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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서야, 그동안 학예회 준비하느라 애썼다. 3월, 처음 너를 만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해 마무리 채비에 바쁘다. 그치? 오늘 너희가 집으로 돌아가고 난 뒤 우리가 함께했던 흔적들을 추슬러보았다. 그 중에 또박또박 눌러 쓴 원고 뭉치가 많았다. 좋은 생각들,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다.

 

특히 인서 네 글이 가슴에 와 닿더구나. 열세 살 너희가 바라보는 세상, 순수하고 부드러운 시선이 아름답다. 다함께 사는 세상, 그것은 변함없는 우리들의 마음자리다. 언젠가 윤구병 선생님 책을 같이 읽으면서 얘기했었지. 우리 모두가 ‘똑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으로 커가자’고 자신했었지. 그래서 누구나 ‘제 빛깔 제 모습’으로 함께 했던 거야.

 

열세 살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 똑같은 것보다 다 다르게

 

사람마다 생각가지는 다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부추기고, 격려했다. 더러 궂은일도 만났지만, 대개 좋은 일로 부대꼈다. 때론 서로 이해되지 않는 고집으로 지지고, 볶고, 버무리고, 데쳐야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우리들의 따뜻한 향기였다.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 그 소중한 일깨움은 ‘스스로 서는 어린이’로 사는 우리 반 참살이의 원칙이었다. 그 결과, 너흰 몸집이 성큼 자랐을 뿐만 아니라 마음의 그릇도 듬직하게 부셨다. 대견하다. 누구 하나 기우는 데가 없이 고만고만하게 야무져서 보기 좋다.

 

내가 너희들에게 강조했던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많았겠지. 하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되풀이하며 다그쳤던 것은 ‘놀음’과 ‘삶’, 그리고 ‘쓺’이었다. 알지? 난 교과서만 달달 외는 공부를 고집하지 않았다. 그건 똑같은 삶을 강요하는 판박이다. 재미없는 앵무새놀음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서야, 잘 놀아야 잘 큰다. 그래야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 놀 줄 모르는 사람은 무언가 허전하다. 그것은 마치 양념을 덜 버무리진 반찬 같아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 사람 사는 이치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곧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은 얼굴빛이 환하다. 물꼬가 트여 있어서 웬만한 것에도 막힘이 덜하다. 운동장을 방방 내달으며 뛰노는 인서 네 모습 같다.

 

잘 놀아야 잘 큰다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우는 것, 그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이다. 세상은 서로 어울려서 사는 게 제격이다. 간혹 혼자서, 자기 생각만을 좇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이내 답답해진다. 왜?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쳐봐야 신명이 나지 않는다. 지켜봐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 해도 마음 든든해진다. 그래서 가족이, 친구가 소중한 거다.

 

 

 

 

 

 

 

 

 

 

 

 

 

 

 

 

 

 

 

 

 

 

 

 

 

 

 

 

 

 

 

 

 

 

 

 

 

 

 

하찮은 일로 티격대격하며 곧잘 다퉜던 일, 사소한 얘기에도 낯붉히며 토라졌던 때를 생각해 보련? 지금 생각하면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아쉬움이 더 하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왜냐하면 그것도 우리가 사는 세상의 건강한 모습이니까.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마음이 건강해진다. 그렇지만 우린 너무나 속내를 잘 드러내어서 걱정이다. 그렇지?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우는 것, 그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

 

인서야, ‘책 읽어라’는 얘기 이제는 귀 딱지가 앉아버렸지. 늘 욕심을 갖는 일이다. 하지만 너흰 언제나 미꾸라지처럼 곧잘 삐져나갔다. 하기야 조그만 자투리 시간에도 놀고 싶어 안달하는 너희에게 책상에 붙박여서 책만 읽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차라리 고통이다. 오죽했으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책을 벗어나고 싶어 했을까? 근데도 몇몇 친구들은 책 읽는 습관이 몸에 배였다. 평생을 두고 자랑삼을 만한 일이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꼭 무엇을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부담감을 가지고 읽는 책 읽기라면 책장을 덮는 게 좋다. 책은 읽는다는 그 자체로 만족해야 한다. 그런데도 곧잘 책 읽어라 닦달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네 만할 때 책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야. 머리가 굵어지면 책을 읽기 힘들어진다.

 

인서야, 넌 한 해 동안 몇 권을 읽었니?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은 무엇이냐? 글쎄요. 갑자기 물으시니까 생각이 안나요. 읽긴 많이 읽은 것 같은데 딱 꼬집어낼 만한 책은 별로 없어요. 나도 그래. 책을 건성으로 읽었던 탓이다. 단 한 권의 책을 만나더라도 맛깔스럽게 대해야 한다. 어떻게 읽어야 할까. 그냥 맛만 보고 후루룩 마셔도 좋다. 하지만 분명 꼭꼭 씹어서 삼켜야 할 것도 있을 게다.

 

 

 

 

 

 

 

 

 

 

 

 

 

 

 

 

 

 

 

 

 

 

 

 

 

 

 

 

 

 

 

 

 

 

 

 

 

 

 

그래도 너흰 날마다 책 읽기를 강요하는 담임이 고리타분하다며 ‘숙자’라고 부르지? 그렇지만 책 읽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게 변함없는 내 생각이다. 답답하지만 할 수 없는 노릇이야! 쌤통이다!

 

책 읽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

 

쌓인 원고 뭉치를 보니 한 해 동안 참 많은 글을 썼다. 그만큼 너희를 쥐어짰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가 생활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작업이다. 생각해 보련? 처음 원고지를 대했을 때는 한두 장을 채우기가 어려웠지만 지금은 어떠냐? 조금만 것 하나도 그냥 들어다 보지 않을 만큼 눈이 커졌다. 생각가지도 두터워졌다. 원고지 칸칸을 쉽게 넘나들고 있다. 만족한다.

 

 

 

 

 

 

 

 

 

 

 

 

 

 

 

 

 

 

 

 

 

 

 

 

 

 

 

 

 

 

 

 

 

 

 

 

 

 

‘시나브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게 내가 욕심하고 있는 ‘삶의 글쓰기’다. 인서야, 이번 학예회 때 우리가 열심히 살았던 모습들을 다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난 적어도 너희의 손때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원고들만큼은 드러내놓고 자랑하고 싶다. 그래서 퇴근도 마다하고 밤늦도록 알림판을 만들었다. 그 속에 네 모습도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다. 내일이면 그렇게 기다렸던 학예발표회다. 마음 설레지? 좋게 맞이하자.

 


태그:#학예회, #자랑거리, #알림판, #원고뭉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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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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