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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오는 날 바깥바람 쐬기

 

하늘이 잔뜩 찌푸린 어느 날입니다. 비가 퍼부을지 모르는 날씨입니다만,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섭니다. 서울 여러 곳에 볼일이 있기에, 비가 오면 할 수 없고 안 오면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전철에 자전거를 싣습니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읽으면서 창밖으로 자꾸 눈이 가는데, 오류동역을 지날 무렵부터 빗줄기를 봅니다. '그예 오고 마는군.' 오늘은 비가 오면 비님을 맞고 달려야겠다고, 볼일을 보기 앞서 헌책방부터 들르자고 생각합니다.

 

어디부터 내려서 달릴까 하다가 대방역에서 내립니다. 가방에 든 책과 물건은 하나하나 비닐에 담아서 다시 넣고, 가방 겉에 껍데기를 씌우고 비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안경을 씁니다. 빗길 달릴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옵니다.

 

빗줄기는 굵어집니다. 후둑후둑 하고 떨어지는 비를 느끼면서 달립니다. 천천히 천천히 거님길로 달리다가 건널목에서 길을 건너 찻길로 내려섭니다. 그러나 길섶에 대 놓고 있는 차가 많은 가운데 길이 잔뜩 막혀서 거님길로 다시 올라섰다가 찻길로 내려섰다가를 되풀이합니다. 길막힘이 대단한 이 나라에서는 찻길을 아무리 늘린들 뾰족한 수가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새 찻길을 늘리기보다는 자동차 씀씀이를 줄이거나 막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데. 비가 오더라도 자전거로 다니기 좋도록 길이 마련된다면, 날이 추워도 자전거로 다니기 거뜬할 만큼 우리 몸을 튼튼히 가꾼다면, 짐이 많아도 자전거로 실어 나르자고 생각하도록 우리 마음이 다져진다면, 쉽지 않을지 모르나 우리 삶터도 차츰차츰 아름다운 쪽으로 나아지지 않으랴 생각해 봅니다.

 

대방역에서 노량진역까지일 뿐이지만, 서울은 길이 참 나쁘며 자전거 타기에 짓궂다고 새삼 느끼면서 헌책방 '책방 진호'에 닿습니다. 빗길임에도 버스는 자전거를 지저분하게 밀어대고, 거님길로 올라서도 돌 깨지고 파인 데 많으며 울퉁불퉁한 데다가 가게에서 내놓은 짐이며 모래 담은 상자며 전봇대며 광고판이며 배전반이며, 자전거가 다닐 수 없게 막아섭니다.

 

버스정류장 자리도 거님길 2/3쯤 차지하고 있으니 그나마 무늬라도 있는 '거님길을 반으로 갈라 바닥돌만 바꾸어 놓은 자전거길'은 뚝 끊기면서 더 나아갈 수 없도록 합니다. 다시 찻길로 내려서지만 길섶 또한 자전거가 다니기 나쁠 만큼 파이고 깎이고 비알이 져 있고.

 

알고 있는 길형편이고, 언제나 느끼는 길섶이며 거님길이지만, 빗길에 자전거를 달리면서 더더욱 몸서리를 치며 깨닫습니다.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사람이 늘지 않으면, 초중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자전거로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누구보다도 공무원 된 사람들이 자전거로 일터를 오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겠다고. 초중고등학교 때부터 학원버스를 타고 부모님 자가용을 얻어타며 학교를 오가는 아이들이 어떻게 길형편을 느끼겠으며, 나라에서 내어주는 관용차를 타고 행정직 일을 하는 분들이 어찌 여느 사람들 거니는 길형편을 느끼겠습니까.

 

책방 앞에서 자전거를 비에 맞지 않는 자리에 세웁니다. 비옷을 벗어 탁탁 털어 문고리에 겁니다. 젖은 손을 엉덩이에 문지르면서 안으로 들어갑니다.

 

(2) 하나만 만나도 기쁜 책

 

책방으로 들어서니 "오랜만이야. 이번에 사진 상 받았지?" 하면서 먼저 인사를 건네오십니다. "네,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니 도무지 돌아다닐 짬을 내기 어려워서요. 오늘도 다른 볼일이 있어서 겨우 나왔어요. 그런데 그 상 받은 줄 어떻게 아셨어요?"

 

'진호' 아저씨는 웃으면서 안부 말씀을 묻고, 저도 웃으면서 대답을 합니다. 아저씨는 책 갈무리를 하면서 묻고, 저는 책을 살피면서 대답을 합니다. 문득 <세계의 지붕, 자전거 타고 3만 리>(신상환, 금토, 2000)라는 책이 눈에 뜨입니다. '세계의 지붕'이라는 이름이라면 몽골이나 티벳을 자전거로 달렸다고 하는 이야기이려나?

 

.. ‘이. 저곳이 바로 서장의 상징, 무협지의 바로 그 포탈라궁이구나’ 경망스러움이 스치던 순간,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중국과 티벳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나?’ 하고 반문할 정도로 티벳에 대한 일말의 지식조차 없었다. 아니, 무협지와 중국을 통해서만 티벳을 알고 있었다 … 정말 〈삼국지〉의 그 강족이 티벳 민족이라는 걸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중국의 점령으로 독립국 티벳이 식민지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티벳이 독립국이라니!’ 니콜과 함께 다시 ‘타쉬 2’에 들러 이야기를 계속하는데, ‘티벳은 중국의 일부분’이란 나의 견해와 달리 니콜은 티벳을 중국의 식민지가 된 독립국가로 여기고 있었다. “티벳은 중국에 점령당했다. 원래는 독립국이었지만, 공산 중국이 강제로 점령하고 문화대혁명 때 철저하게 파괴했다. 중국군(인민해방군)은 시위대를 향해 직접 총을 쏜다고 한다. 해마다 티벳 독립 기념일이 되면 시위가 열리고, 여행자들은 라싸를 찾아올 수 없다. 조지 말에 따르면 올 5월에도 독립 시위 때문에 라싸가 여행자들에게 폐쇄되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갑자기 취기가 올랐다. 독립국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고작 무협지(에서 읽은 느낌)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찾아가 보겠다고) 오른 티벳이었다니! 이 고원에 대한 아무런 사정도 모른 채 올라온 내가 부끄러웠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  (44∼45쪽)

 

자전거로 세상을 나들이했다는 이야기를 살피면, 자전거 타는 이야기 말고 ‘세상을 느낀 이야기’가 곁들여지기 마련입니다. 아니,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비로소 느낀 세상, 처음 부대낀 세상, 이제까지 몰랐던 세상 이야기가 가득 차기 마련입니다. <세계의 지붕, 자전거 타고 3만 리>를 쓴 분은 티벳이 ‘중국한테 억지로 식민지가 되어서 끔찍하게 짓눌리고 수많은 이가 죽은 줄’은 조금도 모르는 가운데, 그저 꿈같은 생각으로만 자전거 나들이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자기가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알게 되고, 어리석음을 조금씩 씻어냅니다. 몸으로 부딪히고 몸으로 깨닫는 앎인 터라, 책으로 익히는 지식보다 더욱 싱싱하고 오래도록 남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래도 이분은 티벳을 자전거로 가로지를 생각을 했으니 이만큼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구나 싶습니다. 많지는 않아도 ‘중국이 티벳으로 쳐들어가 수많은 집과 절을 부수고 불태우고 수십만이 넘는 사람을 끔찍하게 고문하다가 죽이고 강간하던 이야기’를 낱낱이 다룬 책이 더러 나오기도 했는데, 이런 책을 살펴 읽는 한국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책 좋아하는 분도 잘 모르고, 책 안 좋아하는 분은 더더욱 모르며, 방송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찬찬히 다루는 일도 없습니다.

 

.. 만리장성 밖의 중국, 티벳, 타클라마칸 사막과 고비 사막을 한 줄로 이은 세계의 철각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다. 그건 나만의 도전이었고 모험이었다. 그리고 끝났다. 무사히 살아서! 이후 베이징을 나서 고속도로를 주행하다 교통경찰에게 여섯 번이나 검문을 당하고, 때로는 맞을 뻔도 했지만 무사히 텐진항까지 내려왔다. 유일하게 남은 1백 달러짜리 여행자 수표가 땀에 젖어 쓸 수가 없어 시내에 있는 한국외환은행 지점까지 갔는데, 한국인으로 보이는 한 직원이 진지하게 물었다. “이 여권, 본인 거 맞아요?” 하긴, 그 길을 지나쳐 오며 검게 탄 얼굴, 낡은 옷가지, 쑥대머리는 양복 차림의 여권 사진과 어울리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10월 29일날 출항하는 배를 탔으나, 그날은 풍랑이 거셌다. 여객선 안에서 토악질을 하며 기어다닐 때 ‘보따리 장수’들은 초죽음이 된 나를 보고 수군덕거렸다. “인도에서 자전거 타고 오는 길이래!” … 그 등산화는 서울에서 나를 목욕탕에 집어넣은 한 선배가 쓰레기통에 몰래 버렸다. 그 선배는 냄새 난다고 밖에 놔둔 옷가지도 밤새 내린 비에 젖자 ‘내일 세탁기에 넣는다’더니 그냥 폐기처분! 사무실을 찾아간 다른 선배는 나를 사우나탕에 집어넣고 머리까지 깎게 했다 ..  (298쪽)

 

충주 산골마을에 살면서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던 때가 떠오릅니다. 그때 충주에서 서울로 자전거를 타고 여섯 시간 반을 쉬잖고 달려오면 온몸과 가방과 자전거는 제 땀으로 범벅이 되어 꽤 멀리서도 제 자취가 느껴졌던가 봅니다. 그무렵 만나던 사람들 가운데에는 저와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었음에도 ‘냄새가 많이 나서 싫다’고 하던 이들이 있습니다. 서울에 닿아 선배네 집에서 몸을 박박 문질러 씻고 나도 ‘몸과 옷과 가방과 자전거에 그득 밴 땀’은 ‘늘 깨끗하게(?) 몸을 치레하고 다니는 서울사람’한테는 손사래가 쳐졌던지, 어쩔 수 없어 전철을 타고 움직여야 할 때면, 저를 흘깃흘깃 쳐다보면서 제 옆에 안 서 있으려는 아가씨들이 꽤 많았습니다. 저로서는 외려 그렇게 해 주어서 자전거를 한쪽에 세우고 더 널찍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느긋하게 책을 읽을 수 있어서 고맙다고 느끼곤 했습니다.

 

자전거로 티벳이며 중국이며 훌쩍 가로지른 신상환 님한테 선배가 되는 분들은, 자전거를 오래도록 탄 사람한테 으레 나기 마련인 기막힌(?) 땀내음이 꽤나 코를 찔렀겠구나 싶습니다. 하긴, 도시내기가 시골에 가면 거름내음 때문에 코를 싸쥐고 다닌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요새야 거름을 내어 농사짓는 분이 많이 줄어서 시골내음도 거의 걷혔지만, 땅을 이웃하며 살아가는 분들한테는 땅내음이 납니다. 땅내음과 거름내음은 많이 닮았습니다. 거름을 치지 않아도 농사꾼한테는 거름내음 비슷한 땅내음이 납니다. 꼭같지는 않으나, 자전거를 오래 많이 타는 분한테 나는 땀내음은, 이이가 도시에 사는 분이라 해도 시골마을 땅내음과 많이 비슷하곤 합니다.

 

<생명과 사랑, 인간 장기려>(여운학 엮음, 규장문화사, 1980)라는 책을 봅니다. 세상에, 이런 책이 진작에 나온 적이 있구나, 하고 놀라면서 펼칩니다. 장기려 박사가 쓴 글도 함께 실린 <생명과 사랑, 인간 장기려>라니. 장기려 박사를 기리는 책만 몇 가지 드문드문 보다가 이런 책을 손에 쥐니, 바로 코앞에서 만지면서 책장을 만지작거리게 되니, 가슴 한켠이 뭉클뭉클 벌렁벌렁 쿵쾅쿵쾅 …….

 

.. 물론 아버지, 어머니의 영향도 많이 받았겠지만 지금의 나를 있게 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할머니였다. 일곱 살 때까지 나는 할머니 이불에 같이 잤다. 독실한 예수교도인 할머니가 아침저녁 기도 때마다, “이 금강석이 자라나 하나님의 나라와 현실 나라에서 크게 쓰여지는 일꾼이 되게 하소서.” 하시던 말씀은 아직도 귀에 쟁쟁하고, 지금은 내가 손자들을 위해 그런 기도를 드리고 있다. 금강석이란 나의 아명이다. 내가 갓 태어났을 때, 목에 물혹이 있었다는데 할머니의 기도로 몇 달 후에 나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아마 그 물혹은 그대로도 나을 수 있는 임파관종이었을 것이다 ..  (76쪽)

 

장기려님이 손수 쓴 글을 담은 또 책이 있는가 궁금하여 집으로 돌아온 뒤 인터넷에서 뒤적뒤적해 봅니다. ‘장기려 위인전기’는 수없이 뜨지만, 정작 장기려 님이 쓴 책은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한 가지, <내게 바다 같은 은혜>(한국문서선교회, 1989)가 보입니다. 판은 진작 끊어진 책인데, 앞으로 헌책방을 다니면서 이 책이 보이는지 찬찬히 살펴야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만난 <생명과 사랑> 하나. 1985년에 규장문화사에서 <장기려 회고록>이 나왔다고 하는데, <생명과 사랑> 고침판은 아닐까 궁금하고, 이 책 또한 헌책방을 부지런히 다니면서 찾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찾을 수 있을는지 알 수 없으나.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일이지만.

 

.. 아버님은 어려움 속에서도 4년 동안 매달 30원씩의 학비를 보내 주셨고, 나도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은 했다. 3학년 때부터는 전문서적 구입비도 더 들게 되어 기원 형님 집으로 옮겨 장작도 패 주고 했다. 덕택으로 학교 성적은 1학년 때 4호, 2학년 때 3호, 3학년 때 2호, 4학년 때 1호를 했다. 4년을 평균하면 2호였다. 비록 학과성적은 좋았지만 진짜 실력은 별로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성서는 계속 공부했지만 사회과학이나 문학서적 등 교양서적을 읽지 않아 종합적인 인간으로서의 실력이 없는 사람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오로지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구원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한 것인데 현실나라에서 사회를 구원하도록 애써야만 비로소 나 자신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학교를 졸업하고, 후지이 다께시, 야나이하라 다다오, 함석헌, 김교신 등 진짜로 위대한 크리스찬의 저서를 읽고 말씀에 접한 후부터다 ..  (87∼88쪽)

 

마땅한 노릇이지만, ‘장기려 위인전’을 읽으면서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 그러나 몹시 궁금하던 이야기, 허물없이 터놓는 이야기를 ‘장기려 님이 손수 쓴 글’에서 읽습니다. 거룩한 분이라고 우러르는 장기려 박사이지만, 당신 스스로를 거룩하다고 느끼지 않으면서 ‘좀더 옹골차게 나누면서 스스로도 아름답고자 애쓴’ 몸부림이 무엇이었던가를 비로소 짚어 보게 됩니다. “종합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고자 땀을 흘리고 “현실나라에서 사회를 구원하도록 애쓰”는 길을 찾으면서 마음을 쏟은 이야기를 곱씹으면서, 이 나라 이 땅에 또다른 장기려 박사가 나오는 길은 어디에 있는지를 헤아려 봅니다.

 

장기려는 함석헌과 김교신을 읽었는데, 함석헌과 김교신은 누구를 읽었는지, 또 함석헌과 김교신이 읽은 아무개는 당신을 닦으려고 또 어떤 아무개를 읽었는지 찬찬히 더듬어 봅니다. 함석헌과 김교신은 장기려한테 읽혔고, 장기려는 저한테 읽힌다면, 제가 흙으로 돌아간 뒷날, 저를 읽으면서 자기 삶을 돌아볼 사람도 있을까 또한 더듬어 봅니다.

 

하루하루 먹고살기에 바쁘게 보내면 그럭저럭 살림을 꾸릴 수 있을 테지만, 내 앞과 내 뒤를 찬찬히 돌아보노라면 지금처럼 꾸리는 삶은 그지없이 부끄러운 삶이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더 바지런히, 더 단단히, 더 야무지게 동여매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더 바지런히 뛰면서도 즐겁게, 더 단단히 여미면서도 신나게, 더 야무지게 추스르면서도 홀가분하게 살아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3) 사진책으로 마무리

 

사진책 몇 가지를 구경합니다. 먼저 <Karate, technique and spirit>(Tadashi Nakamura(글)/Tom Grill(사진), Shufunotomo, 1986). 일본 가라데를 다루는 사진책인데, 우리 나라 태권도를 다루는 사진책하고 여러모로 견주어 보게 됩니다. 짜임새며 엮음새며 속알맹이며 ……. 일본 가라데는 자연만물 기운을 사람이 찬찬히 받아들이면서 언제나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펼치는 무도이고, ‘첫마음’을 고이 지키는 길이라고 책 첫머리를 사진과 글로 엽니다.

 

그런 뒤, 숲속에 고요히 앉아서 마음을 모으는 사범 모습을 보여주고, ‘가라데를 배우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면서, 회사원과 증권회사 직원인 사람들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마음을 닦는 가라데를 배운다고 보여줍니다. 그러고 나서도 무술을 익히기 앞서 마음가짐을 잘 차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길게 보여줍니다. 한참 지난 뒤에야 비로소 품새와 발차기와 손쓰기 들을 보여주는데, 새내기인 사람도 사진만 보면서도 품새를 차근차근 익힐 수 있게끔 엮습니다. 올림픽에서 어떻게 태권도가 정식종목이 되었는지 궁금해지는 한편, 가라데는 굳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삼도록 나서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솔솔 듭니다.

 

<The Korean smile>(H.Edward Kim, Samhyong munhwa,1987)은 에드워드 김이라는 한국 사진쟁이가 담은 ‘한국사람 웃음’을 담은 사진책. 사진을 찍은 때, 또 사진책이 나온 때를 헤아리면 ‘참 씁쓸한 웃음이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1980년대 한국이, 또 1987년 한국이 이토록 고요하고 아름답고 깨끗하고 넉넉하고 살기좋은 나라이기만 했는가 싶어서 참으로 궁금하기만 합니다. 사진쟁이는 하느님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찍을 수 없고 모든 곳을 갈 수 없으며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 없습니다. 저마다 자기가 보고 느끼고 듣고 부대끼는 대로 필름에 한 장 두 장 적바림할 뿐입니다. 군더더기 없이 졸졸졸 흐르는 사진책 엮음새나 사진 질감은 훌륭합니다.

 

그런데 시냇물을 가르는 돌멩이가 어찌 하나도 없을 수 있을는지, 시냇물에 나뭇잎 하나 똑 떨어져서 함께 흐를 수도 있는 노릇인데, 시냇물에는 모래도 자갈도 없이 그저 물만 흐를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지나치게 걸러진, 너무 한쪽 얼굴만 담은, 아니 한쪽도 아닌 몇 안 되는 얼굴만 담고 만 ‘반쪽짜리 한국 얼굴’조차 아닌 ‘백 분의 일짜리 한국 얼굴’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Voir Paris>(Hachette realites, 1976)를 보니, 프랑스에서 파리라 하는 곳에 깃든 ‘오래된 집’ 사진이 많이 보입니다. 아마 파리로 나들이를 가는 분들은 ‘오래도록 잘 간수한 옛집’이 훌륭한 문화재로 느끼면서 눈으로 몸소 보고, 손으로 건물 벽을 쓰다듬으면서 아련함과 아름다움을 받아들이겠구나 싶습니다. 파리 시내가 두루 보이는 사진 하나를 보니 얕은 산등성이를 따라서 ‘우리 나라 판자집’과 꼭 닮은 집이 촘촘히 박혀 있습니다. 피식, 웃음이 납니다. 어쩌면 파리를 파리답게 하는 모습은 바로 이 가난한 사람들 조그마한 올망졸망 집이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덥석 집어듭니다.

 

<Chris Lund of the national film board and Malak-a photographic essay on Canada's house of parliament>(Roger Duhamel,?)는 ‘돌로 지은 캐나다 의회 건물’을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빛깔 넣은 사진도 있으나 흑백사진이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흑백사진이 한결 질감이 좋습니다. 흑백으로 이렇게 질감 뛰어난 사진을 보여줄 수 있구나 하고 새삼 느낍니다. 아니, 흑백으로 찍어야 질감이 한결 또렷하게 드러나면서 ‘기록 사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나저나 책은 1960∼70년대에 나왔음직한데, 캐나다 도시도 뿌연 매연 때문에 도시가 온통 잿빛입니다.

 

<인천의 변모>(신은주(글)/최용백(사진), 푸른세상, 2006)를 살펴봅니다. 처음 나올 때 구경하기는 했으나 책값이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다지 자료 값어치가 없다고 느껴서 내려놓았던 책입니다. 두 해가 지난 이제 와서 다시 보아도 썩 당기지 않습니다. ‘인천 구석구석을 발로 뛰었다’고 하는 사진책이고, ‘개발하기 앞서와 개발하고 난 뒤’를 사진으로 보여준다고 하는데, 썩 잘 담아내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모르지요. 앞으로 쉰 해쯤 지나고 나서 이 사진책을 다시 들추면, 그때에는 남다른 뜻과 값을 느낄 수 있는지도.

 

<사진 이야기>(영남대학교 조형대학원 미술학과 사진예술전공자들, 비움아트, 2002)는 사진을 배우는 대학원생들이 엮은 년간지입니다. 학생들 작품은 영 못 봐주겠어서 후루룩 넘기다가, 사진밭 어르신들을 만나서 들은 이야기에서는 오래도록 눈길이 멎습니다.

 

[강상규] 현 시점에는 교통 및 컴퓨터도 많이 발전을 해서 아주 쉽게 접하고 있습니다. 현대카메라 자동화 시스템에 너무 쉽게 접하다 보니까 너무 깊이가 없습니다. 작품 한 점을 표현하더라도 많은 공인이 담겨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 사진은 우리 한국의 문화가 아닙니다. 외래문화입니다. 현재 사진과에 재학중인 학생들은 외국의 사진문화에 많이 치우쳐 있고 모방하고 있습니다 …

 

[강운구] 사진이 좋아서, 사진을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온 정성 다해 사진을 해야지요. 사진은 사진술로만 할 수 있는 게 결코 아닙니다. 사진은 사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 그리고 마침내는 스스로를 위해서 하는 거라는 뻔한 사실을 한 번 더 되새기길 바랍니다. 그러자면 사진 밖의 여러 가지를 다 알고 거기에 덤으로 사진을 하나 더 잘할 줄 아는 수준이 되어야만 될 겁니다 …

 

[김영길] 우리들은 유난히 고급 카메라에 집착이 많은 것을, 촬영하러 가 보면 느끼게 됩니다. 많은 장소를 다녀 보고 많은 필름을 소모해 보아야 안목이 넓어집니다. 타인의 작품전시회도 많이 보아야 사진에 대한 객관적 시각이 넓어집니다 …

 

[손문] 요즘은 모든 카메라가 자동화되어 있으며 그로 인하여 요즘 사진에 입문하시는 분들 중에 간혹 카메라 메카니즘에 대해 등한시하고 막 셔터만 누르면 된다고 쉽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진은 빛의 그림(광학)입니다. 작가의 정신이 들어가지 않으면 그건 사진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하나하나씩 배워 가며 익혀 왔는데, 요즘은 너무 쉽게 사진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사진은 발로 쫓아다니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촬영대상에 대한 지식 또한 사전에 충분히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그만큼 부지런해야 자기 안목에 맞는 사진을 담을 수가 있고, 많은 생각과 연구가 필요합니다 …

 

곧게 한길을 걸어가신 분들이 당신들 피와 땀으로 얻은 이야기를 젊은 대학원생들이 하나하나 듣고서 몇 가지를 간추려서 적어 놓았는데, 이들 사진학과 대학원생들은 사진밭 어르신들 말씀을 얼마나 받아들였을까 헤아려 봅니다. 하나하나 알뜰히 받아먹었을는지, 그냥 스치고 지나갔을는지, 아예 귀담아듣지 않고 잊었을는지, 또는 년간 잡지에만 실어 놓고 읽어 보지도 않을는지.

 

(4) 다시 빗길로

 

볼일을 보러 갈 곳까지는 아직 시간이 넉넉합니다. 조금 더 책을 둘러보고 사진책도 다시 한 번씩 넘깁니다. 그러나 빗줄기는 가늘어지지 않습니다. ‘뭐, 오늘은 비 맞고 다닐 생각이었으니까’ 하고 생각하면서 짐과 책을 주섬주섬 챙깁니다. 사진책은 더더욱 젖지 않게끔 비닐로 두 번 쌉니다. 책방에 들어설 때와 마찬가지로 비옷까지 챙겨 입은 뒤 '책방 진호' 아저씨를 보며 꾸벅 절을 합니다.

 

“오늘도 좋은 책 구경 잘하고 갑니다.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등판에 꽂히는 빗줄기를 느끼면서 사육신무덤 앞을 지나고 고가도로를 넘습니다. 한강다리부터는 거님길로 올라설 생각이었으나, 거님길은 공사를 하느라 막아 놓았군요. 하는 수 없이 찻길로 한강다리를 넘습니다만, 되레 거님길 공사를 해 주는 탓으로 찻길에서 좀더 빠르게 달립니다.

 

한강다리 거님길 공사가 언제 끝날는지 모르지만, 부디 이 공사가 끝난 뒤에는 울퉁불퉁해서 비가 오면 물이 고이는 자리가 없게끔 마음을 쏟아 주면 좋겠습니다. 다리가 하나 끝나고 새 다리로 이어지는 길목은 거님길 돌이 다 파이고 엉망인데 그곳도 모두 손질해 주면 더 좋겠습니다.

 

다리를 지나는 동안 자동차는 꽉꽉 막혀서 꼼짝을 못하지만, 자전거는 차 사이로 신나게 빠져나갑니다. 어느새 용산을 지나고 숙대 앞을 지나고 서울역 앞을 지나 광화문에 닿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태그:#헌책방, #책방 진호, #진호서적, #장기려,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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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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