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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월) 맑음

 

바라나시에서 어제 오후 7시에 출발한 기차는 밤새 달려 오전 8시에 델리에 도착했다. 침대기차 이동도 처음과 달리 익숙해진다. 점차 인도 풍경에 무덤덤해지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 델리역 도착 후 마지막 여정으로 올드델리를 돌아보기 전에 짐 보관을 위해 일단 빠하르간지에 있는 하레라마를 들렀다. 샤워와 짐 보관을 위해 첫날 그렇게 처참하게 느껴지던 하레라마의 침실이 매우 아늑하게 느껴지는 느낌을 볼 때 그 며칠 사이에 적응해 버린 내 몸이 징그러울 정도이다.

 

일단 밤샘기차에 찌든 몸을 씻으며 추슬러 길을 나선다. 델리는 무굴제국의 수도였다. 궁전으로 쓰인 레드포트 및 이슬람 사원을 둘러보고 내친김에 세계 8위라는 델리대학도 방문했다. 선입견 때문인지 이곳 젊은이들이 모두 '범생'들로만 보인다.

 

오늘이 인도일정의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그간 잊혀졌던 피로가 물밀 듯이 쏟아진다. 하긴 편안한 패키지여행에 익숙해진 몸과 그간 술로 찌들은 심신을 이끌고 열악한 잠자리와 대중교통을 이용한 이동, 그리고 상당한 무게의 배낭을 졌으니 무리가 따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왜 돈을 들여가며 이런 고생을 하는 것일까.

 

이번 인도 여행은 상실과 천민자본주의에 젖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 전부터 인도에 대해 다분히 몽환적인 상상이 있었다. 수수께끼 같은 나라, 기네스북에 별 게 다 오르는 나라, 크기와 인구가 중국 다음인 나라, 신흥강국으로 떠오르는 나라. 하지만 실제 인도에 와서 보고 느끼면서 정상적인 사고를 마비시키는 여러 가지 일들을 지극히 자연스럽게 겪게 됐다.

 

아무데나 드러눕고 길바닥에서 나뭇잎에 밥을 올려 먹는 수많은 걸인과 장애인들 그리고 온갖 오물과 짐승들이 우글대는 곳, 하지만 뛰어난 문명을 가지고 있던 이들의 후손들. 지금도 카스트라는 신분제도를 법이 강제하지 않아도 유지하는 곳. 생과 사가 일상에 공존하는 곳. 그밖에 하나하나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문화적 충격이 나에게 왔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대단히 오만한 것이다. 아니 타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볼 뿐이다.

 

그간의 여행들이 호연지기를 키우는 것이었다면 이번 여행은 자기 성찰의 시간이었다.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있는 이 시기에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어떤 형태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좋은 잣대를 구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꾼 인도의 꿈은 뜨거운 여름에 식은땀이 나는 진지한 다큐멘터리였다.

 

지금 한국을 향한 기내에서 수천미터 상공에 있는 내 목숨이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갠지스에 몸을 담그고 신명을 다 바쳐 무언가를 믿는 그런 순수함을 되찾고 싶다. 원초적인 인간군상을 이번에 느꼈으니 다음은 순수자연을 만날 수 있는 아프리카를 생각해본다. 멀리 킬리만자로를 그리며 오늘도 "지금 행복하자"라는 다짐을 해본다.

 

성환이는 이번 여행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광명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인도, #가족여행, #베낭여행, #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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