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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거대한 폭풍이 몰려오는데, 닻만 높이 쳐 올리고 (바다로) 나간다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우선 배를 안전한 곳에 정박시키고, 식량도 점검하고 해야 하는데…."(홍종학 경원대 교수)

 

"대통령이 강만수 장관하고 손이 잘 맞고 믿는다고 해서, 그것이 이명박 경제팀에 대한 시장의 신뢰로 이어지지 않는다."(유종일 KDI 국제대학원 교수)

 

"대기업을 위한 감세와 규제완화 정책을 쓰면서, 대기업 정책은 없다고 뻔한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 것은 정말 문제다."(장상환 경상대 교수)

 

예상은 했지만, 그들의 지적은 매서웠다. 현재의 '경제위기설'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인식과 처방에 대해서도 날선 비판이 이어졌다.

 

10일 이른바 '9월 위기설'은 말 그대로 '설(說)'로 끝났지만, 정작 위기는 이제부터라는 것이 이들의 진단이다. 특히, 이명박 경제팀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이같은 위기설은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도 이어졌다.

 

문제는 신뢰의 위기가 계속되고, 부동산 버블과 가계 부실 등을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처방이 엇나갈 경우다. 이럴 경우 한국경제는 97년 외환위기를 넘어선 '진짜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게 이들의 공통된 경고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를 비롯해,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대학원교수, 장상환 경상대 교수, 전성인 홍익대 교수, 홍종학 경원대 교수(이하 경제학) 등 진보적 성향의 경제학자 5명과 10일 오후 이야기를 나눴다.

 

"사소한 충격에도 출렁이는 경제구조가 진짜 위기"

 

이들이 바라보는 '9월위기설'의 실체는 서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위기설을 정확히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단지 특정 기간에 걸쳐 외국인들이 한국 시장에서 빠져나가는 모습만 봐선 안된다는 것이다. 김상조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9월위기설의 핵심은 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67억 달러 채권만기가 돌아온다는 것이 아니예요.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국민과의 대화'에서도 위기설을 67억 달러로 국한시킨 것은 매우 협소한 시각이죠. 지난 10년간 구조조정 성과를 보면, 국내 시장에서 67억 달러 유출된다고 해서 10년 전 외환위기가 온다고 볼 수는 없어요. 이건 이미 그동안 전문가들도 이야기했던 것들이죠."

 

김 교수는 이어 "결국 위기설의 핵심은 67억 달러 외화유출이라는 사소한 충격에도 우리 금융시장이 요동칠 정도로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취약한 금융시장의 구조 속에, 정부가 일관성 잃은 정책을 추진해 온 탓에 시장의 신뢰까지 잃어버린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유종일 교수는 "이미 오래 전부터 단기외채 급증에 따른 외환보유고의 적정성에 대한 경고음이 나왔다"면서 "하지만 정부가 무리한 환율정책을 펴면서 외환시장에 섣부르게 접근했고, 이는 곧 시장의 신뢰 상실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다시 유 교수의 말이다.

 

"문제의 출발점은 과잉유동성이에요. 가계도 빚 얻어서 부동산에 집어넣었고, 정부나 은행 등도 외국에서 돈 빌려다가 방만하게 경제를 운영해왔던 겁니다. 그래서 생긴 것이 주식시장 버블, 부동산 버블이죠. 물론 대기업이나 상류층은 괜찮겠지만, 중소기업이나 일반 서민 가계는 물가와 금리가 올라가는 상황에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전성인 교수는 "어떤 사람이 감기로 열이 나고 있는데, 지금 상황은 감기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 것"이라며 "문제는 그 사람이 마치 감기가 다 나은 것처럼 느끼고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장상환 교수 역시 "미국의 구제금융 투입으로 약간 나아진 것 같아 보이지만, 국내 금융시장은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며 위기를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부동산으로 경기부양한다면, 현 정부 내 버블붕괴"

 

장상환 교수는 이어 "가계 부채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부동산 버블 붕괴에 따른 가계 부실, 금융권 부실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 문제는 정부가 이같은 버블을 관리해나가기 보다는 오히려 부풀리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고 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9일 밤 '국민과의 대화'에서 밝힌 감세와 규제완화를 통한 경기 살리기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장 교수는 "감세가 고소득층 소비를 일부 늘리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전체적으로 소비진작 효과는 거의 없다"면서 "기업들의 투자유발 효과가 없다는 것도 이미 실증적으로 나와 있다"고 설명했다.

 

홍종학 교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의 말을 옮겨본다.

 

"서울 강남에 잘 사는 사람들에게 돈을 뿌려준다고 해서, 그 돈이 아래쪽으로 결코 내려오지 않아요. 중하위 계층에 돈을 뿌려줘야 돈의 효과가 위쪽으로도 올라옵니다. 중산·서민층의 소비가 늘어나야, 고소득층으로도 이어지고 기업에게도 돌아가는데… 지금 정부의 감세안은 정반대로 가고 있죠."

 

문제는 이같은 감세 정책을 정부가 뒤집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감세와 규제완화를 통한 경제살리기' 자체가 이명박 정부를 지탱하고 있는 핵심 가치이기 때문이다.

 

김상조 교수는 "현 정부의 철학을 인정하더라도, 현재와 같은 경제 상황에선 감세를 중심으로 한 재정 운용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다시 그의 말이다.

 

"현재의 외환보유고 상황을 본다면 정부는 환율개입을 당장 중단해야 합니다. 이미 막대한 외화를 낭비했고, 환율관리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겁니다. 또 최근 물가폭등과 경기침체를 보면, 오히려 감세보다는 정부의 재정확대를 통한 서민계층 지원이 단기적으로 맞습니다. 하지만 답답한 것은 현 정부는 이같은 방향으로 갈 생각이 없다는 것이죠."

 

김 교수는 "정부는 금리를 동결하거나 인하 쪽으로 유도하면서 시중에 유동성을 팽창시키고, 부동산 경기부양을 통해 일용직 중심의 일자리 창출에 목매고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아마 현 정부 임기동안 버블 붕괴를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장상환 교수도 "지금은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 확충 등 재정지출을 늘려야 할 때"라며 "특히 부동산 쪽의 공적인 비중을 키우고, 지방의 미분양아파트는 정부가 적절하게 인수해 저소득층에게 임대를 해주든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종학 교수는 미국의 사례를 들면서, 현 정부가 전혀 방향을 잘못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 교수는 "현재의 경기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면서 "물가 안정을 위한 금리 정책과 함께 심각한 가계대출에 따른 부실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정책 마련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조급증 버려야 경제가 산다"

 

특히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현실을 올바로 인식하고, 빨리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충고했다.

 

유종일 교수는 "이 대통령이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면서 "현재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경기 띄우기로 해결할 수 없고, 경기를 부양한다고 해서 뜰 있는 상황도 아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현재는 부동산 버블 등에 대한 구조조정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구조조정에 따른 서민·자영업자 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같은 구조조정이 늦어지면 금융부실화 등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상조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는 조급증"이라며 "이 대통령의 단기 업적주의로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스스로 '너무 서두른 측면이 있다'고 반성했지만, 실제 말과 행동은 괴리돼 있다"면서 "이같은 괴리가 한국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상환 교수도 "현 정부가 신뢰의 위기를 넘기 위해선 그동안 잘못된 부분에 대해선 깨끗이 인정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면서 "대통령 스스로 국민들 앞에서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내놓고, 말만 앞세우거나 실제 행동이 다르다면 시장의 혼란만 더 커지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 된다"고 비판했다.

 


태그:#9월위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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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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