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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명랑히어로>(매주 토요일 밤 11시45분~)는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한 프로그램이었다. 왠지 시사와는 거리가 멀 것만 같은 연예인들이 나와서, '영어몰입교육', '물가상승'과 같은 시사문제에 대해 다소 거칠지만 솔직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말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신선했다. 그들의 이야기가 국민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 속이 시원해질 때도 많았다.

 

그런데 <명랑히어로>가 지난 추석부터 <명랑히어로 두 번 살다>로 이름을 바꾸고 포맷도 완전히 바꿨다. 이제 더 이상 <명랑히어로>는 시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에 '가상 장례식'이 들어왔다. 매주 한 명의 게스트가 가상장례식을 치르면 조문(?)을 온 지인들이 평소 고인(?)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들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경규, 김구라, 신정환이 가상장례식을 치른 후, 환생했고 이번 주에는 이하늘이 가상장례식을 치를 예정이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과거와 현재의 나를 되돌아보고 미래의 나를 재설계해 보는 인생 중간점검 프로젝트'라는 기획의도는 좋다. '유서 써보기'를 하다가 어찌나 후회되는 일이 많은지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한 친구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인생 중간점검'이라는 측면에서 '내가 만약 죽게 된다면'이라고 가정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막말' 오가는 그들의 '가상 장례식'

 

 

문제는 <명랑히어로 두 번 살다>에서 나타나는 가상 장례식의 모습이 '참을 수 없이 가볍다'는 데 있다. 고인이 된 게스트가 '천상의 방'에 가면, 평소 게스트와 친분이 있었던 지인들이 찾아와 7명의 MC들과 함께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이 때 고인에 대한 이야기는 험담이 주를 이룬다. 한 마디로 '뒷담화'를 하는 것이다.

 

지난 9월 27일 방송된 신정환 편을 보면, 신정환과 절친한 고영욱은 끊임없이 신정환의 과거에 대해 폭로하는가 하면, "잘 죽었어요"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는다. 9월 20일 방송된 김구라 편에선 평소 김구라와 껄끄러운 관계였던 문희준 역시 김구라의 영정사진 앞에서 "드디어 갔다! 이제야 가시는군요"라며 환호했다. 그리고는 김구라에게 평소 쌓였던 것들을 거침없이 털어놓으며 그에게 "꺼져 버려"라고 외쳤다.

 

물론 이것은 가상장례식이고 '설정은 설정일 뿐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최근 유명연예인들의 연이은 '진짜 죽음'을 생각해보면 '죽음에 대해 이렇게 가볍게 다뤄도 되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시청자 게시판에 남긴 한 시청자의 글처럼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얼마나 슬픈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신과 오열이 계속됐던 고 최진실씨의 장례식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죽음과 장례식을 개그의 소재로 삼아서 가볍게 다루는 건 당연히 불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요즘 계속해서 유명연예인들의 장례식을 봐야 했던 시청자들이 이제는 말장난만 오고가는 '가상장례식'까지 봐야하나 라는 의문도 든다.

 

9월 20일 방송된 김구라 편에서 김구라가 자신의 예상조문객이었던 최진실에게 '누나 이상형이 나쁜 남자라고 하셨는데 내가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좋은 일 한 번 할게요. 국진이형 어때요?'라며 장난스런 메시지를 남기는 장면은 '왜 죽음을 가볍게 이야기해서는 안 되는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 방송 이후, 김구라는 자신의 '가상장례식'에 올 뻔했던 최진실의 '진짜 장례식'에 참석하게 됐다.

 

웃겨야 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특성상 '진지한 가상장례식'이 불가능하다면, 굳이 가상장례식이라는 포맷을 선택할 필요가 있었는지 역시 의문이다. 한 사람이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는 건 <무릎팍 도사>에서 매주 하고 있고, 험담과 막말은 <라디오스타>에서도 지겹게 보고 있다. 더구나 이 프로의 MC 중 신정환, 김구라, 윤종신, 김국진은 <라디오스타>를 함께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신정환의 가상장례식에 온 조문객들이 서로 자기 개그 하느라 바쁜 모습을 보면서 이경규는 말했다. '삶의 애환이나 페이소스는 찾을 수 없고 그냥 오락프로를 보는 듯하다'고. <명랑히어로 두 번 살다>를 보는 심정이 딱 그랬다. 다른 예능프로그램과는 차별화되기에 더욱 특별했던 <명랑히어로>가 이제는 차고 넘치는 오락프로그램 중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다.  

 

포맷 바꾸려면 <명랑히어로>라는 이름부터 버려라
 

 

현재 시청자 게시판에는 <명랑히어로 두 번 살다>가 기존 포맷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한 시청자는 "연예인들 나와 웃고 떠드는 프로는 <명랑히어로>가 아니라도 많다"서 "<명랑히어로>는 시사나 사회 현안들을 다뤄주면서도 소소한 재미가 있어 본건데 이렇게 토요일의 낙을 없애 버리시다니"며 아쉬워했다.

 

'외압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시사프로그램들이 줄줄이 존폐의 기로에 선 상황에서, 시사예능프로그램을 표방하던 <명랑히어로>가 포맷을 변경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한 시청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외압이 있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며 "시청자들이 바보도 아닌데 국민들이 언제까지 이렇게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야 하는지 씁쓸하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제는 재미도 의미도 다 잃어버린 <명랑히어로 두 번 살다>. '연예인들이 나와 웃고 떠드는'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가 되려고 한다면, 속 시원한 이야기로 시청자들에게 의미 있는 웃음을 주던 '명랑히어로'라는 이름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  


태그:#명랑히어로, #명랑히어로 두 번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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