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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소방서 외관
 마포소방서 외관
ⓒ 이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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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화요일 오전 9시. 마포소방서에 들어섰다. 9시는 소방관들에게는 특별한 시각이다. 격일제라고도 불리는 2교대 근무가 보통인 소방관들에게 9시는 새로운 일과의 시작일 수도, 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24시간 취재를 기획하며 소방서에서 얼마나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는지, 소방관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들은 어떠한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오전에는 서울시 소방기술경연대회를 준비하는 소방관들의 연습 과정을 지켜보고, 소방서 내부를 이곳저곳 둘러봤다. 생각보다 많은 부서들이 있었고,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들도 많이 알게 됐다. 소방서에는 크게 내근을 하는 부서가 있고, 외근을 하는 부서가 있는데 외근 같은 경우는 화재진압대·구조대·구급대로 나눌 수 있다.

종합상황실에서 한 쪽 벽면에 쓰여있는 수치들을 살펴보니 2008년에만 화재 출동 건수가 736회, 구조 출동 건수 972회, 구급 출동 건수는 1만277회임을 알 수 있었다. 환자를 이송하는 구급 출동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 눈에 띈다.

119 구조대 출동, 동물 구조에서 벌집 제거까지

구조대원이 건물 옥상에서 불로 벌집 제거를 하고 있다.
 구조대원이 건물 옥상에서 불로 벌집 제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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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10분 경 구조대원들의 출동에 동행했다. 나에겐 첫 출동이었다. '동물 구조'란다. 현장에 도착하니 주인을 잃은 듯한 덩치 큰 개 한 마리가 상점 앞에 엎드려 있다. 주민의 신고로 이렇게 출동을 하고, 개를 안전하게 옮기는 과정을 지켜보니 조금은 이채로웠다. 순간 TV를 통해 봤던 119 구조대원들의 별의별 구조 활동들이 머리를 스쳤다.

구조대는 하루에 보통 6~7번 출동을 하는데, 동물 구조나 벌집 제거 같은 일들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4시에 구조대를 따라 출동하니 이번에는 날개가 부러져 건물 안을 서성대는 비둘기를 신고한 경우다. 구조대원이 조심스레 비둘기를 잡아서 구조대 차량으로 옮겼다.

5시 출동은 '벌집 제거'였다. 4층 주택의 옥상에 벌집이 있었다. 벌집은 생각보다 깊고 넓게 자리하고 있었다. 불길을 이용해 벌집을 제거했지만 전체를 완전히 제거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직접 신고를 한 최정선(남·38)씨는 "TV를 통해 119 구조대가 벌집도 제거해주는 사실을 알았다"며 "시민들의 사소한 불편함까지 해결해주는 구조대 분들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저녁을 먹은 후 상황실을 지키며 또 다른 출동을 기다렸다. 다행히도 오늘은 별 사고가 일어나지 않아 출동 지령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구조대에 이어 이번에는 구급대의 출동을 동행하기로 했다.

어느새 밤 11시가 되었고, 상황실을 통해 구급대 출동을 알리는 방송이 나온다. 처음 타 본 구급차는 실내가 무척이나 더웠다. 의자에 앉았지만 심하게 덜컹거리기도 했다.

도착한 곳은 고지대에 위치한 공원이었다. 운동을 하다가 발목을 다쳐 걷기 힘든 한 시민을 병원까지 이송해야 했다. 구급차가 진입하기 힘든 위치라 대원들이 들것에 환자를 싣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갔다. 옆에서 보기에도 들것을 옮기는 게 매우 힘들어보였다.

자정이 넘은 시각, 구급대가 또다시 고령의 환자분을 병원까지 안전하게 이송했다. 주택가에 계단이 많고 경사도 완만치가 않아서, 구급 활동이 정말 힘이 든다는 말이 와 닿았다.

출동 횟수가 가장 많은 구급대, 그만큼 힘도 들어

마포소방서에서 구급대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경호(31) 소방사.
 마포소방서에서 구급대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경호(31) 소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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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서로 돌아와 짧은 휴식 시간을 이용해 이경호(31) 소방사와 얘기를 나눠봤다. 이 소방사는 소방서에서 근무한 지는 3년이 됐고, 구급대원으로 일한 지는 1년이 됐다고 했다.

구급대에서 일하기 전에는 화재진압을 2년 동안 했는데, 이 두 가지 일 중 무엇이 더 힘드냐고 물으니 "구급이 훨씬 힘들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이유는 구급대는 출동 횟수가 굉장히 많고, 그 때마다 들것을 이용해 환자를 이송하는데 평지에서 쉽게 이송할 수 있는 경우는 별로 없고, 대부분 힘든 자세에서 어렵게 이송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많은 구급대원들이 몸에 이상을 느끼고, 특히 허리에 심한 통증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비응급 환자가 아닌데도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구급차를 택시처럼 이용하는 시민들이 있다"면서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이 분들도 다 병원으로 이송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구급차에 대해서도 "허리가 안 좋은 환자분들이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힘들어하신다"며 "좀 더 나은 완충장치가 구비됐으면 하는데 비용 문제로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이 소방사는 "2교대 근무가 나한테는 잘 맞는 것 같다"며 "쉬는 날을 이용해서 드럼도 배우고 밭도 일군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수확한 옥수수는 첫 농사치고는 맛이 좋았다고 했다. 그는 또 "시민들이 고맙다고 할 때 정말 뿌듯하지만, 일의 특성상 근무하다 보면 피곤하기도 해서 늘 시민들에게 따뜻하게 다가서지 못한다"고 아쉬워했다.

고요한 새벽, 그러나 그 끝은 소방관들의 안타까운 죽음

새벽 2시 50분 경 또 한번의 구급대 출동을 갔다 온 후, 내내 상황실을 지켰다. 특이사항은 없었다. 상황실은 고요했다. 이따금 들려오는 무전 소리와 전화벨 소리만이 울릴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어느덧 창문 너머로 동이 트는 것이 보였다.

새벽 5시 30분경이었다. 출동도 없고 조용했던 상황실에 시끄럽게 무전 소리가 오갔다. 은평구 대조동에 있는 한 나이트클럽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소식이었다. 당직 근무자들이 바삐 상황을 확인했고, 상황실 모니터에는 화재 현장을 멀리서 잡은 화면이 나타났다.

화재진압 과정 중에 대원 몇 명이 실종됐다는 소식도 들려왔고, 건물의 옥상이 무너져 내렸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정확한 정보는 아니었고, 급박히 들려오는 무전 소리였다. 처음에는 마포소방서 관할 구역도 아니었고, 은평구에서 일어난 화재 현장이라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왠지 일이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20일 새벽 서울 은평구 대조동의 한 나이트 클럽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다 순직한 소방관 3명의 빈소가 마련된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한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20일 새벽 서울 은평구 대조동의 한 나이트 클럽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다 순직한 소방관 3명의 빈소가 마련된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한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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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가 되어서도 화재 현장은 정리되지 않았고, 은평소방서 대원 세 명이 병원으로 실려갔다는 얘기가 전해졌다. 옆에 있던 이은와 안전교육팀장은 "은평소방서라고 해도 인근 소방서라 다 아는 사이"라며 "동료 대원이 다치면 정말 가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아침식사를 하고 이제 24시간 취재를 마무리하려는 찰나 은평소방서 대원 세 명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조기현 소방장, 김규재 소방장, 변재우 소방사였다. 당혹스러웠다. 상황실 모니터를 통해 지켜봤던 화재 현장은 그렇게 참혹스러워보이지 않았는데, 세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하니 실로 믿겨지지가 않았다.

그 현장에 마포소방서의 구조대원들도 지원 출동을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오전 9시가 될 때까지 새벽에 나갔던 구조대원들은 현장에서 지원 업무를 계속했다. 비로소 소방관들이 얼마나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는지 절실히 느껴졌다. 은평소방서 대원들의 죽음으로 마포소방서 또한 침울하긴 매한가지였다.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우린 무조건 2교대, 쉬는 날에도 땀흘리죠"
[인터뷰] 마포소방서 신임 소방관 박복철·유지연·유상한

근무한 지 한 달이 된 마포소방서 신임 소방관들. 왼쪽부터 박복철 소방사, 유지연 소방사, 유상한 소방사.
 근무한 지 한 달이 된 마포소방서 신임 소방관들. 왼쪽부터 박복철 소방사, 유지연 소방사, 유상한 소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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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마포소방서에서 근무한 지 이제 한 달이 된 신임 소방관들. 이들은 공무원이라 안정적이고 사회에 봉사할 수 있어서 소방관의 직업을 택하게 됐단다. 물론 소방관이 갖고 있는 특성상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다. 굳이 위험한 일을 해야 하느냐는 걱정과 염려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모님이나 가족들을 이해시키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고.

막상 소방관으로서 한 달을 보낸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박복철(30) 소방사는 "화재진압이나 구급 활동 말고도 소방관들이 하는 일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며 유지연(31) 소방사는 "실제로 격일제 근무를 하다 보니 아직은 잘 적응이 안 된다"고 말했다. 유상한(29) 소방사 또한 아직 격일제 근무 때문에 피곤함을 느낀다고.

하루 근무하고 하루 쉬는 2교대시스템. 이들에게 쉬는 날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물었다. 박 소방사는 "처음에는 쉬는 날엔 무조건 자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최대한 여가를 활용하기로 마음을 바꿨다"며 "현재는 체력단련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유지연 소방사는 "요새는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도 만나고, 미래를 위해 자격증을 따려고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유상한 소방사는 "지방에서 올라와서 서울 지리를 잘 몰라 소방관 업무를 위해 쉬는 날마다 지리를 익히는 중"이라며 "이젠 책도 많이 읽어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아직 한 달밖에 안됐지만 이들이 특별히 느낀 점들은 뭘까. 박 소방사는 "시민 분들이 고맙다고 수고한다고 따뜻하게 말 한마디를 건네줄 때 참 뿌듯하다"고 말했다. 유지연 소방사는 "화재 진압 갔다 오신 동료 분을 직접 봤는데, 방화복을 벗으니 땀이 주르르 흘렀다"며 "그 때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고 기억을 되새겼다. 유상한 소방사는 "소방서에서 근무를 하다 보니 따뜻한 동료애 같은 것이 느껴진다"며 "그런 점이 참 좋다"고 말했다.

이제 소방관으로서 첫 걸음을 내딛은 이들의 각오와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박 소방사는 "모든 일을 두루 잘 할 수 있는 멀티 소방관이 되고 싶고, 이 안에서 좋은 리더가 되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유지연 소방사는 "시민들이 소방에 대해 아는 게 실제로 많지 않은 것 같다"며 "이와 관련해서 홍보나 교육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상한 소방사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기 계발을 꾸준히 해 나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들의 소망과 꿈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덕만 기자는 <오마이뉴스> 8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마포소방서, #소방관, #구조대, #구급대, #소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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