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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 나일론 그물망을 히잡처럼 뒤집어 쓴 조 이삭
 파란색 나일론 그물망을 히잡처럼 뒤집어 쓴 조 이삭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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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오지산행이야? 고생할 각오 단단히 해야겠는 걸”
“활메기산과 연화봉이라? 왠지 산 이름도 예사롭지가 않아?”

일행들이 지레 겁을 먹은 표정들입니다. 전에도 두 번인가 이 산악회를 따라 왔다가 그야말로 죽을 고생을 한 경험들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행들은 지난 9일 서울 지하철 5호선 강동역 앞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출발했지요. 4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경북 봉화군 곳재를 넘어 평천이란 골짜기였습니다. 골짜기 안으로 들어서자 하늘이 그야말로 손바닥만큼 열린 심산유곡입니다.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개울을 건너자 서너 가구의 집만 보일뿐 사람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골짜기 안으로 들어선 선두그룹은 힘차게 잘도 걸었습니다. 어느새 정오가 가까워서 비좁은 골짜기로 쏟아져 내리는 한 여름 같은 뜨거운 햇살에 온몸이 금방 땀으로 흠뻑 젖어들었지요.

길도 찾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산악회 산행

“잠깐만요. 오던 길로 뒤돌아 가랍니다.”

앞장서서 기세 좋게 걸어 올라가던 사람들이 뒤돌아선 것은 산행을 시작한지 20분도 안됐을 때였지요. 말끔하게 닦인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니 무덤으로 연결된 성묘 길이었던 것입니다.

길가 숲 아래 옥수수밭 풍경
 길가 숲 아래 옥수수밭 풍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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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 산행 시작하자마자 또 헤매는구먼, 오늘도 각오 야무지게 해야 되겠어.”

일행들은 아예 고생을 각오한 듯 체념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런데 일행들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지요. 뒤돌아서 골짜기를 타고 올라가다가 길가에 서있는 퇴락한 빈집을 지나, 다시 어느 무덤에 이르자 길은 끊기고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할 수 없지, 자! 제 뒤를 따르세요?”

이곳에서부터 선두대장은 목표지점을 설정하고 곧장 숲을 헤치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지요. 그야말로 산에 길을 만들며 올라가는 셈이었어요. 쭉쭉 미끄러지며 허위허위 올라갔지요. 다행히 바위가 없는 흙산에 울창한 잣나무 숲이어서 힘은 들었지만 그리 위험하거나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30여분을 힘들게 올라 능선에서 산길을 만났습니다. 능선에는 작은 바위들도 있고 제법 아기자기한 길이 뚫려 있었지요, 첫 번째 오른 봉우리는 안개봉, 그러나 주변을 가린 우거진 숲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은 근처의 야생화들과 키가 큰 나무들뿐이었지요.

“이 산이 특이한 이름의 활메기산인데 뭐 특별한 전설 같은 것 없나?”

일행들은 그럴싸한 전설이라도 기대하는 눈치였습니다. 능선길을 걸어 두 번째로 오른 봉우리가 활메기산이었는데 아주 평범한 모습이었습니다. 특별한 전설 같은 것도 없었지요, 그러나 능선으로 이어진 연화봉과 골짜기 곳곳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연화봉 정상에 올라 복분자 술로 정상주 한 잔, 캬!
 연화봉 정상에 올라 복분자 술로 정상주 한 잔, 캬!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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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메기 산에서 정상인 연화봉은 가까운 거리였지요, 잠깐 오르자 역시 예쁜 꽃을 피운 이름 모를 풀들과 나무숲에 휩싸인 둥그런 모양의 정상이 나타났습니다. ‘도경계 연화봉 1052,8미터’라는 태백시 산사랑회가 세워놓은 정상표지석 한 개가 외롭게 서있었지요. 이 연화봉은 강원도 태백시와 경북 봉화군의 경계지점에 솟아 있는 봉우리입니다.

주변의 숲 때문에 시야가 저 멀리 태백산 자락만 보일뿐 모두 가려 있었지만 연화봉은 산세가 마치 연꽃 모양이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연화봉은 백두대간의 태백산 부소봉(1546.5m)에서 동쪽으로 문수봉(1517m)을 지난 후, 다시 작은 문수봉에서 남쪽으로 급하게 고도를 낮추며 흘러내리다가, 동쪽으로 방향을 바꿔 바로 이 연화봉과 활메기산, 안개봉을 빚어 놓고 낙동강으로 급하게 곤두박질 친 형세지요.

연화봉 정상에 올라 복분자 술로 정상주 한 잔, 캬!

“자! 없는 산길 만들며 힘들게 올라왔는데 기념사진 한 장 찍고 정상주 한 잔 해야지?”

정상에 먼저 오른 선두 그룹은 내려가고 우리 일행들과 다른 두 사람이 남아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지요.

“정상주? 전에 듣지 못했던 말인데 무슨 소리야?”

내가 배낭에서 작은 술병을 꺼냈지요. 복분자 술입니다. 지금까지 3년 동안 산에서는 절대 금주를 원칙으로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산행부터 정상에 오른 기념으로 복분자 술을 아주 조금씩만 마시기로 작정했지요. 그래서 지난봄에 집에서 담근 복분자주를 처음으로 작은 우유병에 조금 담아온 것입니다.

때 이른 단풍
 때 이른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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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 술 맛 좋다. 그런데 양이 너무 적은 걸. 감질 맛만 나잖아?”
“양이 너무 적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정상주라니 술맛도 기분도 짱인데 하하하”

일행들은 모처럼 정상에서 적은 량이지만 한잔씩 마시는 복분자 정상주가 썩 기분 좋은 모양입니다.

등산객들의 발길이 뜸한 오지산이어서인지 내려가는 길은 온통 가시덤불로 막혀 있었지요, 할 수 없이 올랐던 길로 50여 미터를 되짚어 내려와 우회하는 길을 찾아 하산길로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산길이 너무 희미했습니다. 분명히 산길은 나있는 것 같은데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아서 길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끔씩 눈에 보이는 것은 산짐승들의 수북한 배설물이었지요. 그만큼 사람들이 찾지 않는 오지의 깊은산이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선두 대장이 뒤에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내려간 산악회 종이표지를 따라 천천히 내려갔습니다. 오후가 되면서 숲속을 살랑거리는 바람이 산들산들 시원합니다. 누군가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합니다.

영글어가는 수수이삭
 영글어가는 수수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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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 심봤다!”
“오잉! 심봤다고? 누구요, 누구?”

하산하는 능선길 작은 봉우리로 오르는 길목에서 누군가 심봤다! 하고 큰소리로 외치는 소리에 부지런히 좇아가보았지요. 그러나 ‘심봤다‘는 한 마디로 뻥이었지요. 산삼을 캔 것이 아니라 어른 새끼손가락만한 더덕이었으니까요.

더덕 한 뿌리 캐 손에 들고 ‘심봤다‘를 외치다

그래도 산에서 더덕 한 뿌리라도 캘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벌써 4년  가까이 매주 등산을 했지만 아직까지 산삼은 고사하고 더덕도 캐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옳지! 나도 한 뿌리 캐보리라, 하고 더덕 잎을 확인한 다음 살피며 오르다가 비슷해 보이는 것이 있어 캐보니 정말 더덕이더군요.

난생 처음 산에서 더덕 한 뿌리를 캔 것입니다. 나도 장난삼아 “심봤다!” 하고 외쳤지요, 그러나 속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 산에는 더덕이 정말 많았습니다, 한 사람은 다섯 뿌리나 캤고 다른 사람들도 대개 한두 뿌리씩은 캤으니까요.

그렇게 능선길을 걷다가 내리막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역시 흙길이었지만 등산로가 희미하고 경사가 급하여 조심스러운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앞장서 내려가던 사람이 갑자기 주저앉아 무엇인가를 소중이 갈무리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이 귀한걸 발길로 걷어차고 지나갔네요.”

무엇을 그리 소중하게 갈무리하느냐고 물으니 능이버섯이랍니다. 처음 듣는 버섯이름이었지요.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빛깔은 별로인데 향기가 아주 좋았습니다. 어른 손바닥 크기의 능이버섯 서너 조각을 주운 사람은 횡재라도 한 듯 매우 기분 좋은 표정이었지요.

위험한 바위너덜길을 조심조심 내려가는 등산객들
 위험한 바위너덜길을 조심조심 내려가는 등산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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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금 더 내려오노라니 이번엔 아주 고약한 길이 나타났습니다. 급한 경사면에 맷돌만큼씩이나 커다란 돌들과 참외나 호박만큼씩 큰 돌들이 뒤엉킨 너덜바윗길인 나타난 것이지요. 아주 위험한 길이었습니다.

“어! 또 이런 길로 끌고 내려가는구먼, 이건 아주 위험하고 고약한 길인데”

몇 사람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투덜거리면서 조심조심 앞장을 섰습니다. 너덜바윗길은 사람들이 다니던 길이 아니어서 밟으면 뒤뚱거리며 미끄러지고 뒤틀려 아차하면 넘어져 다칠 염려가 많았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모두들 극도로 조심하며 내려와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습니다.

산 아래로 내려오자 울타리를 둘러친 배추밭에 허수아비 몇 개가 서있는 풍경이 이채롭습니다. 익어가는 벼논도 아니고 곡식이 아닌 배추밭에 허수아비라니요? 밤이면 내려와 밭을 망쳐놓는 멧돼지 때문에 울타리와 허수아비를 세워놓은 것입니다.

돌고개 마을에 전해오는 오맞골 이야기

저만큼 몇 채의 집이 바라보입니다. 마을로 내려서자 맨 위쪽에 대웅전이란 현판이 걸린 암자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바로 연선암이었지요. 그 아래로 두 채의 집이 보였습니다. 샘물이 흘러내리는 집 옆 우물터와 빨간 고추를 말리는 앞마당에는 할머니 세분과 남자 노인 한분이 앉아 계셨지요.

향기와 맛뿐만 아니라 영양과 약효도 쫗다는 능이버섯 한 조각
 향기와 맛뿐만 아니라 영양과 약효도 쫗다는 능이버섯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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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름을 물으니 태백시 돌고개 마을이라고 합니다. 몇 가구나 되느냐고 물으니 암자와 두 집뿐이랍니다. 마을은 아래쪽에 있다고 합니다. 산 좋고 물 맑은 좋은 곳에 사신다고 말하자 노인들이 그렇다고 맞장구를 칩니다. 노인들은 추석명절에 고향에 내려올 아들딸들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돌고개 마을의 또 다른 이름은 오맞골이랍니다. 참 특이한 이름이지요, 이 특이한 마을 이름에는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옛날 이 오맞골에 살던 젊은 여인이 어느 날 몸에 좋다고 소문난 통점에 있는 약수를 마시러 갔는데, 급한 마음에 새치기를 하다가 뒷사람에게 물벼락을 맞았답니다,

여인은 약수를 떠가지고 집으로 내려오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를 맞았고. 소낙비에 젖은 옷이 몸에 찰싹 달라붙어 여인의 풍만한 몸매가 드러나는 바람에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나그네의 눈에 띄어 욕정을 참지 못한 나그네에게 몸을 도둑맞았지요.

그리고 집에 돌아와 보니 외양간에 매어둔 소를 누가 몰고 가버렸더랍니다. 소를 도둑맞은 것이지요. 그런데 저녁에 돌아온 남편에게 집을 잘 지키지 못하고 소를 도둑맞았다고 실컷 두들겨 맞았답니다.

고추를 말리는 돌고개 농가풍경
 고추를 말리는 돌고개 농가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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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물벼락 맞고, 소낙비 맞고, 나그네에게 서방 맞고, 소도둑 맞고, 남편에게 매 맞고, 하루 동안에 다섯 번을 맞았다고 하여 그 후부터 이 여인을 오맞댁이라 불렀고, 마을 이름도 오맞골이 되었답니다. 옛날 여인의 서럽고 한 많은 사연이 깃든 이야깁니다.

돌고개 마을에서 조금 더 내려가자 도로 옆으로 철길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태백산맥을 관통하는 철길입니다. 건널목에서는 침목교체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이곳이 옛날에는 호랑이가 많이 나타났던 호시고개라고 불렸던 곳입니다. 지금은 도화동산이라는 멋진 쉼터가 만들어져 있었지요.

그런데 이 지역은 옛날에는 외지인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던 곳이어서 호랑이가 많이 출몰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범바우, 범골, 간지밭골, 구무골, 호식총, 가래이밭 등 호랑이와 관련된 지명이 많은 곳입니다, 그런데 호랑이이야기는 이제 전설이 되었고 멧돼지가 그 자리를 차지한 셈입니다.

능이버섯 손에 들고도 놓친 횡재, 그거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다

점심은 호시고개 도화동산에서 봉화군 석포리 쪽으로 1키로미터쯤 떨어진 육송정에서 먹게 되었습니다. 버스가 그곳에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육송정은 낙동강 상류 물줄기가 태백쪽과 봉화쪽에서 흘러들어 합류하는 지점에 세워져 있는 멋진 육각 정자였습니다.

“아까 우리들이 버린 그 버섯 말이야, 그거 왠지 좀 아까운 마음이 드는 걸”

먼저 내려와 점심을 먹고 있던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무슨 말인가 들어보니 내리막길에서 한 사람이 주워 횡재한 표정을 지었던 바로 그 능이버섯 이야기였습니다.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옛 호시고개, 철길 건널목 침목교체작업하는 사람들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옛 호시고개, 철길 건널목 침목교체작업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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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이 무슨 버섯인지 몰라 버린 능이버섯은 다섯 송이나 되었습니다. 그것도 늙은 호박만큼씩이나 큰 것들이었답니다. 뒤따라 내려오던 일행이 주워 횡재한 것은 다섯 송이 중 한 개였던 것입니다.

“능이버섯을 몰랐습니까? 왜 있잖아요? 버섯들 중에 첫 번째가 석이버섯, 두 번째가 능이버섯, 세 번째가 송이버섯이란 걸?”
“그럼 그 버섯이 그 귀하디귀한 송이버섯보다도 한 등급 위네요? 아! 아깝다 아까워, 그 귀한 능이버섯을 버리고 오다니”

값으로 계산해도 수십만 원은 족히 될 거랍니다, 그렇게 귀한 능이버섯을 다섯 송이나 버리고 오다니, 그들은 몹시 아까운 표정이었습니다, 오지산행 중에 횡재한 것을 몰라서 버리고 내려온 것입니다. 역시 횡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쉬며 개울 건너를 바라보니 이상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밭에 자란 곡식들이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궁금해서 다가가 살펴보니 놀라운 모습이었습니다.

배추밭 허수아비, 히잡 쓴 조와 수수, 멧돼지와 새떼 막기에 힘겨운 농민들

철길 옆에 있는 길쭉한 모양의 밭에서는 조와 수수가 영글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수수와 조들이 모두 하나 같이 푸른 나일론 망을 뒤집어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이슬람 여인들이 히잡을 쓴 모습처럼 말입니다.

모두 파란 그물망을 뒤집어 쓴 철길 아래 조와 수수밭 풍경
 모두 파란 그물망을 뒤집어 쓴 철길 아래 조와 수수밭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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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떼들 때문 아닙니까? 그냥 놔두면 새들이 날아와 모두 쪼아 먹어 버리거든요.”

마침 근처를 지나던 주민에게 물으니 새들로부터 조와 수수를 지키기 위해서 망을 씌워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냥 놔두면 어느 날 새떼들이 날아와 모두 쪼아 먹어버리고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고구마나 감자밭이 아닌 배추밭도 멧돼지로부터 지키기 위해 울타리와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조와 수수는 새떼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일일이 나일론 망을 씌워 놓아야 한다니 얼마나 고달픈 농사입니까? 힘없는 노인들만 남아 농사짓는 우리농촌의 또 다른 안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이날도 산에서 낙오됐다가 늦게 내려온 한 사람은 버스가 출발할 때에야 나타났지만 걱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지요. 돌아오는 길에 바라본 여주 이천 들녘은 풍년 가을이 황금색으로 영글어가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승철, #활메기산, #연화봉, #능이버섯, #멧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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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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