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책방 들머리 책방 <뿌리서점> 들어가는 계단 둘레에 쌓인 책들.
▲ 책방 들머리 책방 <뿌리서점> 들어가는 계단 둘레에 쌓인 책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1) 아이 키우기

아이를 낳을 무렵부터는 책방 나들이조차 못하게 되리라 생각했고, 책 한 권 읽기란 더더군다나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8월 16일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이에 앞서부터 여러 가지 일거리를 미리 마무리를 짓느라 바빴던 한편, 아이가 태어난 뒤로도 신문잡지사에 보내 주어야 하는 마감글 맞추기에도 빠듯했습니다. 배앓이할 때 늘 곁에 붙어 있었고, 몸풀이는 제가 하고, 아이 돌보기는 함께하고 있으나 젖 물릴 때 빼놓고는 제 몫입니다. 보름째 이대로 이어옵니다.

아이를 돌보는 동안 도서관 문을 닫아 놓고 있어야 합니다. 도서관을 열어 놓는다고 ‘입장료’나 ‘대여료’를 받지 않으니(도서관은 이런 삯을 안 받는 곳이지요. 그러나 저보고 책삯을 받으라는 이야기를 하는 둘레 분이 제법 많습니다) 마땅한 벌이가 되지 않습니다만, 출판사에 보낼 글을 다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못하면서 밤잠이든 낮잠이든 이루지 못합니다. 다짐은 단단히 했지만, 참으로 수월한 일이 아님을 새삼 느끼고, 이렇게 고달프니까 모두들 산후조리원 같은 데가 한 주에 백만 원이니 백오십만 원이니 해도 그예 집어넣고 ‘조리원에 바칠 돈을 버느라’ 돌아치게 되는구나 싶습니다. 이렇게 고단하니까 시부모든 친정이든 ‘손주 귀여워서’ 받아 주기는 해도 싫어한다는 말이 나오는구나 싶습니다.

하루가 하루가 아니도록 보내던 어느 날, 제가 하는 일을 곱게 보아 주는 어느 분이 도서관 달삯을 치르고도 십만 원이 남아 살림돈으로 돌릴 수 있을 만한 돈을 다달이 부쳐 주겠다고 연락을 해 옵니다. 덩달아 제가 그동안 찍은 ‘헌책방 사진’도 사겠다고 말씀합니다.

이제까지 팔아 온 사진이 열 장이 채 안 되는데, ‘헌책방을 말하는 사진’을 기꺼이 바라시고 사시겠다고 하니, 고마움을 넘어서 반갑고 기쁩니다. 또한, 어려운 살림에 구멍이 뚫리는 셈이라 아이 돌보기에 더욱 홀가분하게 마음을 쏟을 수 있습니다.

일본 소설쟁이가 쓴 수필 《인생이라는 이름의 여행》이라는 책을 읽으면, 글쓴이가 열아홉 살부터 정년퇴직 때까지 일한 신문사 사장이 어느 날 자기를 불러서, ‘난 소설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누구든 밥걱정에서 벗어나야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이야기해 주면서, 소설만 써서는 밥걱정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니, 느긋한 자리를 줄 테니 소설쓰기에 온힘을 기울일 수 있게끔 해 주어서 사장실을 나오면서 눈물이 나왔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꼭 이런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러면서, ‘나도 앞으로 살림이 나아져서 누군가를 도울 만한 형편이 된다면, 이분처럼 마음을 쓸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제 앞날에 살림이 필 날이 있을지는 까마득한 노릇이고, 그저 제 깜냥껏 이웃한테 베풀 수 있는 만큼 베풀며 살아야 하지 않느냐 싶어요. 그래서, 한동안 살림이 너무 팍팍한 탓에 지난 한 해 동안 좀처럼 못하고 있던 길거리 동냥꾼한테 동냥하기를 다시 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저는 못하고 있었어도 옆지기는 우리 살림돈이 몇 천 원 안 남아도 천 원씩 꼬박꼬박 내어주곤 했습니다).

지난해까지는 다문 오백 원이든 천 원이든 백 원이든, 주머니에 있는 대로 털어서 동냥그릇에 넣어 주곤 했으나 올들어 거의 못하며 살았습니다. 오백 원 천 원 백 원 ‘기부’는 딱히 할 만한 데도 없지만, 길에서 먹고자는 이들한테 나누어 주기에는 괜찮고, 나누어 주면서 제 이름이 남지도 않아서 홀가분합니다. 전철을 타러 가는 길에 차가운 돌계단에 무릎 꿇고 앉아서 손 벌리는 아저씨나 할머니한테 동전통을 탈탈 털어서 내어 드리기도 하고, 전철칸에서 손 벌리는 아저씨한테 넌지시 천 원짜리를 건네기도 합니다.

오늘, 용산에 있는 헌책방 〈뿌리서점〉에 찾아가서 ‘저를 도와주고 사진도 사겠다는 분한테 드릴 사진을 들고 찾아가는 길’에 전철을 타고 가면서, 전철 동냥꾼이 한 사람 보이기에 스스럼없이 천 원짜리를 내어줍니다. 옆자리에 앉은 아가씨가 깜짝 놀라 합니다. 뭘 놀라지, 하고 생각하며, 동냥하느라 잠깐 덮고 있던 책을 다시 펼칩니다.

책들 잔뜩 쌓여 있는 책에서 보물을 찾아봅니다.
▲ 책들 잔뜩 쌓여 있는 책에서 보물을 찾아봅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2) 맛있게 읽는 책들

용산 가는 급행전철을 타고 싱 하니 달려가는 길. 몇 시간만 옆지기가 아기를 맡아 주기를 바라면서 다녀오는 길. 아무리 바빠도 고마움을 베풀어 주는 분한테 인사치레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아기 돌보느라 바쁠 터이니, 차라리 생각이 난 김에, 연락을 받은 김에, 미루지 말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맡기는 한편, 헌책방 〈뿌리서점〉에서 찍어 왔던 사진 가운데, 예닐곱 해쯤 앞서 〈뿌리서점〉이 ‘책방 옮기기’를 해야 했던 때 모습을 담은 사진 열 장쯤 11×14 크기로 뽑아 둔 것을 선물로 드려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다가오는 한가위 선물이 될 수 있을까요. 늘 좋은 책을 만나도록 해 주시는 헌책방 아저씨와 아주머니한테 제가 내어 드릴 선물이란 사진 한 가지뿐입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용산역에 닿고, 바지런히 걸음을 놀려 헌책방 〈뿌리서점〉으로 들어갑니다. 사진만 건네드리기에는 멋쩍어 잠깐이나마 골마루를 누비면서 책을 살펴봅니다. 책 몇 권을 골라서 책값 셈을 하고 나서 사진을 드리고 맡길 참입니다.

《문희석 엮음-오늘의 지혜문학 연구》(대한기독교서회,1976)라는 작은 책을 하나 골라듭니다. ‘지혜문학’은 성경을 가리킵니다. 슬기로운 말씀을 담았다고 여기며 ‘지혜문학’이라고도 가리키는구나 싶습니다.

《슬기의 열매(학급문고:5ㆍ6학년용)》(저축중앙추진위원회,1978)라는 글모음을 구경합니다. 박정희 시대에 국민학교 아이들 사상교육을 시킬 때 쓰던 교재입니다. 내 어릴 적에도 이 비슷한 책을 읽어서 독후감 쓰기 숙제를 했다는 일이 어렴풋하게 떠오릅니다. 독후감 쓰기 숙제는 참 잦았고, 읽어야 할 책은 《슬기의 열매》와 같은 ‘저축하기’를 다룬 책, ‘김일성 때려잡자’는 승공통일 책, 우리 둘레에 간첩이 없는가 알아보고 신고를 잘해야 한다는 반공방첩 책, 어르신을 우러르고 마을 이웃한테 인사를 잘하자는 예의범절 책, 나라에는 충성 집에는 효도를 해야 한다는 충효 책, 새마을정신을 지켜서 밝은 사회를 이룩하자는 국민교육헌장 책, 그리고 몇 가지 과학동화에다가 안데르센 동화붙이였습니다.

이원수 님 창작동화라든지 마해송 님 창작동화는 구경도 못했습니다. 기껏 방정환은 이름을 들었지만 이분 작품을 읽은 일은 떠오르지 않고, 현덕 같은 이름은 들을 일이 없었습니다. 이원수 님 동요도 〈고향의 봄〉이나 〈오빠 생각〉쯤뿐이고, 나머지는 윤석중, 어효선, 유경환, 김동극, 박목월 같은 사람들 작품이었습니다.

책이라고 쥐어 주나 책 아닌 책이라 할 만했고, 책읽기는 몹시 괴로운 짐이었습니다. 책다운 책을 우리 나름대로 골라서 우리 깜냥껏 즐기도록 하는 문화란 조금도 없었고, 오로지 우리 생각을 외곬로 길들이려는 지식넣기에서 맴돌기만 했습니다.

.. 우리 나라 국민의 한 사람 평균소득은 1961년에는 82달러밖에 되지 않았는데, 1977년에는 700달러로 늘어났다. 한 사람의 평균소득이 이렇게 8배로 늘어남으로써 우리의 생활은 16년 전에 비하여 훨씬 윤택해졌다 … 1962년에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한 이래 경제 성장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결과, 오늘날에는 기본적인 의식주의 문제를 대부분 해결하고 라디오, 텔레비전, 냉장고, 전화, 자전거, 승용차 등의 보급과 이용이 늘었으며, 교육 수준과 의료 수준도 향상되었다 … 이렇게 소득이 늘고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생활 환경이 좋아지면, 사람들은 여가 시간을 보다 많이 가지게 되고, 이러한 여가 시간을 스포츠ㆍ관광ㆍ여행 등 취미 생활을 즐기는 데에 쓸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테니스를 즐기고 골프채를 휘두르고 요트를 젓고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게 된다. 또 직장마다 연극 동호회, 합창단, 합주단 등이 생기고 아름다운 들판에 나가 그림을 그리는 취미를 즐기게 될 것이다. 매일 열리는 야구 시합이나 축구 시합, 경마 등을 컬러테비전으로 즐기게 되고 … 또한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시간의 여유가 생기게 됨에 따라 외국으로 관광 여행을 떠나는 기회도 많아질 것이다 ..  (213∼219쪽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박재윤)

이제 와 다시 읽으니 피식 웃음이 납니다. 그렇지만 그때는 참 아득했습니다. 독후감 숙제 안 해 오면 굵직한 몽둥이로 엉덩이나 허벅지에 시퍼런 멍이 들도록 맞거나 무거운 나무걸상을 들고 골마루에 무릎 꿇고 있거나 뒷간 청소를 맡아야 했어요. 다른 숙제를 안 해 올 때에도 마찬가지였지만, 담임 교사라는 이한테 ‘숙제 안 해 왔으니 맞아야 한다’면서, 길에 줄을 지어서 교실을 빙 두르던 일, 책상에 올라가 무릎 꿇고 앉아서 손 들고 있던 일이 잊히지 않습니다. 제 어릴 때 ‘책읽기’라고 하면 떠오르는 모습입니다.

책들 골마루 한켠 쌓인 책, 책을 담는 비닐봉지
▲ 책들 골마루 한켠 쌓인 책, 책을 담는 비닐봉지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こわせ たまみ(글),ませ なおかた(그림)-はじまりの物語 10 : ゆうびん》(チャイルド本社,1993)라는 그림책 하나 보고, 《浜田廣介(글),日限 泉(그림)-よぶこどり》(チャイルド本社,1992)라는 그림책 하나 봅니다. 그림결이 퍽 사랑스럽습니다. 일본은 일찍부터 이런 사랑스러운 그림책이 많이 나왔습니다. 비록 일본사람들 가운데에는 ‘이처럼 좋은 책이 넘쳐나고 있어도’ 허튼 생각을 품고 엉터리 마음으로 이웃나라를 괴롭히거나 들볶는 못난이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처럼 좋은 책을 어릴 때부터 늘 곁에 두고 자랄 수 있기에, 넉넉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꾸는 훌륭이들도 많다고 느낍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 옮겨지는 수많은 일본 문학을 생각해 보아도 그렇습니다. 한국문학이 이처럼 일본에서도 옮겨질 수 있을까요? 한국문학이 골고루 일본으로도 옮겨질 만큼 재미나 깊이나 아름다움이나 멋을 품을 수 있을까요? 그 끔찍한 제도권 교육과 숙제짐과 입시지옥이 고스란히 있는데. 한국 같은 나라에서 시쟁이 한 사람, 소설쟁이 한 사람이 즐겁게 태어나거나 자랄 수 있을까요?

《South Africa, land of beauty》(?)라는 홍보 사진책을 하나 집습니다. 《池內紀,南川三治郞-世紀末ウィ-ンを步く》(新潮社,1987)는 일본 신조사에서 사진문고로 펴내는 묶음책 가운데 하나. 신조사 사진문고를 볼 때마다, 우리 나라에도 이렇게 가볍고 작고 값싸면서 줄거리를 알뜰하고 대단한 책을 펴낼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지울 길 없습니다. 우리 나라 출판사에 돈이 없어서 이런 책을 못 엮는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 책마을에 사람이 없어서 이런 책을 못 여민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3) 아이와 책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 사제단 창립 30주년 기념 소설’이라고 하는 《진 시노트/함세웅 옮김-영종도 사람들》(성바오로,2004)을 고릅니다. 글쓴이 진 시노트 신부는, 온삶을 바쳐서 인천 앞바다 외딴섬에서 선교를 한 분인데, 한국땅에서 ‘민주화 운동’을 거들었기에 미움을 받아서 한국 정부가 추방을 해서 쫓겨났다고 합니다. 문득, 요즈음 한국 천주교단에서 벌어지는 ‘알쏭달쏭한 인사 이동’이 떠오릅니다. 나라밖 푸른눈 신부는 박정희 독재정권 때 온몸 바쳐 한국 민주화를 바라며 애쓰다가 쫓겨나고, 2008년 오늘날 정부가 잘못하는 일을 꾸짖고자 일어선 정의구현 사제단 신부들 또한 ‘높은 분’이 목아지를 뎅겅뎅겅 자르고.

겉그림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이야기를 담은 책. 그렇지만, 정작 중요한 '배앓이'와 '아이낳기' 과정 들은 제대로 담겨 있지 못합니다.
▲ 겉그림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이야기를 담은 책. 그렇지만, 정작 중요한 '배앓이'와 '아이낳기' 과정 들은 제대로 담겨 있지 못합니다.
ⓒ 고려원

관련사진보기

《고정욱,이연숙-아이를 키우며 나를 키우며》(고려원,1991)라는 책이 눈에 뜨입니다. 고정욱 님이 지금처럼 널리 이름이 나기 앞선 때 쓴 글을 모았는데, 당신하고 옆지기가 아이를 낳은 이야기를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썼습니다.

.. 삼촌은 엄마가 있는 분만대기실에 또 들어가더니 아까보다 더 놀라서 나왔단다. 왜 그러냐니까 엄마 옆에 있는 산모가 피투성이가 된 채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놀란 거다. 그저 사람은 세상에 뚝 떨어지는 줄로 알다가 그 같은 고통이 있은 뒤 이 세상에 나온다는 걸 새삼 알게 된 거지 ..  (91쪽)

아기받이를 해 보기는 저도 이번이 처음이기는 했지만, 아기가 ‘뚝 떨어지는’ 줄 알지는 않았습니다. 적어도 중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해 주는 성교육을 제대로 받았어도 이렇게 엉터리로 알지는 않았을 텐데. 어머니들 배앓이를 그리도 모를 수가 있을까 싶지만, 지금 우리 사회나 교육은 남자 된 이한테 ‘아기낳이’가 무엇이고 어떻게 치르는 일인가를 찬찬히 가르치거나 보여주지 못합니다. 남자 된 이들도 스스로 아기낳이를 배우거나 돌아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 의사선생님께서 엄마를 보고는 자궁이 5cm 열렸다고 영양제를 놓으라 지시했는데 간호사가 1번 4번 침대의 아줌마들이 심하게 진통하는 바람에 3번 침대에 누워 있던 엄마에게 영양제 놓는 걸 잊었단다 … 엄마가 다른 산모들과 달리 너무 조용히 누워 있으니까 의사나 간호사들은 엄마가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분만실로 옮겨진 엄마는 소변을 빼내는 간호사의 지시대로 조금 찌릿한 통증을 참고 누워 있었다. 잠시 후 의사 선생님께서 오셔서 회음부 절개를 시작했다. 이미 마취를 시킨 상태라 별로 아프지는 않았다. 조금 두려워 숨을 죽이고 있으려니 고통스러울 뿐이었다 … 새벽 3시경에 엄마는 8인실로 옮겨지면서 야간근무하시던 간호사께서 국밥 좀 가져오라고 식당에 지시한 뒤 입원실로 갔는데, 침대가 꽉 차 엄마를 옮겨 누이기 불편해 하는 것 같아 엄마는 벌떡 일어나 입구에 있는 침대로 옮겨 누웠다. 그 뒤 간호사가 엄마만 보면 용감한 산모라고 해 아빠와 우린 웃었지 ..  (101, 105, 108쪽)

이제 다섯 살이 될 딸아이를 둔 옛동무도 저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남자 된 사람이 자기 옆지기를 돌보고 아이를 돌보는 일이 가장 훌륭하고 좋습니다. 옛동무는 자기 가게에 나가서 일을 해야 하기에 돌봄이 아줌마를 썼다고 하는데, 네 해 앞서였는데 두 주에 육십만 원인가 주었다고 합니다. 한 달이면 백이십만 원입니다. 가게를 꾸리는 옛동무로서는 가게 살림으로 얻는 돈은 백이십만 원을 훌쩍 넘길 테지만, 자기가 잠깐 일을 접고 옆지기와 아이를 돌보면서 얻는 ‘마음 값과 기쁨과 보람’은 돈으로 헤아릴 수 없도록 크지 않았으랴 싶어요. 옛동무도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 아빠는 공부방에 다시 돌아와 부모가 자식 하나를 키우기 위해 쏟는 정성이 정말이지 엄청남을 느낀다. 하루종일 붙어 앉아서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닦고, 안아 주고, 돌봐 주고 ……, 이런 정성을 아빠가 다른 친구들에게 며칠만 베푼다면 아마 그 친구는 아빠를 평생의 은인으로 알고 고맙다고 할 게다. 물론 남에게 이렇게 할 사람도 별로 없겠지만. 그런 정성으로 자식 하나 키운다는 사실을 범준이 너를 키우면서 절감한다 ..  (125쪽)

아이낳기를 몸소 겪고 보니, 지식으로만 알던 때하고는 사뭇 다릅니다. 다를밖에 없을 텐데, 이처럼 몸소 아이낳기를 겪는 요즈음 어버이들은 얼마나 될까 궁금해집니다. 손쉽게 다른 이 손을 빌거나 돈으로 다른 이 손을 사지는 않는지. 아기 기저귀는 천을 쓰는지 일회용품을 쓰는지. 아기 밥은 젖을 물리는지 분유를 사다가 타 먹이는지. 젖떼기밥을 손수 지어서 먹이는지 이유식을 사다가 먹이는지 …….

아이낳기가 자기와 온 식구한테 기쁨(축복)이라면, 스스로 달게 받아들일 뿐 아니라, 스스로 모두를 치러내려고 하리라 봅니다. 꼭 가난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아이를 받고 몸풀이를 한다기보다, 아이 하나가 세상에 나오는 일은 기쁨이기에 고맙게 받아들인다고 할까요.

그렇지만, 어머니 쪽은 거의 아기한테 붙어 있을 테지만, 얼른 회사 나가야 한다면서 ‘아기 돌봄이’를 불러서 돈 주고 맡기는 분들도 제법 있습니다. 아버지 쪽은 어머니 쪽과 달리 ‘산전휴가-산후휴가’를 제대로 내지 못할 뿐더러 낼 생각조차 안 하곤 합니다. 공기업이라면 모르되, 여느 회사에서는 한두 달씩 산전산후 휴가를 내면 ‘회사 안 다니고 싶니?’ 하고 물을까 걱정이 된다고 합니다. 하긴, 그래서 회사에 노동조합이 있어야 하고, 노동조합은 아이를 낳아 기르는 노동자한테 산전산후 휴가를 지켜 주면서, 새로운 목숨이 새 세상에 나온 일을 함께 기뻐하면서 돌볼 수 있도록 애써 주어야 합니다.

돈으로만, 또 돈으로만, 다시 돈으로만, 아이를 낳고 키우려 한다면 구태여 이렇게 안 해도 된다고 할 테지만, 아이를 사랑으로, 또 믿음으로, 그리고 나눔으로 키우려 한다면 다르게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다르게 고쳐 나가야 한다고 느낍니다. 뒷날 아이가 우리한테 물려받아서 할 일을 살피고, 뒷날 아이가 이 땅에서 살아갈 모습을 그리며, 뒷날 아이가 제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될 때 사회 얼거리를 헤아려야 한다고 봅니다. 돈 많이 버는 일자리를 얻도록 일류대학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 주지 말고, 풋풋한 꿈을 영글어야 할 십대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시험공부에만 매달리도록 내몰지 말며, 우리 자신과 우리 아이 모두 아름다움을 갈고닦을 수 있게끔 힘을 모아야지 싶어요.

바깥쪽 책 길가에 내놓고 있는 책더미들.
▲ 바깥쪽 책 길가에 내놓고 있는 책더미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4) 집으로 돌아오며

잡지 《기획회의》(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23호(2008.5.5.)를 마지막으로 고른 다음 책값을 셈하고 사진을 드리고 맡깁니다. 딸아이 낳은 소식을 들려 드리니, ‘첫딸은 밑천’이라는 말씀으로 축하해 주십니다. 밑천이라. 모두들 이 말을 하는데, 틀림없이 우리 딸은 우리한테 밑천입니다. 돈 밑천이 아닌 마음 밑천. 우리가 이 세상을 즐겁고 신나게 살아가는 길에서 함께 손 잡고 힘차게 걸어갈 길동무 밑천.

다시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모처럼 전철에서 두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한동안 손에 쥐기 어려웠던 책을 달콤하게 읽습니다. 아주 맛있는 책읽기입니다. 끼니 때울 겨를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하루였으나, 배고픔은 느끼지 않으면서 만나게 책을 읽고 보고 장만하고 가방에 채웠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서울 용산 〈뿌리서점〉 / 02) 797-4459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한국말사전을 새로 쓴다.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우리말 꾸러미 사전》《우리말 글쓰기 사전》《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