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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미국 일리노이 주 알턴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수줍음을 잘 탄 그 아이는 재즈를 절대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찬사를 받았고, 시대를 앞서간 재즈의 황제라는 칭송을 받았던 ‘마일즈 듀이 데이비스 3세’이다. 흔히들 '마일즈 데이비스'로 부른다.

 

마일즈는 찰리 파커, 존 콜트레인들과 함께 연주하고, 디지 길레스피, 소니 롤린스, 웨인 쇼터, 그리고 또 다른 재즈 거장 길 에반스와 함께 음악 세계를 일구었지만 관객에게 등을 돌린채 연주한 외로운 재즈 연주자였다.

 

1991년 그가 생명을 놓은 후 그를 기리는 평전이 출간되었다. 그와 함께 했던 많은 이들의 입을 빌려 존 스웨드가 지은 <마일즈 데이비스> 평전이 을유문화사 현대예술의 거장 시리즈 6권으로 나왔다.

 

<마일즈 데이비스> 부제는 ‘거친 영혼의 속삭임’이다.  책 표지를 보고 책을 고르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나에게는 선택 기준은 아니었지만 <마일즈 데이비스> 표지는 강렬했다. 피부색부터 배경까지 온통 검다. 하얀 눈동자만 하얗다.

 

서글프게 보일 정도로 눈매는 자신의 피부색부터 받았던 아픔을 거부하거나, 혹은 관객 앞에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외로움을 이겨내면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고가 했던 내면을 읽도록 인도하는 표지이다.

 

평전은 자칫 잘못하면 '진실'보다는 '전설'을 말하려는 오류에 빠져버린다. 시대를 앞서간 재즈의 황제, 재즈를 절대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칭송을 받는 마일즈 데이비스 같은 이의 평전을 쓴다면 진실을 전설로 말하려는 오류에 더욱 빠지기 싶다.

 

존 스웨드는 이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데이비스 가족과 동료 연주자들, 데이비스 자서전, 인터뷰 내용을 통하여 많은 모순으로 가득 찬 숱한 의미를 형상화, 한 개인의 삶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광대한 공공의 자아를 창조하는 노력을 했음을 밝힌다.

 

존 스웨드는 인류학과 흑인 문학을 공부했는데 특히 재즈를 문화사적으로 조망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책갈피 한 장 한 장을 넘긴면 존 스웨드가 마일즈의 음악과 생애를 조망함에 있어서 음악뿐만 아니라 역사, 철학, 문학, 미술, 연극, 영화, 패션 따위를 사용하고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음악과 생애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옮긴이 김현준 '냉속적 집착'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 집착의 의미와 그로 인해 빚어진 결과들 속에서 일련의 모순과 페이소스를 발견한다면, 그리고 '쿨'이라는 말로 그를 표현하는 것을 얼마나 무책임하고 피상적인 관찰이었는지 깨닫는다면, 비로소 마일즈 데이비스의 음악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8쪽)

 

우리는 <마일즈 데이비스>를 읽어가면서 피상적인 마일즈가 아니라 고등학교 시절 앞자리에서 말없이 앉아 책 한 권 손에서 놓지 않았던 그 녀석을 만날 수 있으리라 옮긴이는 말하고 있다. 음악만이 아니라 그 음악 세계를 만들어 간 사람을 만난다는 의미이다. 고독하고 외로운 사람이었다.

 

"무대 위의 마일즈는 어떠했는가? 그래, 정물화라는 표현이 좋겠다. 무릎을 조금 굽히고 고개는 앞으로 숙인 채 모든 것이 덧없다는 듯 미동 하나 없이 가만히 연주에만 몰두했다. 마일즈의 음악에는 외로움의 눈물이 담겨 있었다. 자아의 깊숙한 곳에서 넘쳐흐른 1950년대의 많은 이들이 느끼던 바르 그 진한 눈물."(371쪽)

 

이렇듯 마일즈 사운드는 '요아힘 에른스트가 표현했듯이 음악이라기 보다는 개인적 저항에 어울리는 무조건적인 슬픔과 체념의 소리였다. 그는 쉽게 화를 내었고, 자신에 대한 비평에도 쉽게 상처를 받았다. 그가 연주 중에 여유로워 보인 적은 없을 정도. 하지만 그는 이 고독함과 외로움을 무대 위에 무릎을 꿇은 채 날카로운 단검을 들어 자신의 육부 아낌없이 도려냄으로써 마일즈 데이비스를 만들어 갔다.

 

"마일즈 데이비스는 무대 위에 무릎을 꿇은 채 날카로운 단검을 들어 육부를 아낌없이 도려낸다. 테너 색소포니스트 조지 콜먼이 이를 받아들이고 능청스런 살풀이를 추어댄다. 마일즈의 손에 들렸던 단검이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에게 전해지고, 베이시스트 론 카터가 주머니에서 새하얀 손수건을 꺼내 허비 행콕에게 건텐다. 허비 행콕은 마일즈의 단검을 성스러운 손짓으로 곱게 닦아 다시 칼집에 집어 넣는다."(9쪽)

 

이 지독한 외로움을 소유했던 마일즈이기에 그가 남긴 음악을 듣다는 것만으로 마일즈를 다 알 수 없다. 아주 가까이 있지 않았다면 진실을 올곧게 알지 못하는 인물이라고 존 스웨드는 마일즈를 평가한다.

 

그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했고, 정체성 마저 과감히 바꾸었다. 1940년대 말에는 첨단을 추구한 비밥 수련생, 50년대 말에는 낭만적인 반항아, 흑인이라면 누구나 경험했던 1960년대 인종 문제에 날카롭게 대립했으며, 1970년대는 흑인 음악 신봉자로 살았다. 1970년대는 광적인 유배생활, 말년은 팝으로 살았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오늘날 음악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물어본다. 내 생각엔 짧은 악절들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잘 들어보면, 귀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것을 듣고 알 수 있다. 음악은 항상 변하고 있다. 뮤지션들은 사운드를 얻어 자기들의 연주로 구체화하므로 그들이 만드는 음악은 다르게 될 것이다. 신디사이저와 사람들이 연주하는 그런 다른 모든 새로운 악기들은 모든 것을 다르게 만든다. 악기는 나무였다가, 금속이 되었고, 이제는 딱딱한 플라스틱이다.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내가 알지는 못하지만, 뭔가 다른 것이 되리라는 것은 안다.(<마일즈 데이비스 자서전 3권> 157쪽, 집사채 펴냄)

 

<마일즈 데이비스>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지 않다. 모던 재즈에서 록, 팝까지 아우른 음악 세계를 진지하게 만날 수 있다. 거친 영혼의 속삭임이라는 평가를 받는 마일즈의 음악 세계를 접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마일즈 데이비스> 존 스웨드 지음 ㅣ 김현준 옮김 ㅣ 을유문화사 ㅣ 35,000원


마일즈 데이비스

존 스웨드 지음, 김현준 옮김, 그책(2015)


태그:#마일즈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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