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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맨 왼쪽에 사회를 맡은 프랑스 국가고문 장 뮈지텔리의 모습이 보인다. 발표 중인 정 의원 오른쪽이 캄보디아 압사라 청장 분 나리스, 왼쪽은 말리의 영화감독 술레이만 시세.
 사진 맨 왼쪽에 사회를 맡은 프랑스 국가고문 장 뮈지텔리의 모습이 보인다. 발표 중인 정 의원 오른쪽이 캄보디아 압사라 청장 분 나리스, 왼쪽은 말리의 영화감독 술레이만 시세.
ⓒ 박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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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획일화되고 문화다양성의 가치가 훼손되는 과정에서 WTO의 협정들과 숱한 BIT, FTA 들의 영향이 컸습니다. … 한국의 스크린쿼터는 이러한 통상협정의 위협에 맞서 자국의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킨 자랑스러운 문화정책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통상협정에 의해 훼손된 문화정책의 사례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무대는 아비뇽교황청(1309~1377년까지 7대에 걸쳐 로마에서 피신해온 교황이 프랑스 아비뇽에서 체류한 곳). 전날 아비뇽포럼 개막식에 이어 지난 17일(현지시각) '세계화와 문화다양성'이라는 주제로 열린 워크숍에 발제자로 초청된 정병국 한나라당 의원은 단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화 덕분에 세계는 하나가 된다, 즉 세계는 미국화 된다"

아비뇽포럼은 전 세계 문화, 경제, 미디어 분야의 일인자들이 각자의 경험과 각국의 사례를 공유하는 장으로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사흘간 프랑스 아비뇽에서 개최됐다. 포럼을 주관한 프랑스 문화장관 크리스틴 알바넬은 18일 폐막 연설을 통해 "올해의 성공을 기반으로 아비뇽포럼은 앞으로 매년 개최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미스트랄'이라 불리는 프랑스 남부지방의 북서풍이 세차게 몰아치던 지난 17일 오전, EC 정보사회미디어국 집행위원 비비안 리딩의 사회로 진행된 제1차 아비뇽포럼 총회에서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올해 수상해 세계 최고의 건축가 반열에 등극한 프랑스의 건축가 장 누벨, 프랑스 국립도서관(BNF) 관장 브뤼노 라신, 디자이더 필립 스타크 등 문화예술계 저명인사들이 패널로 참가한 가운데 '문화, 위기와 진보'를 논의했다.

같은 날 오후 열린 4개의 워크숍 가운데 정병국 의원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세계화와 문화다양성'이라는 제목의 워크숍 무대에 올랐다. 이날 워크숍에는 아프리카 영화감독으로 유일무이한 거장 감독인 말리의 술레이만 시세, 화가 바르텔레미 토구오, 캄보디아 압사라 청장 분 나리스 등이 정 의원과 함께 발제에 나섰다. 분 나리스는 정 의원과 함께 이번 아비뇽포럼에 초청된 유일한 아시아 인사.

주제가 문화다양성이었던 만큼 영어가 아닌 우리말로 발제한 정 의원은 '영화 덕분에 세계는 하나가 된다, 즉 세계는 미국화 된다'고 말한 미국 작가 업톤 싱클레어를 인용하며 "오늘날 우리는 이 불길한 예언이 현실이 되는 과정을 고통스럽게 지켜봐야 하는 불행한 목격자고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지난해 스크린쿼터 제도가 축소되기 전까지는 세계무대에서 스크린쿼터 제도를 자랑스럽게 알려온 한국의 입장에서 이날 정 의원의 발제는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스크린쿼터 제도의 역할과 그 영향력을 과시하는 것이 우리 대표단이 맡아온 연설의 골자였던 과거와 비교해 어쩌면 처음으로 스크린쿼터 제도 축소의 폐해를 세계무대에 알리는 '고약한' 역할이 정 의원에게 주어졌던 까닭이다.

프랑스 국가고문 "한국 자국영화 보호정책은 세계적 모델"

 아비뇽포럼 개막식이 열린 지난 16일 만찬에서 정병국 의원은 프랑스 문화장관 크리스틴 알바넬, 건축가 장 누벨 등 10인의 명사들과 함께 만찬장 한가운데 마련된 테이블에 초대됐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올해 수상해 세계 최고의 건축가 반열에 등극한 프랑스의 건축가 장 누벨과 함께 정 의원은 서울 노들섬에 들어설 오페라하우스에 대해 한동안 대화했다.
 아비뇽포럼 개막식이 열린 지난 16일 만찬에서 정병국 의원은 프랑스 문화장관 크리스틴 알바넬, 건축가 장 누벨 등 10인의 명사들과 함께 만찬장 한가운데 마련된 테이블에 초대됐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올해 수상해 세계 최고의 건축가 반열에 등극한 프랑스의 건축가 장 누벨과 함께 정 의원은 서울 노들섬에 들어설 오페라하우스에 대해 한동안 대화했다.
ⓒ 박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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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의원은 여기서 "스크린쿼터의 정착에 따라 1993년 16% 수준에 불과하던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1999년에는 39.7%, 2001년에는 50% 그리고 2006년에는 63.8%를 돌파했다"며 스크린쿼터 제도의 쾌거를 소개한 뒤 이것은 "한국영화의 양적 성장뿐만 아니라 질적 성장까지 이뤄내 이른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구가했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나 미국의 집요한 압력으로 한국정부는 한미FTA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스크린쿼터를 축소하기로 결정했고 2006년 7월 1일부터 기존 40%에서 20%로 축소돼 시행되고 있다"며 "그 결과 한국영화는 심각한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의해 축소된 스크린쿼터의 사례는 이 분야에 대한 미국의 압력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제적 가치 중심의 세계질서 편제를 막기 위해 우리는 문화다양성협약을 주장했고 의결했습니다."

사회를 맡은 프랑스 국가 고문 장 뮈지텔리는 정 의원의 발제에 앞서 "문화다양성협약이 유네스코에서 통과되는 과정에서 한국은 매우 독특한 역할을 했다"며 "한국의 자국 문화 특히 자국영화를 보호하는 정책은 세계무대에서 모델이 됐으며 스크린쿼터문화연대라는 조직을 출범시켜 세계영화를 보는 진보적인 시각을 제시한 점도 탁월했다"고 평가했다. 뮈지텔리는 이어서 "유네스코에서 문화다양성협약이 통과되도록 하기 위해 세계적 문화동맹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국이 담당했다"고도 했다.

문화다양성협약은 지난 2005년 11월 유네스코에서 '사실상' 만장일치로 채택된 바 있다. 캐나다와 프랑스를 포함한 148개국이 찬성에 표를 던졌고 미국과 이스라엘 단 두 나라만 반대를 표명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비준한 193개국 명단에 한국은 빠져 있다.

아비뇽포럼 둘째 날인 지난 17일 아비뇽교황청에 마련된 만찬장에서 정 의원을 만날 수 있었다. 포럼 개막식이 열린 16일 만찬에서 정 의원은 프랑스 문화장관 크리스틴 알바넬, 건축가 장 누벨 등 10인의 명사들과 함께 만찬장 한가운데 마련된 테이블에 초청됐었다.

전날의 만찬 요리가 피에르 아르메를 비롯 유럽연합을 대표하는 뛰어난 요리사 5인의 상상력으로 연출됐다면 17일 만찬은 아비뇽 최고의 요리사가 재능을 발휘하는 시간이었다. 프랑스가 자랑으로 여기는 각 지방의 포도주들이 테이블을 적신 것은 물론.

"우리 정부, 문화다양성 협약 비준할 것"

 아비뇽포럼 개막 만찬장. 정병국 의원을 안내하는 르노 돈디유 드 바브르 프랑스 전 문화장관.
 아비뇽포럼 개막 만찬장. 정병국 의원을 안내하는 르노 돈디유 드 바브르 프랑스 전 문화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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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정 의원과 1시간여 동안 나눈 대화를 요약한 것이다. 질문은 아비뇽포럼과 국내정치를 넘나들었다. 집권여당 정치인의 생각이 궁금했던 까닭이다. 정 의원은 초선 때부터 지금까지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으로 9년째 활동해 가히 이 분야 전문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아비뇽포럼에 대한 인상이 궁금하다.
"왜 프랑스를 문화대국이라 하는지 재확인 시키는 포럼이었다. 세계적 경제 위기 속에서 다른 나라의 경우 예산을 줄인다면 문화 예산을 먼저 줄였을 텐데 프랑스는 오히려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 이 같은 포럼을 개최했다. 미국의 패권주의에 문화로 다시 한 번 뒤통수를 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 의원은 발제를 통해 문화다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캐나다, 프랑스와 함께 한국이 문화다양성협약 초안을 만드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 
"지난 2002년 프랑스 하원의회에서 한국의 영화정책과 스크린쿼터 제도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는 나로서는 6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우리가 왜 실패했는지 설명해야 하고, 이제 와서 이들에게 우리도 문화다양성 협약을 비준할 거라 말하면서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의 문화인들이 문화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기울인 노력이 세계무대에서 인정받고 있어 다행스럽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우리 문화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우리 문화인들에게 감사한다."

- 한국에서 문화다양성협약, 비준될까.
"나는 야당 때부터 끊임없이 협약 비준을 주장했다. 문화다양성 협약을 국무회의에서 대통령령에 준하는 것으로 처리하려 했던 것에 문제제기를 했고 국회에서 문화관광위 위원들과 결의안을 내기도 했다. 이제는 내가 여당이다.

이전에는 한미FTA 때문에 그랬다지만 이제는 협의가 끝났고 그 과정 속에서 미국이 문제제기했던 부분을 다 성취했으므로 (비준을) 더 미룰 이유는 없다. 국정감사 측에서 비준 동의안을 처리하겠다는 확답을 받았다. 아비뇽에 오기 전에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통화도 했다. 내가 아비뇽에서 발제를 할 때 비준동의안을 처리하겠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라 밝혀도 된다는 확답을 받았으므로 절차상의 문제만 남았다고 생각된다."

- 스크린쿼터 제도 축소는 한미FTA의 선결조건이었다. 한미FTA를 진행하며 동시에 스크린쿼터와 같은 문화다양성 부분을 지키려 하는 건 모순 아닌가.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이라 생각된다. 한미FTA는 큰 의미에서 국익 차원으로 봐야하는 것이다. 스크린쿼터는 한미FTA 협약문이 아니라 선결조건에 해당해 상관없다. 문화다양성 협약을 이 정부에서 처리하는 것과 한미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하는 것은 상충되지 않는다고 본다."

"스크린쿼터는 문화다양성을 지키는 방법"

- 어쨌거나 의원이 스크린쿼터 제도를 옹호하는 것은 현 정부에 상치되는 것으로 보인다.
"스크린쿼터 제도는 열악한 영화산업 환경에서 그나마 한국영화를 지켜준 중요한 기재였다고 생각한다. 스크린쿼터제도가 활성화 되고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은 영화인들의 부단한 노력이 있어 가능했다. 문화예술인들이 힘을 모으게 되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 우리나라에서는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를 중심으로 보여줬다.

스크린쿼터 제도는 우리 영화산업을 오늘의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많이 무너졌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할리우드 영화 다음으로 자국 점유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한국이다. 그러나 끊임없는 미국의 압력에 결국 굴복했다. 스크린쿼터가 반 토막이 나고 2년이 채 안 된 시점에서 우리 영화산업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 반 토막 난 스크린쿼터 제도가 복원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복원할 수 있다면 복원해야 한다. 우리는 여러 차례 미국의 압력을 피해갈 수 있었고 피해갈 수 있는 시기도 있었다. FTA 협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에 나는 시행령으로 돼있던 스크린쿼터 의무조항을 법제화 하자는 법률개정안을 낸 바 있다. 정부가 협상하는 과정 속에서 '스크린쿼터 제도가 법제화 됐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다'고 압박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까닭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을 비롯한 당시 야당 의원들이 정부 눈치를 보느라 동의를 못 해줬다. 그 개정안에 의원들이 동의해 줬다면 이토록 쉽게 스크린쿼터가 넘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 대 정부로서 한미FTA 협상을 한다하더라도 국회 비준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유리한 상황에서 협상을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을 저버린 것이다. 안타깝게 생각한다."

- 가능하면 복원해야 한다고 했는데 언제까지 한국영화가 스크린쿼터의 보호를 받아야 할까.
"한국영화를 보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거다. 우리가 문화다양성 협약이라는 걸 왜 만들었나. 국제적으로 만장일치에 가까운 동의를 얻어 통과된 협약 아닌가. 각 나라별 비준동의 절차만 남아 있다. 일반상품처럼 시장 경제 논리로 접근하면 하나의 문화밖에 존재할 수 없게 된다.

미국에서는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 제작하는 데 천 억대가 넘는 예산을 투입한다. 그리고 미국영화는 영어권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말이 통하는 나라가 우리의 수십 배에 해당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내에서 제작되는 영화는 백억이 넘어야 블록버스터라 말한다. 한국어가 통하는 인구가 해외동포, 북한까지 합쳐도 1억이 안 된다. 경쟁이 될 수가 없다.

출발점 자체에 차이가 있는데 '문화도 상품이다', '시장경제에 맞춰야 한다'고 말하면 곤란하다. 국제사회에서 문화다양성을 주도하고 동의했던 나라들이 한국의 스크린쿼터 제도를 경이롭게 바라보고 벤치마킹하려 한다. 스크린쿼터는 단순히 한국의 영화산업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문화다양성을 지키는 하나의 방법론이다."

"법을 준수하는데 경찰이 공권력을 쓰면 폭력"

 지난 18일 아비뇽포럼 폐막 만찬에서 우리에게는 영화 <연인>으로 알려진 프랑스의 영화감독 장-자크 아노와 환담하는 정병국 의원
 지난 18일 아비뇽포럼 폐막 만찬에서 우리에게는 영화 <연인>으로 알려진 프랑스의 영화감독 장-자크 아노와 환담하는 정병국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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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를 바꿔보자. 의원은 과거 민주화운동에 투신해 수배, 고문, 투옥이라는 80년대의 공식을 고스란히 살았다. 어땠나. 지난여름을 달궜던 촛불시위는.  
"우리가 민주화 운동을 할 때의 분위기와 접근방법이 지금과는 다르다. 우리는 명분을 중시했고 지금은 이른바 실사구시다. 오늘의 그것은 나에게 손해가 가고 나에게 불이익이 오면 참지 못하는 생활밀착형 문제제기라 생각한다. 지난번 촛불시위가 대표적인데 이것을 촉발시키고 주도한 사람들은 중고생과 그들의 부모들이다. 그런 측면에서 시위문화가 변화했다고 본다. 실질적으로 나에게 불이익이 올 때 국민들은 언제든지 (거리로) 나올 수 있는 새로운 시위문화를 만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개입해 순수한 시위를 이용하려 한 것은 아쉽다고 생각한다."

- 이런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은 두 차례에 걸쳐 대국민 사과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촛불이 잦아들면서 대대적인 검거태세로 돌변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20년 전으로 되돌리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는데.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원칙과 명분이 있다 해서 방법론적으로도 모든 게 통용된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과거 방식이다. 과거에 쿠데타를 통해 총칼로 권력을 잡은 이들은 과정이 합법적이지 않아 (우리가)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명분이 될 수 있었다. 합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찬탈한 권력에 맞서 싸우는 방법이 조금은 비합법적이라 해도 그럴 수 있다.

국민적 지지를 통해 만들어진 정권의 정책에 반대하거나 잘못된 것에 문제제기를 하거나 시위를 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으나 합법적인 틀에서 이뤄져야 한다. 비합법적인 것은 제지해야 한다. 이것은 민주주의 사회를 이끌어가는 원칙이고 또 그래야 민주주의 사회가 지켜질 수 있다고 보는 거다. 정부가 불법 시위를 제대로 막지 못하고 공권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다수 국민들은 불만을 제기한다. 그것을 지켜주지 못하면 정부로서 도리를 못하는 것이고 그런 정부는 존속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 정부가 촛불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근거가 무엇일까.
"우선 대한민국에는 법이 있다. 시위를 하려면 며칠 전에 신고를 해야 하고 정해진 장소를 벗어나면 안 된다. 기본적으로 야간시위는 불법이다. 다 법에 규정된 것이다. 여야가 함께 만든 규정이면 지켜야 하지 않겠나."

- 한나라당은 야당 시절에 사학법 개정과 관련해 일몰 이후에 시위를 했고 또 정해진 장소를 벗어나 행진을 하기도 했는데.
"당시 내가 홍보기획 본부장이었기 때문에 잘 아는데 처음부터 일몰 이후 시위는 아니었다. 집회 신고를 하고 정상적으로 했는데 시간을 넘긴 일은 있지만 처음부터 불법 집회를 한 일은 없다. 그런데 이번 촛불시위는 야간에 진행되면서 문화행사로 분류됐다. 편법이었다.

그래도 정부는 다 인정했다. 그 이후에 점차적으로 도로를 무단 점거하면서 불법 천지를 만들었고 시민들에게 불편을 야기하게 됐다. 내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집회를 할 수는 있으나 타인에게 불편을 주거나 타인의 권리를 뺏을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그 한계를 넘었기 때문에 법대로 집행한 것이다."

- 정부는 당시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폭력적이라 했다. 반면 경찰의 폭력은?
"경찰의 폭력이라 보면 안 된다. 비교를 한 번 해보라 말하고 싶다. 민주화가 정착돼 있다는 서구 국가에서 정해진 폴리스라인을 넘었을 때 얼마나 가혹하게 대처 하는가를 우리는 먼저 봐야 한다. 그게 공권력이다. 법을 준수하는데도 불구하고 경찰이 공권력을 썼다면 폭력이다. 법을 어겼을 때 쓴 폭력은 공권력이다."

진정한 보수의 가치는 도덕성

-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는 이유는 '강부자', '고소영' 내각, 1% 국민 즉 부자를 위한 정책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어쨌거나 그런 소리를 듣게끔 빌미를 준 것은 잘못 됐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고소영', '강부자' 내각 여부를 따져봤는데 그렇지 않다더라. 그러나 그런 인식을 준 것은 잘못 됐다고 생각한다."

-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진보하는 보수'를 역설한 바 있다. 한국사회에서 진보와 보수는 서로 상충되는 개념이 아닌가.
"내 의도는 보수가 진보를 지향하는 게 아니라 변화하는 보수의 차원이었다."

- 진보하는 보수, 진정한 보수는 뭔가.
"진정한 보수의 가치는 도덕성에 있다고 본다. 보편타당한 도덕에 모든 가치를 부여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보수가 돼야 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현할 수 있는 보수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인식돼 있는 보수, 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보수도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다.

지난 5, 6년 동안, 야당 시절에 '한나라당이 바뀌어야 대한민국이 바뀐다'는 취지로 당내 투쟁을 했던 나로서는 한나라당이 엄청나게 바뀌었다고 인정한다. 그 변화가 국민들에게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고 그것이 지난 대선에서 우리가 정권을 되찾아올 수 있었던 요인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더 변해야 한다.

보수의 진정한 가치인 도덕성 확립과 더불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행할 때 진정한 보수가 구현되지 않겠나. 확고한 기득권에 안주하려 하거나 그것을 지키려고 아등바등 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고 함께 가는 것이 진정한 보수다."

- 의원이 지난 1992년 김영삼 전 대통령 비서관으로 임명됐을 때 나이가 34세였다. 정계 입문이 빠른 편인데.
"정계입문이 빠르고 느리고에 따른 의미는 없는 것 같다. 다만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정치에 입문을 하면서 젊은 시각으로 정치를 바라볼 수 있었달까. 젊은 나이는 모험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의식도 강하다. 연세 드신 선배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했다는 평가도 받았고 또 그런 자부심도 있다. 젊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이제는 3선이 됐다. 3선이면 중진이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정치적 행위들을 바라보면서 과연 그때 내 행동이 옳았던 것인가에 대한 회의도 많이 한다. 접근 방법을 달리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와 반성도 많다. 최소한 우리 선배들이 해왔던 시행착오와 매너리즘에 빠지는 정치인은 되지 말자 다짐을 하는데도 인간이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매너리즘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노 전 대통령 탄핵은 아쉬운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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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원의 정치 인생에서 부끄러웠던 일, 혹은 자랑스러웠던 일이 있나.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건이다.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접근 방식이 틀렸다는 생각에 나는 탄핵에 반대 했다. 그런데 그 생각을 끝까지 관철시키지 못한 점이 아쉽다. 당시 노 대통령의 방식에 대해 나 역시 문제제기를 했으나 탄핵과 같은 극단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우리가 야당이었지만 다수당이었다. 다수당의 힘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되는 거였다. 우리가 다수당인지는 모르나 대선을 통해 평가를 받았고 정권을 내준 상태였기 때문이다. 또 국민 다수의 동의를 얻어 선출된 대통령을 우리가 탄핵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결국 마지막에는 탄핵에 찬성하고 말았다. 당시 소장파 의원 몇 사람이 (탄핵에)반대를 했는데 노 대통령이 오히려 역으로 갔다. 타협하려 하지 않았다. 더 이상 우리가 반대할 명분이 없어졌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흐름 파악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보람된 일이었다면 탄핵 국면 이후에 정말 한나라당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다음부터 나는 정부 여당이 아니라 한나라당 지도부를 상대로 끊임없이 투쟁했다. 당내에서 거의 왕따가 되면서, '정치 안 한다'는 배수진을 치고 몇몇 동료들과 끝까지 투쟁했다.

아직까지 우리는 더 많이 변해야 하지만 우리의 투쟁 자체가 정치권 전반에 변화를 가져오는 견인차가 됐다고 생각한다. 아마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내 정치생명을 걸고 싸울 수 있을까 되돌아보면 의문스럽긴 한데 그때는 정말 용감했다는 생각이 든다."

- 특별히 좋아하는 영화가 있나.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2003)을 신선하게 봤고 지금 당장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 이란영화, 그리고 <피아니스트>(2002, 로만 폴란스키)가 좋았다. <피아니스트>는 특히 나치 시대의 실상을 실감 있게 묘사했고 피아니스트 한 사람을 통해 그 시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인간이 한계에 직면하게 되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등 여러 측면에서 시사하는 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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