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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완공된 에펠탑은 당시 흉물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 에펠탑은 파리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입니다. 우리에게는 사람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근대건축물이 생길 수 없을까요. 계속 성형을 하며 젊음을 지키는 도시와 손수 가꾸며 곱게 늙어가는 도시, 과연 우리가 바라는 도시 모습은 무엇일까요. 여기 오랫동안 사람들과 추억을 나누다 쓸쓸히 사라졌거나 사라질 운명에 처한 건축물들을 소개합니다. 도시가 곱게 나이를 먹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편집자말]
야구와 얽힌 이야기들 인천 야구와 얽힌 이야기를 헤아리면서 몇 가지를 끄집어 내어 다시 뒤적입니다. 1983년, 국민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야구에 죽고 미친' 저를 생각해서 선물해 준 '삼미슈퍼스타즈 야구수첩'을 비롯해서 신문기사 몇 점과 팬북들을...
▲ 야구와 얽힌 이야기들 인천 야구와 얽힌 이야기를 헤아리면서 몇 가지를 끄집어 내어 다시 뒤적입니다. 1983년, 국민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야구에 죽고 미친' 저를 생각해서 선물해 준 '삼미슈퍼스타즈 야구수첩'을 비롯해서 신문기사 몇 점과 팬북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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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여름. 국민학교 2학년이었던 저는 인천 숭의야구장 3루 쪽 응원 자리에 앉아, 아니, 서 있었습니다. 우리 동네 안국아파트 2층에 사는 아저씨가 야구장에서 일하는 사람과 가까운 사이라 '올스타전 입장권'을 몇 장 얻어서 저한테 선물로 주셨고, 저와 동무들은 그 표를 들고 신나게 집부터 야구장까지 달려갔고, 두 시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가까스로 들어가서 수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있었습니다. 9회말이었다고 떠올립니다.

그때 '삼미 슈퍼스타즈' 투수 장명부가 타자로 나와서 방망이를 흔들고 있었고, 타자 장명부가 친 공은 내야에서 두 번 튀기다가 3루수한테 잡혀서 1루에서 죽습니다. 서서 손뼉치고 응원하던 사람들은 '와하하하' 하고 웃습니다. 살지 못하고 죽었는데도 웃고, 투수 아닌 타자로 나왔는데도 웃습니다. 1983년 한 해, 인천 야구 즐김이한테 투수 장명부 선수는 무엇을 해도 즐거웠고 기뻤습니다.

1986년 봄. 동네 아저씨가 얻어준 '지정석 입장표'를 이마에 짝 붙이고, 또 동네 아저씨는 저를 목마를 태워서 사람 물결로 바글바글한 야구장을 들어섭니다. 야구장 들머리에서 '청보 라면'을 하얀 비닐봉지에 컵라면과 봉지라면 하나씩 담아서 선물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표가 없어도 6회말이 끝나면 야구장 문을 열어주었기에, 우리들은 날이면 날마다 야구장에 놀러가서, 경기가 끝나고 돌아가는 사람들한테 나누어 주는 기념품을 받으려고 눈에 불을 켰습니다. '청보 핀토스' 성적이 너무 좋지 않으니 구단에서는 기념품을 더 많이 주려 했습니다. 경기에서 진다고 일찌감치 자리를 뜨는 걸 막으려고 꼭 경기가 다 끝나고 돌아나갈 때가 되어서 야구모자도 주고 야구공도 주곤 했습니다.

1983년 장명부에서, 1998년 인천연고구단 첫 우승까지

골목길에서 보이는 숭의동 109번지 언덕골목에서도 야구장 큰 등불이 잘 보였습니다. 그저 먼발치에서 소리만 듣고도 지금 전적이 어떠한가를 읽어내곤 했습니다.
▲ 골목길에서 보이는 숭의동 109번지 언덕골목에서도 야구장 큰 등불이 잘 보였습니다. 그저 먼발치에서 소리만 듣고도 지금 전적이 어떠한가를 읽어내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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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가을. 늘 꼴찌 둘레에서 허덕이는 인천 야구단 '태평양 돌핀스'는 1989년에 이어 '두 번째로' 플레이오프를 치렀습니다. 플레이오프에서 해태 타이거즈를 꺾고 올라온 한화 이글스를 3전 전승으로 이기고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나갑니다. 마지막 상대 타자를 잡고 선수들이 서로 달려들어 부둥켜안을 때에는, 경기장에서 지켜보던 저나 둘레 사람들이나 코끝이 찡하고 눈에는 눈물이 맺히면서 '연안부두' 노래를 부르며 축하했습니다.

한국시리즈에서 LG트윈스한테 4연패로 그지없이 밟히면서 무너졌지만, 3경기와 4경기는 조금도 질 경기가 아니었습니다. 아니, 질 수밖에 없는 경기였는지 모릅니다. 처음으로 큰 무대에 선 선수들이었기에, 언제나 들러리에 서서 멀거니 구경만 하며 손가락을 빨던 선수들이었기에, 투수 정민태와 정명원이 상대 타자 서용빈, 김재현, 유지현을 꽁꽁 틀어막고 있었음에도, 내야수가 두 차례 잇달아 실책을, 더구나 이틀 내리 같은 회에 같은 실책을 저지르면서 스스로 힘이 빠지니, 뒷 타자한테 뻥뻥 얻어맞고 고개를 숙이고 말았습니다.

9회말까지 뒤집기는커녕 따라갈 낌새조차 없었지만, 경기장에 빼곡히 들어차서 내내 앉지 못하고 서서 응원하던 많은 사람들은 '(LG가) 한 번쯤 져주면 안 돼?' 하는 말을 하면서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1998년 가을. 인천 연고 야구단으로 태평양을 이은 현대 유니콘스는 4년 전 돌핀스를 짓밟았던 LG트윈스를 맞이해 짜릿하게 우승컵을 듭니다. 서울에서 신문딸배를 하며 살던 무렵이라 경기장에 가지는 못하고, 어두컴컴한 지국에서 숨죽이며 경기를 지켜보다가 "이야!" 하고 소리를 지르다 "만세!" 하고 외쳤습니다. 삼미 슈퍼즈타즈-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에 이은 네 번째 이름, '현대 유니콘스'에 이르러, 인천 야구 즐김이는 처음으로 어깨를 펴고 '우리 인천도 (프로야구에서) 우승을 했다구!' 하면서 고개를 들게 됩니다.

그러나 눈물콧물과 웃음기쁨을 번갈아 베풀던 인천 야구단은, 현대 모기업이 야구단을 서울로 끌어올려 더 많은 관중을 끌어들이려는 꿈을 꾸면서 떠돌이 신세가 됩니다. 처음으로 어깨펴기를 선물해 준 현대 유니콘스가 인천을 버리고 수원을 거쳐서 서울로 가겠다고 외치는 한편, 전주에 뿌리를 둔 쌍방울 레이더스를 SK가 거두어들이면서 인천으로 연고를 옮겼습니다.

야구장과 옆 건물 야구장과 함께 허물리는 옆 건물 자리에는 50층이 넘는 주상복합 아파트를 세운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건물에 깃들던 사람들은, 또 숨결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 야구장과 옆 건물 야구장과 함께 허물리는 옆 건물 자리에는 50층이 넘는 주상복합 아파트를 세운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건물에 깃들던 사람들은, 또 숨결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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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해야 1만2000 사람만 들어올 수 있는(지정석이나 기자석을 빼면 1만1000) 조그마한 야구장으로는 아무리 성적이 잘 나와도 돈벌이가 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요. 인천에 뿌리를 둔 고등학교에서는 쓸 만한 어린 선수가 많이 나오기 힘드니, 서울에 뿌리를 둔 선수를 뽑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하루 아침에 임자를 잃게 된 숭의야구장은 갑자기 나이를 팍 먹으면서 주름살이 왕창 늘고 맙니다. 뒤따라, 숭의야구장 둘레로 늘 북적이고 바글대며 싱싱함이 넘쳐나던 골목가게와 술집과 여인숙 들은 불이 꺼집니다. 한달 두달 한 해 두 해가 흐르는 사이 조용히 문을 닫고 사라집니다. 경기에서 지든 이기든 "그려 애썼구만" 하면서 등을 토닥이며 소주잔을 쥐어 주는 포장마차도 모조리 떠나버립니다.

선수들 땀냄새와 야구 즐김이들 목소리를 먹고살던 야구장 둘레 키 큰 나무도 사람들 발길이 뜸해지면서 조용히 가랑잎만 낼 뿐, 우람한 그늘도 시원한 그늘도 그저 쓸모없게 되어 텅 빈 쓸쓸함만이 감돌고 맙니다.

두 야구장 먼지처럼 사라지고 만 숭의동야구장(위). 새로운 인천야구 역사를 쓰고 있는 문학동야구장(아래)
▲ 두 야구장 먼지처럼 사라지고 만 숭의동야구장(위). 새로운 인천야구 역사를 쓰고 있는 문학동야구장(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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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여 년 된 구장 마침내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2007년 가을. 인천시는 숭의동에 있는 공설운동장과 야구장을 허물기로 하고, 두 경기장을 허문 자리에 '축구 전용구장을 새로 지어서 인천 유나이티드 홈구장으로 쓴다'는 계획을 내놓습니다.

그러나, 인천시는 인천땅에 백 군데가 넘는 아파트 재개발을 밀어붙이고 있던 터라 여유가 없어서, 또 숭의야구장을 허문 뒤에 인천에서 치를 야구대회 대체구장이 마땅하지 않아서 2008년 1월에 허문다고 미루다가, 다시 올가을로 미뤄진 끝에, 2008년 9월에 높다란 쇠울타리를 세우고 야구장을 허물어 버립니다. 이에 앞서 2008년 5월에는 공설운동장을 허뭅니다.

1936년 문을 연 숭의야구장은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예 허물리고 만 인천 숭의야구장 옆길을 거닐며 높다란 쇠붙이 울타리를 올려다봅니다. 사진기를 들까 하다가 그만 떨굽니다. 차마 쇠붙이 울타리를 사진에 담지 못합니다. 그동안 야구장과 공설운동장 주차장과 둘레에서 (국민학교) 동무들하고 테니스공으로 야구를 하며 놀던 일, 뻔질나게 야구장으로 찾아와서 경기를 지켜보던 일, 야구장 앞 포장마차에서 어른들이 소주잔 부딪히면서 '어째 맨날 지고도 지겹지 않은지 또 지기만 하냐'는 푸념을 듣던 일, 표를 사려고 여러 시간 기다리며 땡볕을 받고 서 있던 일들이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가슴이 먹먹하고 속에서 울컥 하고 무언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래도 사진은 사진이기에, 쓰러져 죽은 숭의야구장도 한장 남겨야 할 노릇이지만, '내가 왜 죽은 야구장을 추억해야 하느냐'는 생각에 스스로 손사래를 칩니다. '나는 살아있는 야구장을 가까이에서 좋아하고 싶을' 뿐입니다.

사라진 야구장 야구장도 사라지고 공설운동장도 사라졌습니다. 하루아침에 허물어 버린 두 경기장이 섰던 자리는 휑뎅그렁한 빈터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체육회관 하나도 폭탄을 맞은 듯한 느낌으로 서 있긴 한데.
▲ 사라진 야구장 야구장도 사라지고 공설운동장도 사라졌습니다. 하루아침에 허물어 버린 두 경기장이 섰던 자리는 휑뎅그렁한 빈터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체육회관 하나도 폭탄을 맞은 듯한 느낌으로 서 있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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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6년) 동산고는 극적인 역전승으로 59년 우승 이후 7년 만에 다시 청룡기의 주인이 됐으며, 통산 5번째로 청룡기를 품에 안았다. 그날의 극적인 승부를 다룬 6월 17일자 조선일보(서울판) 체육면 기사에는 '안타 16개 난무, 만루 여섯 번, 병살 다섯 번'이라는 제목으로 당시의 박진감 넘치는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청룡기를 앞세워 당당히 개선했던 동산고 선수들은 밴드부를 앞세워 시가행진을 벌였으며, 연도에 늘어선 시민들은 '구도 인천의 명예를 되찾았다'며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  <박달화-뻬쓰볼 인천>(장원문화,2005) 129쪽

숭의야구장이 지금 자리에 터를 내리기 앞서는, '웃터골'에서 야구 경기가 벌어졌습니다. 웃터골 인천 야구는 '겉으로 내세운 독립운동'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일본을 꺾어 코를 납작 내리누르는 기쁨'을 맛보던, 일제강점기 때 인천땅 서민들한테 몇 안 되는 즐거움이었습니다.

웃터골에서 야구 경기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야구가 뭔지도 모르는 저잣거리 할머니마저 길바닥장사를 하루 쉬고 웃터골로 달려와서 야구를 지켜보느라 웃터골 둘레가 흰옷 입은 사람들로 빼곡했다지요. 그 웃터골이 고스란히 숭의동 언덕배기로 옮겨와서 경기장 터가 닦여, 한쪽은 축구도 하고 종합육상도 치르는 공설운동장이 되고, 다른 한쪽은 오로지 야구 한 가지만 즐기는 숭의야구장이 되었고요.

숭의야구장 자취 야구장 둘레 골목길 어디에서나 야구장 느낌을 맡으며 살았습니다. 야구장에서 터져나오는 소리, 야구장 불빛... 그리고 야구장을 둘러싼 울타리 거님길을 거닐면서 어릴 적을 떠올렸고요.
▲ 숭의야구장 자취 야구장 둘레 골목길 어디에서나 야구장 느낌을 맡으며 살았습니다. 야구장에서 터져나오는 소리, 야구장 불빛... 그리고 야구장을 둘러싼 울타리 거님길을 거닐면서 어릴 적을 떠올렸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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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부는 1920년 11월 2300여 평의 땅을 고르게 닦고 넓혀서 웃터골의 모습을 그라운드 형태로 만든 데 이어 다시 1926년에 공사비 1만 원을 들여 재확장함으로써 인천 최초의 공설운동장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런 웃터골은 그 터에 인천중학교가 들어서면서 시민운동장으로서의 기능을 멈추게 됐다. 따라서 또다른 운동장이 필요해지자 1934년 당시에는 외곽이라고 할 수 있는 도원동에 공설운동장이 건립되기 시작했고, 1936년에 50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야구장도 건립되었다. 그때부터 도원야구장(야구장은 '숭의동'에 있지만, 도원동과 맞닿아 있기도 해서 '숭의운동장'과 '도원야구장'이라는 이름 두 가지 모두 썼습니다/글쓴이) 시대가 열린 것이다. 도원야구장은 이후 인천에서 45회 전국체전이 열렸던 64년 보수돼 비로소 지금과 같은 형태를 보였고… <뻬쓰볼 인천> 184쪽"

1981년까지는 인천고와 동산고가 서로 옥신각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전국대회 우승을 거머쥐며 겨루던 고교야구가 기쁨을 선사했습니다(1980년대로 접어든 뒤로는 김경기·송지만·위재영·박진만·류현진 같은 선수들이 고교대회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1982년부터는 프로야구가 나오면서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훨씬 많았어도, '언젠가는 빛을 보겠지' 하고 믿는 사람들한테 아쉬움이 크기는 했어도, 야구도시 뿌리를 이어나갔습니다.

숭의야구장 들머리 표 파는 곳 구실은 일찌감치 끊어졌습니다. 바로 이 표 파는 곳에서 우리들은 몇 시간이고 땡볕에 드러난 채 기다리면서 200원짜리 어린이표를 끊고 들어가서 삼미와 청보를 응원하며 야구를 보았습니다.
▲ 숭의야구장 들머리 표 파는 곳 구실은 일찌감치 끊어졌습니다. 바로 이 표 파는 곳에서 우리들은 몇 시간이고 땡볕에 드러난 채 기다리면서 200원짜리 어린이표를 끊고 들어가서 삼미와 청보를 응원하며 야구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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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구장에 그만큼 역사가 깃들어 있습니다

한 도시에 야구장이 두 군데 있을 까닭은 없다고 할는지 모릅니다. 3만이 넘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다는 문학경기장이 있으니, 크기가 작고 오래된 숭의야구장은 허물어 버려도 된다고 여길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설운동장과 야구장을 묶어서 허문 자리에 '축구 전용 구장'을 짓는 계획을 세워서 밀어붙이고 있는 인천시입니다. 새로 지은 큰 야구장이 하나 있는 한편, 이 야구장 곁에는 2002년 월드컵을 치른 '문학월드컵경기장'이 있습니다.

이 경기장은 인천에 뿌리를 둔 '인천 유나이티드'가 잘 쓰고 있는데, 구태여 여섯 해 만에 새 경기장을 다시 지어서 이 축구단이 안방구장으로 쓰도록 할 까닭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인천시에 새로운 '축구 전용 구장'을 하나 더 지을 만한 돈이 있는지, 또 인천시가 지역예산을 축구장 새로 짓는 데에 쏟아부어도 되는지 궁금합니다. 오래된 야구장은 야구 경기를 치를 만하지 않다고 여기는지, 이제는 야구가 한물 가고 축구가 새물이 되었다고 여기는지 궁금합니다.

"…나는 일본을 좋아하지 않지만 일본의 힘이 어떤 것인지는 알 것 같다. 도시든 농촌이든 할 것 없이 곳곳마다 보존되어 있는 신사들, 그 신사 앞에서 당당하게 무엇인가를 기원하는 사람들. 그 풍경을 나는 미신이라고 비웃을 수 없었다. 보편적인 철학도 아닐 것이고 세계시민적인 기원도 없겠지만, 도시 한복판에서까지 잘 보존된 그 문화는 분명 일본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절대로 보편적일 수 없는 그 일본식 감수성에는 의외로 막강하면서도 독특한 힘이 들어 있고, 그 힘이야말로 일본을 세계로 드러내는 힘이 아니었을까. 그러니 88올림픽 때도 관광객들이 일본에 가서 돈을 더 많이 썼다고 하지 않는가. 여행객들은 자기 나라에 더 잘 갖춰져 있는 현대 문명의 흔적을 찾아 여행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여행자의 발길이 따라간 것은 동네마다 보존되어 있는 옛스럽기도 하고 종교적이기도 한 문화 흔적이었다. 일본이 버리지 않고 근대화를 소화해내는 힘으로 붙들고 간 것을 우리는 왜 버리고 왔을까?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왔는지를 생각하면 덜퍼덕 주저앉아 울고 싶다. 무엇보다도 홍수처럼 밀려오는 세계 문화를 우리 식으로 소화할 수 있는 그 어마어마한 능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고… <이주향-나는 만화책에서 철학을 본다>(명진출판, 2000) 55쪽"

야구장 앞 체육사 야구장 둘레에는 체육사가 꽤 있었는데, 문학야구장으로 프로구단이 옮겨 가면서, 국민학교 적 동무가 자기 아버지를 이어서 꾸리는 체육사 한 곳을 빼고는 모두 다른 데로 옮기거나 문을 닫았습니다.
▲ 야구장 앞 체육사 야구장 둘레에는 체육사가 꽤 있었는데, 문학야구장으로 프로구단이 옮겨 가면서, 국민학교 적 동무가 자기 아버지를 이어서 꾸리는 체육사 한 곳을 빼고는 모두 다른 데로 옮기거나 문을 닫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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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되었기에 오히려 숱한 이야기가 서립니다. 오랜 세월 뿌리내리고 있었기에 그야말로 많은 발자국이 남습니다. 오래도록 있었기에 사람들 마음 깊은 데까지 그리움과 애틋함이 배어 있어서, 먼 뒷날 고향을 찾아 돌아오면서 넉넉함과 포근함을 새삼 느낄 수 있습니다.

골목길은 오래되어서 뜻이 있지 않습니다. 오래도록 수많은 사람들 발길이 오갔기 때문에 뜻이 있습니다. 골목길 거님돌은 자주 갈아 주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아예 안 갈아 주어도 됩니다. 골목길에 깃든 사람들 스스로 손질하고 보듬고 매만지기 때문입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어른들뿐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줄 우리 동네라면, 시나 구에서 손질해 주러 나오지 않아도 골목사람 스스로 깨진 길을 손보고 울퉁불퉁한 길을 골라 놓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골목사람 스스로 비질을 하여 골목에 쓰레기나 빈 과자봉지 하나 굴러다니지 않도록 치우고, 수많은 꽃그릇을 올망졸망 예쁘장하게 꾸며 놓고 있듯 말이지요.

오래된 야구장이기에 오래된 야구장 둘레로는 오래된 가게가 두고두고 뿌리를 함께 내리면서 역사를 함께 쌓습니다. 따로 관광해설사나 관광안내원이 없어도, 동네사람 모두가 길안내를 하고 길동무가 되며 역사 교수가 되고 역사 학자가 됩니다. 글을 안 쓰고 책을 안 냈을 뿐, 몇 시간이고 줄줄줄 끝없는 눈물과 콧물과 웃음 담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습니다.

먼 데서 찾아온 손님이 있으면 부러 덤을 하나 얹어 줍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고향사람이 있으면 애써 덤을 하나 보태어 줍니다. 숭의야구장은, 또 숭의야구장 둘레 가게는, 또 숭의야구장을 둘러싸고 키낮은 지붕을 맞대어 놓고 살던 사람들은, 옹기종기 오순도순 동네 문화며 역사며 이야기며 삶이며 꾸려 왔습니다.

이제는 잘 자렴 이제는 두 번 다시 경기를 볼 수 없게 된 숭의야구장. 야구장에서 먹던 컵라면도, 사이다 한 병도, 야구장과 얽힌 모든 이야기들도 이제는 고이 잠들어야 할 듯합니다.
▲ 이제는 잘 자렴 이제는 두 번 다시 경기를 볼 수 없게 된 숭의야구장. 야구장에서 먹던 컵라면도, 사이다 한 병도, 야구장과 얽힌 모든 이야기들도 이제는 고이 잠들어야 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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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올릴 '축구 전용 구장'도 앞으로는 새 역사와 새 문화와 새 이야기를 빚어낼 수 있을 테지요. 다만, 이렇게 되자면 이참에 새로 짓는다는 축구장이 적어도 스무 해는 버티어야 하며, 쉰 해쯤은 넉넉히 축구장 둘레 동네와 어깨동무를 하면서 함께 살아내야 합니다. 빨리 짓고 빨리 허물고 또 빨리 짓고 또 빨리 허물어야 돈이 많이 빨리 돌면서 우리 살림살이가 나아지는지 모르는 일입니다만, 문화란 또 역사란 그리고 이야기란 빨리빨리 돌린다고 해서 쏟아지지 않습니다. 많이많이 몰아친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첨단시설과 편의시설과 부대시설, 여기에다가 50층이 넘는 아파트를 축구 전용 구장 곁에 지어 놓게 되면, 이와 같은 '축구장 + 주상복합 시설'은 이웃 일본이나 유럽에는 없는 현대 문명인지 몰라, 일본과 유럽에서 이 건물을 보고자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곳에 뿌리를 내리면서 숭의야구장과 숭의동 골목길에서 문화와 역사와 이야기를 엮어내던 사람들은 어찌하지요? 이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하지요? 이 사람들 문화와 역사와 이야기는 이제 마침표를 찍고 자취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져야 되는지요?

지금은 번드레하게 보이는 새 축구 전용 구장. 새 경기장을 짓고 나서 딱 열 해가 지난 뒤에는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근심스럽습니다. 아니, 무섭습니다. 삼미가 떠나고 청보가 들어선 자리에서 겨우 청보에 사랑을 심었더니 청보가 떠나고 태평양이 왔습니다. 태평양한테 다시 사랑을 보내었더니 어느 만큼 무르익을 무렵 태평양이 또 떠나고 현대가 왔습니다.

현대한테 깊이깊이 펼치던 사랑은 다시금 조각조각 깨지며 SK와 히어로즈로 나뉘었고, 이렇게 나뉜 사랑은 다시 하나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채기가 아물지 않는 가운데, 오랜 문화와 역사와 이야기가 담긴 만남터마저 사라지게 되는데, 새로 올라서는 만남터에 어렵사리 다시 사랑을 실었을 때, 또 몇해쯤 되어 다시금 아픈 헤어짐을 맛보아야 하는지 두렵습니다. 걱정이 한 가득입니다.

태평양 '돌고래(돌핀스)' 야구 일정 중학교 1학년까지는 야구일정표를 꼬박꼬박 챙기면서 경기장에 찾아갔습니다. 중학교 2학년부터는 밤 10시까지 강제자율학습에 매이느라, 그 뒤로 오래도록 야구장 나들이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 태평양 '돌고래(돌핀스)' 야구 일정 중학교 1학년까지는 야구일정표를 꼬박꼬박 챙기면서 경기장에 찾아갔습니다. 중학교 2학년부터는 밤 10시까지 강제자율학습에 매이느라, 그 뒤로 오래도록 야구장 나들이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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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열어젖히는 문화요 역사요 이야기라면 반갑고 고마울 텐데, 이제까지 이어온 문화와 역사와 이야기는 송두리째 내다 버리도록 한다면, 우리가 이제까지 꾸려온 삶이란 어떻게 될까요. 이제까지 우리 삶은 모두 부질없는 꿈이었는지, 깨야 할 꿈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문화를 버리라 하고, 역사를 버리라 하며, 이야기를 버리라 하는 돈벌이 정책 앞에서, "삼미 슈퍼스타즈 힘내요!" 하고 목이 쉬도록 외치던 어린아이는 그만 콩알만큼 작아지다가, 깨알만큼 쪼그라들다가, 먼지처럼 웅크리다가, 바람 휙 부는 결에 빙빙 날리다가, 포크레인 무한궤도에 짓이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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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 편집자로 일하면서, 전남 고흥에서 <사전 짓는 책숲집 '숲노래'>를 꾸립니다.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읽는 우리말 사전》《골목빛》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