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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이 모두 베이징올림픽에서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우리 국가대표 야구팀이 남긴 감격을 함께 나누느라 여념이 없던 24일(일) 오후 3시부터 제주시 문예회관 소극장에서는 제주지역 노래패 ‘청춘’이 창단 8주년을 맞이하여 ‘통(通)’이라는 제목으로 정기공연을 펼쳤다.

 

 

그간 8년 동안 제주지역에서 많은 활동을 했지만 ‘청춘’이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지게 된 것은 지난 4월 이후 촛불문화제가 계속 되면서부터다. 서울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는 안치환, 양희은 등 유명한 가수들이 현장에서 대중들과 함께 흥을 나누지만, 제주지역은 그럴 사정이 못되었다. 그런 문화 공백을 메운 이들이 노래패 ‘청춘’이다.

 

제주지역 촛불문화제에 거의 매일 저녁 초청되어 노래를 선보이면서, ‘청춘’은 제주의 촛불광장에서만큼은 유명 연예인이다. 실제로 지난 4월 이후 촛불문화제에 참여했던 많은 여중고생들이 ‘청춘’의 노래에 감동했고, 이들이 부르는 민중가요를 부담없이 흥겹게 따라 불렀다.

 

 

24일 공연이 진행되는 제주시 문예회관 소강당에는 객석에 관객 50여명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중에는 휠체어를 타고 온 장애우들도 있었고, 부모의 손을 붙잡고 온 어린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6.15공동선언실천 제주본부 회원들과, 지난 4월이후 제주지역 촛불문화제를 주도해온 이명박탄핵투쟁연대 제주지역 회원들도 많이 참여했다.

 

무대 양쪽 바닥에는 촛불이 든 컵 모양을 한 장식이 깔려 있었다. 촛불이 꺼진 것이 아니며 이 공연이 촛불광장의 연장임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공연 1부는 ‘소통(小通, 작은 그릇)’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다. 그 ‘작은 그릇’은 이명박 대통령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과 소통하기에 그릇이 너무 작다는 의미다. 공연을 시작하며 남긴 회원의 대사가 객석에 앉은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한미동맹이 헌법보다 더 좋으면 이제 그만 대통령의 꿈을 접고 부시의 대리운전이나 계속 하시지.”

 

 

공연이 시작되고 가장 먼저 선을 보인 노래는 청춘이 만든 노래인 ‘희망의 촛불로’였다.

 

어둠이 내린 저녁 우리의 손에 켜진 촛불이 모여 세상을 밝히고

도시의 불빛보다 촛불은 더 따뜻해 우리의 심장은 더욱 뜨겁다.

심장이 뜨거운 우리의 가슴처럼 그런 희망의 촛불을 밝혀가요.

자 우리를 봐. 희망의 작은 불씨 모이고 모여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춰주네.

자 우리 다함께 희망의 촛불을 밝혀가요. 자 우리 다함께 희망의 촛불을 밝혀가요.

 

가사가 간단한 노래였지만 지난 촛불문화제를 계기로 만들어진 노래였기에 제주지역에서 촛불을 준비해온 이명박탄핵투쟁연대 회원들의 감회는 남달랐다.

 

 

지난 촛불문화제 기간도중 불렀던 노래들도 다시 선보였다. ‘이 사람아’라는 제목의 노래를 흥겹게 선보이자 객석이 들썩 거렸다.

 

미친 소 먹게 하고 양키 놈들 배불리고 국민얘기 무시하고 지들끼리 다 처먹고

할 거 다했다고 자랑하는 이 사람아 이제 그만 정시차려 이 사람아.

 

공연 2부는 소통(笑統, 웃는 통일)이었다. 올해가 제주4.3이 일어난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자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1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임을 강조하기 위한 공연이었다.

 

2부에서 가장 주목을 끌었던 노래는 ‘할아버지의 소원’이란 제목의 노래였다. 이 노래는 청춘 회원들의 딸들인 김지한, 강윤아 어린이가 나와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버스를 타고 금강산도 가고 세상이 좋다한들

내 조국 하나이지 않고 내 어찌 북녘 가랴.

첫 번째 소원은 통일 내 단 한 가지 소원도 통일

내 조국 하나이지 않고 내 어딘들 갈 수 있나.

 

 

이 노래는 비전향 장기수로 오래 복역하다 출소한 고성화 할아버지의 마음에서 영감을 얻고 만든 노래라고 한다. 고 할아버지는 비전향 장기수들이 출소 후 북녘을 선택해서 월북할 때 혼자 남한에 남겠다고 해서 지금은 제주에서 생활하고 있다.

 

청춘의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이명박탄핵투쟁연대 제주지역 회원들이 게스트로 참여하여 축사와 율동을 선보이며 그간 촛불의 광장에서 ‘청춘’이 보여준 열정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공연이 끝나고 어둠이 내리자 제주시내 한 야외공원에서는 노래패 청춘 회원들과 공연을 함께 지켜봤던 관객들이 모여 뒤풀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모임에 참여해서 그간 공연으로만 보아왔던 ‘청춘’ 회원들과 대화를 나눴다.

 

‘청춘’에서 가장 오랫동안 활동해온 회원은 이소진 회원이다. 이소진 회원은 2000년에 이 노래패가 만들어질 당시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회원이다. 스스로를 ‘청춘의 전설’이라 부른다. 지금은 남편과 두 딸을 거느린 주부다. 이소진씨에게 이 노래패를 만들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물었다.

 

“대학에서 노래패에서 활동했습니다. 졸업 후 제주통일청년회에서 활동하다가 6.15공동선언이 발표되는 것을 보고 너무 감격했어요. 노래를 다시 부르고  싶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지난 8년간 노래패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들이 있는지 물었다.

 

“2000년 즈음에 비전향 장기수들에 대한 한차례의 석방이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많은 장기수들이 북을 택할 때, 미리 출소해서 제주에서 살고 계셨던 고성화 할아버지는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북인들 편하겠냐?’고 하셨어요.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영감을 얻어서 만든 노래가 ‘할아버지의 소원’입니다. 그 후 고성화 할아버지가 우리 아들에게 ‘지한’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천지와 한라가 하나가 되라는 의미였어요.”

 

‘청춘’에는 9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남성회원은 강형훈, 강요한, 박상호, 백경돈, 김효철 등 5명이고, 여성회원은 이소진, 양성미, 이수신, 이지희 등 4명이다. 이소진씨가 회원 중 유일한 기혼 여성이라면, 강요한씨는 유일한 기혼 남성이다.

 

청춘의 대부분 회원들이 노래패 활동과 별개로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데, 강요한 회원은  음악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직업활동과 음악활동을 병행하는 게 어렵지 않은지 궁금하다. 

 

 

“평소 연습은 주 1-2회 정도 합니다. 연습이 있는 날이면 회원들은 저녁 8시에 모입니다. 그런데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면 주 4회 정도 연습을 해야 합니다. 가정이 있는 회원들은 가족들의 배려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공연을 준비하고 사무실을 운영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 것인데 그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수입원은 후원인들이 내주는 후원금, 공연에 초청되었을 때 받는 공연료, 자체 공연이 계획될 때 광고 스폰서, 우리가 매달 모으는 월 회비 등입니다. 이 정도면 운영하는데 크게 부족하지 않습니다.”

  

청춘은 다른 노래모임과 달리 음악성 못지않게 사회적 의제에 관심을 가지고 대중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야하는 특수성이 있다. 음악성과 사회적 의제 사이에 회원들 간 갈등과 입장차이가 있는 경우는 어떻게 극복할까?

 

“음악성과 사회문제에 대한 우선순위 결정은 회원 개개인이 스스로 입장을 정리할 문제입니다. 다만 모임이 음악을 매개로 모인 만큼 연습을 하는 동안만은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음악성이 높아야 대중들에게 제대로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다는 생각을 회원들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8년이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자작곡도 많이 발표했으니 음반으로 묶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음반에 대한 얘기가 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실현되려면 또 많은 논의와 작업이 필요할 겁니다. 우리도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강형훈씨는 가장 최근에야 청춘에 입단한 회원이다. 그동안 록이나 블루스를 주로 부르던 다른 그룹에서 활동하다가 금년에야 청춘에 가입했다. 대중음악을 주로 부르는 그룹과 민중가요를 주로 부르는 노래패와는 성질이 다를 것이다.

 

“확실한 것은 제가 이전에 활동했던 노래모임과 청춘은 너무 다르다는 겁니다. 입단한지 얼마 안 되어서 어떤 것이 더 좋다고는 아직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공통점이 있다면 음악활동은 좋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어떤 노래를 하든지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늘 따라다니는 과제입니다.”

 

자정이 다가오자 공원에 자리를 함께했던 사람들이 한명 두 명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그래도 청춘 회원들은 서로 미처 다하지 못한 얘기들이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회원 아홉 명이 다시 뭉쳐서 근처 소주방에 들어갈 눈치다. 나이에 상관없이 늘 ‘청춘’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열정이 부럽다.


태그:#청춘, #청춘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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