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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조선 역대 왕들의 시호를 외우는 방법이다. 역사 공부
에 도움이 된다고 외우라 시킨 선생님들도 있었다. 나 역시 중학교 때 선생님의 영향으로 조선 왕조 뿐 아니라 고려 왕조까지 줄줄 외운다. 태혜정광경 성목현덕정 ….

요즘 역대 왕의 시호를 외우라 시키는 경우는 많지 않다. 역사는 왕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건 아니니까. 왕이 당대 사람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 건 사실이지만, 왕이 아니어도 온몸으로 당대 사회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간 사람들도 많으니까. 그들도 끊임없이 역사를 만들어왔으니까.

왕부터 무명씨까지 모든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들이 모여 역사가 된다. 그래서 역사의 주인공은 그들 모두가 될 수 있다.

'리얼 휴먼스토리'로서의 <한국사傳>

<책표지> 한국사 전 2,3
▲ <책표지> 한국사 전 2,3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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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휴먼스토리'로서 인물 중심의 한국사를 추구하는 <한국사 傳> 2, 3권에 등장하는 인물은 왕부터 내시까지 다양하다. 왕조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를 추구하는 프로그램 취지에 적합한 인물들이다. 주요 목차를 살펴보자.

2권 - 새로운 조선을 꿈꾼 여걸(소현세자빈 강씨)/조선의 21세기형 복지가(토정 이지함)/몽골을 두 번 격파한 고려 승려(김윤후)/왕의 남자(김처선)/외교지략가인가, 사대주의자인가(김춘추)/베트남을 찾은 최초의 한국인(조완벽)/조선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화가(단원 김홍도)/무인의 길을 선택한 군주(정조)/난세의 충신(백헌 이경석)/조선의 과학 수사관(정약용)

3권 - 백제를 재건한 중흥 군주(무령왕)/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여인(정희왕후)/여자여서 불행했던 시인(허난설헌)/조선이 꺾어버린 붉은 꽃(홍의장군 곽재우)/닫힌 시대의 젊은 열정(광암 이벽)/한민족 최초의 해외원정(무왕 대무예)/발해는 황제의 나라였다(문왕 대흠무)/시인에서 당쟁의 투사로(송강 정철)/밥은 백성의 하늘이다(민생군주 세종)/소리가 하늘이다(조선의 악성 세종)

영상이 아닌 책으로 읽는 <한국사傳>의 재미도 쏠쏠하다. 사료에 의해 뒷받침된 내용을 바탕으로 솜씨 좋은 작가들이 만들어낸 문장력이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대 현실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간 한 개인의 삶을 다각도로 분석하면서 그가 추구했던 삶의 의미를 감동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홍의장군 곽재우의 삶과 좌절

과거 시험에 합격했으면서도 답안이 선조의 시정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합격이 취소된 뒤 곽재우는 다시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정치가 권력을 포장하는 헛된 말로 변질된 세상에서 관직과 정치를 아예 포기했다.

곽재우 홍의장군
▲ 곽재우 홍의장군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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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곽재우를 역사의 무대로 끌어낸 게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이 일어났음에도 수령들은 제 몸과 제 식솔들 살리기에 급급했다. 그는 이런 현실에 분노해서 의병을 조직해 싸우기로 결심했다. 아내가 매달리며 간곡히 말렸지만 그는 말리는 아내에게 칼을 들이대며 뜻을 꺾지 않았다. 자신의 전 재산을 의병활동에 내놓았다. 그러나 정작 그의 식솔들은 굶주림을 면치 못했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미쳤다고 했다.

남명 조식의 가르침을 받아 유학과 무예를 함께 익혔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 된 곽재우는 지속적인 승리를 이어가며 홍의장군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곽재우는 일신 영달에 관심이 없었다. 전황 보고만 할 뿐 목을 벤 적의 숫자도 알리지 않았다. 선조가 내려준 관직조차 받지 않았다. 자신의 옷을 벗어 의병에 입혀주고, 처자의 옷을 의병들 처자에게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선조는 의병들을 신뢰하지 못했다. 백성들의 원성이 나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의병이 민란으로 이어질까 두려웠던 것이다. 이몽학의 난을 계기로 조선 의병장 총수였던 김덕령이 체포되어 고문 끝에 죽어갔다. 곽재우 또한 조정의 감시를 피할 길이 없었다. 임진왜란이 끝날 무렵 곽재우는 모친상을 계기로 떠돌이 생활에 나섰다. 두 아들과 함께 패랭이를 만들어 팔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어지러운 세상, 정치판에 환멸을 느낀 곽재우는 은둔의 길을 원했다 하지만 국난을 맞아 기울어가는 나라를 버려둘 수 없어 의병장이 되었다. 전쟁에서 그는 승리를 거듭했다. 하지만 그는 무너졌다. 그를 무너뜨린 적은 왜군이 아니라 무능한 군주와 조정의 대신들이었다.

조선이 꺾어버린 붉은 꽃 곽재우의 진정한 삶과 좌절을 보여준 뒤 <한국사 傳>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던져준다. 

곽재우의 일생은 그가 진정으로 원한 삶이 아니었다. 시대를 책임지지 못하고 역할을 다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지도자들이 있는 한 역사의 비극은 되풀이될 것이다. (책 속에서)

덧붙이는 글 | KBS 한국사傳 제작팀/한겨레출판/2008.5/각권 12,000원



태그:#한국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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