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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1975년 <동아일보> 사원 113명이 길거리로 내몰렸던 이른바 '동아사태'는 '정권 차원의 언론 탄압'이었다고 발표한 가운데, 정동익 위원장을 비롯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회원들이 29일 오후 광화문 동아일보사앞에서 '정부와 동아일보의 사과' '동아의 무책임한 보도 지양 및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정신 복귀' '사과와 함께 그에 걸맞은 구체적 화해조치' 등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지난 1970년대 이른바 '동아사태'를 "중앙정보부 주도의 언론탄압"이라고 발표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진실화해위는 "동아일보 광고 탄압 사건은 유신정권의 언론 통제수단"이라는 한편 <동아일보> 역시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명확히 규정했다.

 

"<동아일보>사는 비록 광고탄압이라는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야기된 경영상의 압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언론기관 <동아일보>의 명예와 언론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헌신해 왔던 자사 언론인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정권의 요구대로 해임함으로써 유신정권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했다.

 

더욱이 <동아일보> 경영진은 그 당시부터 정권의 강압에 의한 해임이라는 점을 시인하지 않고 경영상의 이유로 해임하였다고 주장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유신정권의 언론탄압에 동조하였으며 언론의 자유, 언론인들의 생존권과 명예를 침해한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비록 정부의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피해자의 처지에 있었다하더라도 결국 정부의 압력에 굴복하고, 또 정부 압력을 빌미로 언론인들을 대량 해임시킨 책임이 있음에도 민주화의 진전으로 언론자유가 신장돼 권력 간섭이 사라진 이후까지 이들에 대한 아무런 구제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진실화해위는 <동아일보>에게 "피해 언론인들에게 사과하고 피해자들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는 등 적절한 화해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적시하지는 않았으나 '피해 언론인'들이란 바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들을 말한다. 1975년 3월 17일 <동아일보>에서 쫓겨난 113명의 위원들이다.

 

이들은 그날 새벽, 각목을 들고 회사로 갑자기 들이닥친 300여 명의 청년들로부터 들려나온 뒤 곧바로 '동아투위'를 만들었고 지난 33년 동안 '원상회복'과 '사과'를 요구하며 농성하고, 단식했다. 이들이 그동안 낸 성명만 해도 수십 차례에 이르고 2005년에는 <자유언론>이란 책에 동아투위 역사를 담았다.  

 

침묵했던 동아일보의 실망스런 행태

 

서울 세종로 동아일보사 건물. 서울 세종로 동아일보사 건물.

그러나 <동아일보>는 그 때마다 침묵했다. 이번에도 <동아일보>가 보인 행태는 실망스럽다. <동아>는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 결정 다음날 관련기사를 A8 종합면에 내보냈다. <동아>는 '광고탄압은 중정이 주도한 인권침해'라는 제목을 달고 진실화해위의 결정 내용을 다뤘다. 동아일보사에 대한 진실화해위의 권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동아>는 밑에 이은 기사에서 "해직 언론인 문제는 이미 대법원의 확정판결까지 내려져 법적으로 완료됐다"고 밝혔다. 자사의 역사와 관련한 일인데도 사료나 증언보다는 법원의 판결을 근거로 삼은 것이다.

 

<동아>는 "판결문에 따르면 1970년부터 경영 실적이 악화되던 동아일보는 1974년 광고 사태로 존폐 위기를 맞아 이듬해 3월 8일 1실 3부를 폐지하는 내용의 기구축소를 단행했고 당시 언론인 해임은 '경영상의 문제'였다고 법원이 판단한 것이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정동익 동아투위 위원장을 비롯한 여러 위원들은 한 목소리로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이 기사가 <동아>의 공식입장으로 보이는데 정말 기가 찬다"고 말했다. <동아>는 선배들을 두 번 욕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동아>는 1979년 판결을 들고 나올 처지가 아니다. 지난 5일 <한겨레>가 보도한 대로 서울고등법원 민사 14부의 지난 2005년 11월 29일 판결을 보면 "사내 질서와 기강을 확립한다는 명분 하에 당시 자유언론실천운동을 주도하며 유신정권과 긴장관계에 있던 기자들을 대량해고하는 결과를 낳게 됐다…(중략)…동아일보사가 대량 해고 조치를 단행한 것은 단순한 사내분규 이상의 정치 사회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나와 있다. 대법원 역시 2008년 2월 14일 서울고법의 판결을 그대로 수용해 동아에 패소판결을 내린 바 있다.

 

더구나 <동아> 주장대로라면 동아투위가 지난 2005년 2월에 낸 600쪽짜리 책 <자유언론>에 담긴 당시 기자들의 증언과 사진 등은 모두 허구 또는 합성이요, 민주화기념사업회가 소장하고 있는 수십 건의 자료들도 그럴 것이다.

 

또한 당일 새벽 각목을 든 채 농성장에 난입해 기자들을 물리력으로 끌어낸 청년들은 또 뭔가? 이런 상황들이 경영상의 해고라는 동아일보 주장과 맞아 떨어지는가?

 

역사 기록의 의무가 있는 기자의 사명감

 

 동아투위 1주년 기념 특집호에 실린 1975년 3월 17일 당시 상황

당시 상황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막내기자였던 정연주 위원의 책 <서울-워싱턴-평양>에도 당시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다.

 

재부임한 이동욱 당시 주필이 사내방송을 통한 취임사에서 '사내 계엄령'을 선포했다는 사실, "광고탄압 이후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이 과열되어 있다.

 

광고탄압이 일어났던 12월 25일 이전 선으로 되돌아가야한다"는 이 당시 주필의 발언, 그리고는 광고탄압으로 경영이 악화되어 기구를 축소한다며 심의실, 과학부, 기획부, 출판부를 없애고 이들 부서에 소속됐던 18명을 하루아침에 해임시켜 버린 일 등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당시 기자들이 "회사가 경영악화를 이유로 기구 축소를 한다면, 기구 축소로 인한 경비 절감분만큼 기자들이 스스로 월급을 깎아 충당할 테니 해임을 취소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회사 측이 이를 마다하고 심지어는 동아일보 기자협회 분회 간부들을 추가로 해임했던 일, 이런 과정에 몰려 결국 1975년 3월 12일 제작거부의 길로 들어선 것들이 정연주 위원을 비롯한 박종만 문영희 정동익 조양진 등 동아투위 위원들의 공통적인 기억이다.

 

<동아>가 지금의 주장을 펴려면 당시 이런 상황에 대한 정확하고 근거있는 증언과 반론이 필요하다. 군색하게도 1979년 판결문을 끌어다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은 진실 앞에 눈을 감는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언론사의 본령과도 거리가 멀다. 역사 기록의 의무가 있는 기자의 사명감과도 그렇다.

 

강정문·안종필 등 동아투위 12명의 위원이 먼저 가고 101명 위원들이 살아있다. 서른 무렵에 막내 기자로 쫓겨난 사람이 벌써 환갑을 넘어 머리에 백설을 얹었고 얼굴 이곳저곳에 검버섯이 폈다.

 

이들은 또 지난 10월 29일부터 <동아일보> 앞에서 1인 시위에 돌입했다. 한 사람이 한 시간씩, 4인 1조로 번갈아가며 하고 있다. "한 시간만 서있어도 무릎과 허리에 무리가 오기"때문이라고 한다.

 

오늘도 1인 시위는 계속됐다. 후배로 보이는 사람들이 사옥에서 나와 광화문역 쪽으로 줄달음쳐 가지만 이들에게 시선 하나 두지 않는다. 지금은 <동아>를 떠난 윤영찬 기자만이 노조위원장 시절 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이들에게 "선배님들, 수고 많으십니다"라며 깍듯이 인사를 했었다. 당시 위원들은 "너무나 고마웠다"고 했다.

 

 동아투위 위원들은 진실화해위 권고결정이 내려진 직후부터 동아일보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오는 11월 17일까지 1인 시위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선배님들 뵙고 싶었다고 펼침막을 걸자

 

"이제 동아의 정신은 동아일보가 아닌 동아투위에 있다."

 

고 안종필 위원이 1975년 3월 17일 들려나오면서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백발 성성하도록 그 '정신'을 잊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 "단 하루라도 좋으니 <동아일보>로 복직하고 싶다"고 말한다. 책상 차고 앉아 데스크 보겠다는 게 아닐 것이다. <동아일보>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고, 후배들과 눈 마주치며 과거와 화해하고 싶다는 뜻일 테다. 그리고는 편안한 노년으로 돌아가, 먼저 간 12명의 투위 위원들과 맘 편히 만날 날을 기약하고 싶은 것일 테다.

 

<동아일보>, 이제 굴절된 역사 한 점 덜고 가는 게 어떨까. 민망하고 수줍을 수도 있겠다. 조금 침묵하면, 그래서 시간이 좀 지나면 다시 수면 밑으로 가라앉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동아일보> 내부는 조용하다고 한다. 사내 게시판에도 이 사건과 관련한 글이 전무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손을 내밀어 그동안 풍찬노숙했던 선배들을 일으켜 세우자. 이들은 30년간 그 준비만 해 온 사람들이다. 단절되어, 따로 간직했던 역사를 이제 섞을 때다. 김재호 사장은 당시 상황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도 없고, 때마침 편집국장도 바뀌었다고 한다. 방송진출 등 새 사업을 꾀하는 한편 회사 사업 규모를 한참 늘리려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상황이 '시의적절'하다.

 

지난 30일 진실화해위원회 결정에 맞춰 동아투위가 동아일보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멀찌감치에서 황호택 수석 논설위원이 줄곧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안면이 있어 보이는 투위 선배에게 기자회견문도 한 장 얻어 탐독하기도 했다. 동아사태에 대해 잘 몰라 얼떨떨해 하는 후배들에게는 이런 선배들이 앞장서 설명해 주자.

 

자, 날을 잡자. 이름은 '동아투위 선배들 홈커밍데이'가 좋겠다. 동아일보는 사내 널찍한 공간이 많다. 테이블을 마련하고 깨끗한 테이블보를 깔자. 떡을 맞추고 풍선을 불자. 간식은 강정보다는 양갱이 좋겠다. '선배님들 뵙고 싶었습니다' 펼침막을 걸자. 그리고 1층으로 내려가 그동안 고달팠던 선배들을 마중하자. 충정로 사옥에 있는 출판국 기자나 사원들도 모두 건너오자.

 

때가 됐다. 33년 간 동아투위 위원들이 삼켜왔던 응어리가 풀리기 시작하고, 그들과 <동아일보>의 과거가 화해의 첫 걸음을 떼는 날, 어서 그 소중한 '하루'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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