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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아주 흥미로운 뉴스가 보도됐다. 내년 졸업을 앞두고 의사 면허시험을 치르는 의학전문대학원(이하 의전원) 학생들에게 정부가 이상한 서약서를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근데 이 서약서 내용이 좀 황당하다. 한 마디로 이런 내용이다.

'너희 의학전문대학원생들은 원래 의사 면허시험을 치를 자격이 없는데, 일단 시험을 치를 기회는 주되 행여 의료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차후에 합격이 취소될 경우가 생기더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서명해라.'

우수한 의료 인재 양성한다며 의전원이 문 열고 학생 들인 지 4년, 준비기간까지 합치면 족히 10년이나 지났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의료법 개정을 못해서 이런 서약서를 받아야 하는 역설적인 현실이 벌어지고 있다. 내 몸에 맞는지 안 맞는지도 모르고 전문대학원에 목매는 이 나라 교육의 현 주소를 여실히 보여주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합격 취소에 이의 제기 않는다고 서명하라"

 31일 교육부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예비인가 발표를 다음달 4일로 연기키로 결정하는 등 갈팡질팡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 신림2동  고시촌의 고시생들이 삼삼오오 몰려 어디론가 가고 있다.
 전문대학원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이 모여있는 신림동 고시촌 풍경
ⓒ 연합뉴스 성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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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전문대학원 체제 도입의 목소리가 등장하기 시작한 건 김영삼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학원 제도 개선 방안의 하나로 논의되기 시작하다 1996년 교육개혁위원회에서 처음으로 '의학전문대학원'을 명명했다.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 이돈희 교육부 장관이 새교육공동체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법학·의학전문대학원 도입을 보고하면서 의전원의 본격적인 도입 준비가 시작되었다.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의 경우에는 이보다 조금 더 늦어져 노무현 정부 들어서 본격적인 도입 준비가 이뤄졌다.

의전원·로스쿨만이 아니다. 이미 치의학전문대학원·경영전문대학원은 운영 중이며 약학전문대학원·한의학전문대학원은 개교를 앞두고 있고, 교육전문대학원은 논의 중에, 행정전문대학원은 인수위 시절부터 거론된 바 있다. 의사·법조인·치과의사·약사·한의사·교사·공무원…. 한 마디로 어지간한 전문직은 모두 전문대학원 체제를 거쳐 양성하겠다는 뜻이다.

그럼 대체 왜 전문대학원 도입을 주장하는 것일까? 전문대학원 도입 찬성론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현행의 교육과정과 인재선발 방식에는 문제가 많고, 그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 바로 전문대학원이라는 것이다. 현의 교육과정과 인재선발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점은 어렵지 않게 동의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대안이 전문대학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수긍하기 힘들다. 가장 처음 도입되어 이제 내년 첫 회 졸업생 배출을 목전에 둔 의전원의 실태를 안다면 아마 누구라도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유기화학 시험 쳐서 '다양한 전공' 뽑겠다니...

1013만3000원. 2007년 가천의학전문대학원 등록금 액수다. 1년 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놀라지 마시라. 저건 한 학기 등록금이다. 이화여대 927만원, 경희대 984만원 등 사립대 등록금은 한 학기에 1천만원 대에 이르고, 그나마 국립대가 평균 500만원 수준으로 다소 적지만 이 역시 일반 대학과 비교했을 땐 많다고 볼 수 있는 수준이다.

등록금은 이렇게 비싼데 장학제도는 썩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이다. 거기다 학부생들의 2배에 가까운 등록금을 내면서도 그들에 비해 더 나은 환경에서 차별화된 커리큘럼의 수업을 받는 것도 아니다. 학부생들과 같은 교실에서 똑같은 수업을 받으면서 도리어 그들에 비해 교육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차별대우를 받기도 한다. 때문에 의전원생들은 무엇 때문에 비싼 등록금을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실정이다.

의전원 입학생의 대부분이 이공계 출신이라는 점은 우수 인재의 이공계 기피 현상을 타파하고자 의학부 대신 의전원 체제로 돌린 정부의 선택이 빗나갔다는 것을 입증한다.

작년 교육부가 국회 교육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의·치의학전문대학원생의 출신 전공 중 이공계 전공자 비중이 2005년 86.5%, 2006년 88.4%, 2007년 89%로, 사실상 재학생의 대다수가 이공계 출신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인문학·사회학·법학 등 다양한 전공 출신의 의료 인재 양성, 우수 인재의 이공계 기피 현상 타파라는 정부의 의전원 도입 목적은 완벽하게 틀렸다고 할 수 있다.

의·치전원 입학에 가장 중요한 시험인 MEET/DEET의 경우 일반화학·유기화학·일반물리학과 같은 과학과목을 평가하는 데다 일부 의전원에선 이공계 관련 학과목의 일정 학점 이상 이수를 명시하고 있어 사실상 인문계 학생들의 진입 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 또한 우수한 인재의 이공계 선택이 기초학문 연구로 이어지지 않고 의전원 입학의 준비 단계가 되면서 결과적으로 이공계 기피 현상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셈이다.

로스쿨은 개교도 하기 전에 '귀족학교' 논란

막대한 등록금, 사회진출 시기가 기존 의대체제에서보다 2년 이상 늦춰지는 문제는 의전원생들 대부분이 임상의를 목표로 하게 되는 새로운 문제를 낳았다.

기초의학협의회의 자체조사에 따르면 의전원 재학생 가운데 졸업 후 임상의가 아닌 기초의학자의 길을 걷겠다고 답한 학생이 전체의 0.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고소득 가능성이 높은 임상의의 길을 걷고, 그들 대부분이 개원의가 되는 현실은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의전원 체제가 이를 가속화할 것은 분명하다. 결국 기초의학의 발전은 점차 더뎌질 것이고 이는 의학 전체의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는 의전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영전문대학원의 경우에도 값비싼 등록금에 걸맞은 수업 수준이 못 된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내년 개교를 앞둔 로스쿨 역시 연 2000만 원에 이르는 등록금 문제로 끊임없이 '귀족학교'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와 대학당국의 태도는 미온적이다.

높은 등록금은 교육여건 조성 및 시설 투자 문제 등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부분으로 그럼에도 미국의 3분의 1 수준 밖에 안 되며, 장학금 지원을 늘리고 학자금 대출 한도를 높여주겠다고 앵무새처럼 똑같은 대답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차별화되지 못한, 결코 경쟁력 있어 보이지 않는 교육 여건 및 환경 문제에 있어서도 "시행 초기이니 좀 더 두고 보자"는 식의 궁색한 답변만 돌아올 뿐이다.

물론 어떤 제도든 시행 초기에는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의료법 개정을 하지 못해 의전원생에게 의사가 될 자격을 주지 못한 것은 발생하지 않아야 될 문제였다. 그건 의전원 도입 초기에 진작 해결했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예상되는 문제가 있다고 해도 사전에 충분한 논의와 준비를 거쳐 그것을 최소화해, 애꿎은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끔 만드는 것이 정부와 관계자들이 할 일이다.

미국에서 들어온 전문대학원, 한국체형에 맞춰라

이번 서약서 사건과 같은 일이 내년 문을 여는 로스쿨에서도 생기지 않으란 법은 없다. 벌써부터 그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올해 말이면 원서접수가 시작되는데 아직까지 변호사 자격시험의 구체적인 내용 및 형식, 응시횟수 제한과 같은 문제, 그리고 로스쿨 졸업 후의 실무교육 시행 여부 등에 관해서 뚜렷하게 정해진 바 없다. 이 문제에 관해 정부와 여당은 이번 정기 국회에서 변호사시험법 제정안을 통과시키기로 했지만 전례가 있어 두고 봐야 알 일이다.

전문대학원 제도는 미국에서 들여온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 어울리는 옷은 분명히 아니다. 그러나 그 옷을 굳이 입어야 한다면, 적지 않은 시간 공을 들여 치수를 줄이고 바느질을 다시 해 내 몸에 맞춰서 입어야 한다. 그래야 옷맵시가 난다. 안 그러면 우스꽝스러워져 내가 옷을 입었는지 옷이 나를 입었는지 모를 판이 된다.

무턱대고 문부터 열고 학생부터 들이고 보자는 식은 이제 곤란하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여러 차례 논의와 준비 과정을 거쳐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었을 때 문을 열어도 늦지 않다. 그렇지 않으면 제2·제3의 서약서 사건은 언제고 재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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