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
ⓒ 나의 사랑, 나의 신부

관련사진보기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

최진실을 처음 스타로 띄운 건 그녀가 스무 살 때 삼성전자 CF에서 깜찍하게 고백한 이 한 마디였다. CF배우도 배우 하기 나름이었을까? 이 한 마디로 그녀는 스타가 됐다. 그 깜찍하고 당돌한 표현으로 신세대 아이콘이 됐다. 그 뒤 그녀는 1988년 MBC 특채 탤런트가 됐다. 탤런트 시험이 하늘에 별 따기로 스타 등용문이 되던 시절이었다.

그 뒤 최진실은 뜻밖에 사극으로 데뷔했다. 1988년 <조선왕조 오백년(한중록)>으로 데뷔한 뒤,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1990)을 통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90년엔 이명세 감독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 박중훈과 깜찍하고 앙증맞은 젊은 부부의 연애담을 그렸다.

그 뒤 뜻밖에 <남부군>(1990),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1991) 같은 무거운 영화에도 출연하며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숲속의 방>(1992), <미스터맘마>(1992) 등에도 출연하며 영화 쪽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나, 역시 최진실의 진가가 드러나고 최진실을 띄운 건 드라마였다.

mbc 드라마 <질투>(1992)
 mbc 드라마 <질투>(1992)
ⓒ mbc

관련사진보기

1992년 최수종과 함께 출연한 드라마 <질투>는 톡톡 튀는 신세대이자 국민 요정 최진실 이미지를 확실히 만들었다. 그 당시 최초 트렌디 드라마였던 <질투>에서 최진실은 대학 시절 친구 최수종과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역을 선보였다.

"넌 대체 누굴 보고 있는 거야? 내가 지금 여기 눈앞에 서있는데, 날 너무 기다리게 만들지마"란 <질투> OST 가사처럼 친구 같고 연인 같은 청춘 로맨스를 그리는 데 성공한 이 드라마로 최진실은 일약 최고 청춘 스타로 떠올랐다. 이 드라마는 56.1%란 경이적 시청률을 기록하며 최진실은 '국민요정' 이미지를 굳혔다.

그 뒤 최진실은 "최진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처럼 톡톡 튀고 깜찍한 이미지를 주로 선보였다. 영화도 계속 찍었다. <미스터맘마>(1992), <사랑하고 싶은 여자, 결혼하고 싶은 여자>(1993) 같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찍었고, 드라마 <폭풍의 계절>(1993)로 다시 잭팟을 터뜨렸다. <폭풍의 계절>은 그 때 시청률 52.1%를 기록했다. 영화에선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4)과 <마누라 죽이기>(1994)로 조금은 다른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으나 그다지 반향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드라마는 달랐다. 드라마에서 '국민 요정' 이미지는 여전했다. 이병헌과 연인으로 나온 드라마 <아스팔트 사나이>(1995)에 이어 <별은 내 가슴에>(1997)로 다시 인기 정상을 확고히 했다. <별은 내 가슴에>는 당시 49.3%란 시청률을 기록하며 신드롬까지 일으켰다.

하지만 최진실은 물정 모르는 공주가 아니라, 역경을 딛고 성공하는 깜찍한 신세대를 주로 연기했다. <별은 내 가슴에>(1997)도 고아원 출신 디자이너 연이의 사랑과 일에 대한 성공기였다. 강민을 연기한 안재욱을 스타로 만든 이 드라마에서 최진실은 고아원에서 자라나, 자신을 낳은 아버지가 친구 딸인양 속여서 급기야 고3때 아버지 집에 들어간 불운한 주인공을 연기했다. 고아원 친구 전도연이 일하던 클럽에서 안재욱, 차인표를 만나고 둘과 삼각관계를 이뤘다.

최진실은 드라마뿐만 아니라 영화에도 꾸준히 출연했다.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1995),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1995), <고스트 맘마>(1996), <홀리데이 인 서울>(1997), <베이비 세일>(1997), <편지>(1997), <마요네즈> (1999), <단적비연수>(2000)에 출연했으나 영화계 현실은 냉혹했다. 비교적 흥행에 성공한 <편지>(1997)에선 박신양과 호흡을 맞춰 악성 종양으로 죽어버린 남편의 편지를 받는 주인공으로, 보는 이들 눈물을 쏙 빼는 멜로를 선보였다.

mbc 드라마 <장미와 콩나물>(1999)
 mbc 드라마 <장미와 콩나물>(1999)
ⓒ mbc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드라마에선 최진실은 여전히 톡톡 튀지만 생활력 강한 신세대 주부 역할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발랄하던 장밋빛 청춘이 결혼 뒤 콩나물 같이 변한다는 드라마 <장미와 콩나물>(1999)이 출발점이었고, 역시 성공적이었다. 이 드라마는 시청률 44.1%를 기록하며, 최진실 흥행 기록은 깨지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그 뒤 최진실은 2000년 야구선수 조성민과 결혼했다. 하지만 결혼 2년 만에 파경을 맞았고, 2004년 이혼했다. 2000년 이후엔 드라마만 출연했다.

드라마 <그대를 알고부터>(2002)에 이어 <질투>때 연인을 연기했던 최수종과 12년 만에 다시 만나 <장미의 전쟁>(2004)에 출연했다. 이번엔 부부였다. 하지만 결혼과 이혼으로 숱한 루머와 비난에 시달렸다.

하지만 최진실은 보란 듯이 <장밋빛 인생>(2005)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우선 파격적인 이미지 변신이 남달랐다. 최진실이 과연 복귀에 성공할 수 있을까? 기대 반 질투 반 시선이 빗발쳤으나 이 드라마에서 최진실은 그동안 그를 만들었던 이미지, 톡톡 튀고 세련된 신세대 이미지를 완전히 버렸다.

드라마도 트렌디 드라마가 아니었다. 되레 트렌드와 거리가 먼 드라마였다. 최진실은 '뽀글머리'에 '지지리 궁상'인 시장판 아줌마 맹순이를 연기했다. 바람 난 남편 반성문을 잡기 위해 울고 넘어지고 온몸을 내던졌다.

kbs 드라마 <장밋빛 인생>
 kbs 드라마 <장밋빛 인생>
ⓒ KBS

관련사진보기

두 아이를 키우며 아등바등 살던 맹순이 끝내 위암에 걸려 두 아이를 남기고 죽었다. 이 드라마로 최진실은 온갖 아픔을 딛고 훌륭하게 복귀했다.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은 "역시 최진실이다"며 억척 아줌마를 넘어선 최진실 연기에 주먹을 쥐고 눈물을 훔쳤다.

최진실은 이어서 자신이 친정이라고 말한 MBC로 돌아와 일일드라마 <나쁜 여자, 착한 여자>(2007)에 이어 주말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2008)에 출연했다.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은 '내마스'란 별칭을 얻으며 마니아를 만들었고,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 최진실은 여전히 건재함을 드러냈다.

또 지난 9월까지 예능프로  OBS <최진실의 진실과 구라>(2008)를 김구라와 같이 진행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신개념 루머 해부 프로젝트'라는 이 프로는 패널을 초대해 떠도는 루머나 속설을 파헤치는 프로였다.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과 <최진실의 진실과 구라>는 시즌2 이야기가 오갔으나, 최진실의 죽음으로 물거품이 됐다.

'국민요정'에서 '국민아줌마'로 거듭나며 1968년 태어나 1998년 데뷔 뒤 무려 20년간 인기 정상에서 국민들 사랑과 질투를 한 몸에 받아온 최진실. 그는 2008년 10월2일, 자살로 많은 팬들을 깜짝 놀래키며 허무하게 생을 접었다.

mbc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2008)
 mbc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2008)
ⓒ mbc

관련사진보기



태그:#최진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