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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년 전, 정확히 2006년 5월 6일, 엄마에게 미니홈피를 만들어 드렸습니다.
 

 

엄마가 직접 고른 '햇살가득정원'이 해사하게 펼쳐지고, 엄마가 직접 선곡한 마로니에의 '칵테일사랑'이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그래도 나름 갖출 건 다 갖춘 미니홈피입니다. "미니홈피 메뉴탭 다 열어놓는 거 요즘 트렌드 아니야-" 가르쳐 가며 다이어리, 동영상, 사진첩, 방명록만 열어드렸죠.

 

있으나마나한 엄마의 미니홈피는, 방명록만이 제기능을… 제기능이라고 하긴 좀 그렇네요, 거의 제 일기장으로 쓰였거든요. 힘들 때마다 엄마의 방명록에 가서 하소연을 늘어 놓았습니다. 엄마에게 말할 순 없지만, 어차피 답글도 달리지 않겠지만 엄마에게 말한 것처럼, 답을 얻은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지곤 했어요.

 

(사진의 댓글은 아마 엄마 이름으로 오빠가 달아줬을 거라 80% 확신합니다.)

 

요즈음, 스물 두 살의 딸과 스물 다섯의 아들을 타지에 보낸 쉰 둘의 엄마는 어쩐지 많이 편안해 보여 마음이 놓입니다. 열아홉 재수생 딸과 스물 둘 군인 아들을 뒀을 때의 엄마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파오곤 하거든요.

 

엊그제 서울집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받자마자 **가?(지금 전화받으신 분이 **씨입니까?)하더니 대뜸, (색깔 입힌 글씨를 읽으실 땐, 맞춤법과 표준어는 잠시 잊어주세요. 구어체 표현은 감칠맛이 생명이기에 바른말 고운말은 접어두도록 하겠습니다.)

 

야야. 내. 싸이 하나도 모르겄다. 어찌 하는거고.

갈챠주도 않고 에따 만들어노코 가믄 땡이가.

(얘야, 싸이월드라는 거 어떻게 하는건지 하나도 모르겠구나.

가르쳐 주지도 않고 그저 만들어 주고 가 버리면 그걸로 끝이니.)

 

만들어 드린 지가 2년하고도 5개월이 훌쩍 지난 시점에서 저도 할 말은 많았지만 이제 슬슬 엄마에게 져 주는 연습을 할 때인 것 같아,

 

응 알았어 내 나중에 전화할테니까 네이트온 들오소.

그기 뭐고. 거를 와?

(네이트온이 뭔데, 거길 왜 들어가?)

 

오빠 데스크탑 놓고 갔잖여. 그거 키면 바로 알아서 뜰겨.

거따가, 알제? 엄마싸이 아이디랑 비번 안 있나, 그거 치믄 된다.

간나새끼, 싸이 갈챠달라니까 별기를 다 들어오라카노. 아라따.

(원 녀석도. 싸이 가르쳐달라는데 네이트온은 왜 들어오라는 거니, 어쨌든 그렇게 하마.)

 

보통은 전라도 말을 쓰는데, 부산 출신인 엄마와 얘기할 땐 경상도 말과 전라도 말이 섞여 나옵니다. 그러다보니 전라도 말과 경상도 말을 구분하지 못할 때도 많지요.

 

아무튼 그래서, 어제 드디어 네이트온에서 '모자녀' 상봉이 이뤄졌습니다. 오빠를 못 가게 붙잡아두고 엄마에게 아들 왔다고 문자를 넣으니, 바로 들어오더라구요. 엄마를 초대해 오빠와 엄마가 얘기를 하게 해 주고 저는 제 일을 보고 있었습니다. 한참 후에 가 보니 오빠는 나가 버리고 엄마 혼자 열심히 대화창을 띄워놓고, 다시 읽어보고, 오빠가 보내달라는 물품리스트를 적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들한테 할 얘기 다 했느냐고 물었더니 오빠가 엄마방명록에 주소를 남기고 갔다는데 혹시 못 찾으면 어쩌나 걱정을 하십니다.

 

 

이거 엄마가 매번 손으로 쓰기 어려우니까,

한글2007에 붙여넣고 큰 글씨로 편집해서 두고두고 쓰소.

 

못하신답니다… 워드프로세서 2급 자격을 갖추신 분이.

 

그럼 그건 내 해 주고, 자 그럼 인제 싸이 갈챠주께. 엄마홈피 함 들어가보소

야야 됐다 내 싸이 안 할란다

뭐라카노 또 한 2년 있다가 이상한 소리 할라 글제.

아니 내 안 할란다 내 네이트온 할란다.

 

그렇습니다. 엄마의 목적은, '중국 간 아들 물품조달 및 수시접선'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 원하시는 아들과의 수시접선이 원활히 이뤄지기엔, 접속속도에 비해 타자속도가 너무 떨어집니다.(검정-엄마/초록-본인)

 

엄마 내 나이 때 사무실에서 타자쳤담서 뭐여, 왜 이리 느려.

 

가스나야

 

그기

 

삼십년

 

전이다

 

문디가스나

 

천천히 천천히 세글자 다섯글자씩, 다섯번에 걸쳐 타박을 합니다.

 

그 삼십년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알기에, 하지만 엄마에겐 그 삼십년이 어땠을지 가늠할 수 없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가 뿔내기 전에, 내가 엄마 휴가 보내줄게."

 

드라마 보다가 무심코 툭 던진 뻔뻔한 약속을 언제쯤 지킬 수 있을지.

 

엄마.

엄마의 삼십년이 잃어버린 삼십년은 아니지?

그동안 잃어버린 거, 내가 다 찾아줄게. 앞으로 삼십년동안.

 


태그:#엄마, #싸이월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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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필력, 아니고 날림필체. 모두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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