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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그 거룩한 울림에 대하여>
 <베토벤, 그 거룩한 울림에 대하여>
ⓒ 서울대학교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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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베토벤 사랑은 '엘리제를 위하여'로 시작되었다. 초등학생 시절 피아노 학원에서 만난 그 가녀리고 우수어린 선율. 그 후 사춘기 시절 강렬하게 만난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식상하다고 여겼던 교향곡 5번이 대학시절 어느 봄날,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왔다. 방 청소를 하면서 반드시 듣는 '교향곡 6번 전원'은 언제나 청량감과 여유를 안겨주었고 라디오에서 우연히 듣게 되어 사랑하게 된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는 빛나는 기쁨을 맛보았다.

요즘 같은 날, 브람스도 좋지만 커피 한 잔과 함께 감상하는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도 그 깊은 맛을 더해준다. 연말이면 자연 생각나는 '합창교향곡 9번'은 들을 때마다 환희와 감동으로 내 가슴을 수백번도 더 휘몰아치게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좋아하고 아는 음악가, 악성(樂聖) 루드비히 반 베토벤.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베토벤에서 시작해서 베토벤으로 끝난다.' 그의 음악은 그만큼 대중적이고 폭넓으면서도 심오하다는 얘기다.  

대부분 클래식의 입문은 베토벤의 음악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바하, 헨델, 모차르트, 슈베르트, 브람스, 슈만, 차이코프스키, 드보르작, 브루크너, 말러, 쇤베르크…. 현대음악까지 멀리 갔다가 끝내는 다시 돌아온다. 베토벤이라는 '거대한 심원'에 귀의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클래식 애호가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돌아와서 바라본 그의 음악세계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깊어져 있다. 고향을 떠나 도회를 떠돌며 온갖 경험을 하고 풍물을 접했던 풍운아가 다시 고향에 돌아와 안온함과 평화를 느끼듯 조금 더 세상의 경험을 쌓고 깊어진 풍운아의 가슴에도 베토벤은 다시금 색다른 감동과 환희로 다가온다.

베토벤이라는 깊고 넓은 바다

'베토벤'이라는 바다의 폭과 깊이는 도대체 얼마만큼이기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염원과 기쁨, 고통, 희망, 번민을 모두 포용하고도 넉넉한 것일까. 나는 참으로 궁금했다. 하여, 베토벤은 언제나 나의 '연구대상'이었다. 만약, 누가 나에게 동서양을 통틀어 역사적인 인물중 한 명을 만나게 해준다고 한다면 나는 두말할 것도 없이 베토벤을 꼭 만나고 싶다고 할 것이다.  

나는 왜 베토벤에 대해서 알고싶은 것일까. 알면 알수록 더욱 알고싶고 궁금해지는 존재였다. 다른 음악가들에 비해 비교적 자료가 풍부한 편인데도 왠지 베토벤의 '그 무엇'을 알았다고 확신하기는 찜찜했다. 

그러다 며칠 전 베토벤과 관련하여 아주 흥미로운 책을 발견했다. <베토벤, 그 거룩한 울림에 대하여>. 서울대학교 신경정신과 조수철 교수가 쓴 책이다.

이 책은 베토벤의 작품 중 중심축이랄 수 있는 ‘피아노 소나타’, ‘교향곡’, ‘후기 현악 4중주’세 부분으로 나누어 작품에 대해서 설명해놓았다. 그리고 간략히 소개되어있는 베토벤의 생애와 음악부분도 여타 베토벤 관련서적과 크게 다른 점은 없다.

그러나 이 책이 내 눈길을 확 사로잡았던 것은 바로 ‘베토벤의 음악과 동양적 사상’이라는 장(章)에서였다. 역시 그 다음에 이어진 ‘이 시대에 왜 베토벤인가’라는 제목을 본 순간, 나는 내가 평소 알고 싶어했던 베토벤의 ‘그 무엇’에 대해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저자는 베토벤의 음악세계와 동양사상을 연결지어 설명해놓았다. 한마디로 베토벤의 음악세계의 정수는 바로 ‘대극의 합일사상’이라고 것이다.

특히 후기 현악 4중주에서 나타나는 형식의 파괴, 신고전주의의 복고 등 형식적으로 자유로워진 측면과 고통을 이겨내고 깨닫게 되는 절대 평화와 자유, 고요함, 안온, 겸허 등의 정신적인 측면은 이쪽도 저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용(中庸)의 정신, 이곳과 저곳을 넘나들며 자유로운 무애(無碍)의 경지라고 설명하고 있다.

걸림없고 자유로운 ‘절대 합일’의 경지

저자는 베토벤의 동양사상을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다. 성악과 기악이라는 대극적 관계를 하나로 통합, 강함과 부드러움의 통합, 투쟁과 평화의 통합, 인간과 자연의 통합, 조화로움과 부조화로움의 통합이다.

‘악이 없으면 선이 존재할 수 없고 추함이 없으면 아름다움이 힘을 발휘할 수 없고 천함이 없으면 귀함이 의미가 없고 후가 없으면 전이 존재할 수 없고 낮음이 없으면 높음이 없고 더러움이 없으면 깨끗함이 존재할 수 없으며 음이 없으면 양이 의미를 지닐 수 없다는 동양적인 사고방식과 너무나 흡사하다. 마찬가지로 협화음과 불협화음은 서로 상반된 개념인 듯 하나 상호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하나로 통합되어야 하고 베토벤에 의해 소리의 형태를 빌려서 완벽하게 대극의 합일사상이 실천되고 있는 것이다.’ (198쪽)

이어서 성과 속을 하나로 통합하고 전통과 개혁을 통합하고 마지막으로 삶과 죽음을 통합했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통합이란 대충, 적당한, 가운데 즈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양쪽을 모두 긍정함과 동시에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그것을 초월한 최상의 세계를 의미한다.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또하나의 관점은 베토벤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영웅주의’다. 여기에서 ‘영웅’은 대중심리에 의해 떠받들어지고 경배시되는 무조건적인 존재가 아니라 시련과 고난을 딛고 부활한 새로운 인간상을 의미한다. 동양철학에서 말하면 ‘군자’나 ‘성인’ ‘부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베토벤은 그야말로 영웅이었다. 가난과 질병이라는 온갖 혹독한 고난과 시련을 이기고 마침내 고요와 평안, 평화의 경지에 다다른 그는 유서같은 ‘후기현악4중주’를 남기고 영면의 길을 접어든다. 그리고 그가 남긴 많은 음악은 많은 후세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해준다.

사실, 베토벤을 바라보는 관점은 참 다양하다. 혹자는 천재라고 하기도 하고 혹자는 지독한 완벽주의에 노력파였다고 한다. 혹자는 당시 보기드문 파격적인 노동가라고 하기도 하고, 혹자는 궁정의 권위를 박차고 나온 혁명가였다고 하기도 한다. 혹자는 사람사귀기 까다롭고 타협을 모르는 꼬장꼬장한 한 음악가라고 하기도 하고 혹자는 귀머거리에 혼자 외롭게 살다가 간 예술가라고 하기도 한다.

어쩌면 모두 맞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모두 맞지않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의 깊은 세계에 한번이라도 심취해본 사람이라면 한 단면만 가지고 그를 평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베토벤, 그 거룩한 울림>은 베토벤의 음악세계를 조금 더 폭넓고 통찰력있게 바라보게 해주었다.

만약, 베토벤이 동양에 왔었더라면?

그가 단한번이라도 동양에 와보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그의 음악세계는 어떻게 변했을까? 그러나 그는 평생의 대부분을 비엔나에서 살다가 갔다. 대신 힌두교나 인도의 경전, 그리스신화, 이집트 신화 등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 책을 읽고 메모해두었던 기록은 남아있다.

물론 동양사상만이 위대하다는 말은 아니다. 동양사상만이 그의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예술을 어느 일정한 테두리나 형식이라는 울타리에 얽매어놓지 않고 폭넓고 자유롭게 이해하고자 했던 그의 혜안(慧眼)만큼은 위대하다. 오늘날에도 그의 음악이 녹슬지 않고 더욱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이유다. 지금도 수많은 연주자들이 베토벤을 연주하고 연구하는 까닭이며 21세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배워야할 정신이기도 하다.

‘예술은 영원하나 인생은 덧없다. 뿐만 아니라 예술의 생명은 길지만 인생은 짧다. 대지의 숨결이 쾌히 신의 영감과 만나게 해 준다면 우리는 이 순간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 텐데..’(1820년의 베토벤의 메모)


베토벤, 그 거룩한 울림에 대하여

조수철 지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2013)


태그:#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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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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