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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국 정치계는 여전히 희극이고 그것은 민중에게 비극이지요. 대통령과 국회위원을 새롭게 공복으로 뽑아서 심부름꾼을 시켰는데 어떻게 된 게 엉뚱하고 이상한 일들만 벌이고 있네요.

저마다 똑똑하고 뛰어난 사람들인데 권력을 쥐어주면 왜 저렇게 될까요? <심영섭의 시네마 싸이콜로지>(2003·다른우리)에서 이와 관련해서 꽂히는 구절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써요.

어처구니 없는 미국의 '피그만 침공'

1961년 4월 4일, 미국 국무성 안에서 케네디 대통령은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리죠. 미국에 흩어져 있는 쿠바인들을 모아 민명대를 조직하고 CIA의 훈련을 받게 한 뒤, 피그만을 침공한 것이죠.

미국은 이들의 침공으로 쿠바 내에서 반혁명 운동이 일어나서 카스트로 정권이 패망할 것으로 기대했어요. 그러나 끝내 봉기는 일어나지 않았고 1400여명의 민병대는 패주하고 체포되지요. 이 사건이 바로 ‘피그만 침공’이에요. 

당시 피그만 침공을 결정한 자문위원들은 다년간 외교정책에 관여한 러스크, 하버드대 경영대 교수이며 합리적 의사결정 연구의 권위자 맥나마라, 그리고 의사결정의 기술과 객관성에 정평이 나 있던 역사학자 슐렌진저 등 미국 내 최고의 두뇌집단이었다니 어이가 없지요.

1972년 집단 심리학자 제니스는 이 사건을 연구하여 ‘집단 사고(group think)' 때문이라고 진단하죠.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서 따온 용어로, 집단 내의 압력 때문에 발생하는 정신 능력, 현실 검증력, 그리고 도덕 판단력의 쇠퇴를 가리키는 말로 왜곡된 집단 사고양식을 뜻하지요.

끼리끼리 모인 집단은 더욱 집단의 결정을 확신하게 되지만 반대로 외부집단에 대해서는 편향된 시각을 가지게 되지요. 자문위원회는 다른 모든 가능한 대안들을 무시한 채 피그만 침공을 지지할 것인가, 아니면 쿠바를 공산주의자들에게 넘겨줄 것인가의 두 극단만을 염두에 두고 토의하게 되어요. 47년이 지난 한국에서도 어떻게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지 신기하기만 하네요. 계속 볼게요.

나은 결정을 내려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구성원들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중요한 문제일수록 신중한 해결책을 찾는 일보다, 대개 자신의 결정에 관해 불안감을 해소키는 데 더 관심을 갖게 되지요.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합리적인 정보처리보다는 논쟁이나 이견을 최소화하고 결정을 신속히 내리려 하게 되지요. 그럴수록 불안감이 적어지기 때문이니까요.

시민들 의도와 맞지 않는 파행들을 벌이고 왜 그렇게 서투른 일들을 저지르는지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되네요. 불안했을 거예요. 그리고 말도 웃기는 정면 돌파를 외치며 밀어붙이네요.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인지 고민하거나 다른 대안들을 찾아보기보다는 ‘그릇된 소신’을 고집하네요. 갑자기 삼풍백화점 임원단 회의에서 붕괴 위험이 있다는 보고가 있었음에도 그들은 아무 이상 없을 거라고 호언장담을 한 것이 떠오르네요.

열린 토론하고 반론을 받아들여야

그렇다면 어떻게 집단사고를 막을 수 있을까요? 제니스는 사안을 공개해서 논의하고, 의안을 검토하는 집단 자체를 이원화하거나 회의를 두 번 하는 방법, 제기된 주장에 대해 흠을 잡는 ‘반론 대변인’을 두라고 알려주네요. 문제가 될 사항들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지 말고 여러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선심성 인사를 하지 말고 다양한 사람들을 받아들이란 얘기겠죠.

집단사고는 반대편의 의견을 수용하고, 진지하게 자신의 사고를 자체 검열하면서 대안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것 외에는 예방책이 없는 ‘질병’이지요. 끝없는 자기 성찰이 필요한데 골프 치면서 나라일 하느라 바쁜 분들은 병에 걸릴 수밖에 없겠네요. 위정자들은 말 그대로 뼈를 깎는 반성과 정해진 사람들 외에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겠지요.

이 책의 지은이 심영섭은 유명한 영화평론가예요. 심영섭은 심리학과 영화를 두루 섭렵한 사람이 되겠다는 뜻으로 앞 글자를 딴 필명이네요. 그가 영화에 담겨있는 심리를 맛깔나게 풀어낸 책으로 위의 내용 외에도 가지각색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실려 있지요.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내용에는 삽화가 서용남의 익살스럽고 재치 있는 그림들이 더해져 한결 이해하기 쉽게 도와주네요.

거식증은 대중매체가 일으킨 히스테리

하나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할게요. 거식증은 대중매체의 영향을 받는 현대의 히스테리라는 것을 아시나요? 거식증이나 과식증은 1970년대 이전까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신종 정신과 질환이라네요. 특히 거식증 환자 대부분이 풍요로운 중산층 이상의 가정환경을 갖고 있으며 자본주의와 대중매체의 영향력 확산에 따른 여성 몸매의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어요. 현대인들이 얼마나 대중매체에 휘둘리는지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로 언론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하네요.

"피지 섬에는 1980년대 후반까지 TV가 보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TV가 보급된 지 불과 5년 만에 피지 섬 여성 중 80퍼센트가 자기 몸이 비만이라고 보고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고 고백했다. 과거 피지 섬의 이상적인 여성상은 다산을 상징하는 다소 뚱뚱한 몸매의 여성이었다. 그런데 TV의 보급으로 계속 서구의 말라깽이 여성들만이 등장하자 이들의 자아상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심영섭의 시네마 싸이콜로지

심영섭 지음, 다른우리(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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