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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월 만에 첫 거래가 성사될 뻔했는데, 3일 부동산 대책으로 취소됐다."

 

4일 오전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인근 P부동산 중개업소의 문형식(가명) 대표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지난 3일 발표된 '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의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에 대해 "아마추어 같은 정책"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문 대표의 이 같은 반응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재건축 규제 완화로 인한 재건축·거래 활성화가 이번 대책의 뼈대이기에, 서울 강남권의 대표적 재건축 대상 단지인 은마아파트(4424세대)가 이번 대책의 가장 큰 수혜 단지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비단 문 대표만이 이번 대책에 불만을 나타낸 건 아니었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들도 "이번 대책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은마아파트 집 주인들 역시 재건축 규제 완화엔 반색을 하면서도 "당장 재건축은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은마아파트뿐만 아니라, 재건축이 훨씬 용이한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주공아파트 분위기 역시 "당장 거래도 재건축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일부 재건축 조합·시공사 등에서 재건축을 재추진한다고 하지만, 이날 현장에선 당장의 재건축·거래 활성화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직 부족한 재건축 완화... 호가만 뛸 뿐 거래는 없어"

 

 

문 대표는 "지난 주말, '초' 급매물로 9억7천만 원에 나온 112㎡(34평) 은마아파트를 사겠다는 사람이 있었다"며 "3일 대책 발표 후, 집주인이 10억 원 이하로는 안 팔겠다고 해서 거래가 취소됐다"고 밝혔다. 불과 며칠 새 호가가 3천만 원 이상 올랐다는 것.

 

그는 "집주인은 8억4600만 원의 빚이 있었다, 엄청난 이자 압박 속에서도 재건축 기대감으로 호가를 올린 것"이라면서도 "10억 원에 살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다른 중개업소에서도 호가가 올라가고 매물이 다시 들어갈 뿐 거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거래 활성화를 기대했던 정부의 이번 대책이 현장에선 되레 거래를 막아선 모양새다. 그렇다면, 재건축 활성화라는 또 다른 정부의 기대는 실현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문 대표는 "은마아파트의 재건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강남은 투기지역에서 해제되지 않아 DTI(총부채상환비율)이 40%로 묶여 있어, 돈이 부족하다. 또한 소형평수 의무 비율 85㎡이하 60% 규정이 남아있는데, 102·112㎡(전용면적은 각각 77·85㎡)의 은마아파트를 재건축해도 60%는 지금 집 크기와 비슷한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누가 하겠느냐?"

 

인근 다른 중개업소의 얘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S공인중개업소 김미진(가명) 대표는 "예전 같았으면 이 정도 대책이면 난리 났다"며 업소 한쪽 벽면을 가리켰다. 거기엔 현재의 용적률에서 40% 올려 250%로 했을 때의 재건축 단지 상상도가 있었다.

 

"용적률 250%도 감사하다는 생각이었는데, 용적률 300%면 파격적인 조치"라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하지만 그는 "경제가 안 좋은 상황에서 재건축을 해도 프리미엄을 주고 살 사람이 있겠느냐"며 "당장 재건축은 어렵다, 전화도 없고 조용하다"고 밝혔다.

 

주민들 역시 "재건축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미숙(가명·51)씨는 "기대가 크지만, 기껏 재건축했는데 계속 작은 평수에 살면 의미가 없다"며 "이 정권 내에 재건축 하도록 규제를 더 풀어야한다"고 강조했다. 강태현(가명·56)씨는 "분담금을 어떻게 마련해야할지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경제가 어려운데 분담금은 어떻게 마련하느냐"

 

서울 강남권의 또 다른 대규모 재건축 대상 단지인 개포동 주공아파트 1~4단지와 시영아파트는 어떨까? 1만2410세대로 대규모 단지인 이곳은 가장 큰 곳이 82㎡로 소형평수 의무비율 탓에 재건축을 못할 이유는 없다. 또한 모두 5층인 탓에 용적률 250%로 재건축하더라도, 그 개발이익금이 막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탓에 급매물을 내놓았던 집주인들은 부랴부랴 매물을 거둬들였다. S중개업소의 홍희호(가명) 대표는 "지난 주말 재건축 규제 완화 이야기가 나오자 급매물을 잡으려는 전화가 많이 왔다"고 전했다. 이어 "호가가 며칠 새 최소 2천만 원, 최대 6천만 원이 올랐다"고 밝혔다.

 

"43㎡(13평)의 경우, 5억4000만 원에 나왔던 매물이 5억7000만 원까지 올라갔다. 팔려는 사람은 재건축에 큰 기대를 하고 있고, 사려는 사람은 아직은 관망세다."

 

기대는 크지만 거래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는 건 이곳 역시 마찬가지. 재건축 가능성에 대해 홍 대표는 "개발이익환수조치가 그대로 있고, 경기 침체로 인해 당장은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경기가 반등하면 재건축이 쉽게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투기 수요까지 붙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이곳 집주인들은 은마아파트 주민들보다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다. 김동석(가명·59)씨는 "재건축은 모두가 원하는 것이고, 용적률이 높고, 재건축 단지가 커서 집주인들에게 엄청난 수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경제 활성화가 되어야 분담금도 마련하고, 재건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포 주공아파트는 낡고 좁고 오래된 집이라, 집 주인이 직접 살지 않고 세입자가 사는 경우가 절반 이상이다. 재건축이 되면 세입자들은 이곳을 떠나야 한다. 이런 이유로 박미애(가명·39)씨는 재건축 규제 완화 소식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 대단지를 모두 재건축하면, 주변 집값이 들썩일 것이다. 또한 이곳처럼 싸게 강남으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주변에 없어 마땅히 갈 데가 없다. 여기 집주인들 대부분 다주택자들인데, 그 사람들한테만 좋은 일이 될 것 같다."

 

비재건축 단지는 집값 하락세 지속... "기대 큰 만큼 실망도 크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껏 여러 차례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기대했던 부동산 거래와 건설 경기 활성화 효과를 얻지 못했다. '재건축 규제 완화'라는 회심의 대책 역시 지금까지의 시장 상황으로는 비슷한 결과가 예상된다.

 

특히, 재건축 대상 단지가 아닌 곳은 집값 하락이 계속 되고 있다. 강남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곳의 한 중개업소는 집값 하락이 크다는 이유로 시세 정보 공개를 꺼렸다.

 

일부 중개업소 바깥에 놓인 시세 정보는 모두 급매물이라는 글자가 뚜렷했다. P중개업소의 김병수(가명) 대표는 "2006년 하반기 최고점이 26~27억 원이었던 224㎡(68평)의 경우, 급매물이긴 하지만 얼마 전 17억8000만 원에 거래됐다"고 밝혔다.

 

그는 "종합부동산세 완화 등 강남 주민들을 위한 대책이 많이 나왔지만, 전혀 약발이 먹히고 있지 않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며 "'건설 경기 활성화→ 내수 진작'이 아니라 거꾸로가 정상 아니냐"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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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재건축 완화, #부동산 정책, #은마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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