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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가 일주일여 남은 9월 9일 저녁 7시 서울역 광장에서 열리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1차 촛불행동'을 앞두고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가 관련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와 싣습니다. [편집자말]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은 90일 넘게 단식농성중이다. 사진은 단식농성 65일째인 지난달 14일 오전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기륭전자 경비실 옥상에서 뼈만 앙상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모습.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은 90일 넘게 단식농성중이다. 사진은 단식농성 65일째인 지난달 14일 오전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기륭전자 경비실 옥상에서 뼈만 앙상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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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3일 오후 회의 때문에 기륭전자 여성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농성장에 갔습니다. 한 여성 노동자가 저를 보더니 아는 체를 합니다.

"팔목 다쳤어요? 병원은 가 보셨어요?"

얼굴과 몸이 바짝 말라서인지 두 팔이 반소매 티에서 헐렁헐렁 흔들립니다. 67일 동안 단식을 하다가 폐에 물이 찼다는 의사 소견 때문에 중단한 유흥희 조합원입니다. 기륭전자 회사 앞 경비실 옥상에 천막 하나 치고 그 폭염과 폭우의 시간을 고스란히 견디다가 김소연 분회장의 권유로 단식을 중단할 때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었던 조합원입니다.

그런 그가 나를 걱정합니다. 내 팔에 붕대를 감은 것이야 컴퓨터 자판작업만 좀 쉬면 나을 수 있는 것인데, 제 몸부터 챙기지….

죽음을 옆에 놓고 싸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기륭에 갈 때마다 옥상 위 천막에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김소연 분회장이 병원에 갔다가 73일차에 다시 돌아와 91일째 계속 곡기를 끊고 있는데, 그의 손이라도 잡아주고 위로도 하지 못하겠습니다. 너무도 깡마른 그의 모습. 피골이 상접하고, 반쪽이 되었다는 말을 실감할 수밖에 없고, 그런 그를 보고는 차마 목울대로 말을 낼 수가 없어서 차마 들여다보지도 못하겠습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그렇게 목숨을 걸어야 되는 일인지, 옥상 천막 옆에는 시커먼 관이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죽을 각오로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지,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면서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인권운동의 무기력함으로 인해서 또 말을 못합니다.

기륭에 가면, 그렇게 말문이 막히고는 합니다. 조합원들은 복식을 하면서도(10명이 시작했고, 지금은 김소연 분회장만 무슨 식물처럼 링거만 맞으면서 91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해맑게 반겨주는데, 그리고 이제는 농도 섞어가면서 말도 건넬 수 있을 만큼 친분도 쌓았는데 말이지요.

조합원들은 말합니다. 노예처럼 살려면 일할 데는 많다고 말이지요. 최저임금보다 10원 더 많은 임금을 받던 노동자, 너무 두들겨 맞아 119 구급차가 하루에도 몇번씩 와서는 동료들을 싣고가는 모습을 본 사람들, 그들의 가슴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들이 차곡차곡 쌓였겠지요.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하루아침에 해고자를 만들던 회사, 이제 1100일도 넘게 투쟁해온 노동자들, 기껏해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인데, 그리고 인간의 상식으로 보아서는 당연히 회사가 이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이 맞는데 말이죠.

사실 관으로 상징되는 죽음을 곁에 두고 싸우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원들만이 아닙니다. 모든 장기투쟁 사업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미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게 너무도 잔인하게 설움과 차별·폭력에 짓밟혀왔으니까요. 하루라도 빨리 지긋지긋한 비정규직의 설움을 떨치려고 그 노동자들은 지금까지 싸워온 것이겠지요.

싸움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

KTX 해고 승무원과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지난2일 오전 서울역 안 조명철탑에서 ‘철도공사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KTX 해고 승무원과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지난2일 오전 서울역 안 조명철탑에서 ‘철도공사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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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 기륭에 가기 전에는 서울역에 갔습니다. 45m 높이 철탑에 올라간 KTX·새마을호 승무원들의 투쟁을 지지하기 위해서지요. 집회는 끝났는데, 저 아득한 높이에서 손을 흔드는 그들을 보면서, 그리고 열차가 지날 때마다 흔들림이 감지되는 철탑의 싸늘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천막농성은 기본이고, 오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건 올랐고, 매달릴 수 있는 곳은 어디든 목숨을 내걸었습니다.

처음 노조를 만들 때는 사람 사는 맛이 이런 건가 보다면서 인간의 존엄함을 깨닫기도 했겠지만, 그 순간은 달콤할 정도로 짧았고, 인내해야 할 고통의 시간은 너무도 잔인했습니다.

최근에는 이랜드나 코스콤 등의 천막에는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워낙 이런 저런 바쁜 일들이 이명박 정부에 의해서 너무 많이 터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 같이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도전이고, 부정입니다.

인간은 모두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상식을 지키려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그럴 것이면 비정규직 문제 해결하는 것은 너무도 손쉬운 일일 겁니다. 언론 장악을 위해서 무리수를 두기보다는 비정규직의 생존권 확보를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일도 아닐 텐데 말입니다.

전국에 1년을 넘게 투쟁한 장기투쟁사업장이 금속노조만 해도 60곳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 노동자들이 모두 투쟁한 날을 꼽는다면 얼마나 될까요?

노동자들 내에서도 계층화가 이루어지고, 노동운동이 침체기를 겪으니 투쟁인들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투쟁이 힘들어지니 이런저런 이견과 오해도 존재하고, 그런 관계들이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하나 둘 떠나가는 동료들의 모습에 힘이 더 빠지고, "한 달만 한 해만 더 버티면 이길 것"이란 희망을 스스로 다짐하지만 장기투쟁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이마저도 갖기가 힘듭니다. 수년씩이나 싸워온 이들은 지금까지 투쟁해온 나날이 아까워서라도 투쟁을 포기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 싸움에서 밀리면 자신이 살아 있음을 포기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긴긴 세월 투쟁을 했지만 패배하고 떠나는 동지들의 뒷모습만큼 슬픈 모습이 어디에 있을까요? 이 싸움에서 물러난다면 자신에게 돌아올 치욕의 세월들이 너무도 힘들 것이란 걸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이 싸움은 단순히 돈 몇 푼 받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의 투쟁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잃어가는 우리 사회에서 인간다움의 길로 가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싸움입니다.

올 추석엔 단식도 고공농성도 없다면...

지난 6월 10일 서울 세종로 광화문 일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전면 재협상을 촉구하며 촛불 행진을 하고 있다.
 지난 6월 10일 서울 세종로 광화문 일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전면 재협상을 촉구하며 촛불 행진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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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 세상은 각박하지만은 않습니다. 기륭의 여성노동자들이 목숨을 담보로 투쟁을 하니까 먼저 네티즌들이 움직이고, 시민들이 움직였습니다. 매일 저녁 기륭 앞에서 촛불이 켜지고 있습니다. 지역에서도 처음 전주에서 시작되더니 대구에서, 원주에서, 부산에서, 자발적으로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이고 촛불을 켜주고 있습니다.

그런 움직임은 더욱 파장을 크게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노동운동도 모르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기륭 노동자들의 처절한 단식 투쟁이 알려지고, KTX나 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이 알려지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 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9월 9일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1차 행동이 저녁 7시에 서울역에서 있습니다. 부제가 '한가위 전에 정든 일터로' 입니다.

비단 투쟁하는 비정규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890만 비정규노동자들에게는 정말이지 추석이 추석 같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선은 이런 제목과 부제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의 천막을 접고, 그리고 단식과 고공농성을 접고 일터로 돌아가고,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서 추석을 지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런 꿈같은 얘기 한번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보면 안 될까요?

추석 후 9월 말 10월 초 경에는 금속노조와 공공운수노조 등을 포함해 민주노총이 나서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1만인 선언, 1만인 행동의 날'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나마 희망입니다.

그렇지만 기륭이나 KTX 그리고 이랜드 노조의 교섭 상황은 교착 상태입니다. 인간의 존엄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측의 기세는 완강합니다. 법적인 책임이 없다는 말도 빼지 않고 합니다. 그런 그들이 기륭의 저 조그만 깡마른 노동자를 존엄함을 지닌 인간으로 인정하도록 사회적으로 압박하자는 것이지요. 돈 투기나 하지 말고, 노동자들의 인간됨·존엄함을 인정하라는 요구인 것입니다.

그래서 모이자 했습니다. 법과 제도를 핑계를 대면서 결국은 죽음의 나락으로 몰아가는 정치권 사람들이나 또는 자본가 무리들에게 세상은 돈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은 아름다운 연대를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 했습니다.

기륭 사측이 그것을 못하겠다면,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이 그것을 못하겠다면, 이랜드 사측이 그것을 못하겠다면, 코스콤 사측이 그것을 못하겠다면, 비정규직들의 피눈물을 먹고 살아 왔으면서도 제 책임을 다하지 않으려는 악덕 자본들을 이 사회에서 영원히 퇴출시키고, 더불어 사는 우리라도 고용기간 걱정 없이, 최소 생계 걱정 없이 최소한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이상 죽지 않도록, 촛불을 듭시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1000일을 싸우는 동안, 그리고 노조원들이 50일을 넘어 옥상에 관을 올리고, 하나둘 쓰러질 때 몰랐노라고, 저들이 무너지면 결국 내 삶의 기반도 무너지고, 우리 후세들은 더욱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노예 같은 삶을 살 것이라고, 그러므로 그들은 우리를 대신해서 싸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비정규직이 850만 명을 넘어섰고, 학교를 나온 20대들은 취업 자리를 잡지 못하는 세상, 그들에게는 88만원 세대라는 명칭이 부여되고, 그리고 다시 10대들에게는 야만적인 경쟁에 내몰려 그나마도 일자리는 구경도 하지 못할 세상이 오고 있다는 것, 그 야만의 시대, 비참한 노예의 시대를 예비하는 자본과 권력에 저항하는 길은 89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맨 선두에서 성자처럼 싸우고 있는 그들과 연대하는 길, 그길 뿐입니다.

오늘(9일) 저녁 7시, 서울역에 모여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얘기를 듣고, 그 처절한 투쟁을 끝내고 정든 일터로 정규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연대합시다. 촛불을 들고 한명 두명 모입시다. 서울역 광장을 연대의 촛불로 밝힙시다.

그들이 고공 철탑에서 내려오고, 그들이 끝내 단식을 풀고 정든 일터로 한가위 전에 돌아가도록 손에 손잡고 모입시다. 오래도록 투쟁에 지친 그들의 손을 잡읍시다. 그들이 세상을 살아갈 희망을 만드는 일, 우리의 희망임을 세상에 알립시다. 그리하여 저들의 절절한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 더 큰 힘으로, 더 크게 나설 것임을 분명히 알립시다.

더 이상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요구하는 일이 목숨 거는 일이 아니게,
더 이상 노동자들이 자신의 존엄함마저 부정당하는 세상이 아니게,
더 이상 인권과 상식이 짓밟히지 않게,
더 이상 죽지 않게 하기 위해,
사람으로 살기 위하여.


태그:#비정규직, #기륭전자, #K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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