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이스터 감독 '부산갈매기' 열창 ⓒ 유성호



 롯데 팬들이 28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기아와의 시즌 마지막 홈 경기에서 붉은 비닐 봉지를 쓰고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롯데 팬들이 28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기아와의 시즌 마지막 홈 경기에서 붉은 비닐 봉지를 쓰고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 유성호


부산은 지금 야구 열풍이다. 아니 광풍이다. 롯데가 꼴찌를 겨우 면하던 암흑 시대를 딛고 일어나 올해는 8년 만에 포스트 시즌에 진출해 '가을 야구'를 하게 되었다. 원래부터 야구팬들이 많았던 부산 갈매기들이 물을 만난 셈이었다.

그래서 연일 좌석 매진을 기록한다는 보도들이 넘쳐났지만 나는 사실 귓등으로 흘려듣고 있었다. 그건 역설적으로 내가 부산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부산 살면서 늘 야구 때문에 피해(?)를 봤다. 학창 시절 우리 집에는 단 한 대의텔레비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늘 야구를 보는 아빠 때문에 우리 삼남매는 '채널 점유권'을 박탈당했고, 입이 있는 대로 퉁퉁 부어서 방 한구석에서 투덜거린 기억이 많기 때문이다.

왜 야구는 재미있는 방송들이 몰려있는 황금시간대만 하는 걸까?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나는 야구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야구장에 단 한번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에서 살다보니 팔은 안으로 굽는 건지, 뒤늦게 롯데의 승전보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9월 28일 일요일은 롯데의 정규리그 마지막 홈경기 날. 결국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직 야구장에 가는 모험을 감행했다.

강민호 선수의 지하철 안내방송 "응원 바랍니다"

 롯데 팬들이 28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기아와의 시즌 마지막 홈 경기에서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3만 부산야구팬들이 하나가되어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 유성호



롯데와 KIA와의 경기는 사직 야구장에서 28일 오후 5시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다. 부산지하철을 타고 3호선으로 갈아타니 왠지 야구장에 갈 것 같은 사람들이 와글와글 했다. 종합 운동장역에서 내릴 준비를 하는데, 이런 방송이 나오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랐다.

"지금 도착하실 역은 롯데 자이언츠 홈구장이 있는 종합운동장, 종합운동장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부산 갈매기를 함께 부르며 많은 응원 바랍니다."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롯데 팬들이 많긴 많은가 보다. 나중에 물어보니 야구 스타 강민호의 목소리란다.

종합운동장역 지하보도로 걸어가는 길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복도 기둥은 큼지막하게 롯데 주요 선수들의 사진들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경기장에 다다르니 앞쪽에 암표상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물어보니 오늘 경기도 매진이란다. 시즌 21번째 매진을 기록하면서 최대 관객인 130만 명을 넘었다는데,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하지만 그 덕에 재미는 쏠쏠했는데, 포스트 시즌 진출 기념으로 팬 서비스로 경기 전에 다양한 식전행사가 열렸기 때문이다. 경기장에는 허남식 시장과 로이스터 감독이 함께 부른 '부산 갈매기'가 울려 퍼졌고, 로이스터 감독은 명예 시민증을 받기도 했다.

 롯데 팬들이 28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기아와의 시즌 마지막 홈 경기에서 '수능 포기 해따'라고 적힌 옷을 만들어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고등학생들이 '수능 포기 해따'라고 적힌 옷을 만들어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 유성호


터줏대감부터 가족사랑·흑심파까지... 응원도 가지가지

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니 난 좀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한 목소리, 한 노래를 부르는 걸까? 이야기로만 들어봤지, 생전 처음 가보는 거라 응원전도 낯설고, 사람도 너무 많아서 한참을 방황했다.

왜냐하면 선수 한명 한명이 등장할 때마다 관객들 모두 동시에 '선수 메인 테마곡'을 부르는데, 인기에 따라서 서너 개의 노래를 번갈아 부르기도 했다. 난 잘 모르니까 괜히 머쓱했던 거다.

그래서 일단은 탐색을 좀 해보기로 했다. 요리조리 돌아다니다 보니 뭔가 응원의 '맥'이 보였다. 내가 탐색한 유형(?)은 대개 이런 거다.

일단 맨 처음 눈에 띄는 게 '터줏대감형'이다. 큰 소리로 응원을 이끌 뿐 아니라, 일단 복장부터 완벽하다. 화려한 아프로켄 가발을 써서 눈길을 끄는 사람들도 보였고, '우리 수능 포기했다' 식의 선정적(?) 펼침막을 내건 고3 학생들도 보였다. 주로 응원단 바로 뒤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한 눈에도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두 번째로 많은 형은 '가족사랑형'인데 뭔가 조용하면서도 가공할 만한 위력을 숨기고 있는 '포스'가 느껴졌다. 주로 먹을 것을 잔뜩 들고 와서 아이들과 엄마 아빠가 단란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그 수가 은근히 많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소녀 팬클럽형'이 있었다. 대개 경기장의 맨 앞을 장식하고 있는 이들은 경기보다는 사진을 찍는 데 열을 올렸다. 6회 말에 정보명 선수가 두 번째로 공을 맞고 걸어 나가는 사태가 벌어지자 팬들은 흥분한 나머지 계속 안타까운 함성을 질러댔다. 주로 좋아하는 야구 선수들의 등장에 가장 큰 목소리를 냈는데, 덕분에 경기장을 아주 상큼하게 만들었다.

'흑심파형'도 눈에 띄었다. 시끄러운 틈을 타서 은근슬쩍 손을 잡아보려는 노림수가 다분한 커플들로, 주로 야구 유니폼을 커플티로 맞춰 입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남자친구를 따라서 처음 야구장에 와봤다는 한 커플은 두 손을 꼬옥 잡고 있었으며, 간단한 주전부리를 곁들이며 남자 친구에게 야구 규칙을 물어보는 다정스러움을 연출하기도 했다.

 롯데 응원단들이 28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기아와의 시즌 마지막 홈 경기에서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롯데 응원단들이 28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기아와의 시즌 마지막 홈 경기에서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 유성호


그리고 마지막은 '꿈나무형'이다. 야구 모자에서부터 유니폼·목수건까지 갖춘 미취학 아동이나 초등학교 저학년들로 보이는 그들은 아빠 손에 이끌려온 것치고는 야구에 대한 상식이 무궁무진했다. 내 뒤에 앉아서 어려운 야구 용어들을 술술 내뱉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훔쳐 들으면서 야구를 관람하기도 했는데, 그 사전지식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쯤 되니까 이토록 뜨거운 야구 열기의 이유가 궁금해졌다. 왜 유독 부산 사람들만 이렇게 열광적인 걸까? 내 옆에 앉은 열광적인 야구팬인 신성오씨에게 물었다. 두 아이를 데리고 김해에서 왔다는데, 올해 롯데 야구 경기를 몇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관람했다고 한다. 두 아이를 데리고 대구까지 원정 관람을 가기도 했단다.

"옛날 80년대에 저도 아빠 따라 야구장에 많이 왔었지요. 그래서 이제는 아들과 딸을 데리고 다니는 거고요. 애들이 선수단이랑 친해지는 순간이 가장 보람 있어요."

"마! 마! 마!" "이대호 쌔리라"...귀에 착착 감기는 응원!

 롯데 팬들이 28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기아와의 시즌 마지막 홈 경기에서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마' '마' '마' 응원을 펼치는 관중들. ⓒ 유성호


 롯데의 이대호가 28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기아와의 시즌 마지막 홈 경기에서 3회말 1사 1,3루 타석 역전 중전 안타를 친뒤 공필성 코치와 기뻐하고 있다.

롯데의 이대호가 28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기아와의 시즌 마지막 홈 경기에서 3회말 1사 1,3루 타석 역전 중전 안타를 친뒤 공필성 코치와 기뻐하고 있다. ⓒ 유성호



조금씩 적응을 하니, 5회 정도 되자 이제 경기장의 흐름이 눈에 익었다. 그리고 몇몇 노래들도 귓가에 맴돌면서 점점 야구 경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미쳐 신문지를 준비하지 못해 '신문지 응원'은 하지 못했지만 나도 모르게 "아! 뭐야~ 오! 왜!"이런 식의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던 거다.

듣다보니 부산 사람인 내 귀에도 재미있는 몇 마디가 있었는데 바로 "마! 마! 마" 와 "이대호 쌔리라" 라는 응원이었다.

앞의 "마"는 "하지마"의 준말인데, 롯데의 1루 선수가 눈치를 보면서 2루로 도루를 하려고 할 때 상대편 투수 보고 1루 견제를 하지 '마'라고 강요(?)하는 구호였다. 관객 모두 "마! 마! 마!" 이렇게 외치면 투수가 공을 던질 때 집중력이 살짝 흐려지는 걸까?

두 번째인 "이대호 쌔리라"라는 말은 '머뭇거리지 말고 방망이를 휘둘러 버려라' 정도의 뜻인데 "쌔리라(때려버려라)"라는 이 어감이 참 좋았다. 쌔리라! 뭔가 신나지 않나?

하지만 조금 아쉬운 건 초반에 적응을 하느라 '점수 난' 경기들을 놓쳐버린 거였다. 경기는 1회 때 나란히 1점 씩 나누어 가진 후에 롯데가 3회전에 2점을 따내며 점수 차를 벌렸다.

덕분에 내가 야구에 집중하기 시작한 5회 때부터는 조금 심심한 경기가 이어졌다. 5회 초 KIA는 1점을 만회했지만 점수는 여전히 4-2로 롯데가 이기고 있었다. 발바닥 간질간질한 스릴은 없었던 거다.

은밀하게 전달된 '봉다리'의 정체

 롯데 팬들이 28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기아와의 시즌 마지막 홈 경기에서 붉은 비닐 봉지를 쓰고 찍은 사진을 보며 웃고 있다.

롯데 팬들이 붉은 비닐 봉지를 쓰고 찍은 사진을 보며 웃고 있다. ⓒ 유성호


그래서 나는 그 유명한 '봉다리(봉지) 응원'만 기다렸다. 나도 한 번 주황색 '봉다리'를 뒤집어쓰고 싶었는데 오늘은 안 하는 듯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8회가 되자 요원들이 X파일을 건네듯, '주황 봉다리(봉지)'들이 슬며시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었다. 사실 그건 8회가 되면 쓰레기를 버리라고 나눠주는 쓰레기 봉투였던 거다.

봉투를 손에 쥐자마자 사람들은 익숙하게 공기를 불어넣어서, 동그란 풍선을 만들어 두 귀에 걸었다. 경기장이 점점 주황색으로 물드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미쳐 빠르게 '봉다리(봉지)'를 전달받지 못한 3·4층의 사람들은 "봉다리! 봉다리!"를 외치며 시위(?)를 하기도 했다.

몇몇 센스 있는 부산 시민들은 풍선 모양을 바꿔 리본 모양, 미키마우스 귀 모양 등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역시 창의력이 번뜩이는 응원이었다.

결국 이날 응원의 힘을 빌린 롯데는 KIA를 4-2로 이겼다. 응원전도 재미있었는데, 내가 응원한 팀이 승리를 하니, 괜히 기분이 더 좋아졌다.

집에 오는 내내 "롯데 자이언츠~ 롯데 자이언트 워워워~"라는 롯데 응원가와 '부산 갈매기' 노래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야구를 잘 모르고 가도 확실히 재미있는 응원전이었다. TV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아름답게 포물선을 그리면서 쭉쭉 뻗어가는 공도 인상적이었다.

다음에는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가 시원한 맥주 한잔 들이키며 관람해야겠다. 일주일 세상사 팍팍하고 힘들어도, 이렇게 주말 하루 친구랑, 애인이랑, 가족이랑 야구장이라는 '거대한 노래방'으로 놀러와 스트레스를 푸는 광경이 참 보기 좋았다. 맘껏 소리를 지르고 나니, 돌아오는 월요일도 조금 더 힘차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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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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