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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과 달리 평범했다. 사진 속에는 뛰어난 구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미적으로 아름다운 피사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팔을 허리에 올리고 카메라를 똑바로 보며 환하게 웃는 인물사진은 사진전에 어울리는 '작품'이라기 보단, 여느 집 어떤 사진첩 속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사진들이었다.
 
그러나 이 사진들이 '막달레나의집' 두 번째 사진전에 자리했을 땐 결코 평범할 수만은 없었다. 사진전의 '작가 선생님'들이 용산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쉼터 '막달레나의집'에 입소한 성매매 여성과 활동가, 자원봉사자 등 13명의 여성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막달레나의집의 사진작가들은 지난 4월부터 10월까지, 총 6개월간 진행된 사진 프로그램 '렌즈로 보는 일상'을 통해 마음을 열고 세상에 자신을 내보이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반년동안 작은 디지털 카메라로 친구들끼리만 돌려보는 교환일기처럼 비밀스러운 사진들을 만들었다.

 

그녀들은 '일기장' 같은 사진전 '모든 것이 되는 시간 - 위풍당당한 그녀들'을 통해 세상에 좀 더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이 사진전은 지난 10월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서울 종로 포스갤러리에서 열렸다.

 

액자로 걸린 사진이 18점, 공간은 좁고 걸고 싶은 사진은 많아 아쉬운 대로 작게 인화해 모자이크처럼 벽에 붙여놓은 사진까지 포함하면 50점에 가까운 사진들은 갤러리 안을 환하게 수놓고 있었다.

 

위풍당당 그녀들, 사진으로 말 걸다

 

1985년 7월 용산 성매매집결지의 작고 초라한 방 한 칸에서 시작된 막달레나의 집은 지난 23년간 성매매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활사업을 벌여왔다. 그리고 현재는 2개의 쉼터와 1개의 그룹홈을 운영함은 물론 현장상담과 지원센터를 통해 공동체를 꾸려가고 있다.

 

활동가들은 공동체를 찾는 사람들의 '행복과 삶의 권리'에 주목했다. 이들이 지나온 과거는 아무 것도 아니며 '현재의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사진이 지금과 앞으로의 삶의 목표를 고민하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작업임을 이미 지난 2006년 첫 번째 사진전을 통해 경험했었다. 두 번째 사진전도 그 움직임의 일환으로 기획된 것이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자연스러운 인물사진들을 찍을 수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김문진 활동가는 프로그램 초반, 잔뜩 위축되어 있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회상했다. 의견이나 감정을 말하는 일에 익숙지 않았던 '막달레나의집' 사람들에게 카메라라는 새로운 표현 도구는 낯선 것이었다.

 

이번 작업을 통해 "카메라를 난생 처음 잡아봤다"는 김마리아(60)씨는 "카메라를 받고 사진을 찍긴 찍어야겠는데 찍을 줄을 몰랐으니 처음엔 죄다 흔들린 사진밖에 없었다"고 말하며 수줍게 웃었다. "뭘 찍어야 할지도 몰라서, 집 안에서 거실에 햇볕 들어오는 것이나 벽이나 바닥에 생기는 그림자나 마당의 꽃, 집 앞 골목을 찍었"단다.

 

간혹, 다른 사람의 모습을 찍으려고 하면 날카로운 반응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자신이 성매매 피해여성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는 일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프로그램 초반에 그녀들은 그렇게 자신의 틀 안에 갇혀 있었다.

 

사진을 통해 세상 보는 법을 배우다

 

이옥정 원장은 그녀들에게 더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사진작업은 신체치유를 위한 산행 프로그램과 병행되었다. 사진 찍기에 재미를 들였지만 밖에 나가는 걸 극도로 꺼리는 사람들에게 활동가들은 "저기에 가면 더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며 유혹(?)했다. 좋은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에 사람들은 사진이란 목표를 가지고 한 달에 한 번 지리산·북한산·한라산 등 곳곳의 이름난 산을 카메라를 들고 찾아다녔다. 

 

그러는 동안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던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법에 대해 배웠다. 이 원장은 "노래방·술집·손님 등 생계와 관련된 것밖에 볼 줄 몰랐던 사람들이 사진을 통해 세상에 발을 내딛고, 세상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더라"며 놀라워했다. 활동가들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들이 일어나게 된 것이었다.

 

변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시선이 옮아갔다.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막달레나의집' 사람들은 힘든 산행을 함께 하며 점점 애정과 신뢰를 싹틔웠다.

 

이런 변화는 사진 속에도 온전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새벽 2~3시까지 깔깔거리며 익살스러운 표정의 '셀카'를 담아내기도 하고, 산에서 만난 작은 돌멩이들을 부딪쳐 불을 만들어 담배를 태우는 콘셉트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초반엔 거의 없었던 온전한 얼굴을 담은 인물사진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갔다.

 

관계의 변화를 보여주고 싶어

 

 

김마리아씨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골라달라고 주문했더니 김씨는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더니 이내 "너무 많이 찍어서 내가 찍은 사진이 뭔지 잘 모르겠다"는 대답과 함께 쑥스러운 웃음이 돌아온다. 사진작업에 작가와 모델로 함께 참여하기도 했던 김문주 활동가는 "개인 당 천여 장이 넘는 사진들을 찍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고 맞장구를 쳤다.

 

때문에 사진전과 프로그램을 총괄 진행했던 김정하 프리랜서 사진작가와 막달레나의 집 활동가들은 그 수천 장의 사진들 속에서 '행복한 비명'을 질러야 했다. 참여자들의 열정과 애정을 동고동락하며 옆에서 지켜봐왔기에 그 중에서 수십장만을 걸러내는 건 무척 힘들었으리라. "일단 보고 좋은 사진만 골라 모아내는 것도 수차례의 논의를 통했다"는 김정하 사진작가의 말에서 고충이 짐작됐다.

 

김정하 작가는 "주제를 잡고 찍은 기획전은 아니었지만, 여러 차례의 논의를 거쳐 '관계의 변화'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했다. 그렇게 이번 사진전에는 7명의 쉼터 입소자 및 이용자와 5명의 활동가들의 '얼굴'이 주로 담겼다. 김 작가는 "2주일에 한 번씩 자신의 사진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됐고, 그 과정에서 관계가 더 돈독해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즐거움을 찾아가는 것

 

 

사진 '기술'은 중요하지 않았다. '사진작가'가 되려고 시작한 작업도 아니었다. 그저 하다 보니 재미있었다. 그리고 많은 것들을 얻게 됐다. 사진을 찍는 동안, 사람들은 갇혀 있던 자신의 울타리를 벗어나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됐고,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이뤄내고 나니 자신감이 생긴다"는 '막달레나의집' 사람들. "사진전이라는 경험은, 이들의 삶에 또 다른 목표와 즐거움을 찾아나갈 계기가 될 것"이라며 김문진 활동가는 확신했다.

 

이옥정 원장은 "이 전시에서 보여주는 그녀들의 세상을 향한 말 걸기가 자신을 감추려고만 하는 수많은 성매매 여성들에게 용기와 영향을 주는 작은 발걸음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성매매 여성들이 세상에 맞설 수 있는 힘을 키우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들의 평범하지만 특별한 움직임을,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면 훨씬 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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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막달레나의집,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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