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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목의 아내'에서 한 인간으로 돌아온 쉬광핑
[서평] 쉬광핑-루쉰의 사랑 중국의 자랑
08.09.15 20:49 ㅣ최종 업데이트 08.09.15 20:49 이명옥 (mmsarah)

  
▲ 쉬광핑 거목의 그늘에 가려진 루쉰의 아내 쉬광핑의 삶을 통해 제 3 세계 여성 삶을 조명하고 있다.
ⓒ 서해문집
쉬광핑

오래 전 아마추어들이 모여 YWCA에서 연극 강의를 듣다가  '아내라는 직업을 가진 여인'이라는 연극을 공연한 적이 있다. 아내라는 이름이 지닌 상징성은 무엇일까? 자신의 삶을 가족에게 유예한 사람? 아니면 제 가치를 인정받지도 존경받지도 못하는 무보수 24시간 유노동자? 어쨌거나 아내라는 직업은 학창시절과 미혼시절. 남자들과 어깨를 겨루며 당당하게 능력과 꿈을 펼치던 인간에서 날개옷을  빼앗긴 채 과거의 자유를 그리워하며 사는 선녀에 다름이 아니다.

 

사실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으로 삶이 고착된 시간동안 여성들은 자신이 잃어버린 날개옷과 자유를 그리워하거나 아내라는 직업에 대해 반추할 시간마저 여유롭게 갖지 못한다. 어느 순간 햇살비치는 터널의 끝에 서서 눈부신 햇살을 올려다본 것처럼 아내라는 직업의 의미를 반추하게 된 것은 루쉰의 아내인 쉬광핑의 일생을 그린 책 <쉬광핑>을 접한 때문이었다.

 

루쉰은 우리에게 노신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아큐 정전> <광인일기><공을기> <축복> 등의 단편과 산문시집을 <야초>에 발표하여 중국근대문학을 확립한 세계적인 중국문인이다. 루쉰을 현재의 루쉰으로 기억하게 한 사람, 루쉰에 대한 일차적 자료를 정리해 중국에서 루쉰의 위상을 견고하게 만든 사람은 자신의 생 대부분을 바쳐 루쉰과 정신적 동반자적 삶을 살아 낸 아내 쉬광핑이다.

 

사람들은 쉬광핑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여성이 루쉰의 아내였다는 사실도, 중국 근현대사에서 쉬광핑이 차지하는 위치가 결코 작지 않다는 사실도 잘 알지 못할 것이다.

 

쉬광핑은 루쉰을  베이징 대학 재학시절 스승과 제자 사이로 만난다. 차별에 절대 승복하지 않던 당찬 신여성인 쉬광핑은 아버지가 정해 준 혼처를 거부하고 신학문을 배운다. 쉬광핑은 루쉰과 17년이라는 나이 차이와  유부남이라는 악조건과  세상의 악평을 감내하며 과감하게 루쉰의 아내로서 동반자적 삶을 선택한다. 그 후  루쉰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림자처럼 루쉰의 집필 작업을 돕는다. 루쉰 사후에 출간된 <양지서>는 문학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쉬광핑이 조국 건설과 여성해방이라는 두 개의 대명제 앞에서 애국이라는 더 큰 명제를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쉬광핑 개인의 한계일 수도 있고, 루쉰이라는 거목의 아내라는 직업을 선택한 기혼 여성의 한계일 수도 있다.

 

열렬하게 여성운동과 사회운동을 벌이며 살던 쉬광핑이 루쉰의 아내로 살아간  세월 속에는 쉬광핑 자신의 삶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저 10년 이상 병약한 루쉰을 위해 끊임없이 음식을 준비하고, 그의 원고를 정서하고 교정을 보고, 루쉰과의 사이에 둔 아들을 양육했다.

 

전업주부로 살던 어느 날  쉬광핑은 잡지사에라도 취직을 하려고 루쉰의 의향을 묻는다. 루쉰은 "한 달 내내 일해 봐야 내가 글 한 두 편 쓰는 정도의 보수 밖에 더 받느냐. 차라리 집에 앉아 내일을 도와라"며 아내의 사회생활을 만류했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 자신의 날개를 접은 쉬광핑은 루쉰 사후 10년이 지나 봇물처럼 글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압도적인 것은 루쉰의 유산을 보존, 정리, 계승하는 작업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더 또렷하게 여성에 관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거목의 그늘에서 그림자처럼 살아가던 한 여성이 비로소 한 인간으로 되돌아오는데 걸린 세월은 참으로 길고도 멀었다. 20년 이상의 세월을 훌쩍 건너 뛰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냈으니 말이다. 수많은 고난과 좌절의 시간 속에서 평생 루쉰의 유물을 모으는데 정력을 다 받쳤던 쉬광핑은 일본이 압수해 간 루쉰의 일기 일부가 유실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분노하던 쉬광핑은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되어 향년 69세인 1967년  마침내 눈을 감는다.

 

쉬광핑이 세상을 뜬 지 4년 뒤인 1971년 중국을 6주간 여행한 프랑스의 여성운동가들은

중국 여성들이 혁명 고정에 동참한 덕분에 여성의 권리가 상당히 신장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1980년부터 1981년까지 2년 간 중국에 머물며 중국 농촌 여성을 만나본 미국의 한 학자는 농촌의 경우 혁명이 아직 멀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전근대적 삶을 사는 중국여성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운 혁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작가 윤혜영 교수 역시 20세기 이후 중국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그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여성문제가 산재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먼저 루쉰 못잖은 잠재력과 역량을 지녔던 신여성 쉬광핑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 져야 한다. 또  쉬광핑이 부르짖던 여성의 경제적 정치적 독립과 사회적 홀로서기 등 여성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그래야 여성이기에,  특히 누군가의 아내이기에 감내 할 수밖에 없었던 그림자 삶에 대한 아쉬움이 사라져 저자의  아쉬움, 독자로서 여성혁명가의 삶을 읽으며 가진 아쉬움 또한 가실 것이다.

 

"여성문제가 해결되어 이런 아쉬움이 모두 사라질 때에야말로 1999년 상하이의 루쉰 기념관을  확대 건설하면서 신설된 조화문고의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쉬광핑 전고‘르 보면서 느낄 수밖에 없는 아쉬움 또한 가실 것이다. 그때쯤 되면 지금처럼 고작 루쉰과 관련이 있는 20여 명의 인물을 모아 둔 이 분고의 한 칸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여성사상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로서 독립적인 ’쉬광핑 기념관‘이 마련될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쉬광핑>은 서해문집에서 출간되었다. 지은이 윤혜영은 동양사학을 전공하고 한성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인간에 천착하느라 여성의 삶을 돌아보지 못했던 저자는 취업의 벽에 부딪쳐 사회에서 남녀 차별의 심각성을 몸으로 체득하고 난 뒤에야 여성의 삶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근현대를 살아 간 중국여성들의 삶을 주먹하기 시작했다. 그런 저자가 당대 최고 지성 중 한명이던 여성혁명가의 삶을 중국 건설과 여성해방이라는 관점에서 들여다보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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