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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과 올케가 미국에서 차린 차례상. 지난 설에 보내온 사진
 동생과 올케가 미국에서 차린 차례상. 지난 설에 보내온 사진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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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칠십까지만 제사를 모시련다. 네 아버지 치매 걸리신 후로는 일을 할 수가 없구나. 아버지가 어린애처럼 여기저기 일을 내고 다니시니 아버지 뒤따라다니느라 차례 준비도 할 수 없고 무엇보다도 차례를 지내는 제주가 저렇게 병이 들었으니 조상님도 이해하시지 싶다."

아버지가 치매 앓으시는 중에도 제사와 차례를 빼놓지 않으셨던 친정엄마가 지난해 말 어렵게 말을 꺼내셨습니다.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를 돌보시면서도 집안 대소사를 잊지 않고 챙기셨지만, 이제 당신의 몸도 예전 같지 않고 무엇보다도 제를 주제하실 아버지의 상태가 좋지 않아 차분하게 차례를 올리거나 제사를 지내기가 어려워졌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칠순에 제사 내려놓은 엄마

엄마는 김씨 가문에 맏며느리로 시집온 지 마흔일곱해 되는 해, 당신 나이 70이 돼서야 제사라는 무거운 짐을 스스로 내려놓으셨습니다.

"정말 힘이 없어 수저조차 들기 어렵다 싶기까지는 내가 맡아하려고 했는데… 아직은 며느리에게 책임을 지우고 싶지 않았는데…."

50년 가깝게 모신 제사를 며느리에게 물려주게 되었지만 엄마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습니다.     

"왜 그러세요. 그동안 너무 잘 오셨고 또 올케도 물려받아서 잘할 텐데. 언젠가는 올케가 물려받아야 할 일이었고. 조금이라도 먼저 짐 벗었으니 시원하지 뭐."

"예끼. 시원하기는 뭐가 시원해. 정말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보내긴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한국도 아닌 미국까지 가게 되었으니 조상님 뵐 면목도 없고…. 제사 하나도 내 손으로 받들지 못 하니 이제 나도 다 살았지 뭐냐. 어째 마음이 스산하니 영 쓸쓸하다."

"너무 걱정마세요. 올케가 잘할 거에요. 한국에 살 때 엄마가 하시는 거 도와드리면서 다 배웠잖아요. 지난번에 들어보니 이민간 사람들도 제사지내고 차례 지내고 다 한대요. 그 동네 사는 한국 교포들 중에도 제사 지내는 집이 더러 있다던데요." 

가난한 집 팔남매의 맏며느리로 시집와 네 아이를 낳아 키우고 연로하신 시부모님의 임종까지 모두 지켜보신 엄마. 철철이 다가오는 제사며 차례며 집안 대소사까지 군소리 없이 챙기면서도 큰 소리 한번, 생색 한번 낼 수 없던 맏며느리. 그것이 바로 우리 부모님 시대의 맏며느리 즉, 엄마의 인생입니다.

오죽하면 맏며느리는 하늘이 낸다는 말이 있을까요.
 할아버지 산소앞에 앉으신 아버지.
 할아버지 산소앞에 앉으신 아버지.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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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는 자식들 위해 지내는 거야"

시집온 지 마흔일곱해만에 하늘이 내었다는 맏며느리 자리를 며느리에게 내어주시는 엄마.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제사를 물려줬었지만 아직은 그 모든 일이 당신의 몫이라고 생각하시는 엄마는 홀가분함보다는 미련과 아쉬움이 더 크셨습니다.  

제사를 물려받을 남동생에게 보내기 위해 벽장에 고이 모셔두었던 제기를 꺼내 닦는 엄마. 정성스레 제기를 닦는 엄마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합니다. 

"놋이라서 다 보내면 너무 무거우니. 촛대랑 술잔이랑 수저만 보낼란다. 나머지는 지들이 알아서 하겠지 뭐."
"그래요. 제기 없어서 제사 못 지내는 건 아니니까. 마음이 중요하지, 그깟 그릇이 뭐 중요해." 

이미 반짝반짝 빛이 나는 제기들을 닦고 또 닦는 엄마. 아무래도 제기와 함께 물려주고 싶은 것이 있는 모양입니다.

"조상님이 살펴 돌보아주셨으니 니들이 이렇게 잘 자라주었지. 제사는 자식들을 위해 지내는 거야. 부모 없는 자식이 어디 있겠냐? 혹여라도 제사 소홀히하지 마라. 그저 내 자식을 위해 한다 생각하고 제사에 정성을 들여야 하는 거야."

삼색나물에 과일 세가지 사기가 어려운 형편일 때도 정성 가득 담긴 정화수 한 그릇을 조상님을 위해 떠올려드린 엄마. 엄마의 정성은 오롯이 자식들을 위한 축수였습니다.

"홀가분하다. 아주 시원해. 늙고 아픈 몸으로 며칠 전부터 제수 장만하러 다니랴, 기름 냄새 맡으며 부엌에서 동동거리며 일하랴, 힘들고 고달팠는데. 아주 노래가 나오겠어. 아주 시원해."

입으로는 "시원하다, 시원하다" 말하시는 엄마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집니다.

"아버지 어머니 죄송해요. 손주가 잘 해드릴 거에요. 그러게 왜 아들을 좀 잡아주시지 그랬어요. 당신 장남 좀 건강하게, 정신도 맑게 좀 해주시지 그랬어요. 늙은 며느리 제사 잡수시기 싫어서 그러셨어요? 이제 저도 좀 쉬라구요? 아니죠. 저 아직 힘도 있고 할 만한데 애비가 저렇지만 않으면 더 할 수 있는데…."

모진 시집살이 거친 인생에 눈물이 다 말라버렸다는 엄마가 마침내 제기를 붙잡고 눈물을 흘립니다.  

오십년 가까운 지난 인생동안 저 제기와 함께 했을 엄마의 인생. 제기를 모두 내다 버리고 싶을 정도로 힘든 때도 없지 않던 맏며느리 살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당신도 나이 칠순, 머리에 흰 서리가 내려앉은 노인이 되어 힘들게 이어가던 제사마저 며느리에게 물리게 되었으니 어찌 서러움이 밀려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추석 전 벌초를 하기 위해 며칠 전 아버지를 모시고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를 찾은 엄마는 다시 한번 할머니·할아버지 앞에 부탁을 드립니다.

"아버지 어머니, 생전에 그렇게 사랑하시던 손주네로 가시니 좋으시지요. 손주 덕에 미국구경도 하시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 출세하셨네. 그저 애들 정성으로 받아주세요. 그리고 우리 자손들 건강하고 하는 일 잘 되게 보살펴 주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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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