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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가 내리자 국화가 피다

 

산골에 살면 저자나 도시에 사는 사람보다 아무래도 날씨에 민감하다. 이곳 강원 산골마을에 내려와 다섯 번째 맞는 가을이다. 그런데 올 가을은 누에가 뽕잎을 야금야금 먹듯이 스멀스멀 홍시처럼 익어가고 있다.

 

올해는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면서 태풍 한 번도 없었고, 가으내 날씨가 쾌청하다가 며칠 전에야 한 이틀 비를 조금 뿌렸다. 그래서 올 가을 과일들은 어느 해보다 열매도 충실하거니와 유난히 달다.

 

나는 이 가을 내도록 언저리 산수를 즐겼다. 날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들이 총천연색으로 물들어가는 오묘한 대자연의 변화무쌍한 조화에 짜릿한 감흥을 느꼈다.

 

 

밤새 된서리가 내려 호박잎이 다 시들어버렸다는 아내의 말을 내 글방에서 듣고는, 텃밭에 나가자 정말 "서리 맞은 호박잎"이란 속담처럼, 호박잎을 비롯한 고추와 가지 잎들이 초록빛을 완전히 잃고 있었다.

 

그런데 앞뜰 국화는 이제야 고고한 향기를 품으며 활짝 피고 있었다. 바야흐로 국향(菊香)이 그윽한 만추(晩秋)의 계절이다. 이 국화들은 아내가 봄부터 여기저기서 모종을 구해다가 지극 정성으로 길렀다. 덕분에 이 썰렁한 계절에 은은한 국화 향기가 온 집안을 덮고 있다.

 

지조와 절개의 상징 국화

 

요즘은 국화는 재배기술의 발달로 사철 쏟아져 나오지만 어찌 뜰에 핀 자연의 국화와 온실에 자란 인공의 국화와 견줄 수 있으랴. 예로부터 국화는 매화. 난초,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四君子)의 하나로, 시인 묵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온 고결함을 상징하는 꽃이다.

 

유교문화권에서는 남자에게는 지조를, 여자는 절개를 으뜸 덕목으로 여겼다. 온갖 시련에도 꺾이지 않고 마침내 꽃을 피우는 국화를 절개와 정절에 비유하여, 문인화의 소재로 많이 삼았다.

 

 

이즈음은 사시사철 국화가 핀다. 지금 세상에는 지조와 절개보다는 변절과 배신이 더 판을 친다. 이런 세상에, 된서리를 견디고 핀 국화를 예찬하는 내 글이 아마도 시대착오이리라. 하지만 전국 방방곡곡에 묻혀 사는 지사들과 이미 지조와 절개를 지키다가 고인이 선열들에게 이 글과 사진을 바친다. 일찍이 지조와 절개 높은 국화를 노래한 조선 영조 때 가객 이정보의 시조 한 수와 함께.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 다 지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네 홀로 피었느냐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태그:#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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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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