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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땅 나주는 예부터 농업이 발달했다. 영산강의 도움이 컸다. 영산강은 담양 가마골 용소에서 발원해 350리를 흘러들어 서해에 몸을 섞는다. 조선시대 이 강에는 나주평야의 쌀을 실은 조운선이 서해를 거쳐 김포까지 오르내렸다. 일제 강점기에도 쌀이 황포돛배에 실려 목포로 가서 화물선으로 갈아타고 일본에까지 건너갔다.

 

영산강은 바다와 육지를 연결하는 소통로였던 셈이다. 그러나 강의 잦은 범람은 농민들에게 재앙이었다. 나주에서 뽕나무와 쪽을 많이 심었던 이유다. 홍수 대비 목적이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하구둑을 건설한 것도 이같은 명분이었다. 영산강변에 염색 문화가 발달한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염색체험을 하러 나주로 향한다. 나주는 천연염색의 본고장이다. 염색체험은 별다른 준비가 필요 없다. 물들일 수 있는 옷가지를 가져가도 되지만 그렇지 않아도 전혀 불편이 없다. 몸만 가면 된다. 쪽, 치자, 홍화씨, 양파껍질, 황토 등을 이용한 염료를 만들어 놓고, 체험용 천(무명)도 준비돼 있기 때문이다. 비용도 몇천 원이면 거뜬하다.

 

천연연색 체험을 할 수 있는 천연염색문화관은 나주시 다시면 회진리 영산강변에 있다. 천연염색 관련 시설 가운데 국내에서 제일 크다. 문화관 앞으로 쪽밭과 벼논이 펼쳐져 있다. 논둑을 따라 흐르는 개울물도 투명하다.

 

예슬이와 슬비는 벌써 체험할 옷가지를 고르고 있다. 예슬이는 티셔츠와 손수건 하나씩 추켜든다. 슬비는 티셔츠 두벌과 손수건 두개를 챙겨 체험학습관으로 이동한다. 염료는 물론 세척용 싱크대, 염료 추출용 버너, 염색통, 탈수기 등 체험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다.

 

체험은 물을 들일 천에 문양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티셔츠와 손수건에 문양을 내기 위해 노랑색 고무줄로 묶는다. 어떤 곳은 크게, 때로는 작게 묶는 것도 나름대로 재밌다. 고무줄에 묶인 부분은 염색물이 들지 않아 나중에 문양으로 변하는 것이다. 느슨하면 염료가 스며들어 문양이 예쁘게 나오지 않는다.

 

이젠 물을 들일 염료를 선택하는 순서. 슬비는 빨강색의 코치닐을, 예슬이는 노랑색의 치자염료를 택한다. 코치닐은 선인장에서 자라는 작은 벌레를 일컫는다. 하여 동물성 염료인 셈이다. 치자는 식물의 열매다.

 

야외 원두막에서 체험을 한다. 아이들은 염료가 담긴 양재기에 티셔츠와 손수건을 넣고 주무르기 시작한다. 여러 번 천연염색을 해본 터여서 설명이 따로 필요 없다.

 

염색체험은 간단하고 쉽다. 흰색 천을 염료에 넣고 주무르기만 하면 된다. 염색이 고루 되도록 열심히 주무르는 게 관건이다. 30여 분 주물렀을까. 그 사이 예슬이가 주무르던 옷감에 노랑색 물이 진하게 배었다. 슬비 것은 자줏빛으로 선명하게 물들었다. 아이들의 손도 노랗고 빨갛게 변했다.

 

이제 깨끗한 물에 헹궈 햇볕에 말리기만 하면 된다. 아이들은 싱크대에 물을 받아놓고 옷가지를 헹구고 짜고, 또 헹구고 짜고를 되풀이한다. 처음에 진하게 빠졌던 염색물이 시나브로 연해진다. 탈수기에 넣고 물기를 빼낸다.

 

염색하기 전에 묶었던 고무줄을 없애니 문양이 드러난다. 밋밋하던 티셔츠와 손수건이 제법 폼 나게 변했다. 슬비와 예슬이 둘 다 흡족한 표정이다. 잔디밭에 설치된 빨랫줄에 하나씩 정성껏 널고 집게로 물려 놓는다. 누구의 것이 더 예쁘게 물들었는지 잠시 비교도 해본다.

 

햇볕과 바람에 티셔츠와 손수건을 맡겨놓고 전시관으로 향한다. 우리 고유의 오방색(청색, 흰색, 적색, 흑색, 황색)이 천장에서부터 드리워져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황룡포, 혼례복, 남색치마 그리고 다양한 천연염색 작품들을 감상한다. 천연염색의 역사도 훑어본다. 자연에서 얻어지는 염료가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다.

 

쪽 염색과정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게 눈에 띈다. 쪽의 재배에서부터 색 뽑기, 잿물 만들기, 물들이기, 건조과정까지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 놓았다. 재봉틀 앞에선 바느질 체험도 해본다.

 

전시관을 돌아보는 동안 체험한 옷가지들이 다 말랐다. 뽀송뽀송하다. 천연염색이 빚어낸 색에 금세 심취한다. 슬비는 "정말 색깔 예쁘다"며 감탄사를 토해낸다. "인내심이 필요했다"는 예슬이는 "옛날 조상들의 슬기를 배웠다"고 했다.

 

한나절이 흘렀다. 그 사이 슬비와 예슬이가 색의 오묘함에 반한 모양이다. 동심이 토실토실 여물면서 마음결까지 빨주노초파남보로 물든 것 같다. 자연이 가장 좋은 친구이자 선생님이라는 사실도 깨달은 것 같다.

 

염색문화관 앞에 펼쳐진 쪽밭을 거닐어본다. 하찮게 보이는 풀이 그처럼 아름다운 색을 품고 있다는 사실에 아이들이 놀란다. 문화관에서 가까운 복암리 고분군에도 발자국을 찍는다. 출토된 유물로 미뤄 마한시대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 길 

· 호남고속국도 광산나들목(나주방면)-동신대학교-나주시청-영산포삼거리-전남면허시험장 입구-구진포 삼거리-천연염색문화관
· 나주 천연염색문화관 ☎ 061-335-0091 / www.naturaldyeing.or.kr


태그:#천연염색체험, #천연염색문화관, #슬비, #예슬, #복암리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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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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