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7월 16일부터 25일까지 인도를 다녀왔다. 짧은 열흘 동안의 여행, 실제로 비행기를 타서 오갔던 이틀을 빼면 8일 밖에 머무르지 못했지만 인도는 대단한 곳이었다. 8일 동안 둘러본 그곳은 너무 뜨거웠다. 인도를 갔다 온 지 한 달 뒤에야 이렇게 올리는 건, 내 마음에서 인도의 열기가 조금은 식어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그 뜨거움 그대로 옮기는 건 내 흥분이 섞여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니까. 

 

'이질적인 마주침과 신체적 변이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어떤 화려한 여행도 타인에게 과시하기 위한 '패션' 혹은 '레저' 이상이 되기 어렵다. 하나의 문턱을 넘는 체험이 되지 않는 여행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시공간(2003. 그린비)

 

고미숙은 이렇게 말했다. 나 역시 새로운 체험으로 생각과 마음이 크지 않는 여행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여기서도 얼마든지 여행을 떠날 수 있다고,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하지만 홀로 우뚝 서기엔 사람은 나약하다. 자주 주저앉고 흔들리는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것도 지쳤을 때, 떠나야 한다는 걸 느꼈다. 어디든 상관이 없었다. 다만 고독한 장소에서 고요한 바람을 맞으며 조용한 하늘을 바라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가고 싶었다. 그 뜨거운 햇볕 아래에 땀을 흠뻑 쏟으며 내 안에 갇혀있는 슬픔과 기쁨까지 전부 쏟고 싶었다. 모든 걸 흘려보낸 뒤 다시 눈물과 웃음을 채워 넣고 싶었다. 모래밭을 걸으며 죽도록 고생하여 안주하려는 게으른 내 엉덩이를 걷어 차 주고 싶었다.

 

같이 가기로 한 친구가 인도를 가자고 한다. 그는 인도여행 책을 읽고 그 열악한 환경에도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이야기에 감명을 받아 직접 겪고 싶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대기업에 입사 예정이었던 그는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든 좋았던 나는 인도 역시 가고 싶었던 나라였다. 인도, 인의 길?이란 뜻이라고 혼자 웃으며 배낭을 꾸렸다.

 

 

인도 가는 게 왜 이리 어려워

 

그런데 인도 가는 길은 멀고멀었다. 한국 밖으로 처음 나가기에 여권을 만들어야 했다. 전역하고 나서 바로 신청했는데 아직 병무청에서 처리가 다 안 되어서 현역 군인으로 표시가 되고 있었다. 행정업무가 그렇듯이 융통성보다는 꼼꼼하고 정확한 서류 확인을 요구하기에 참 난감했다. 어쩔 수없이 집에 돌아와서 복무확인서를 갖고 우체국에 가서 팩스로 부쳤다. 다행히 직원분이 복무 확인서에 적혀있는 부대로 전화로 하여 전역 확인을 해주었다. 여권은 해결되었는데, 비자가 필요했다. 인도가 비자를 요구한다.

 

군인일 때는 그렇게 돌아다니려고 애를 썼건만 전역하자 밖으로 나가는 게 귀찮아진 내게 인도대사관 옆에 있는 비자발급대행업체 티티서비스에 가는 것은 너무 싫은 일이었다. 거기다 비자발급을 위한 무통장입금사본과 여권사진도 필요했다. 꼭 외환은행에다가 입금을 하라는 말에 외환은행 찾기도 귀찮아서 수수료가 무료인 인터넷뱅킹으로 입금을 했다. 입금 확인서를 뽑아야 하는데 집에 프린터가 없었다. 동네 pc방을 뒤졌으나 프린터가 없었다. 짜증이 살짝 돋았다.

 

티티하우스 가는 길에 pc방에 들려서 프린터 하려는데 보안프로그램 때문에 출력이 안 되는 거였다. 암호도 3번 이상 틀려서 은행 가서 본인증명을 다시 해야 했다. 기분이 가라앉았다. 티티서비스에서 서류가 없으면 안 된다고 다시 무통장입금을 한 다음에 비자를 신청하고 인터넷 뱅킹한 거는 사유서와 입금확인서를 제출해서 환불받으라고 한다. 아, 울컥했다. 다행히 근처에 외환은행이 있어서 무통장입금을 했다. 그리고 나중에 사유서와 입금확인서를 뽑아서 우체국에서 팩스로 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 거 아닌데 그때는 신경이 날카로웠다. 왜 그랬을까?

 

이제 떠날 날이 다가왔다. 7월 16일, 생각보다 배낭에 들어갈 게 없었다. 옷 몇 벌과 세면도구, 그리고 여권과 인도 돈과 비행기 표가 전부, 아, 그리고 '인도방랑기'라는 델리에 있는 한국식당에서 팩소주를 2상자 가져오면 새벽에 도착하는 델리공항에서 숙소까지 데려다주고 재워주고 아침까지 주고 소주 값도 준다는 조건에 팩소주2상자를 꽁꽁 잘 포장해서 들고 갔다.

 

휴대전화를 안 가져가기에 아침에 환전소에서 만나자고 한 게 실수. 처음 간 공항에는 환전소가 널려있던 것. 커다란 공항에서 서로가 서로를 찾다가 간신히 만났다. 그리고 너무 일찍 간 탓에 비행기 타는 시간까지는 아직 멀었다. 친구가 잠깐 화장실 간 사이 나에게 어느 할머니 분이 오더니 아무 말 없이 예수 믿으라는 홍보물을 주고 갔다. 그런데 홍보물은 중국어로 되어 있었다. 나를 중국 사람으로 착각하셨나 보다. 아, 인도가기 힘들다.

 

드디어 비행기가 뜬다. 처음 타는 비행기는 훨훨 하늘 높이 올라갔다. 캐세이 패시픽 항공이라 홍콩을 거쳐서 인도 델리로 갔다. 홍콩에서 머무르는 시간 동안 나는 책을 읽었고 친구는 일기를 썼다. 지루한 시간이었다. 그러다 새벽에 도착한 델리공항, 입국 심사를 받고 나오는데 친구 이름을 들고 나와 있는 인도분을 따라 델리 공항을 빠져나갔다. 델리 공항은 새벽에 도착하면 위험하니 나가지 말고 공항에 있으란 얘기도 있다고 한다. 친구는 올해에 택시강도 살인사건이 두건이나 된다며 불안해 하고 있었다.

 

델리공항에서 빠하르간지로 오는 길은 어두컴컴하였다. 밤새 환한 서울에 익숙하였기에 어두운 수도 델리는 낯선 풍경이었다. 소와 사람이 같이 자고 있는 거리, 빠하르간지에 도착해서 숙소로 들어갔다. 이미 새벽3시가 넘었다. 우선 가볍게 씻고 자자.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고.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태그:#인도여행, #인도, #델리, #빠하르간지, #델리공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