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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바이러스 홈페이지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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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바이러스>(이하 베바)는 당초 시작때만 하더라도 성공 가능성에 의문부호가 붙었던 프로젝트였다.

<하얀거탑>을 통해 일급배우로 올라선 김명민이 클래식 연주자로 돌아왔다는 점이나, 국내에서는 최초로 시도되는 교향악단의 이야기를 다룬 정통 클래식 드라마라는 점이 눈길을 끌기는 했으나, 소재의 특성상 과연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또한 비슷한 소재를 다룬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와의 비교를 통한 아류작이 아니냐는 선입견도 드라마 전개에 있어서 큰 부담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베바>는 완성도와 시청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성공작으로 자리매김했다. 김명민은 까칠하면서도 매력적인 '강마에'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창조해내며 다시 한번 연기파 배우로서의 입지를 구축하는데 성공했고, 드라마는 안방극장에서 '클래식' 열풍을 일으키며 기존 전문직 드라마의 소재와 범위를 한층 확장시켰다는 호평을 받았다.

우리식의 <노다메 칸타빌레>

물론 제작진이 직접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지만, <베바>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바탕이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은 굳이 부정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오합지졸 오케스트란 결성 과정에서부터, 개성강한 인물들이 좌충우돌하는 가운데 음악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게 되는 과정 그리고 관객의 허를 찌르는 코믹발랄한 상상력에 이르기까지, 두 작품은 참 많이 닮았다.

그러나 <베바>는 궁극적으로 일본 드라마와는 차별화되는 우리식의 <노다메 칸타빌레>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노다메>가 주인공 노다 메구미(우에노 주리)와 치아키(타마키 히로시)를 중심으로 음대생들의 이야기를 통해 청춘 드라마에 가까운 구성을 취하고 있다면, <베바>는 오히려 정통 클래식의 세계에 도전하는 보통 사람들의 아마추어리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클래식은 귀족의 음악이다. 귀족은 선택받은 특별한 사람들이다. 시대가 변한다고 해서 그 뿌리가 변하지는 않는다'는 강마에의 어록처럼, 서구에서 건너온 클래식은 일반 대중들의 보편적인 정서나 공감대와는 사실 거리가 있다.

그러나 세대와 환경을 떠나 오로지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만으로 뭉친 평범한 사람들이 의기투합하여 교향악단을 결성하고, 외부의 편견과 압박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은 조심스럽게 '클래식의 대중화'에 대한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이제껏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온 청년. 칠순의 나이에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치매 노인, 반항기 넘치는 십대 소녀. 오랫동안 가사노동에 시달리며 꿈을 잃어버린 평범한 주부. 허풍이 심하지만 음악에 대한 사랑만큼은 순수한 삼류 카바레 연주자 등 각자의 사연을 지닌 인물들은 어쩌면 모두 우리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시민적인 인물들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지워진 선입견의 벽을 딛고 오로지 음악에 대한 열정을 통해 하나가 된다. 특별함과 거리가 먼 인물들이 '선택받은 자들의 음악'이라는 클래식의 편견을 깨나가는 과정은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강마에의 매력은 본질을 파고드는 힘

강마에가 대중을 사로잡을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 시니컬함에 있다.
 강마에가 대중을 사로잡을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 시니컬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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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베바>가 이 정도의 코믹 휴먼드라마에서 머물렀다면 지금만큼의 인기와 호평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여기서 <베바>가 보통의 휴먼드라마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낭만이나 감동 따위와는 전혀 거리가 먼 '강마에'라는 시니컬한 주인공을 중심에 세웠다는 데 있다.

강마에는 곧 <베바>를 설명하는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김명민의 전작인 <하얀 거탑>의 장준혁이나 <환상의 커플>의 나상실을 합쳐놓은 듯한 캐릭터다.

그는 뼛속깊은 엘리트주의자이며, 오직 완벽한 음악이라는 명분을 향하여 질주한다는 점에서 장준혁과 같은 '목표지향형' 인물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그럴 의지도 없다는 점에서 나상실의 까칠함을 업그레이드 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강마에가 대중을 사로잡을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 시니컬함에 있다. 강마에의 매력은 '본질을 파고드는 힘'이다. 단원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퍼붓는 독설가이지만, 중요한 건 누구도 그의 독설을 부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실력이 부족한 아마추어 연주자들에게 "똥덩어리" "너희들은 실력이 없어" "다 핑계일 뿐입니다" 하고 직실적으로 상처를 준다. 하지만 그는 누구도 드러내놓고 하기 어려운 말을 스스럼없이 꺼내는 그의 단어들은, 주변의 인물들에게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는 소통하는 방법에 서투른 무뚝뚝하고 리더이며 엄격하고 무서운 아빠다. 오히려 "다 괜찮을 거야" 하고 강마에의 독설에서 단원들을 위로하고 독려하는 엄마 역할은 제자인 강건우나 두루미의 몫이다.

하지만 강마에가 장준혁과 차별화되는 부분은, 오로지 자신의 성공을 위하여가 아니라 '훌륭한 음악'이라는 공통의 목표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의 완성도에 대한 스스로의 기대치가 높아서 주변을 힘들게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목표를 위하여 주변사람들을 희생시키거나 뒤통수를 치지는 않는다.

<베바> 극 전반을 가만히 살펴보면 강마에의 독설로 상처받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강마에에가 단원들이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는 장면이 더 많다. 눈앞에서 독설을 아무리 퍼부어도 뒤끝이 없다는 담백함과 내 사람은 끝까지 지킨다는 책임감이 강마에라는 인물을 더욱 인간적으로 만든다. 자신보다 뛰어난 성공을 거둔 동료 정명환이나 제자인 강건우의 천부적인 재능을 질투하는 살리에르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음에도, 내심 그들의 재능을 인정할 줄아는 (드러내놓지는 않지만) 속깊은 면모도 가졌다.

강마에와 단원들은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또다른 거울이다. 단원들은 강마에를 통해 눈앞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공통의 비전과 목표의식을 지닌다. 강마에는 단원들을 통해 자신이 미처 음악 이외의 깨닫지 못한 삶의 가치와 소통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강마에의 리더십은 민주적인 면모와는 전혀 거리가 먼 수직적인 리더십이라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멤버들의 재능을 극대화하는 힘이라든가 앞으로 밀고나가는 추진력이라는 면에서, 뛰어난 리더를 갈망하는 대중의 판타지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드라마의 트렌드인 '나쁜 남자, 나쁜 여자'의 캐릭터를 계승하면서도 강마에 스타일이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까.


태그:#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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