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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포 앞에서 오가는 행인을 상대로 신용카드 신규 회원 모집에 열중인 한 은행의 직원들.
 점포 앞에서 오가는 행인을 상대로 신용카드 신규 회원 모집에 열중인 한 은행의 직원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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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소비 생활을 신용카드로 다 해결해요."

부동산 회사에 다니는 장위안(24·여)은 모든 상품 구매를 신용카드로 결제한다. TV·컴퓨터·MP3플레이어·옷 등 최근 그가 구입한 물건은 모두 카드를 긁어 샀다. 장이 소지하고 있는 카드만 5장. 주로 이용하는 공상은행 등 3장의 은행 발급카드와 2장의 카드사 신용카드가 지갑 속을 채우고 있다.

장은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거래하는 은행과 회사가 주거래하는 은행에서 발급한 카드만 있었다"면서 "올 들어 길거리에서 회원을 모집하는 카드까지 발급받다 보니 어느덧 5장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쇼핑하는 상점에서 적립 포인트도 쌓고 각종 가격 할인도 받을 수 있어 신용카드를 즐겨 사용한다"고 말했다.

쓰촨외국어대학에 다니는 천즈린(22·여)도 열렬한 신용카드 애호가다. 천이 사용하는 초상은행의 '영 카드'와 건설은행의 '롱 카드'는 대학생에게만 발급되는 카드. 중국에서 2004년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대학생 신용카드는 카드당 최대 사용한도액이 3000위안(한화 약 56만원)으로 웬만한 노동자의 평균 월급을 웃돈다.

천은 "신용카드 사용으로 항공사 마일리지 적립이 늘어나 수십 위안의 지출도 카드로 결제한다"면서 "당장 돈이 없어도 사고 싶은 물건을 바로 구입할 수 있는 게 신용카드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변에 신용카드를 소지한 학우들이 적지 않다"면서 "회원 가입이 쉽고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캠퍼스에 카드족이 급속히 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술집에서 여흥과 향락을 즐기는 중국 젊은이들. 오늘날 중국 20대는 서구 문화의 영향으로 자극적인 향락 문화를 추구한다.
 한 술집에서 여흥과 향락을 즐기는 중국 젊은이들. 오늘날 중국 20대는 서구 문화의 영향으로 자극적인 향락 문화를 추구한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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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적발급량 1억4천만 장... 소비문화 바뀐다

최근 중국에서는 현금 대신에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소비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3월 중국 신용카드 발급량은 1억 장을 돌파했다. 신용카드 소비액은 8240억 위안(약 152조4400억원)으로 전체 소매매출액의 26%를 차지했다. 6월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올 한해 4500만 장의 신용카드가 신규 발급되고 누적 발급량이 1억4000만 장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개혁개방 이전 그 존재조차 낯설었던 신용카드가 오늘날 중국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비 결제수단으로 정착했다.

중국에서 신용카드가 발행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 당시 은행에서 발급되는 카드는 예금을 담보로 사용액이 지불되는 '직불카드'로, 국제적인 개념의 신용카드와는 거리가 멀었다. 초창기 예금 인출과 계좌 이체에 그쳤던 카드는 상점에서 쇼핑 결제도 가능해졌지만 일부 은행만 취급하고 가맹점도 한정됐다.

중국 신용카드 시장이 급팽창한 것은 개인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정책 때문이다. 2001년 중국정부는 신용카드 시장을 키우기 위해 은행연합체제를 구축했다. 2002년에는 일반 상점이 은행연합카드를 취급할 수 있는 공동 단말기시스템을 갖추었다.

2002년 3월 중국 18개 상업은행은 결제센터를 통합하여 ATM 및 단말기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중국은행연합결제회사 '인롄'을 설립했다. 2005년 8월에는 전국적인 개인신용정보기초네트워크가 구축되면서 중국 신용카드 시장은 도약의 날개를 달았다.

중국 정부의 노력에 힘입어 신용카드의 전국 소매총액 이용비중은 2000년 2.1%에서 2005년 10%까지 상승했다. 베이징·상하이 등 연해 대도시에서는 이용비율이 30%를 넘으면서 선진국 평균수준인 30~50%에 근접했다. 직불카드를 위시한 카드 발급량은 지난 3월말까지 15억9000만 장으로 전년 동기대비 29%나 증가했다. 중국정부는 올해 신용카드를 통한 소비가 전체 소매매출에서 30%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과소비와 충동구매로 인해 카드노예가 되어 짓눌려 사는 중국 대학생을 풍자한 만평.
 과소비와 충동구매로 인해 카드노예가 되어 짓눌려 사는 중국 대학생을 풍자한 만평.
ⓒ 중국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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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 없이 내일의 돈을 쓰는 중국 젊은이들

작년 말 중국에서 각종 금융기관이 발행한 신용카드는 180여종에 달한다. 신용카드 회원수가 가장 많은 상하이에서는 1인당 평균 1.8장의 카드를 소지하고 있다. 중국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가맹점은 120만 개를 넘어섰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외국 은행의 노력도 치열해 조만간 미국 씨티은행, 영국 HSBC은행·스탠더드차터드은행, 홍콩 동아은행·항셍은행 등 5개 은행이 신용카드 사업을 개시할 예정이다.

신용카드가 널리 보급되면서 중국인의 소비 행태가 바뀌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AC 닐슨 차이나가 작년 하반기 중국 도시민 1만1500명의 소비성향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중국인은 월 소득 중 절반을 신용카드 결제에 쏟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카드를 주로 사용하는 연령층은 20·30대 젊은층으로, 전체 카드 소지자의 80%를 차지했다. AC 닐슨 차이나는 "만약을 대비해 저축하던 중국인이 오늘날 저축과 멀어지고 있다"면서 "중국 젊은이들은 오늘 필요하면 '내일의 돈'을 주저없이 쓴다"고 분석했다.

80후 세대를 중심으로 한 중국 젊은층이 신용카드 소비에 몰두하면서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신용카드를 이용한 과소비와 충동구매로 카드빚에 눌려 사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는 것.

지난 5월 한 취업사이트가 직장인 6000여 명을 대상으로 신용카드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응답자의 80%가 신용카드를 소지하고 있는데, 그 중 40%는 과소비에 억눌린 '카드노예'로 살거나 매달 돌려막기로 카드 덫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젊은이들이 신용카드의 덫에 빠지는 데에는 과도한 소비 성향과 향락 문화에서 비롯된다. 오늘날 중국 20대는 경제성장의 혜택을 받으며 풍족한 생활환경에서 자라났다. 부모와 함께 살면서 내 집 마련 부담이 적고 서구문화의 영향으로 명품 선호 심리가 강해 분수 넘치는 소비에 길들여져 있다. 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해 자극적인 향락 생활에 적극 몰두해 충동적인 소비 지출도 빈번하다. 중국 내 신용카드 확산은 이러한 젊은층의 그릇된 소비문화에 불을 지핀 셈이다.

지갑 속에 가득 찬 신용카드.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과 허술한 리스크 관리로 신용카드 대란 가능성이 중국을 엄습하고 있다.
 지갑 속에 가득 찬 신용카드.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과 허술한 리스크 관리로 신용카드 대란 가능성이 중국을 엄습하고 있다.
ⓒ 주저우신문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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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노예 양산하는 신용카드의 무서운 덫

신용카드가 중국 젊은이들을 카드노예의 수렁에 빠뜨리고 있지만, 중국 은행들은 새 고객 유치를 위해 길거리 마케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 상업은행들은 포인트와 마일리지 적립, 협력사를 통한 각종 혜택, 다양한 선물 공세 등으로 신규 신용카드 회원을 적극 모집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은행 점포뿐만 아니라 할인매장, 대형 식당, 대학 캠퍼스, 공항 등까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있다.

리징징(가명·여)은 은행의 무차별적인 마케팅에 신용카드를 발급받았다가 카드노예가 됐다. 대학 4학년인 그는 작년 9월 공항에서 신분증과 탑승권만 있으면 신용카드를 발급해 주는 모 은행 이벤트에 신청해 카드 회원이 됐다.

올 초 '놀라운' 소비 실적으로 주 이용 은행으로부터 카드 한 장을 더 발급받은 리는 지금 카드 연체금을 갚기 위해 룸살롱에 나가는 신세로 전락했다. 리는 "한 달에 카드 2장으로 3000~4000위안 이상 소비하다 보니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으로는 도저히 빚을 갚기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천즈린은 "카드로 현금을 대출받아 다른 카드빚을 갚는 돌려막기로 근근이 지내는 학우가 늘고 있다"면서 "규정된 날에 카드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매일 5%의 연체금을 물어야 하기에 그 스트레스는 심각하다"고 말했다. 초상은행의 한 직원은 "햇병아리 대학생이든 갓 입사한 직장인이든 부모가 집이 있고 신분만 확실하면 신용카드를 발급해 준다"고 밝혔다.

그는 "신용카드 발급과 관리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타 은행과의 경쟁과 위로부터 떨어지는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길거리 회원모집은 더욱 치열할 것"이라고 말했다.

8월 10일 미국 <뉴욕타임스>는 "중국을 비롯한 신흥 경제성장국에서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과 사용이 늘고 있다"면서 그로 인한 금융위기 가능성을 경고했다. <뉴욕타임스>는 "신용카드가 준 편리함의 축복은 빚의 저주로 변하고 있다"면서 "적절한 규제 대책이 없을 경우 한국과 같은 신용카드 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도했다.

IMF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 소비를 진작하기 위해 길거리에서 주부·대학생·무직자에게까지 신용카드를 남발했던 한국처럼, 무차별적인 길거리 회원모집과 늘어나는 카드노예는 중국을 신용카드의 덫에 빠뜨리는 전조가 되고 있다.


태그:#카드대란, #신용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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