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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오랫동안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던 국정원법 개정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난 7일 국정원법 개정법률안을 낸 것이다. 그러나 야당이 강력 반대하는 데다가 한나라당도 개정법률안이 의원 개개인의 발의일 뿐 당론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어 그 카드가 국회를 쉽게 통과할 것 같지는 않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 개정된 국정원법(당시는 국가안전기획부법)은 국정원법 제3조 1항 1호에서 국정원의 직무를 "국외정보 및 국내보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라고 규정하면서 국내보안정보를 '대공·대정부전복·방첩·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다섯 가지로 제한했다. 즉, 입법취지로 볼 때 국정원(국내파트)의 직무는 이 5가지로 제한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정원은 그동안 직무를 확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납치공작과 북풍 등 '지은 죄'가 많아서 입도 뻥긋하지 못했고,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노 대통령이 정보기관에 곁을 주지 않는데다가 국정원장의 독대보고 관행을 없애버려 역시 입을 떼기가 어려웠다.

 김성호 국정원장이 30일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 전옥현 1차장 등 주요 간부들과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김성호 국정원장이 지난달 30일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 전옥현 1차장 등 주요 간부들과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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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몸 만들기' 욕망과 '촛불'에 데인 이명박 정권의 합작

그런데 보수성향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압승을 하자 오랜 숙원사업인 국정원법 개정 카드를 꺼낸 것이다.

'총대'는 국정원 출신의 이철우 의원(경북 김천시, 한나라당)이 멨다. 그는 초선이지만 국정원을 감독하는 국회 정보위의 한나라당 측 간사 위원이다. '친정'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이 의원이 대표발의로 앞장을 서고 공성진·송광호 최고위원, 황진하 제2정조위원장, 나경원 제6정조위원장 등 61명이 공동발의자로 서명했다.

결국 한나라당의 의원입법은 보수정권이라는 시대변화에 맞춰 '몸 만들기'에 나선 국정원이 몸집을 불리고 활동영역을 전방위로 확대하려는 욕망과, '촛불'에 데인 이명박 정권이 국가 정보기관의 인력과 정보력을 활용하려는 정치적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결과물이다.

다만, 국정원은 국내보안정보 5가지 직무에 '등'이란 단어 하나를 추가해 직무를 무한대로 확장하는 대신에 ▲ 국가안전보장 및 국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정책의 수립에 필요한 정보 ▲ 국가 또는 국민에 대한 중대한 재난과 위기를 예방·관리하는 데 필요한 정보 ▲ 산업기술 유출에 대한 보안정보라는 세 가지 직무활동을 명문화했다.

이 가운데 재난과 위기를 예방·관리하는 데 필요한 정보활동과 산업기술 유출에 대한 보안정보활동은 각각 그 중요성이 증대되는 현실에 비추어 비교적 논란이 적은 편이다. 문제는 '국가안전보장 및 국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정책의 수립에 필요한 정보' 활동 조항이다. 이는 사실상 국내보안정보 활동의 5가지 직무에 '~등'이란 단어를 붙인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철우 "시대변화 반영하지 못해"...나경원 "그럴 바에 차라리 폐지를"

 정연주 전 KBS 사장이 해임된 직후인 8월 11일 서울 시내 모 호텔에서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김회성 국가정보원 제2차장과 회동한 것으로 알려진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이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국정감사에서 "KBS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모임은 아니었다"고 재차 주장하고 있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이 해임된 직후인 8월 11일 서울 시내 모 호텔에서 김회성 국가정보원 제2차장등과 회동한 것으로 알려진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달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국정감사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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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이 의원은 개정안을 내면서 "세계 각국의 정보기관이 급변하는 안보환경에 맞춰 다양한 분야에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다"면서 "그러나 우리 정보기관 업무는 반세기 전에 만들어진 법률에 한정돼 시대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 의원은 또 "현재 국정원은 국회의 엄격한 감독 하에 있고, 직원들의 정치개입시 무거운 형사처벌을 받는다"면서 "제도적, 사회적인 통제가 강화되고 있어 70~80년대 국정원과 관련된 논란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의 지적대로 현재의 국정원법이 시대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또 직무범위가 엄격한 국정원법으로 인해 직원들이 일보다는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보신'을 앞세우는 통에 일반 공무원들과 다를 바 없이 관료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지난 10년새 이뤄진 두 번의 여야 정권교체도 국정원의 정치개입 가능성을 줄였다. 특히 직원들은 지난 10년 동안 북풍 공작과 도청 사건 등의 사법처리 경험을 통해 상부의 지시를 충실히 따른 것일지라도 불법행위를 하면 과거와 달리 더는 조직이 개인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했다. 또 과거와 달리 언제든지 '내부고발'을 할 수 있는 인터넷이라는 강력한 견제장치가 있어 정보기관의 비밀주의도 어느 정도 통제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문방위에서 문화부가 주재한 '종교차별 시정대책회의'에 국정원 관계자의 참석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일자, 나경원 의원이 "국정원도 엄연히 국가기관이고 조직이며, (회의 참석은) 국정원법 제3조 5호에 따른 정보 및 보안업무 기획 조정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며 "(그렇게 업무를 제약하려면) 차라리 국정원 폐지법을 내는 것이 옳지 않냐"고 과격한(?) 주장을 한 것도 일리가 있다.

정보기관 구성 원칙에서 벗어난 국정원의 정보독점 체제

그러나 국정원은 구소련 KGB의 전통을 승계한 러시아의 FSB(연방보안부)를 빼고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국내-해외보안 업무의 분리구성 원칙을 따르지 않는 정보기관이다. 국정원이 역할 모델로 삼는 선진 정보기관치고 국내-해외파트가 분리돼 있지 않은 경우는 없다.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인 미 CIA는 국내 사안과 내국인에 대한 수사-공작이 철저하게 금지돼 있다. 내국인에 대한 수사는 FBI의 몫이다. '첩보원 007'로 유명한 영국도 MI5(국내보안)과 MI6(해외정보)로 분리돼 있다. 독일은 BND(해외정보)와 헌법보호청(국내보안), 프랑스 역시 DGSE(해외안보총국)와 DST(국토감시국)로 나뉜다. 국정원이 지향하는 '강소 정보기관'의 모델인 이스라엘의 경우에도 모사드(해외)와 신베트(국내)로 분리돼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지난 61년 중앙정보부 창설 이후 국가안전기획부를 거쳐 현재까지 국정원의 정보독점 체제가 지속돼 왔다. 국정원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인 북한을 상대로 정보수집-공작 활동을 해야 하는 정보환경의 특수성을 내세우지만, 그보다는 '밥그릇'을 놓지 않으려는 조직 보호 논리가 더 강하다.

게다가 비밀 정보기관을 지향하는 국정원은 직원들이 입소할 때부터 세뇌와 교육훈련을 통해 본능적으로 은폐와 조작이 체화된 조직이다. 그렇다보니 직무 수행과정에서 늘 '불법'의 유혹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정보기관끼리의 '견제와 균형'도 중요하지만, 비밀정보기관 조직 내에서의 '견제와 균형'이 중요한 이유다.

미국과 독일 등에 견주어 정보기관에 대한 의회의 감시-감독 기능이 약한 것도 문제다. 우리도 지난 94년 안기부법 개정 이후 국회에 정보위를 설치해 운영해 왔지만, 정보위원들에 따르면 한 달에 한번씩 국정원의 일방적 업무보고를 받는 수준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정원.
 국정원.
ⓒ 국정원 홍보브로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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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정보' 앞세우지만 대공정책실은 90년대 '불법 온상'

국정원은 이번 개정안의 핵심인 '국가안전보장 및 국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정책의 수립에 필요한 정보' 활동과 관련,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일반정보'가 아닌 '정책정보' 수집활동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국가안전보장 및 국익'의 범위가 무한하기 때문에 '정책정보'의 수집범위 역시 무한할 수밖에 없다.

이철우 의원은 "제도적, 사회적인 통제가 강화되고 있어 70~80년대 국정원과 관련된 논란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조직 이름에 '정책정보'를 앞세운 대공정책실이 '불법의 온상'이 된 것도 90년대에 벌어진 일이다.

이른바 삼성 X파일로 드러난 김영삼 정부 시절의 불법 도청을 일삼은 '미림팀', 김대중 정부 시절에 각종 이권에 개입한 '경제단' 등이 모두 대공정책실 소속이다. 현재의 5가지 국내보안업무를 규정하도록 안기부법을 개정한 김영삼 시절에 입사해 94년부터 대공정책실에 근무한 전직 직원 김기삼씨도 육필수기에서 "대공정책실은 명칭대로라면 간첩을 잡기 위해 정책을 세운다거나 간첩을 잡기 위한 정보를 수집하는 곳이어야 제격이겠는데, 실제로는 국내 정치정보를 수집하는 부서였다"고 폭로했다.

김영삼 정부가 법까지 개정해 국정원이 '할 수 있는 직무'를 제한했지만 실제로는 정치정보를 수집했던 어두운 과거는 97년 대선에서 북한 변수를 활용한 '북풍 공작'과 국정원이 공기업을 동원해 한나라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한 '공기업 모금공작', 그리고 선거일 막판의 '귀향공작' 등으로 드러난 바 있다.

이처럼 법으로 직무를 제한했는데도 음지에서는 정치공작을 일삼은 국정원이 지금 와서는 법으로 직무를 무한정 확장해도 제도적, 사회적 통제가 강화되고 있어 정치공작은 없을(혹은 못할) 것이라고 국민에게 떼를 쓰고 있는 셈이다.

국정원은 지금도 '충분히' 위험하다

사실 민주주의의 실현과 정보기관의 존재는 서로 상충되는 관계일 수밖에 없다. 공개된 토론과 타협에 의해 집단의사를 결정하는 민주주의 시스템 아래서 비밀공작을 근간으로 하는 정보기관은 설 땅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정보기관이 없는 나라는 없고, 정보기관은 일종의 '필요악'으로 인정돼 왔다.

문제는 국정원이 국내-해외보안 업무의 분리구성 원칙을 따르지 않고 반세기 동안 정보독점을 지속해 오면서 필연적으로 수 없이 많은 불법과 탈법의 '전과'(前過)을 쌓았으면서도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적용받지 않는 대통령 1인의 직속기관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견제 없는 정보독점 체제에서 국정원의 정보 실패는 대통령의 정책판단 실패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도 국정원은 '충분히' 위험한 양날의 칼이다. 설령 국정원법을 개정하려는 국정원의 의도가 아무리 '순수'해도 사용자에게 '불순한' 의도가 있다면 그것도 위험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사용자인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한나라당이 사실상 유일한 제도적, 사회적 통제장치인 인터넷 환경을 옥죄는 등 시대변화에 역행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정원의 직무 확대는 그래서 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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