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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첫 번째 주말, 인천 연안부두에서 송도로 뻗은 해안도로 옆 시민공원으로 회사 화물차 기사님들과 야유회를 떠났습니다. 화물연대 파업이다 뭐다 해서 지난했던 여름을 아무 탈 없이 잘 보냈다고 서로 위로하기 위해 만든 자리였습니다.

 

숯불 위 고기가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갑니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환한 웃음소리들. 비록 애비도 못 알아본다는 낮술이지만, 우리는 지난 여름의 피로를 씻어내기 위해 기꺼이 소주 한 잔을 꺾습니다. 

 

한참을 신나게 먹고 마시고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 위로 경비행기 한 대가 제법 큰 소리를 내고 지나갑니다. '작은 동체가 얼마나 높이 뜰 수 있을까'라는 내 의심을 비웃 듯, 비행기는 꽤 높이 올라간 뒤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순간 용솟음치는 날고 싶은 욕망. 어렸을 때부터 꿈꾸던 비행의 꿈이었습니다.

 

5만원으로 이룬 스릴 만점 비행의 꿈

 

경비행기를 타고자 격납고로 걸어갑니다. 고작 15~20분 비행에 5만원이나 했지만, 그깟 돈 몇 푼에 비행의 꿈을 접을 수는 없는 바, 결국 5만원을 지불하고 경비행기 조종사 옆에 앉아 조종간을 잡았습니다.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경비행기. 어차피 똑같이 나는 건데 다른 큰 비행기와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싶었지만, 예상과 달리 경비행기 안에서 느끼는 이륙과정은 그야말로 스릴 만점입니다. 활주로의 거친 표면이 느껴진다 싶더니 어느새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경비행기.

 

인천도 명색이 항구인지라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역시 바다입니다. 비록 동해처럼 파란 색이 아니고 서해와 달리 갯벌 대신 쭉쭉 뻗은 도로와 방조제가 바다와 뭍의 경계를 이루고 있었지만, 저 너머 끝없이 펼쳐져 있는 수평선이 바다임을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송도의 해안도로를 벗어나니 공사 중인 인천대교가 보입니다. 인천 송도와 영종도를 잇게 될 인천대교는 그 명성만큼이나 위용이 당당합니다. 이름에 '인천'을 붙인 걸 보면 시의 랜드마크로 만들 모양인 듯합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이 다리를 지나다니며 인간의 위대한 힘을 찬양하겠지요. 물론 그것이 마냥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비행기 그림자가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갑니다. 왼쪽으로 인천 남동공단 공장들이 펼쳐지는가 싶더니 오른쪽으로는 한창 건설 중인 높다란 마천루가 그 곳이 바로 송도 신도시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지자체는 지자체대로, 졸부들은 졸부들대로, 서민들은 서민들대로, 한국경제의 모든 욕망이 투영되어 있는 그 곳. 모든 신도시들이 그렇듯, 송도 역시 시대의 욕망 위에 떠 있는 외로운 섬일 뿐입니다. 멋진 조감도와 번지르르한 말의 성찬이 가득하지만, 그와 함께 양극화의 그늘과 비정상적 투기 자본, 개발 이데올로기가 공존합니다.

 

아파트는 채 지어지지 않았지만 단지 사이 공원은 이미 각기 다른 모습으로 펼쳐져 있었습니다. 바다와 갯벌을 메워 만들어진 공원을 자연이라 착각하고 살 사람들. 그들의 아파트가 그야말로 사상누각에 서 있음을 알기나 할까요?

 

저 포구를 우리 후손들에게 남겨줄 수 있을까

 

송도 옆으로는 물류단지 공사가 한창입니다. 바둑판처럼 구획된 개간지에 물류 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설 예정이라고 합니다.

 

물론 동아시아 물류의 허브라는 장밋빛 미래를 약속한 정부가 추진하는 일이겠지만 요즘 같이 어려운 시기, 결국 그 곳에서 얻을 것이라고는 조그마한 건설특수가 아닐까 하는 노파심이 들기도 합니다.

 

송도에서 조금 더 내려가니 월곶포구와 소래포구가 보입니다. 끝도 없이 계속되는 도시의 확장 속에서 아직 바닷가의 본래 풍경을 그나마 간직하고 있는 두 포구의 모습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워 보입니다.

 

과연 개발의 광풍이 몰아닥치는 이 시대, 우리는 두 포구를 후손들에게 남겨줄 수 있을까요? 몇십년 뒤 아이들에게 "이 곳도 예전에는 꽤 유명한 포구였다"며 슬픈 전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두 포구를 지나니 아파트 숲이 펼쳐집니다. 다닥다닥 붙어서 산과 산 사이를 메우고 있는 아파트들. 그 아파트 사이의 좁은 공간은 그만큼 팍팍하고 여유 하나 없이 사는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며, 끝간 데없이 솟아오르는 아파트 층수는 이 시대 욕망의 분출입니다.

 

단지 먹고살기 위해 꾸역꾸역 수도권으로 올라오는 사람들과 그들을 수용하기 위해 계획 없이 지어대는 아파트들. 대통령은 방송에까지 출현해 그 모든 것을 시장이 해결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사람들이 난개발의 폐해를 알아챌 때는 이미 너무 늦은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섭니다.

 

아파트 옆으로는 넓은 도로들이 시원하게 뻗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를 많은 자동차들이 빠른 속력으로 질주합니다. 구불구불 굽어 있는 길에서 볼 수 있는 여유와 낯선 존재와의 만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의 목표와 속력만 존재할 뿐입니다. 길이 곧아지면 곧아질수록 사람들은 더욱 바쁘고 시간에 쫓기게 되는가 봅니다.

 

조종사 아저씨가 기수를 돌립니다.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지나고 돌아갈 시간이라는군요. 별 수 있겠습니까? 그러려니 할 수밖에. 돌아오는 길, 발밑을 내려다보며 자신이 사는 동네를 한 번쯤 위에서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송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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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동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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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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