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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월 11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에서 제63차 IMF/WB 연차총회에 앞서 열린 G-20회의에 참석, 발언을 하고 있다.
▲ 발언하고 있는 강만수 장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월 11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에서 제63차 IMF/WB 연차총회에 앞서 열린 G-20회의에 참석, 발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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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위기 상황이라고 하지만, 기업들이나 시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80년대식 사고방식으로 (경제 운용을)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난 10일 만난 한 대기업 임원은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요즘 기업들은 이미 IMF 시대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다"면서 "이제 정말 추운 겨울이 올 텐데 앞이 깜깜하다"고 말했다.

최근 환율폭등에 따른 외환위기 가능성에 대해선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그는 "정부가 기업들에 전화해서 달러를 내놔라, 마라 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도대체 환율이 왜 저렇게 뛰고 있는지, 누가, 무엇 때문인지 아직도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눈 10일 원·달러 환율은 한때 1500선을 위협하며 폭등하기도 했다. 이날 환율 변동액은 하룻동안 200원을 넘나들며 불안한 양상을 보였다. 결국 일부 대기업들이 달러를 내다 팔면서 폭등세가 꺾였다.

13일 외환시장도 원·달러 환율이 83원 넘게 떨어졌다가, 결국 지난 10일보다 44원 떨어진 1240원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시장에선 정부가 기업과 금융권을 상대로 강력한 안정화 조치를 취하면서, 환율이 떨어지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정부의 '신(新)관치'에 따른 시장 안정화 조치가 얼마나 약발이 먹힐지 미지수다. 이미 금융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법보다는 단순 임기응변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어느 대기업 임원의 하소연 "도대체 위기를 누가 키웠는데..."

기자와 만난 한 대기업 임원은 정부의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에 큰 실망감을 드러냈다. 물론 그의 이야기는 사견임을 전제로 한 말이다. 하지만, '가장 친(親) 재벌적인' 정부에 대한 국내 재벌그룹 한 고위 임원의 인식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는 "대통령과 경제수장이 나서서 기업들이 달러 사재기를 하고 있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면서 "80년대 사고방식으로 아직도 기업을 바라보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11년 전 외환위기를 경험하면서, 기업과 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엄청난 구조조정을 감수해 왔다. 이를 통해 국내·외적으로 기업이나 금융권 모두 튼튼한 재무구조 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는 "강 장관이나 대통령까지 기업들의 재무구조를 들면서 경제위기는 없다고 해놓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들에겐 달러를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고 있다"면서 "하루아침에 대기업들이 '환투기꾼'으로 몰리는데, 좋아할 기업인이 누가 있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대기업의 한 간부는 "요즘 같은 금융위기 상황에선 기업들도 달러가 됐든 현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면서 "IMF때 멀쩡한 기업들이 도산한 것을 본 기업들 입장에선 어찌보면 당연한 자구책 아닌가"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포스코가 달러를 대거 내다 판 이유

대부분 기업들이 유동성 확보에 매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 일부에선 삼성전자와 포스코 등 일부 기업의 달러 매각을 두고 여러 말들이 터져 나왔다. 사진은 서울 중구 태평로의 삼성 본관.
 대부분 기업들이 유동성 확보에 매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 일부에선 삼성전자와 포스코 등 일부 기업의 달러 매각을 두고 여러 말들이 터져 나왔다. 사진은 서울 중구 태평로의 삼성 본관.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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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외환시장에 대거 달러를 내다 판 기업들 이름 가운데, 그의 회사는 눈에 띄지 않았다. 물론 삼성전자와 포스코 등 일부 대기업처럼 수억 달러가 넘는 돈은 아니더라도 일부 달러를 내다 팔 수는 있다.

하지만 대부분 기업들은 온통 유동성 확보에 매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 일부에선 삼성전자와 포스코 등 일부 기업의 달러 매각을 두고 여러 말들이 터져 나왔다.

올해 미국의 대형 반도체업체를 현금으로 인수하겠다고 선언한 삼성전자 입장에선 1달러도 아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난 9일과 10일 이틀에 걸쳐, 외환시장에 10억달러에 가까운 돈을 내다 팔았다.

물론 삼성전자가 거액의 달러를 시장에 내다 팔던 9일엔 삼성경제연구소가 향후 원·달러 환율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보고서가 언론에 공개됐다. 또 10일엔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삼성재판 2심 항고심이 있었다.

포스코는 철강 원자재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환율 폭등에 따른 피해가 큰 기업으로 꼽혀왔다. 포스코 역시 지난 10일 5억달러 규모의 달러를 내다 팔았다. 포스코는 GS와 함께 13일 올해 최대의 기업 인수합병으로 꼽히는 대우조선해양의 본 입찰에 참가했다. 대우조선해양의 매각은 정부 소유의 산업은행에서 주관하고 있다.

한 증권회사의 고위임원은 "대통령까지 나서 기업을 상대로 환투기 경고를 한 것도 그렇지만, 곧장 다음날 기업들이 거액의 달러를 시장에 내다팔고 이것이 공개된 것도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이 될 수도 있지만, 요즘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는 기업들 입장에선 여러가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한 쪽에선 위기 없다고 해놓고, 다른 쪽에선 국가부도 때나 쓰는 정책 내놔

이번엔 금융권의 한 임원. 그 역시 이름이나 소속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최근 기자와 통화에서 "정부 쪽에서 우리를 모아놓고, 언론을 상대로 부정적인 말은 하지 말고 정부와 소통하라는 엄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마치 우리가 시장의 불안을 부추기는 사람들처럼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썩 내키지 않았다"면서 "주변에선 '주객전도'라는 말이 딱 맞다'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그 역시 "최근의 위기 상황이 긴박하고, 정부든 기업이든 함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맞다"면서 "하지만, 정부의 책임자가 시장을 상대로 너무 말을 쉽게 하면서 오히려 불안만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쪽에선 '문제 없다' '안심하라'고 하면서, 또 다른 쪽에선 국가부도 상태에서나 쓸 수 있는 정책을 쓰는 등 정책 당국의 일관성 없는 모습이 오히려 불안과 위기를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9월 강만수 장관이 시중 은행장을 불러 해외 자산 매각을 요구한 것이나, 최근엔 아예 기업과 은행, 개인을 상대로 달러 매매 내역까지 조사에 나설 방침을 세웠다. 이 발언 때문에 환율시장은 요동쳤고, '한국 경제의 위기'라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

강 장관은 지난 13일에는 미국 워싱턴에서 "10월 말까지 시장의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은행은 어떤 경우에라도 은행의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일어나지 않도록 만기 채무상환에 필요한 자금에 대해선 외환 보유액에서 지원해 줄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민간 은행들 스스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외국에서 빌려온 돈에 문제가 발생하면, 국민 세금으로 해결해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수도 있고, 한편으론 그만큼 현재의 한국 금융 상황이 위험하다는 것을 장관 스스로 인정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센터 소장(한성대 교수)는 "이런 발언은 장관 스스로 국내 금융 상황이 사실상 디폴트 상황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라며 "강 장관은 스스로 그동안 '문제 없다'고 그렇게 자신해 놓고, 내놓는 정책을 보면 아주 위급한 상황에서나 볼수 있는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연일 롤러코스터 장세를 연출하는 원·달러 환율보다 더 불안한 게 MB식 환율 대처법이라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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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금융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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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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