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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베버, 이사람을 보라
 막스 베버, 이사람을 보라
ⓒ 인물과 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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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대학은 어떤 곳일까? 전문성이 바탕이 된 지적 논쟁과 토론이 있고, 사상과 이념이 달라도, 상대가 학문적 성과와 전문성이 탁월하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일까? 아니 함께 대학이라는 학문의 장에서 자신과는 다른 학문세계를 열어가는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을까?

안타깝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김덕영은 대한민국 대학을 <막스 베버, 이사람을 보라>에서 “조폭과 마피아를 방불케 하는 패거리 문화, 근친상간과 동종교배가 횡행하는 대학, 사학비리,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비정규직 노동력의 착취, 학력위주와 학위조작, 기초학문의 위기, 기업의 논리에 지배당하는 대학, 시민강좌 수준으로 전락한 대학 교양 교육, 영어 공용화를 외치는 지식인들이 …”가득 찬 곳이라고 통렬한 비판을 하고 있다.

‘상아탑’은 학연, 지연, 연줄, 자본에 이미 무너졌다. 한 마디로 ‘거대한 혼돈’ 이배하는 대학이다. 김덕영은 거대한 혼돈에 허우적거리는 대한민국 대학 현실을 향한 통렬한 비판과 함께 그 대안을 ‘막스 베버’(1864~1920)가 살았던 삶과 학문적 성과를 통하여 찾고자 한다.

막스 베버는 니에스, 지멜 등과 더불어 현대 독일 사회학의 창시자로 꼽힌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지은이로 익히 알고 있다. 항상 우리는 이렇다. 누가 어떤 책을 썼다는 정도로 그를 안다 말한다. <자본>을 한 번도 읽지 않고, 칼 막스를 안다면서 통렬히 비판하는 것처럼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읽지도 않고 막스 베버를 논한다.

막스 베버는 사회학자로서 독일 지성계와 대학세계에 영향을 끼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전공인 법학 외에도 경제학, 철학, 신학, 역사학, 고전학 따위를 연구하면서 “문화과학의 영역에서 훌륭한 교수가 강의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들었다.”

베버가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 대학학제가 여러 대학에 다니면서 공부할 수 있었고, 대학 서열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버가 훗날 현대사회학의 거목으로 독일 대학계를 넘어 세계 지성계에 엄청난 영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독일의 지적 풍토 덕분이었다.

우리나라 대학 현실에서는 도저히 접할 수 있는 독일 대학사회의 지적 풍토는 <막스 베버, 이사람을 보라>를 읽어가면서 부러움과 함께 그 길을 결코 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일류대학 열병과 학문보다는 취업 학원으로 전락한 우리 대학 현실에서는 세계 지성계를 뒤흔들 대학자가 탄생할 수 없다는 자괴감마저 든다.

하지만 베버가 살았던 독일사회는 현재 우리 사회보다 시민사회가 성숙하지 않았다. 시민계층은 영국과 다른 유럽 국가보다는 성숙하지 못했다. 이유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독일 통일과 함께 정치와 정신을 지배했던 '철혈 재상'으로 불리는 비스마르크가 다스렸던 시대와 같다.

비스마르크를 정점으로 한 독일은 군국주의, 권위주의, 국가주의, 관료주의가 독일의 학문, 대학, 정신까지 지배하였다. 독일경제학은 경제 행위의 주체로 여겨졌던 '국가' 대신 시민사회의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을 주창하였고, 독일제국 아들인 독일시민 계층 역시 자기 자신을 '아버지'인 귀족계급과 동일시하였다.

“독일 시민계층의 정치적 미성숙은 독일 국민 국가가 직면한 가장 커다란 문제,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일 역사의 종말를 고할지 모를 정도로 국민국가에 위협적인 것이라고 베버는 확신했다. 이처럼 독일의 시민계층이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이유는 아직도 귀족계급이 군주주의적며 관료주의적인 국가체계가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역사가 종말을 고하지 않으려면 국민국가를 창건한 귀족계급, 즉 ‘아버지’를 살해하고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시민계층, 즉 아들을 정치적으로 교육시키는 것밖에는 달리 대안이 없었다”(132쪽)

베버는 '아버지'를 살해했다. 아버지 살해란 독일정신-시민보다 국가를 우선시하는 정신-에 대한 거부였다. 시민이 정치적으로 성숙한 국가야 말로 진정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으며 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진리를 믿었다.

베버는 비스마르크가 남긴 "눈곱만큼도 정치적 교육도 받지 않은 국민"이 "정치적 사고의 자유성과 정치적 자유를 교육시키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정신적 자유를 최고 선으로 여겼다.

국가를 위해 희생을 강요하고, 국가를 시민 개인보다 우선시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국민들의 정치적 자유와 그 행위를 억압하는 것을 거부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경험했던 일이다. 경제와 안보를 위하여 시민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였고, 국가를 위한 희생을 강요했다.

지금 그 망령이 되살아나려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 진정 강한 나라는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시민이 얼마나 많은가에 있지 않고, 국민들이 정치적으로 성숙할 때 가능함을 우리는 베버를 통하야 배워야 한다.

베버는 말한다. 대학은 정신적 자유와 정신적 투쟁의 장이다. 베버는 대학을 정신적 자유와 정신적 투쟁의 장으로 보았다. 대학이란 다양한 자유로운 정신들이 모여 서로 투쟁하는 곳이다. 사회주의자도 둥지를 틀 수 있어야 하며 무정부주의자도 둥지를 틀 수 있어야 한다.

베버는 자기와 학문세계가 달라도 그가 이룬 학문적 성과가 위대하다면 존중하였고, 같은 대학에서 가르치기를 원했다. 한 사람을 예로 들어보자. "독일 출신의 이탈리아 사회학자로서 신디칼리즘(급진적 노동조합주의)과 아나키즘이 결합된 사회주의 노선을 걸었던 로버트 미헬스를 부르주아 사회과학자들의 독무대인 학술지와 학회 및 사회과학 총서 발행인으로 끌여들었다고" 김덕영은 말한다.

학술지가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베버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사회주의가 아니면서도 급진적 사회주의자 미헬스를 보수사회학회지 논문에 게재토록 했다. 이유를 베버는 이렇게 말한다.

“가치와 관계된 모든 학문 분야에서는, 그 가운데서도 특히 철학 역사학 국가과학읩 분야에서는 기능한 다양한 방향의 대표자가 공존하면서 활동해야 한다. 그가 생각하는 바의 대학은 교회나 종파 또는 국가를 유지하는 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대학은 어디까지나 정신적 자유와 정신적 투쟁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191쪽)

“대학이란 한마디로 전문적 연구와 전문적 교육을 하는 사회적 제도이자 문화적 공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교수는 연구와 교육을 직업으로 하는 전문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교수의 인격은 바로 이 전문성에서 나온다.”(213쪽)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 지난 봄 서울대학 경제학부 김수행 교수가 정년퇴임을 했다. 김수행 교수는 대표적인 마르크스경제학자였다. 경제학부교수가 30명이 넘는데 김수행 교수 퇴임 이후 마르크스 경제학자는 사라졌다. 대한민국 일등 대학, 세계 일류대학을 지향한 대학이 학문의 다양성을 거부한 것이다. 치열한 논쟁은 간데 없고, 획일화된 사상만 지배하는 대학은 죽은 사회이다.

김덕영은 말한다. 대학과 학자는 전문성을 설파고, 다른 이의 학문을 학문으로 비판해야 한다. 분석과 비판, 논쟁과 아버지 살해가 존재하는 대학만이 살아있는 대학이라고. 학연, 지연, 혈연으로까지 엮여있는 대학민국 대학과 지식을 향하여 "대학과 학문 그리고 지식인의 근대성을 확보하라!"

덧붙이는 글 | <막스 베버, 이사람을 보라> 김덕영 지음 ㅣ 인물과 사상사 펴냄 ㅣ 13,000원



막스 베버, 이 사람을 보라 - 학문과 지식은 세계를 어떻게 바꾸는가?

김덕영 지음, 인물과사상사(2008)


태그:#막스 베버, #대학,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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