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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위 "동아일보, 부당한 요구에 굴복"

 

동아일보사로서는 이번이 아마도 마지막 기회가 될 듯싶다. 그러나 동아일보사는 이 마지막 기회도 결국 놓쳐버릴 것 같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최근 동아일보의 아픈 과거사에 대해 화해할 수 있는 방안을 권고했지만, 동아일보사가 지금까지 보여주고 있는 반응을 보면 과거와의 화해는 무망한 듯싶다.

 

지난달 29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는 지난 74년 동아일보 광고탄압사건과 동아일보·동아방송 언론인 대량 해직 사건에 대한 진상보고서를 발표했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광고탄압과 언론인 대량 해직사건은 유신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언론 탄압정책에 따른 것으로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언론탄압이자 인권침해 행위"라면서 국가에 "동아일보사와 해임된 언론인들에게 사과하고 정당한 평가와 함께 적절한 피해 회복 조치를 할 것"을 권고했다.

 

또 동아일보사에 대해서도 "비록 광고탄압이라는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야기된 경영압박이 있었지만, 자사 언론인들을 정권의 요구대로 해임한 것은 유신정권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한 것이었다"며 "동아일보사 역시 해직된 언론인들에게 사과하고, 이들의 명예회복과 피해 회복 등 적절한 화해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새삼스런 이야기가 아니다. 동아일보 광고탄압사태와 언론인 대량 해직 사태의 전모와 경위, 그 진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명확하게 밝혀진 바 있다. 사실은 처음부터 그 진상을 새로 밝히고 말 것도 없을 정도로 자명한 사건이기도 했다.

 

진실화해위는 이번 조사 과정에서 당시 중앙정보부 관계자의 진술 등을 통해 그 구체적인 실상을 밝혀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당시 유신정권이 동아일보사를 어떻게 압박했으며, 광고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어떤 회유와 압력을 가했는지도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위원회의 이번 발표는 이런  구체적인 조사와 증언 등을 토대로 정부의 공식 기구가 그 경위와 진상을 최종적으로 공식 확인한 것으로, 국가와 동아일보사에 대해 잘못된 과거사에 대해 화해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국가의 부당한 언론탄압의 피해자이자, 한편으론 권력의 탄압에 굴복해 130여 명의 자사 언론인들을 해임시켜야 했던 가해자로서 동아일보사가 지난 30여 년동안 짊어지고 온 역사적 부채를 덜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아> "위원회 조사 일방적... 경영상 이유로 해고한 것일 뿐"

 

 지난 1974년 10월 24일 당시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대회를 여는 모습

하지만 동아일보사는 진실화해위의 발표 이후 아직 아무런 공식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다. 진실화해위 발표 다음날 동아일보는 위원회 발표 소식을 전하는 기사와 이에 대한 해설 기사를 실었지만, 사고나 사설 등 회사의 공식 방침을 발표하진 않았다.

 

지극히 부적절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회사 방침을 반영한 것으로 보이는 해설기사에 나타난 동아일보의 태도는 적반하장이다(관련기사: 진실위 ‘광고 탄압-언론인 해임 연관’ 결론 사실과 달라).

 

동아일보 이 기사의 주요 내용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당시 유신정권의 광고탄압과 언론인 해직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진실화해위의 조사 역시 일방적이었다고 주장한다. 위원회가 동아일보에 '광고탄압' 대한 자료 협조만 했을 뿐 언론인 해직사태에 대해서는 그 어떤 자료 협조 요청도 하지 않은 채 발표한 일방적인 조사 결과로 해직사태에 대한 조사 결과 역시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이 기사에서 해직사태에 대한 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사실과 다르다는 근거로 해직언론인들이 낸 해고처분 무효확인소송을 대법원이 기각한 점을 들었다. 당시 유신치하 대법원은 79년 1월 해직언론인들의 해임처분 무효확인소송을 기각하면서 "언론인 해직은 광고사태로 인한 경영상의 이유 때문"이었으며 "제작과 회사에 복귀할 것을 거부한 사원들만을 징계했"다고 판결했다는 것이다.

 

이 기사는 또 75년 7월 광고탄압이 풀린 것 역시 "당시의 국내외 여건이 큰 영향을 끼쳤다"면서 "국제언론인협회(IPI)와 국제기자연맹(IFJ) 등이 연일 비난성명을 발표했고, 전 세계 유력 언론도 연일 정부에 대한 비판기사를 쏟아냈"으며 "1975년 8월 리마 비동맹회의를 앞두고 남북한이 이 단체 가입을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던 터라 박정희 정부는 국제적인 비난 여론을 더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국제적인 비난 여론 때문이었지, 동아일보사가 박정희 정권의 탄압에 굴복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 기사를 통해 나타난 <동아일보>의 생각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박정권이 부당하게 광고탄압을 통해 동아일보사를 탄압했지만, 동아일보사가 기자와 프로듀서, 아나운서를 해임한 것은 광고사태에 따른 경영상의 이유 때문이며, 그것도 제작과 회사 복귀를 거부한 언론인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또 유신정권이 광고탄압을 푼 것 역시 국제적인 비난여론 때문이지 동아일보사가 당시 권력의 탄압에 굴복했기 때문은 아니다.

 

<동아>, 이런 사실도 병기했어야

 

하지만 기자가 이 기사를 작성했다면, 그는 이런 사실도 병기했어야 했다. <동아일보>가 75년 3월 8일 경영난을 이유로 기구 축소를 단행한다면서 심의실과 기획부, 과학부, 출판부를 없애고 사원 18명을 전격 해고하자 동아일보 기자협회 분회가 "경영상의 이유 때문이라면 사원들의 봉급을 인하해서라도 해임된 사원들을 즉각 복귀시켜 줄 것을 요구"했지만, 회사 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게다가 동아일보사는 회사 측의 기자 대량 해임 사태에 대한 항의 유인물을 배포했다는 이유 등으로 기자 2명을 이틀 후 추가 해임해 결국 기자들의 전면 제작거부 투쟁을 유발했다는 사실도 덧붙였어야 했다. (회사 측은 다시 제작거부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17명을 무더기 해임하고, 기자들의 단식 농성 엿새째인 3월 17일 공무국 벽과 철문을 뜯어내고 2백여 명의 인력을 동원해 농성중인 기자들을 해산시켰다.)

 

또 <동아일보>의 이 기자가 기사에서 광고탄압이 풀린 것은 "국제언론인협회(IPI)와 국제기자연맹(IFJ) 등이 연일 비난성명을 발표하는 등" 국제적인 비난여론 때문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렇다면, 그해 5월 12~13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IPI 총회에 한국 대표단장으로 참석했던 이환희 문화방송 사장의 연설문 내용도 같이 소개해야 했을 것이다. 그는 '국가마다 그 나름의 형편이'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번 취리히 IPI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한국을 떠나기 전에 당사자인 김상만 사장과 <동아일보>의 전 회장이며 IPI 한국 국내위원장인 고재욱 씨와 전후 3차례에 걸쳐서 회합을 갖고 우리 대표단이 IPI 사무기구와 총회에서 어떻게 무엇을 반영해 주기를 원하는가, 또 우리 대표단이 어떤 방향으로 노력해주기를 원하는가에 관해서 질문한 바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당시 동아일보) 김상만 사장과 고재욱씨는 일치된 의견으로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즉 그 대답은 '국내 문제를 가지고 국제회의에서 떠드는 것을 동아일보사로서나 경영자인 나로서는 원치 않는다. 우리는 지금 국내에서 조용한 가운데 당국과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이야기를 진행 중에 있다. 그러니만큼 대표단은 IPI 총회에 가서 이러한 동아일보사와 경영자인 나의 뜻을 전달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거듭 말하거니와 당사자인 김상만 사장과 당사자인 동아일보사가 이 문제를 조용한 가운데 해결하기를 원하고 있는 이상, 본 IPI총회가 어떠한 형태의 결의안이나 성명서를 채택해서 오히려 문제의 해결에 자극을 주거나 방해하는 방향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편집인회보>, 1975년 7월 5일자

 

동아투위의 촉구 "역사와 화해하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1975년 <동아일보> 사원 113명이 길거리로 내몰렸던 이른바 '동아사태'는 '정권 차원의 언론 탄압'이었다고 발표한 가운데, 정동익 위원장을 비롯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회원들이 29일 오후 광화문 동아일보사앞에서 '정부와 동아일보의 사과' '동아의 무책임한 보도 지양 및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정신 복귀' '사과와 함께 그에 걸맞은 구체적 화해조치' 등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위원장 정동익)가 지난달 29일 성명에서 동아일보사에 대해 아직도 남아있는 한 가닥 미련과 애정을 담아 "이제 더 이상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기 바란다"고 촉구한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였을 것이다.

 

동아투위는 이 성명에서 "우리는 동아일보사가 130여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를 무자비하게 축출한 가해자이기도 하지만, 권력의 탄압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은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진실·화해위원회가 지적한 대로, 동아일보사가 독재자의 발 앞에 엎드려 자존심 있는 언론사라면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온갖 굴욕까지 마다하지 않으면서 지면에서 사라진 광고를 다시 싣게 해달라고 애걸하고, 권력의 강압을 기화로 자유언론실천에 앞장선 언론인들을 폭력으로 몰아낸 책임 또한 면하기 어렵다는 점도 결코 잊지 말아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동아일보사로서는 권력의 탄압으로 상처받고 구명도생을 위해 스스로 가해자가 된 오욕의 역사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 것처럼 역사를 왜곡 편집해, 있던 역사를 새롭게 쓸 수도 없다. 그럴수록 그 멍에만 더 커질 것이다.

 

동아투위가 촉구한 것처럼 지금이라도 "역사와 화해"하는 것이 <동아일보>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나마 최선의 방법일 수 있음을 동아일보사는 깨달을 필요가 있다. <동아일보>의 처지가 오늘날 이리 곤궁하게 된 연원이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를 살펴볼 때 더 그렇다.

 

역사와 화해를 통해 과거 <동아일보>의 기백과 정신을 되살리는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면 그 모두를 위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동아일보사로서도 이번이 역사와 원만한 화해를 하기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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