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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서울시교육위원회가 국제중 추가 설립 동의안을 보류시켰을 때, 이부영 교육위원은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는 국제중 반대를 주장하며 단식을 했던 유일한 교육위원이다.

 

그러나 하루만에 서울시교육청은 "내년도 국제중 개교를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제중 추가 설립 문제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16일 만난 이부영 교육위원은 담담했다.

 

그는 "2009년 국제중 추가 설립은 없다"고 못박았다. 이 위원은 "교육위원들이 심사숙고해 만장일치로 내린 결론이다"며 "우리가 유치원생들도 아닌데, 스스로 내린 결론을 금방 번복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위원은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며 돌발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위원은 "서울에서 국제중 2개가 추가 설립되면 전국에 수십 개의 국제중이 생기게 된다"며 "그렇게 되면 초등학교 입시가 부활해 우리 교육은 회복 불능 상태로 빠지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어 이 위원은 "2010년에도 국제중 설립은 어려울 것이다"며 "필요하면 내년에도 국제중 설립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선거비 논란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에 대해 "전체 서울시 교육이 치욕스럽지 않게 본인이 현명하게 처신해야 한다"며 자진 사퇴를 우회적으로 촉구했다. 

 

이부영 위원은 1989년 전교조 운동이 처음 시작됐을 때 수석 부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전교조 합법화 1기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전교조 활동 때문에 30여 년의 교직생활 중 절반 가량을 해직 상태로 보냈다. 아래는 이부영 교육위원과의 일문일답이다.

 

"교육위 결정을 하루 만에 번복하라니..."

 

- 서울시교육청에서 국제중학교 설립을 다시 추진한다고 했다.

"교육위 결정이 내려지고 하루만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교육위 15일 본회의서 결정이 날 때 부교육감 이하 담당 실국장들이 모두 다 있었다.  교육위 의견을 존중한다고 하고선 태도가 바뀌다니…."

 

- 교육위 결정이 번복될 수도 있나. 

"원론적으로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러나 상식으로 이야기하면 1%의 가능성도 있으면 안 된다.

 

적어도 국제중 논의가 시작되고 나서 교육위원들도 한 달 반 이상을 이 문제로 심사숙고하고 나름대로 여론수렴을 하고 학교 실사를 거쳤으며, 영훈·대원학원 이사장 불러서 점검하지 않았나. 그런 결론을 불과 하루 만에 번복하라는 것인데, 있을 수 없다."

 

- 교육청이 갑자기 왜 그런 주장 한다고 보나.

"국제중 문제는 학원의 이해관계는 물론, 학부모들도 관련된 사안이다. 국제중에 찬성하는 단체들이 압박을 가했을 수도 있다. 보수 언론들도 그런 논조로 보도를 했고. 청와대를 비롯해 정치권 쪽의 이야기가 전달된 게 아닌가 싶다."

 

- 2010년에 국제중 승인을 얻기 위한 일종의 '밑밥 뿌리기'는 아닌가. 

"시교육청이 그런 생각을 할만큼 정치력 있는 집단은 아닌 것 같다. 많은 국민들이 국제중 추가 설립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결정이라 시교육청이 많이 난감할 것이다. 그래서 교육위에게 한 번 더 논의해 달라는 제스처를 취한 것일 수도 있다."

 

- 15일 회의 때, 교육위원들 분위기는 어땠나.

"일부는 국제중 설립에 찬성하는 견해를 냈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표결 없이 전원 합의로 갔으면 좋겠다고 합의를 한 상태였다. 교육위원 대부분이 아직 준비가 부족하다는 데 동의했다. 그런 선에서 보류하자고 한 것이다. 물론 안건을 그냥 두고 1년 정도 더 준비 하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결론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가결·부결·보류 세 가지로, 조건부 동의 같은 건 없다."

 

"서울에 국제중 생기면, 전국에 수십 개 생긴다"

 

- 국제중 반대를 주장하며 단식까지 했다. 

"물론 힘들었지만 국제중 반대는 매우 절박한 문제였다. 교육위원으로서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현하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할 수 있는 일은 단식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반전시킬 필요가 있었다."

 

- 뭐가 그렇게 절박했다는 것인가.

"의무교육 단계인 중학교 과정에서 특별한 아이들을 뽑아서 교육하는 게 교육원리에 맞지 않다. 초중고가 나뉘어 있듯이 성장과 발달 단계에 맞춰 교육하는 게 맞다. 그리고 영어로 수업 공부하는 게 과연 특성화인가. 영어가 어째서 특성화 대상인가. 영어는 예체능과 달리 그냥 조금 더 했느냐 마느냐에 따라 실력이 나뉠 뿐이다. 그리고 영어로 수업하는 학교가 국제중? 과연 어느 나라에서 특별한 아이들을 뽑아서 외국어 교육을 시키나. 

 

서울에 국제중 2개를 설립하는 게 무슨 큰 대수냐고 하는데, 서울에 2개 생기면 1·2년 안에 전국에 수십 개 생긴다. 각 시도 교육감들 너도나도 국제중 만들겠다고 나설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는 뉴타운 공약이 활개를 치지 않았나. 그리고 이전 지자체 선거에서는 후보들이 전부 영어마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국제중학교가 전국적으로 생기면 결국 중학교 무시험 제도는 없어지고 완전히 시험제로 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치원·초등학교 때부터 극심한 입시 지옥으로 가게 되고, 우리 교육은 회복 불능으로 망가진다."

 

- 자식들을 국제중에 보내고 싶은 학부모들의 욕망이 많은 건 사실 아닌가.

"수요에 맞추서 공급을 늘린다? 그럼 다들 서울대 가고 싶어 하는데 왜 더 안 만드나. 국제중 2개로 수요가 다 채워질까? 1년에 우리 학생들이 약 2만명 정도가 유학을 간다. 그 수요 다 채우려면 국제중을 약 200개 만들어야 한다. 내가 교육감이면 '그런 요구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겠다. 그건 결국 자기 철학이 없다는 이야기다."

 

- 국제중 찬성하는 사람들은 글로벌 인재를 키우자고 주장하는데.

"영어 잘하는 게 무슨 인재인가. 미국·영국 사람은 다 인재인가? 아인슈타인도 우리나라에 오면 서울대 못 간다는 말이 있지 않나. 글로벌 인재가 뭔지 개념 규정부터 해야 한다."

 

"공 교육감 선거비 논란은 서울 교육 전체의 치욕"

 

- 교육위원으로서 공정택 교육감의 선거비 논란을 어떻게 보고 있나.

"교육위원이 아닌 시민의 입장에서만 봐도 사교육계에서 돈을 받아 선거를 치른 건 문제가 있다. 물론 한 개인이 선거비 30억원을 구하는 건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란 게 있다. 국회의원들도 선거 과정의 문제로 구속도 되고 배지도 빼앗기지 않나. 더구나 정치인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교육감으로서 아주 부적절했다."

 

- 공 교육감이 자진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공 교육감은 평생 교직에 있었다. 사법처리 대상자로서 물러나는 건 개인의 불명예이자, 서울 교육 전체의 치욕이다. 그건 본인이 더 잘 알 것이다. 그런 치욕스런 상황이 오기 전에 현명한 판단을 했으면 좋겠다."

 

- 이명박 정부 들어 교육 문제가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애·무기력감·분노·서글픔 등이 종합된 감정이 든다. 헌법 31조는 교육의 중립을 못 박고 있다. 정권이 어떻게 바뀌든 교육은 전문가들에 의해서 중립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교육 정책을 하루아침에 틀어버리면 그게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나.  상당히 허탈하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대통령이 막강한 권한이 있어도 절차라는 게 있지 않나. 전문가 의견 듣고, 국민들이 정책을 예측하고 수용할 시간을 충분히 줘야 한다. 그런데 교육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 완전히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입만 열면 글로벌·선진국 이야기하는데 아주 천박하다."

 

- 그래도 정책 결정은 권력을 쥔 쪽이 할 수밖에 없지 않나.

"국가가 촛불소녀들 민주의식의 몇 십분의 일도 못 따라간다. 그러나 이렇게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건 결국 고장나게 돼있다. 그건 역사가 증명한다. 영국이나 미국에서 신자유주의적 교육 정책은 이미 다 성과 없이 끝났다. 근데 이제 와서 새로운 것인 양 이야기 하는데…(웃음)."

 

- 전교조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왔다. 최근 전교조가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고 있는데. 

"좀 억울한 생각이 든다. 과거 전교조 선생들은 교육적 소신을 갖고 해직을 감수하면서 전교조 활동을 했다. 시대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었다고 그 평가는 달라질 수는 없다.

 

다만, 합법화 이후에 많은 기대를 했던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준 건 맞다. 합법화 10년 만에 좋은 평가가 많이 깎였다. 그런 점에서 반성하고 새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어쨌든 내년에 다시 국제중 논란이 일 텐데.

"다시 싸울 필요가 있으면 싸울 생각이다. 하지만 2010년 개교도 추진되기 어렵다고 본다. 한번 하겠다고 달려들었다가 이번에 꺾인 것 아닌가. 그러면 쉬었다 가야 한다. 마라톤 선수 봐라. 한번 엎어지면 못 일어난다. 공정택 고육감 1년 조금 넘게 임기가 남았는데, 다음 책임자에게 넘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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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부영, #국제중, #공정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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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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