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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이 뚝 떨어진 17일 낮 12시 30분,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회원 30여 명이 다시 모였다. 이들은 <동아>에서 해직된 지난 1975년 3월 '17일'을 기억하기 위해 매달 17일에 월례모임을 열어왔다. 특히 이날, 2008년 11월 월례모임은 더 특별한 그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정부와 <동아일보>의 사과를 받았다면 말이다. 그러나 이들은 다시 '비통한' 기자회견에 나서야 했다.

 

지난 10월 29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유신 정권이 언론 통제 수단으로 <동아> 광고 탄압에 나섰으며 특히 중앙정보부가 앞장섰다"는 결정과 함께 "국가와 <동아일보>는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피해 회복 및 적절한 화해 조치에 나설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바로 그날 동아투위 위원들은 동아일보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실화해위 권고의 즉각적인 이행을 촉구하며 1인 시위에 들어갔다. 이들이 정했던 기한은 바로 이날까지였다. 그러나 국가와 <동아일보>는 지난 20일 동안 침묵했다.

 

 11월 17일 낮 12시 30분 정동익 위원장을 비롯한 '동아투위' 위원들이 <동아일보>사 앞에서 지난 1975년 강제 해직사태에 대한 사과와 화해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세찬 바람이 뺨을 때리고 중절모를 흔드는 가운데서도 정동익 동아투위 위원장과 30여 명의 위원들은 결연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정부와 <동아일보>에 다시 한 번 "마지막 기회"를 줬다.

 

정 위원장은 "정부와 <동아일보>는 진실화해위 권고 3주가 다 되도록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이제라도 즉각 사과하고 응분의 화해 조치에 나설 것을 다시 한 번 요구한다"고 말했다.

 

"만일 이명박 정부가 '지난 정부의 일'로만 생각하고 있다면 큰 오산이다. 김재호 <동아> 사장이 '할아버지 때 일이니 모른다'라고 생각한다면 역시 공인으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다. 오늘 정부와 <동아일보>에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편지를 받는 즉시 나서야 한다. 만일 과거 정권 탓으로만 일관한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언론탄압을 계속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만일 <동아일보>가 사과한다면 우리는 <동아>를 다시 1등 가는 신문으로 만드는데 힘을 보탤 것이다. 이것이 <동아>가 거듭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최상재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용서를 위해서는 진정한 사과가 선행되어야 한다"면서 "<동아일보>는 선배들에게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동아투위 위원들은 기자회견이 끝난 후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법정 소송 등 이후 계획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정부와 <동아일보>는 즉각적인 사과와 화해조치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읽고 있는 동아투위 위원들 뒤로 태극기와 <동아일보>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다음은 동아투위가 이명박 대통령과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에게 보낸 서한 전문.

 

이명박 대통령님께

1975년 <동아일보> 해직언론인 113명의 원상회복을 위하여 청원드립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국정과제의 차질없는 수행을 위해 불철주야 진력하시는 대통령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정부기구인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최근 유신치하의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고 위원회의 결정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로서 더러는 목숨까지 바치고 대다수는 탄압과 박해의 상처를 한 평생 앓아야 하는 저희들로서는 늦게나마 진실의 실체가 공식적으로 규명된 것을 환영하며 정부의 성실한 조사업무 수행에 대해 대통령님께 먼저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위원회는 조사결과에 입각하여 다음의 세 가지 조치를 취할 것을 국가에 권고하고 있습니다.

 

1. 국가는 <동아일보>사와 언론인들을 탄압하여 언론자유를 침해하고 언론인들을 강제로 해임시키도록 한 행위에 대하여 <동아일보>사 및 해임 언론인들에게 사과할 것.

2. 피해자들의 언론자유 수호 노력에 대해 정당한 평가가 이뤄지도록 할 것.

3. 피해자들의 피해회복을 통해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

 

등이었습니다.

 

1975년 박정희 정부 당시, 국민의 머슴인 정부의 공직자가 공권력으로 주인인 국민을 괴롭힌 것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2008년 오늘 33년 만에 그것을 처음으로 밝혀낸 정부로서 그리고 정통성있고 도덕적인 정부로서 앞으로 어떠한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할지는 너무나 명백합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대통령님께 결례를 무릅쓰며 직접 호소하고 나서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진실규명과 피해회복이 30년 넘게 미루어져 온 것은 한 마디로 진실을 은폐하려는 부도덕한 세력이 그동안 힘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힘은 많이 약해지기는 했으나 아직도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남아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대통령님의 각별한 관심과 용단이 없었다면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 과정 또한 더욱 험난했었을 것이라고 저희는 생각합니다. 다행히 대통령님의 관심 속에 일단은 좋은 결과가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그러나 또한 진실화해위원회의 올바른 결정과 권고사안은 앞으로도 오직 대통령님의 각별한 관심과 후원만이 그 결과를 더욱 만족스럽게 결과지어질 수 있다고 저희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일부 부도덕한 세력의 힘에 밀려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과 권고는 한낱 휴지조각이 되고 말지도 모릅니다.

 

대통령님께서는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는 결의를 여러 차례 국민 앞에 밝혀왔습니다. 정말 가슴깊이 저희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희들은 그 어떤 '섬김'을 바라거나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역사와 '거꾸로 섬긴' 잘못을 바로 잡아줄것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일제치하에서 갖가지 고통을 당한 우리 국민들은 그동안 일본정부를 상대로 사과와 피해보상을 피맺히게 촉구해 왔습니다. 정신대 사건의 경우처럼 온 국민이 일본정부의 무성의에 분개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만약 '우리' 정부가 '우리' 국민을 박해한 사실에 대해 사과하고 보상하기를 거부한다면 '남의' 정부가 '남의' 국민을 우습게 여긴다한들 이를 어찌 나무랄 수 있겠습니까.

 

존경하는 대통령님.

 

대통령님의 도움으로 지나간 정부가 저지른 언론탄압의 뒷처리가 조속한 시일 내에 올바로 매듭지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어찌 보면 퍽 단순한 이 사건을 두고 앞으로 저희가 법정으로까지 가서 시비를 가리게 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것이 저희들 최소한의 소망입니다.

 

누가 봐도 당연한 후속조치에 대해, 만에 하나 현 정부가 모르쇠하고 덮고 간다면 이는 자칫 지나간 정부의 불법적 국민박해 행위에 대한 현 정부의 동조 내지는 용인으로 해석될 소지마저 없지 않습니다. 그것은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로 집약되는 국가발전의 현 단계와는 너무 동떨어지 암흑시대 정부의 행태라고 하겠습니다. 그것이 다시 이 밝은 땅에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고 저희들은 굳게 믿습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님의 값진 노력이 멀지 않아 풍성한 수확으로 보답받기를 기원합니다.

 

2008년 11월 17일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정동익 위원장 외 112인 올림

 

<동아일보> 김재호 사장님께

어려운 여건 속에서 회사 경영에 노고가 많으실 줄 믿습니다.

 

<동아일보> 해직언론인(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들은 정부기구인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발표를 듣고 또 한번 솟구치는 분노에 치를 떨었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사실에 격분했습니다. 하나는 정부의 강압에 굴복하여 '정부의 요구에 따라' <동아일보>사가 언론자유 수호에 앞장선 사원들의 목을 쳤다는 사실입니다. 한두 명도 아니고 130명이 넘는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 들을 말입니다. 또 하나는 사원들의 목을 친 당사자와 회사경영을 물려받은 그 아들과 손자가 30년이 넘게 이 사실을 부인하고 은폐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앞으로 영구히 뻗어가야 할 <동아일보>사로서는 '반독재와 자유언론의 기수임'을 한점 망설임없이 자랑해야 하는 '뼈대있는' 신문으로서는 정말 부끄러운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애통함은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만의 몫은 결코 아닙니다. 그로 인해 수많은 민주시민들이 가슴을 치며 슬퍼했고 우리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들의 애통함은 단지 그날 이후 우리가 평생토록 짊어지고 가야 하는 깊은 상처 때문만은 아닙니다. 문자 그대로 청춘을 불살라 사랑했던, 너무너무 사랑했던 <동아일보>였기 때문입니다. 평생을 함께하기로 굳게 다짐했던 회사, 그 다짐으로 올바른 신문 방송제작에 정신없이 뛰었던 그런 회사가 어쩌면 그토록 중앙정보부의 압력에 허망하게 무너진단 말입니까.

 

여기서 부질없는 푸념을 장황하게 늘어놓을 생각은 없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동아일보>의 장구한 역사에 두고두고 남을 흉한 오점을 너무 늦기 전에 함께 씻어내자는 것입니다. 그냥 두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현직 사장의 아들, 손자, 손자의 아들과 손자, 또 그 이후 대대로 그 더러운 먹칠이 회사를 괴롭힐 것이 빤하지 않습니까. 억울하게 쫓겨난 우리들 중의 마지막 생존자가 마침내 죽어 사라지는 날에 행여 그 오점도 절로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면 큰 오산입니다. 역사는 그렇게 만만하게 볼 것이 결코 아닙니다.

 

회사의 역사를 깨끗이 닦는 작업에 우리도 손잡고 나설 용의가 있습니다. 회사와 동아투위는 우리들의 현안문제를 크게 두 갈래로 나눠 접근해 갈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광고탄압사건에 대한 공동대처입니다.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문에 따르면 광고탄압사건의 가해자는 정부이며 피해자는 회사와 사원입니다. 따라서 회사와 동아투위는 광고탄압에 대한 사과와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관철시키는 작업을 공동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동아투위는 오늘 대통령께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광고탄압과 대량해고에 대한 정부의 보상조치를 촉구한 바 있습니다.

 

다른 한 갈래의 작업은 대량해임에 관한 사과와 보상입니다. 과거사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이 대목에서 정부와 회사가 공동 가해자로 동아투위가 피해자로 되어 있습니다. 위원회는 결정문을 통해 "<동아일보>사는 피해자인 해직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 등 언론인들에게 사과하고 그들의 명예회복과 피해 회복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 권고사항을 충실하게 이행할 것을 회사 측에 요구합니다.

 

우리는 이 해묵은 문제가 법적 절차 대신 성실한 대화를 통해 해결되기를 희망합니다. 위원회의 결정이 문제해결의 좋은 실마리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입니다. 사장님의 용단으로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이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김재호 사장님과 회사의 번창을 기원합니다.

 

2008년 11월 17일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정동익 위원장 외 112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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