 결정했다.

공 교육감은 서울시교육위가 보류 결정을 내리자 교육위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밝혔다가 하루 만에 이를 번복하고 재추진을 선언했다. 공 교육감이 입장을 바꾼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소신 때문이었다. 지난 10월 7일 교육과학기술부 국정감사에서 안민석 의원이 추궁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안민석 : 다시 묻겠습니다. 국제중학교 설립을 소신 있게 추진하라고 대통령이 말씀하셨습니까?
공정택 : 제가 국제중학교를 추진하는 것으로 보고를 드렸기 때문에 소신껏 하라는 그런 얘기지요.

안민석 : 다시 묻겠습니다. 국제중학교 설립을 소신 있게 추진하라고 대통령이 말씀하셨습니까?
공정택 : 예, 했습니다.

빅 브라더 MB가 시키는 대로 했다는 얘기다. 종부세 문제도 마찬가지다. 기획재정부가 입장을 180도 바꾼 데는 대통령이 강만수 장관을 불러 '꼭 관철시켜야 한다'고 지시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재정부 고위 공무원들은 종부세 세제개편안에 반대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을 찾아가 "청와대에서 특별 지시하는 사항"이라며 양해를 구했다는 것이다.

종부세를 기필코 폐지시키려는 MB의 집착은 '현행 종부세는 잘못됐다'는 확고한 신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종부세는 '잘못된 징벌적 과세'로 단 한 명의 피해자라도 있다면 그걸 바로잡는 게 정부 역할"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99마리 양보다 길 잃은 한 마리 어린 양을 더 소중히 여기는 일종의 '선한 목자 신드롬'이다. 문제는 한 마리 어린 양이 상위 1%의 부자라는 데 있다. 알다시피 MB가 다닌 소망교회는 강남의 대표적인 부자 교회 중의 하나다. 서울의 이른바 강남 3구 사람들은 대부분 종부세에 대해 부정적이다. 따라서 종부세는 핵심 지지층에 대한 뒤늦은 '집권 선물' 성격이 짙다.

불신 부추기는 MB의 식언과 실언, 그리고 근거 없는 낙관론

지난 2월 29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지난 2월 29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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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는 것은 이처럼 ▲ 의식이 지체된 올드 보이들의 언행 ▲ 상위 1%와 소통하는 MB의 선한 목자 신드롬 ▲ MB 자신의 숱한 식언과 실언, 근거 없는 낙관론이다.

우선 이 대통령의 747(7% 경제성장율, 4만 달러 국민소득, 7대 경제강국) 공약과 재산 헌납 공약은 언제 실현될지 알 수가 없다. 747 공약은 이미 각종 조롱거리를 넘어 욕설(7+4+7=18)의 대상으로 희화된 지 오래다.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본인이 먼저 꺼낸 재산헌납 약속은 잊은 지 오래인 모양이다. 언론은 대통령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그 약속을 환기 시키지만 대통령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가타부타 아무런 말이 없다. 

대통령이 잊지 않고 관리하는 것은 따로 있다. 강남에 여기저기 있는 건물들이 그것이다. MB는 그중에서도 단란주점 영업으로 문제가 된 건물에 대해 최근 명도소송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부동산을 계속해서 소유하겠다는 뜻이다. 처분할 부동산이라면 명도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재산헌납에는 뜻이 없다는 얘기다.

최근 해외순방에서 '본심'을 슬쩍 드러내긴 했다. G20 경제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MB는 16일 한국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미FTA 재협상 문제와 관련 "오바마는 시카고에서 (자동차) 노조의 절대적 지지로 당선된 사람"이라며 "선거 때 무슨 말인들 못 하느냐"고 했다.

대통령 된 뒤에도 허언과 근거 없는 낙관론 남발

G20 세계금융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16일 오후(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시내 숙소인 윌라드 호텔에서 워싱턴 주재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자유민주주의 하에서 통일하는 것이 최후의 궁극 목표"라고 말해 북한의 반발을 샀다.
 G20 세계금융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16일 오후(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시내 숙소인 윌라드 호텔에서 워싱턴 주재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자유민주주의 하에서 통일하는 것이 최후의 궁극 목표"라고 말해 북한의 반발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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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언보다 더 큰 문제는 대통령이 된 뒤에도 지키지도 못할 빈말을 남발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 대통령은 "나는 직접투자가 불가능하지만 간접투자 상품(펀드)이라도 사겠다"(9월 17일 수석비서관회의)고 공언했다. 또 "주가가 올랐다고 일희일비해선 안 된다. 분명한 것은 지금은 주식을 살 때"(10월 30일 언론사 경제부장단 오찬)라고도 했다. 그러나 MB의 펀드 가입은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실없는 말보다 더 위험한 것은 아무런 근거나 개념이 없는 낙관론이다. MB는 24일 미국 LA에서 열린 교민 간담회에서는 "지금 주식을 살 때"라며 "지금 주식을 사면 1년 뒤 부자가 될 것"이라고 해 빈축을 샀다. 얼마 전 라디오연설에서는 '내년이 되면 정말 어려워질 것'이라고 해놓고선 '부자가 될 것'이라니 한 마디로 경박스럽고 개념이 없다. 도대체 주식을 얼마만큼 사야 부자가 된다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아무런 근거도 개념도 없는 낙관론의 극치는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아마추어적인 대북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대북 발언에서는 민족문제에 대한 비전은커녕 고민의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지난 12일 북한의 육로통행 제한·차단 조치 발표 직후 이 대통령은 "기다리는 것도 때로는 전략"이라고 했다. 그러나 15일 오바마 당선인 측 인사들과의 면담에서는 "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오바마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직접 만나는 것도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더니 이튿날 워싱턴특파원 오찬간담회에선 다시 "자유민주주의 하에서 통일하는 것이 최후의 궁극 목표"라고 말해 북한의 반발을 샀다.

사실 북한의 반발은 이 대통령이 10월 18일 청와대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남북관계가 악화한다고 해서 (남북) 긴장이 고조돼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는 생각을 버려라"(<한겨레> 3일자)고 발언한 것이 불러온 예고된 설화이다. 실제로 북한은 최근 개성공단을 볼모로 긴장도를 높여감으로써 "그래? 남북긴장이 경제에 악영향을 주는지 안 주는지 한번 볼래?"라고 테스트하고 있는 셈이다.

이 대목에서 '그분'이 떠오른다. '그분'은 늘 이런 식이었다.

"지구는 내(나를) 중심으로 돈다."

5년 내내 '경제'를 '겡제'라고 했던 김영삼(YS) 전 대통령이다. YS는 재임 중에 일본한테는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고 호언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핵을 가진 자와는 악수하지 않겠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일성이 급서하자 YS는 '김일성이가 정상회담 대비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아 죽었다'고 해석했다.

그때와 복사판이다. 지금 MB의 대북전략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3000만 북한 주민이 고사하더라도 김정일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대북정책 기조가, 핵도 없지만 3000만 주민도 없는 북한을 상정한 '비핵-개방-3000'인지도 모르겠다. 바야흐로 'YS 시즌2'에 들어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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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명박, #YS, #IMF, #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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