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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과 유흥희 조합원이 단식농성 67일째인 16일 병원으로 실려갔다.
 금속노조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과 유흥희 조합원이 단식농성 67일째인 16일 병원으로 실려갔다.
ⓒ 조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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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온데간데없고 빈 천막만이 쓸쓸하게 주인이 오기를 기다릴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18일 오후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내 기륭전자 앞에서 만난 박행란(46)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의 말이다. 세찬 빗줄기에 누가 주인 없는 천막을 찾을까 했지만, 농성장은 북적됐다.

천막농성장에는 '우리는 기륭 노동자를 지지합니다. 릴레이 단식 13일차'라는 문구가 확연했다. 기륭전자 경비실 옥상 위, 주인 없는 단식농성장에는 '기륭 동조 릴레이 단식단'이라고 쓰인 펼침막이 휘날렸다.

서울 면목동 녹색병원으로 후송된 김소연(39) 분회장과 유흥희(39) 조합원의 빈자리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이제 우리가 그녀들의 빈자리를 채웁시다"라며 모인 시민과 누리꾼들이었다. 김 분회장이 단식 69일째를 맞은 날의 풍경이었다.

20대 단식자 "삭막한 노동 환경... 기륭 문제는 우리 문제"

기륭전자 앞에 도착한 낮 12시, 하늘에서 쏟아 붓던 비는 어느새 그쳤다.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이 생활하는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조합원들과 맞닥뜨렸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회의에 간단다. 금속노조는 지난 16일 단식 67일째였던 김 분회장과 유 조합원의 병원 후송을 권유하는 대신, 전조직 차원에서 '기륭문제' 해결에 나서기로 한 바 있다. 기륭전자 앞에서 19일 교섭 촉구 기자회견, 21일 대규모 집회를 연다는 계획이 이미 섰다.

조합원들에게 "투쟁 현장을 비워두는 것이냐?"고 질문하려는 찰라, 컨테이너 박스 옆 농성장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20대 초반의 앳된 대학생 둘이 있었다. 단식을 하고 있단다.

자신을 대학교 기독교 동아리 연합체인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 소속이라고 밝힌 홍상화(22)씨는 "회원 40여명이 8월말까지 하루씩 단식을 하는데, 하루만 한다는 게 부끄럽다"고 말했다. 졸업반이라는 그에게 "친구들처럼 토익공부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런 곳에 많이 와보고 옆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는 게 내겐 더 중요하고, 스스로가 발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교수를 하려해도 비정규직 시간강사로 일해야 하고 삼성에 들어가도 주말 없는 삶이다, 노동환경이 삭막해졌다. 기륭 문제는 우리 문제다."

옆에 있던 동갑내기 신유나씨는 "친구들 보면 쫓겨 사는 게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 허무하고 공허할 것 같다"며 "예전에 마트에서 옷 파는 알바를 했었다, 주위 아주머니 보면서 알바가 아니라 직업이라면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며 단식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기륭문제에 옮겨붙은 촛불? 아프리카TV, 기륭을 생중계하다

장일호 <오마이뉴스> 인턴기자도 지난 14일 하루 '기륭 동조 릴레이 단식단'의 일원이 됐다.
 장일호 <오마이뉴스> 인턴기자도 지난 14일 하루 '기륭 동조 릴레이 단식단'의 일원이 됐다.
ⓒ 장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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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농성장은 주인이 떠났다고 비어있지 않았다. 17일 밤부터 40대 초반의 신현원씨가 그곳을 지켰다. 그는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고 많은 생각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죽음의 문턱과 생존의 한계를 넘은 단식농성장에서 실려 나가면서도 '단식을 풀지 않겠다'는 절규했다. 그 의미는 '정든 일터로 돌아가 자기 땀 흘리며 내일 꿈꾸고 싶다'는 소박한 요구의 표현이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바람을 세상과 자신에게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신씨는 "더 많은 사람들이 연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김 분회장과 유 조합원이 문제해결의 전망이 밝아서 내려온 게 아니"라며 "우리의 연대가 조그마한 성과로 이어져 다른 노동자들과 한국사회의 희망이 돼야 한다"고 전했다.

신씨와 얘기하는 사이, 위태롭게 서있는 천막 안 조그마한 웹캠이 눈에 띄었다. 웹캠과 연결된 노트북에는 농성장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비쳤다. 노트북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송영욱(24)씨는 자신을 "오전부터 아프리카TV로 농성장을 100시간 생중계하고 있는 '아고라TV' BJ"고 소개했다.

지난 6~7월 촛불을 보며 "비정규직 이슈가 촛불에 묻히는 것 같아 절망스럽다"던 김경욱 이랜드 일반노조 위원장의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아프리카 TV에 비친 농성장의 모습은 촛불이 비정규직 문제로 옮겨 붙는다는 신호탄이 아닐까 싶었다.

송씨는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촛불집회에 많이 참여하는 등 많은 도움을 줬다"며 "이제 우리 누리꾼들이 보답할 차례다, 아프리카TV나 아고라 누리꾼들에게 기륭문제를 알리고 싶다, 그렇게 되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맑음? 흐림?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18일은 기륭 동조 릴레이 단식 13일째 날이다.
 18일은 기륭 동조 릴레이 단식 13일째 날이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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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륭 동조 릴레이 단식단과 '아고라TV' BJ처럼 최근 기륭문제에 관심을 갖는 시민과 누리꾼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13일 동안 120여명이 현장·집·직장에서 동조 단식을 했다. 기륭전자 거래처에 항의메일 보내기 등 불매운동도 이뤄지고 있다. 촛불집회에 큰 영향을 끼친 요리 커뮤니티 '82쿡' 회원들도 농성장으로 빵과 죽을 전해오기도 했다.

조합원 박행란씨는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다녀왔을 때 부모님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돌아오면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며 "든든한 느낌이 든다, 너무나도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는 69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김 분회장과 단식을 풀었지만 제대로 걷지 못하는 유 조합원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김 분회장이 단식을 빨리 풀었으면 좋겠지만, 죽을 각오로 올라갔던 그의 의지도 존중해야할 것 같다"고 밝혔다.

사태 해결이 되지 않으면, 김 분회장과 수많은 시민들의 단식은 그치지 않을 터다. 하지만 최근 노사 교섭은 난항을 겪고 있다. 조합원들은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포기하고 '하청업체 고용'까지 양보한 상태다.

하지만 회사는 "조합원 32명 모두가 아닌 현재 투쟁하고 있는 10명만 복직시켜주겠다"고 맞서고 있다. 또한 고용 보장 기간과 투쟁기간 동안의 임금 지부 여부 등과 관련해서도 노사 간의 견해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날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의 날씨는 변덕스러웠다. 오후 햇살이 비치는 듯하더니 이내 비구름이 몰려왔다. 이를 여러 차례 반복하다, 어두워질 때쯤 결국 비는 그쳤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이날 '기륭 릴레이 동조 단식단' 카페(http://cafe.daum.net/kirungRelay)에는 "함께하겠다"는 글이 하나씩 하나씩 빠르지는 않지만 쉼 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태그:#기륭전자 비정규직, #기륭전자, #기륭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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