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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 카트리나(Hurricane Katrina)가 2005년 8월 28일를 강타했을 때 자주 접한 도시 이름이 뉴올리언스였다. 파괴된 뉴올린언스를 보면서 고통스러워했지만 또 다른 기억을 떠올렸다.

 

미국 남동부 루이지애나주에 속한 뉴올리언스는 미국 어느 곳보다 흑인들의 문화전통이 풍부하다. 그들은 이곳에서 흑인가곡·춤곡·성가를 혼합한 뉴올리언스 재즈를 탄생시켰다. 뉴올리언스 재즈는 흑인의 강렬하고 펑키한 취향과 함께 활기 넘치는 격렬한 음으로 즉흥 연주와 함께 관조와 사색, 서정성이 극도로 정제된 음악이다.

 

이런 음색과 음악성, 음질을 가진 재즈 세계에 '재즈계의 쇼팽,' '재즈 피아노의 음유 시인,' '재즈 피아노의 인상주의자'로 불리우는 빌 에반스를 앨범이 아니라 책으로 만나는 일은 재미와 함께 글을 통해서 재즈를 만날 수 있는 더 깊은 기회이다.

 

<을유문화사>가 2004년부터 펴낸 <현대예술의 거장시리즈>에서 첫번째로 나온 <빌 에반스 :재즈의 초상>이다. 글쓴이 피터 페팅거는 에반스에게 닥친 많은 문제를 통하여 성공과 낙담, 좌절이 어떻게 인격을 형성하게 했는지 보여줌과 동시에 예술성과 감수성을 형성하는 과정을 하나하나 추적해 간다. 이 장면은 읽는 이에게 에반스를 옆에서 만나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한다.

 

페팅거는 빌 에반스의 앨범과 연주곡 하나하나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으며, 작은 클럽에서 빌 에반스가 연주한 날짜와 배경, 상황까지 소개하고 있다. 특히 책 맨 뒷부분에 '디스코그래피(discography)'를 두어 빌 에반스가 녹음한 모든 음반의 참여 연주자와 녹음 일자, 장소, 앨범의 특징, 녹음 과정 및 변경 사항 따위를 전부 기록하여,'전체 빌 에반스 음반의 작은 역사'를 구현하고 있다. 또한 빌 에반스의 연주 장면과 악보, 지인들의 사진 50여 컷이 본문에 실려 있다.

 

<빌 에반스>를 읽어가면서 느끼는 경험은 열렬한 추종자들이 작품에 대한 진지한 평가 없이 무조건 칭송하고, 찬양하고 앨범 몇 장 가지고 있으면서 빌 에반스를 알고 있다는 생각하는 사람들을 무색하게 한다. 피터의 세밀하고 면밀한 기록들은 빌 에반스 작품 자체를 이해하는데도 좋은 선물이지만 20세기 재즈 역사를 풍미했던 위대한 음악가 역사를 담은 귀중한 자료로도 손색이 없다.

 

피터 베팅거는"그는 결코 화려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청중들이 아니라 그 자신을 위해 연주한다."고 빌 에반스를 평가했다.

 

피터 베팅거가 자신을 평가한 것에 답을 주는 것처럼 빌 에반스도 "오로지 음악과 함께 혼자 있었던 수많은 시간들이 내 삶이 나아가야 할 에너지를 한데 모아줬다는 생각이 난다. 홀로 연주하면서 혼자 있다는 느낌에 도달했을 때, 음악의 기술적이며 분석적인 측면들은 하나의 적극적인 진실이 되어 내게 다가온다."고 했다.

 

연주를 자신과 하나 되게 하는 일, 그것이 음악이다. 다른 이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을 위하여 연주할 때 결국 다른 이를 위한 연주가 된다는 사실 앞에 보여주기 위한 연주회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게 한다.

 

"여러분께서 재즈를 가르칠 때 가장 위험한 것은 스타일을 가르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겐 열한 명의 피아노 학생이 있었는데, 저는 그 중 여덟 명에게 코드나 그 무엇에 대해서도 알려고 하지 말라고 이야기했죠. 심지어 그들은 누가 뭘 했는지도 알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모방자가 되길 원치 않으니까요?재즈를 가르친다는 것은 매우 예민한 일이죠. 궁극적으로 지닞한 재즈 연주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스스로를 가르치야합니다."(159쪽)

 

음악과 자신을 하나되게 하지 못하면 연주는 연주가 아니며, 음악은 이미 음악이 아니라는 의미로 읽히는 빌 에반스 말은 가슴을 후빈다. 에반스는 손재주로 재즈를 연주한 것이 아니라 영혼으로 재즈를 연주한 사람이었다. 기술로 재즈를 연주하지 않고 재즈를 통하여 사람을 연주한 사람이었다. 빌 에반스는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과 음악세계를 언급하면서 화가와 비유했다.

 

“하지만 화가는 그림을 그리는 순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야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보여주게 되는 것은 그의 인간적인 측면이다. 그 점은 내게도 정확하게 동일하다. 난 기술적인 개념으로 생각하지만 내가 연주하는 것은 바로 인간이다. 원칙과 자유는 섬세하고 창조적으로 섞여야 하며 정말로 훌륭한 결과를 낳아야 한다. 난 모든 음악이 낭만적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극단적인 감상주의에 빠지면 낭만성은 방해받게 된다. 반면에 원칙에 의해 운용되는 낭만성은 가장 아름다운 미적 상태다.”(204쪽)

 

화가가 그림을 통하여 자신들을 드러내듯이 연주를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음악이다. 기술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는 일, 바로 인간을 말하는 것이 음악이었음을 에반스는 말하고 있다. 인간을 드러내는 연주를 기교와 기술로만 생각하는 경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던지는 울림은 크다.

 

위대한 예술가를 그냥 칭송하는 책이 아니라 그가 갔던 길 모두를 다시 되짚어 가면서 자료를 수집한 후 수집된 자료를 있는 그대로 싣고 읽는 이가 스스로 평가하게 할 수 있게 한 배려는 에반스를 새롭게 알게 한다. 칙 코리아가 에반스를 '금세기 가장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이라 했는데  <빌 에반스>는 과장이 이 말이 아님을 확인해주는 좋은 책이다.

덧붙이는 글 | < 빌 에반스 : 재즈의 초상> 피터 페팅거 지음 ㅣ 황덕호 옮김 ㅣ 을유문화사 | 25,000원


빌 에반스 - 재즈의 초상

피터 페팅거 지음, 황덕호 옮김, 을유문화사(2004)


태그:#빌 에반스, #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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