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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영화다>의 한 장면. 안경 너머로 슬며시 바라보는 폼이 예사롭지 않다.
 <영화는 영화다>의 한 장면. 안경 너머로 슬며시 바라보는 폼이 예사롭지 않다.
ⓒ 김기덕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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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금자씨>에서 총을 만들어준 소영의 남편, <바르게 살자>의 우 반장에서, <영화는 영화다>의 맛깔스런 봉 감독으로 변신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배우 고창석(39)을 만나러 가는 길이 긴장되었던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난 24일 오후, 압구정에 있는 카페 '조제'에 들어서면서 창문 너머로 보이는 모습에 내심 안도했다. 첫눈에 친근해 보이는 이 사람. 거기에 그는 나와 같은 부산 출신인데다, 내 모교인 부산 대연초등학교에 잠시 다니기도 했단다.

사실 <영화는 영화다>를 본 관객 대부분이 봉 감독으로 열연한 고창석씨의 그 능글맞은 연기를 기억하며 미소를 띠곤 한다. 봉 감독이 유달리 큰 웃음을 주는 데는 자못 심각한 이 영화의 구조도 한 몫 한다.

영화 속 유명 영화배우인 '수타(강지환)'는 실제 삶과 영화 속 모습을 혼동하며 살아가고, 상대 배우를 '진짜'로 때려 병원에 입원시키는 일도 다반사다. 결국 그와 함께 연기하겠다는 배우는 없어지고 진짜 깡패이면서도 영화배우를 꿈꾸는 '강패(소지섭)'를 만나 영화를 찍게 된다. 단, 연기가 아닌 진짜로 싸운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하지만 진짜로 싸운다고 해도 영화는 현실이 될 수 없고, 현실도 영화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영화는 영화다>는 현실과 허구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심장 박동수가 최고조로 올랐을 때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을 해소시키는 건, 조금은 촐싹대는 봉 감독이다.

"하버드 갈 순 없는 나, 연기를 업으로 삼아야지"

일본만화 <슬램덩크>의 '호호' 안 감독의 연상시키는 푸짐한 몸매에 턱밑에는 수염이 거뭇거뭇하고, 눈치까지 없는 봉 감독은 폼나는 두 주연배우 사이에서 시종일관 웃음을 제공한다. 하지만 진짜 제대로 된 영화를 찍고 싶은 열망만은 누구보다도 진지하다.

투박한 나무 식탁을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마주하니 문득 '푸근한 겉모습 안에는 어떤 불꽃이 타고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고 그에 대해 궁금해졌다.

 모자도, 옷도, 안경도 영화 속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장난기 가득한 웃음이 좋았다.
 모자도, 옷도, 안경도 영화 속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장난기 가득한 웃음이 좋았다.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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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극단 생활을 했다고 들었다. 20여년 동안 연기한 셈인데, 처음부터 연기에 뜻이 있었던 건가?
"고등학교 때까지는 이런 쪽으로 전혀 생각도 못했다. 게다가 대학교 땐, 일본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는 일본어과 학생이었다. 거기서 탈반이라는 운동권 동아리에 들어갔고, 데모도 했지만 공연물도 상당히 많이 만들었다. 동아리에서 연기를 하다 문득 이걸 업으로 삼아야겠다 싶어서 학교를 그만두고 극단 생활을 했다."

- 연기를 하면 잘할 수 있겠다는 믿음은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하다.
"이건 여담인데, 내가 삼남매 중 막내다. 그런데 우리 형하고 누나가 공부를 엄청 잘했다. 한 마디로 우리형은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서 3학년 때 사시를 패스하고, 다시 하버드 법대에 들어가서 4개 국어, 5개 국어를 하면서 전교 일등 아니 전국 일등을 한 번도 놓쳐본 적 없는 수재다."

- 혹시 말로만 듣던 엄친아?
"우리 누나도 거의 일등을 놓쳐본 적이 없었다. 지금 형은 국제변호사고 누나는 미국에서 대학교수를 한다. '그래서 너는 뭐냐' 문제는 그거다. 사실 많이 힘들었다.(웃음) 대인 관계도 좋고, 성적도 나쁘지 않고 괜찮았는데 집에만 가면 형의 반만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엔 방황도 많이 했지. 그러다 대학 동아리에서 탈춤을 추는데, 아 그게 재미있는 거야. 좋아해서 그런 건지 잘하기도 했고. 그래서 시작한 거다. 어차피 내가 하버드에 갈 수도 없는 거 아닌가? 내가 생각하던 삶의 방식이었던 것 같다."

- 그 후에 극단에 오래 있었다고 들었다. 영화를 찍기 시작한 건 연극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인데, 영화를 찍게 된 계기가 있었나?
"<이른 여름, 슈퍼맨>이라는 단편 영화로 데뷔하고는 <마지막 늑대>에선 누가 소개시켜줘서 아르바이트로 영화를 찍었다.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결심한 건, 영역을 넓혀가고 싶었던 욕심과 경제적 문제도 있었다. 사실 경제적 문제가 젤 컸다."

- 하지만 영화와 연극은 다르잖나. 예를 들어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가는데 영화는 끊어서 가니까 연기하는 방식이 조금은 다를 것 같다.
"아직도 적응을 다 못했다. 처음엔 연기하다가 얼굴이 시뻘개졌다. 다른 사람은 다 연기하는데 나만 연극을 하는 거 아닌가. (낮게 목소리를 깔아서 사극 톤으로) '멈춰라, 이 더러운 것들아' 이런 식인 거다.(웃음) 하지만 본질적으론 똑같다고 생각한다. 다른 학교에 전학 가서 적응하는 거랑 같다. 친화력 있는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잘 적응하는 거고, 이 동네에서 왕따면 저 동네에서도 왕따인 거고." 

'죽었다 깨도 못 앉을' 의자에 앉다

그는 대학교 때 들어간 '희망새'라는 가요팀에서 아내와 처음 만났다. 그리고 29살, 아내와 함께 서울예전 연극과에 재입학했다.

"실제론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말을 덧붙였지만, 그는 2년 전인가, 3년 전 결혼 기념일에 아내에게 2인극 대본을 선물로 주었단다. "너도 배우고, 나도 배우니까 언젠간 같이 2인극을 해보자"며 말이다. 무심한 듯 말했지만 그 속에서 아내에 대한 촉촉한 사랑이 느껴졌다.

그는 인터뷰 내내 때론 유머를 섞으며, 때론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진지한 아이처럼 눈빛을 반짝였다. 삶에 대해서 진지하지만 그 긴장의 끝에 웃음을 머금게 만드는 힘이 <영화는 영화다>에서 코믹하지만 진지한 봉 감독의 모습 그대로였다.

- 영화 속 봉 감독과 어쩜 그렇게 똑같나. 혹시 봉 감독이 실제 모습이 아닌가?
"역할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겠지만 이번 영화에서 봉 감독이라는 역할은 특별히 더 소중한 것 같다. 장훈 감독이 시나리오를 각색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내 이미지를 생각하면서 썼다고 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영광이기도 하고, 연기하기도 편했다. 현상적으론 다를지 몰라도, 본질은 비슷할 수 있다. 적당히 정의롭고, 적당히 비겁하고, 적당히 내가 하는 일에 열정이 있고, 내가 하는 일 이외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본질적인 부분에서 봉감독이 나뿐만 아니라 작업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 영화 속에서 약간 능글맞으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미나씨 나 좋아해"라든지 "레~디 액숀!" 같은 명대사를 남겼는데 원래 말투가 그런가?
"옛날에는 별명이 '욕쟁이'었다. 악의를 가지고 욕을 한 적은 없겠지만, 입에서는 욕이 나왔다. 하지만 욕을 해도 신기한 게 사람들이 굉장히 좋아한다는 거였다. 오죽하면 영국에서 몇 년 있다 온 후배가 날 보자마자 '오빠 욕 한 번만 해줘'이러더라."

- 감독을 연기한다는 것이 재미있었을 것 같다.
"감독 역이라고 해서 특별히 감흥은 없었다. 근데 현장에 가니까 좋더라고. 현장에 가면 '감독 의자' 뿐만 아니라 '주연 배우용 의자'가 따로 있는데, 처음엔 죽었다 깨봐도 못 앉는다. 어느 순간이 돼야 자연스럽게 앉을 수 있는 건데, 처음부터 거기에 앉으니 좋았다. 주위에서도 나를 '감독님, 감독님' 이렇게 부르고.(웃음)"

친구 같은 소지섭, 애인 같은 강지환

 <영화는 영화다> 겉그림.
 <영화는 영화다> 겉그림.
ⓒ 김기덕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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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배우의 팽팽한 긴장감 사이를 오가면서 균형을 맞추는 봉 감독이 영화 속에서 크게 다가왔다. 어떤 연기를 하고 싶나?
"역할에서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봉 감독은 '기능적으로 미션이 분명한 역할'이다. 깡패 같은 배우와 배우 같은 깡패, 이 터질 것 같은 두 배우를 데리고 영화를 찍어라. 찍을 수 있게끔 하고, 거짓말이 아닌 것처럼 사실적으로 보이게 해라. 이 역할인 거다.

거기에 하나 더 덧붙인다면, 코믹하게 하라는 거다. 두 주인공은 항상 긴장 상태잖나. 두 시간 동안 어떻게 그렇게 긴장하고 앉아 있나. 내가 하는 역할이 요소요소에서 긴장을 풀어 주는 거다. 봉감독처럼 했을 때와 안 했을 때 미션이 분명한 역, 그런 배역이 좋다."

- 제작비가 총 15억이라고 들었는데, 그게 가능한가?
"올해 4월 5일 프로덕션 구성해서 9월 10일에 개봉을 했다. 채 6개월이 안 되는 시간 동안 구성에서 촬영·편집·개봉까지 다 한 거다. 배우와 감독이 모여서 첫 리딩할 때 장훈 감독이 그랬다. '저희들은 기본적으로 한 테이크 갑니다, 더 찍고 싶은 분들이 있으면 필름 사서 오세요.'(웃음) 진짜 정신없이 찍었다."

- 그럼 다들 친해질 시간도 많이 없었겠다.
"사실 영화 찍는 동안 같이 술 한 잔 할 시간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이 영화가 개봉되는 과정까지 친밀한 유대감이 생긴 것만은 사실이다. 저예산 영화니 다들 개런티를 받았으면 얼마나 받았겠나? 그래도 무대 인사하면 모두들 시간나는 대로 달려온다."

- 어떤 힘이 그렇게 똘똘 뭉치게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주술이라도 걸린 건지?
"그런 열악함이 서로를 묶어주는 것도 있을 것 같다. 일반적인 작업의 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사명감까진 아닌데, '한 번 해보자'라는 으쌰으쌰 한 마음이 있었던 거 같다. 어느 한 명이 한 건 아니다. 물론 그 구심점엔 감독과 두 주연배우, 배경으로 김기덕 감독까지 있었겠지만,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것 같다."

- 그럼 촬영장 분위기는 굉장히 좋았을 것 같다. 
"처음엔 '소지섭이라는 배우는 까칠하다.' 그런 이야기 들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웃는 게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그게 지섭씨가 가진 매력이다. 낯을 가리긴 하지만 소지섭이란 배우는 진지하고 인간적인 거 같다. 사람 자체가 매력적인데, 그 모습이 영화상에 잘 드러나서 기쁘다.

지환씨 같은 경우는 톡톡 튀는 매력이 있다. 보면 참 캐스팅 잘했다. 영화처럼 지환씨가 건방지다는 게 아니라, 감독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지섭씨는 친구 같고 지환씨는 애인 같다'고. 지섭씨는 든든한 느낌. 지환씨는 톡톡 튀는 매력. 거기에 둘 다 얼마나 겸손한지 모른다."

"관객들에게 '공감' 얻는 배우이고 싶다"

 <영화는 영화다>에서는 영화 속에서 영화를 찍는다. 영화 속 영화 촬영장의 마지막을 장식할 갯벌 싸움씬의 한 부분이다. 깡패 같은 배우와 배우 같은 깡패는 이 장면을 찍을 때, 실제로 싸우기로 약속했다. 누가 이길 지 모르는 팽팽한 긴장감 사이에 눈치없이 끼어든 봉감독(고창석)이 느슨한 웃음을 안겨준다.
 <영화는 영화다>에서는 영화 속에서 영화를 찍는다. 영화 속 영화 촬영장의 마지막을 장식할 갯벌 싸움씬의 한 부분이다. 깡패 같은 배우와 배우 같은 깡패는 이 장면을 찍을 때, 실제로 싸우기로 약속했다. 누가 이길 지 모르는 팽팽한 긴장감 사이에 눈치없이 끼어든 봉감독(고창석)이 느슨한 웃음을 안겨준다.
ⓒ 김기덕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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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지섭은 소지섭이고, 강지환은 강지환이다. 그렇다면 고창석은?
"관객들에게는 배우 고창석이 그렇게 어필이 안 돼도 좋다. 배우 고창석보다는 금자씨의 소영 남편. <바르게 살자>의 우 반장. <영화는 영화다>에선 봉 감독으로 기억되길 원한다. 그 인물로써 기억되는 게 배우로썬 중요한 거라고 생각한다."

-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통해 봉 감독을 기억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고창석이라는 이름 앞에 뭐라는 수식어가 붙었으면 좋겠나?
"그 생각을 안 해봤네. 그게 중요한 건데.(잠시 생각에 빠진 후) 미션이 가능한 거, 어떤 역을 맡아도 잘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거기에 인간적인 배우였으면 좋겠다. 주인공이 슬퍼질 때 같이 슬퍼지고 기뻐할 때 공감이 간다는 거. 예를 들어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로베르토 베니니는 정말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이렇게 될 때 그 공감을 얻는 힘은 인간미라고 생각한다. 악역도 악역 나름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알고 보면 나쁜 사람 없잖나."

'노래도 잘하고, 못하는 게 없을 것 같다'는 나의 물음에 "아니에요. 일단 뚱뚱하잖아"라고 대답하는 그였다. 그러면서도 "극단에서 여자 배우들이 뽑은 섹시한 배우 2위를 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가 썩어가듯 금방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결국 연기를 하기 위해서 앞으로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다는 '천상 배우' 고창석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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